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요나 예언자의 표징 (루카11,29-32)
제1독서<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갈라4,22-24.26-27.31-5,1)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화답송>시편113,1ㄴㄷ-2.3-4.5ㄱ과 6-7(◎2)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
복음<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11,29-32)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제1독서 (갈라4,22-24.26-27.31-5,1)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5~26)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는'에 해당하는 '하티나'(hatina)는 '호스티스'(hostis)의 중성 복수형이며, '호스티스'는 일반적으로 앞에 나온 명사를 받는 관계 대명사 '호스'(hos)와는 달리, 앞에 나온 진술에서 확인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관계 대명사이다.
여기서 가리키는 '여기에는'(이것들)이란,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가르 및 두 아들과 관련해서 언급한(22,23절)것들을 요약적으로 대변하며, '하티나'(hatina)는 바로 이러한 내용이 지닌 해석학적인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 해석학적인 특성이란 바로 '우의'이다.
'비유'에 해당하는 '알레고루메나'(allegorumena)는 '우의적으로 말하다'(speak allegorically),'우의적으로 해석하다'(interpret allegorically)란 뜻을 가진 '알레고레오'(allegoreo)의 현재 분사 수동태로 '우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의적으로'(allegorically)란 말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교훈 방법이었던 '비유' 곧 '파라볼레'(parabole)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이다.
'파라볼레'는 한 사물이나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거나 연상할수 있는 다른 사물 혹은 사실을 예로 들어 서로 비교함으로써, 이해를 돕는 언어의 한 표현 방법이다.
이와는 달리 '알레그레오'는 어원적으로 '다른' 이란 뜻의 '알로스'(allos)가 합성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그 사건의 일반적 이해와는 다른 어떤 해석이나 사실을 설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여기서 그 '다른' 해석이나 사실은 그 본래적인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그 본래적인 사건을 기초로 하면서 그 뒤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과 그 두 아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뒤에 감춰진 현재적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우의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현재적 삶에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학습장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가르치시려고 성경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현재 상황에 적용토록 하기 위해 성경을 주셨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란 표현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오로는 앞서 22절, 23절의 내용이 우의임을 밝힌데 이어서 본문에서는 왜 이것이 우의가 되는지를 말하고 있다.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란 뜻이 있는 '가르'(gar)로 시작된다.
즉 본문은 계집종과 자유인 여자가 두 계약이란 측면에서 이것이 우의가 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계약은 물론 하느님의 은혜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과(갈라3,16~18)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통하여 모세와 맺은 계약을 가리킨다(갈라3,19).
그런데 여기서 '두'(dyo; 뒤오)란 표현은 이같은 두 개의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여기서 '뒤오'는 그 둘이 각각 다르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기능을 갖는다.
표준 원문은 '뒤오'앞에 정관사 '하이'(hai)가 첨가되어 있다.
희랍어에서 '뒤오'가 관사와 함께 사용될 때는 그 둘이 별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마태19,5; 마르10,8; 1코린6,16; 에페5,31).
본절에서도 표준 원문은 하가르와 사라로 알레고리화되는 이 두 계약이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녔음을 강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관사를 붙였다고 볼 수 있으며, '뒤오' 자체가 이런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 바로 하가르입니다'
원문으로 볼 때 강조 문장이다.
새 성경은 번역되지 않았으나, '진실로'(마태3,11), '과연'(마태17,11)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멘'(men)이란 불변사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시나이산으로부터 나와서 종살이할 자식을 낳았던 한 계약, 곧 하가르가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본문은 시나이산으로부터 종살이할 자식을 낳은 계집종이 누구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그는 바로 '하가르'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4절 후반절과 25절에서 계집종 하가르를 통하여 율법의 성격을 설명했던 사도 바오로는 이제 본절에서 자유인 사라를 통하여 계약의 성격을 설명한다.
이처럼 본절의 내용이 앞선 내용과 대조된다는 사실은 '그러나'(but)로 번역될 수 있는 접속사 '데'(de)가 잘 보여준다.
율법과 계약의 차이점이 '지금의 예루살렘'으로 묘사된 반면, 계약이 본절에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ano yerusalem; 아노 이예루살렘)으로 묘사되고 있고, 25절의 '종살이를 하고'란 표현이 본절에서는 '자유의 몸'이란 표현으로 바뀐데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입니다'란 표현은 하가르와 사라의 신분이 그에 속한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바와같이, 사라로 비유되는 계약에 속한 자 모두가 사라와 같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잘 보여주며, 이것은 갈라티아 교인들도 이러한 축복 가운데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하가르(옛 계약)와 사라(새 계약)
(갈라 4,21-24.26-27.31 5,1)
21 율법(제사와 윤리) 아래 있기를 바라는 여러분,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 율법의 진실, 그 실체를 알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 하느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기다라지 못하고 육의 방법, 자신의 힘으로 여종에게서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그 아들은 후손이 될 수가 없다. 하시며 그 후 아브라함의 나이 백살에, 곧 그의 육의 힘이 다 소진 되었을 때 사라에게서 후손이 될 약속된 아들을 낳게 하셨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5 하가르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 산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이 그 자녀들과 함께 종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 시나이 산(탈출20장)에서 받은 십계명을 그 앞(탈출15,25)에서 먼저 주신 나무 하나의 희생(대속의 죽음), 그 사랑의 계명 하나로 깨닫지 못하고 열 개의 법으로 지킨 이들을 법의 종살이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 하나, 곧 십자나무의 대속, 그 사랑의 계명으로 죄의 용서로 자유인이 되는 하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 육의 남편으로 육의 자녀를 가진 여인보다, 그 육의 남편이 아닌 하늘의 약속으로 낳는 여인이 즐겁고 기쁜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뜻, 계명으로 받아 땅의 의인, 큰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뜻, 계명으로 받아 하늘의 의인 ,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즐겁고 기쁜 일이라는 것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인간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받는 이가 하늘의 자녀인 것이다.
(요한1,11-13)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 십계명을 인간의 열 개의 법으로 받아 죄의 종살이를 하지말고 우리에게 그 하늘의 자유를 주시는 십자나무의 대속, 그 진리를 따르라는 말씀, 그런데~조심해야 한다.
(갈라5,13)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욕정)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 하느님의 자유의 법, 곧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사랑 그 복음을 안다면,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자기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을 위한 자기 의로움도 나오게 된다는 것,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1베드2,16) 16 자유인으로서 행동하십시오. 그러나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삼지 말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행동하십시오. ~아멘.!!!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지난 금요일 복음을 떠올려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예수님께 요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루카 11,16 참조).
사실 그들은 이미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목격하고도 더 자극적이고 특별한 표징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께서 ‘표징’이심을 강조하십니다.
마치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징으로 인식된 것처럼 말입니다.
요나가 처음 하느님의 명령을 피하여 달아난 우여곡절의 역사는 차치하고(요나 1-2장 참조), 결국 예언자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니네베로 가서 그들에게 닥쳐온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
요나는 회개하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곧 멸망하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니네베 사람들은 그런 요나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의 외침을 중요한 표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자루옷을 입고 단식하며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합니다.
요나는 그들에게 어떤 기적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니네베 사람들은 그의 단순한 외침에서 표징을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 언급되는 ‘이 세대’의 유다인들은 요나의 외침보다 훨씬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심지어 그분의 놀라운 기적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도, 계속해서 더 큰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주님을 믿기 위함이니 더 확실한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할 때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들, 그리고 그분께서 친히 세우신 은총의 성사들은 우리에게 충분한 표징이 되고도 남습니다.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무엇을 청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들을 잘 식별할 수 있는 은사를 청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2024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하가르(옛계약)와 사라이(새 계약).
사람들의 지지, 비위를 맞추려는 가르침과, 자기 수고로 종살이하게 하는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신앙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독서 (갈라4,22-31. 5,1)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사라이를 왜 부인이라 칭했을까? 그것은 약속(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 육의 욕정으로 난, 곧 인간의 욕망을 위한 율법(律法), 그 옛 계약과, 하느님의 약속으로 낳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 그 두 계약을 모형(模型)한다.
시나이 산에서 받는 율법 계명(誡命), 그 옛 계약은 죄(罪)의 종살이를 하게할 뿐이다.(로마3,20 갈라3,10-13 야고2,10)
25 하가르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 산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이 그 자녀들과 함께 종(율법)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 어머니(알레프+ 멤 ☞ 하느님+ 말씀)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를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땅의 예루살렘으로 다른 차원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깨달아 봐야한다. 곧 이 땅, 어둠의 세상에서 말씀으로 약속된 하늘의 빛의 세상, 새 땅을 깨달아 봐야한다.
(묵시21.1-2)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내려옴은 덮음을 뜻한다. 곧 종살이의 세상을 자유의 세상이 덮어 하늘 화(化), 새 창조하심이다. 첫 창조를 새 창조로 완성하셨듯이 율법, 십계명(十誡命)으로 자유, 구원을 주는 새 계명을 깨달아야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율법(律法), 그 옛 계약을 대속(代贖)으로 완성하신 십자가(十字架), 그 새 계약이다.
육(肉)을 입으신 능력의 예수님 안에 대속의 고난의 그리스도를 봐야한다. 믿어야한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리를 사는 것이 믿음, 신앙이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이사54,1)
= 육(肉)의 남편을 가진 여자는 자신의 산고(産苦)로, 열심히는 한정된 자녀를 낳지만, *버림받은 여자는 하느님의 약속(約束)으로 수많은 자녀를 낳게 됨이다.
(창세11,30. 22,17) 11,30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
22,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2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사악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29 그러나 그때에 육에 따라 태어난 아들이 성령에 따라 태어난 아들을 박해한 것처럼, 지금도 그렇습니다.
= 지금도 육(肉)의 뜻을 위한 율법, 그 인본주의 자들이 하느님의 뜻인 성령을 진리로 따라 사는 이들을 박해(迫害)한다. 인간의 뜻, 입맛에는 오래된 묵은 포도주(옛 계약)가 맛있어 새 포도주(새 계약)을 거부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새 포도주는 성령(聖靈)을 통해서만 그 맛을 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자식이 자유의 몸인 부인의 아들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다.” 하였습니다.
= 숨은 뜻은,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옛 계약의 행위의 열심인 그 ‘자기 의(義)‘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허무(虛無)임을 인정하는 그 자기(自己)부인(否認),버림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선악(善惡)으로 심판하는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말씀으로 산 삶은 헛된 애(哎)씀, 헛수고(愁苦), 헛 신앙(信仰)이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낳으셨다(창조), 그러나 뱀(사탄)의 선악의 유혹을 머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다시 낳으신(새 창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다. 거짓으로 속이는 뱀의 후손이 아님을 간과(看過)해서는 안된다.
사도는 계속되는 가짜, 다른복음, 곧 사람의 뜻, 비위를 맞추는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갈라1,9-10)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 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의 뜻 들어주는, 세상이 칭찬하는 복음(福音), 가르침은 짜라는 것이다.(요한15,18-19)
사람의 마음에 떠 오른 적도 없는 구원(救援)의 길, 진리(眞理)이기 때문이다.(1코린2,9)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 모든 것에서 자유(自由)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의 신앙을 살라는 것이다. 자기 의로움을 위한 수고(愁苦)로 종살이하게 하는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그 옛 계약의 신앙(信仰)을 다시 살지 말라는 것이다.
☨ 참 사랑이신 천주의 성령님!
새 계약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봉헌,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1,29~32)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29.30)
악한 의도로 표징을 구하는 자들(루카11,16)에게 예수님께서 진정한 표징이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내용이 루카 복음 11장 29~36절에 전개된다.
여기서 '세대'로 번역된 '게네아'(genea; generation)는 혈통 또는 동일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라고 표현하고 있다(마태12,39).
사실 표징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악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이적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냈지만,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서도 또 다른 표징을 구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표징만을 구하는 것을 진실된 마음의 결여로 보고, 진실된 마음의 결여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신실함(믿음)의 상실이기에 이것을 '영적 절개없음'으로 보고 악하다고 질책하신 것이다.
또한 '표징'을 뜻하는 '세메이온'(semeion; a sign)은 여기서 어떤 것을 구별해 주는 기적적인 '증거'(toke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주 궁금해했으며, 예수님께서 마귀의 힘을 빌어서 기적을 베푸는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는 것인지 판단하고 식별할 수 있는 '표징'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요구하지만'에 해당하는 '제테이'(zetei; they seek)는 '발견할 때까지 찾다'를 의미하는 원형 '제테오'(zeteo)의 현재 직설법으로 쓰여서, 이들이 예수님께서 표징을 보이실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끈질기게 구했다는 사실을 묘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신앙의 마음으로 메시야로서의 표징을 구하는 이들에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보일 표징이 없다고 하시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마태오 복음 12장 40절에 나오듯이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나가 실제로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후에 니네베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감당하여, 그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징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그리스도, 즉 약속된 구원자로서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흘 만의 부활로서 명확하게 입증하겠다는 것이다(사도1,3; 17,31).
즉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사건이 메시야되심을 보여 주는 결정적 표징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관점으로 루카 복음 11장 30절을 본다면, 이것은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루카 복음 9장 22절의 첫번째 수난 예고에 이은, 또 하나의 간접적 수난 예고로 볼 수도 있다.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요나 예언자의 표징을 보면 이 사람들이 믿을까요?
표징이라는 낱말을 보면서 몇몇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12,37).
사람들은 표징을 청하지만, 표징을 보고서도 믿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표징이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오히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표징을 청하라고 하시지만 그는 청하지 않습니다(7,10-12 참조).
그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표징이 주어지면 그 표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여야 하기에 자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험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표징이 없을 때는 자신의 불신을 감추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시]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 2,34).
표징을 청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이라는 하나의 표징이 던져졌고, 이 표징 앞에서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지만 어쩌면 그 세대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살았던 이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른 세대입니다.
이날 저 날 미룰 수도 없이,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표징은 주어져 있습니다.
그 표징은 나의 믿음을 확인시켜 줍니까, 아니면 나의 불신을 드러나게 합니까?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보이는 아직과 보이지 않는 이미
복음(루카11,29-32)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 표징(標徵, 표지)은 히브리어 ‘오트’로 깃발, 보증을 뜻한다.
(탈출12,13)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오트- 표징, 보증)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하느님의 뜻을 적대(敵對)하는 이집트를 칠 때 그 이집트화(化) 되어있는 죽어야할 이스라엘은 어린양이 흘린 피를 보시고 건너가시겠다는 것이다. 당신이 택(擇)한 당신의 백성은 구출해 내시겠다는 것이다.(로마8,29-30참조)
그 구원의 표징(깃발, 보증)이 ‘어린양이 흘린 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죽음, 그 ‘희생의 피’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구원의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광야(廣野)를 건널 때, 지파(支派)별로 늘 깃발을 앞세웠다(민수10,12-28참조)
(민수10,14) 14 맨 먼저 유다 자손들의 진영이 *깃발(오트)을 앞세우고 부대별로 출발하였다.
= 깃발- 약속의 땅으로 가는 표징, 보증이다. 곧 이 악(惡)한 세상에서 하늘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十字架)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계약의 표징, 보증(保證)으로 받는 것이다. 우리의 죄인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 구원의 새 계약(약속)이다. 그 하느님의 뜻, 그 구원의 계약을 이루시기 위해 짐승(죄인)들의 먹이, 양식으로 오셔서 표징으로 보여 주셨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계약의 피다.
(루가2,12)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거저 의로운자로 구원을 받는 그 새 계약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 구원의 지혜(知慧)시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 그 구원의 지혜, 표징, 깃발, 보증이신 예수님을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표징을 원하는 악(惡)한 세대(世代)다.
31그래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솔로몬 보다, 요나보다 더 큰 이.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면~
(로마8,10)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공동번역 로마8,10) 10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을 살아있습니다.
=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힘의 원리인 세계관(이집트, 세상) 그 내 뜻(생각)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 버림, 죽음으로 예수님의 꼬리가 되는 것이다. 곧 예수님을 나의 머리(주인)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독서(로마1,7)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입당송(시편130,3-4)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 하느님은 창조이전 우리의 속죄 제물로 그리스도를 예비(豫備)하셨고, 그 그리스도로 창조이전부터 용서(容恕)하셨고, 그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으로 하늘의 평화를 선물(膳物)로 은총, 은혜로 내리시어 누리게 하고 계신다.
그 표징(오트- 깃발, 보증)이 공기(산소)와 해와 비와 바람, 그리고 자연이다. 그 하느님의 선물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가?, 보이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깨닫고 그 사랑 안에 사는가, 누리는가!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하늘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미’ 다 이루어졌고, 내렸고, 지탱하고 있는데 ‘아직’으로 살아 하늘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세상과 함께 고통(苦痛) 속에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이다.
(지혜13,1-5)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 보증이신 천주의 성령님! 보이는 것을 위해 살았던 자신을 버리는 자기부인, 버림의 삶으로, 이미 이루어진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깨닫고 누리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