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성령을 청하고, 찾고, 두드려라. (루카11,5-13)
제1독서
<여러분은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갈라3,1-5)
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화답송>루카1,69-70.71-72.73-75(◎68) ◎ 찬미받으소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우리를 위하여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힘센 구원자를 세워 주셨네.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하셨네. ◎
○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그분은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네. ◎
○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가 원수들의 손에서 풀려나, 아무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게 하셨네. ◎
복음<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11,5-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갈라3,1~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 (5)
사도 바오로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이 전한 너무나도 분명한 믿음을 통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진리를 저버린 갈라티아 교인들의 영적 우매함을 반어법적 질문을 통해 통렬히 3장 1~5절에서 책망하고 있다.
즉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 교인들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구원의 보증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이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고난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져 믿음을 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으로 회귀한 영적 어리석음을 범한데 대하여 반어법적 질문을 통해 질타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다시 바른 신앙을 회복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3장 1절에 그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확실하게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과는 상관없이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키려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이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에 따른 행위'와 '복음을 듣고 믿음'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아담과 하와의 불완전하고 나약한 본성의 소유자인 우리는 율법을 지켜 자력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지 못해 죄를 짓고,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우리의 죄를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대속하심으로써, 아버지 하느님께 갈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길이 열렸고, 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 안에서의 이웃 사랑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 입은 우리는 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 율법을 자연스럽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서 율법의 정신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으로 번역된 '운(un)은 '그러므로'란 뜻인데, 문장에서 결론을 내릴 때와 문장들을 논리적으로 함께 연결할 때 사용되는 접속사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서 3장 2~4절의 내용을 3장 5절에서 요약하여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그리고 '주시고'에 해당하는 '에피코레곤'(epishoregon)과 '그리하시는 것입니까'에 해당하는 '에네르곤'(energon)은 각각 '공급하다'(콜로2,19)란 뜻을 지닌 '에피코레게오'(epishoregeo)와 '행하다'란 뜻의 '에네르게오'(energeo)의 현재 분사형이다.
모두 관사 '호'(ho)의 지배를 받는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사용되어 각각 '주시는 이', '행하시는 ~ 일이'란 뜻을 나타낸다.
이처럼 두 단어가 모두 현재 분사형으로 사용된 것은 지금 현재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일하심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다'란 의미로 번역된 '에피코레게오'는 일반적으로 '주다' 란 뜻을 갖는 '디도미'(didomi)동사와 달리 '값없이 제공하다', '선사하다' 란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받은 위로자요, 변호자이신 성령께서 값없이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3장 5절 원문에는 문장 구성상 동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3장 5절이 앞에서 언급한 3장 2~4절을 요약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본문의 완성된 문장을 추론해 낼 수 있다.
3장 2절에 '여러분은 ~받았습니까'에 해당하는 '엘라베테'(elabete)와 3장 4절에 '여러분은 ~ 체험했습니다'에 해당하는 '에파테테'(epathete)가 그 해답의 열쇠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본문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그 성령을 여러분이 받은 것이(엘레베테), 그리고 하느님께서 행하신 그 능력들을 여러분이 체험한 것이(에파테테), 율법의 행위에서인가, 복음을 듣고 믿음에서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너무나 당연한 후자의 대답이 나오는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갈라티아서 수신자들이 직접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 청하였으나 받지 못한 경험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 탓을 돌리다가
‘그럼 나는 주님께 전적인 신뢰를 드리며 청하였던가?’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오늘 복음은 청하는 자와 청을 들어주는 자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한밤중에 빵 세 개가 필요하였던 사람은 아무나 무턱대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꾸어 줄 만한 친분이 있는 벗에게 찾아갑니다.
바라는 것을 얻어 내고자 영리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한밤중에 자고 있던 그 벗은 귀찮기도 하고 이미 잠든 식구들을 깨우기가 곤란하다며 거절하지만,
친구의 청(請)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계속 졸라 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친구 사이였고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곧 졸라 대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아나이데이아’는 ‘뻔뻔스러움’ 또는 ‘부끄러운 줄 모름’을 뜻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친구끼리라면 조금 염치없이 뻔뻔하게 굴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누구에게 청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신뢰 관계는 친구 사이보다 어쩌면 부모 자식 사이에 더 끈끈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벗이 부탁하는 청도 거절하기 힘든데, 자녀들이 청하는 것을 아버지가 거절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신뢰합니다.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도 선하신 분,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사소한 청 하나도 허투루 흘려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 여정에 꼭 필요한 선물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우리의 영적 여정에 필요한 선물은 결국 성령의 은사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그 좋은 것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루카 11,5-13)
어제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중심인 일용할 양식을,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묵상했다. 말씀을 위에 양식, 꼭 필요한 양식으로 또 내일, 다가올 날의 차원이 다른 양식으로, 곧 하늘의 생명을 위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고 묵상했다.
오늘 그 양식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위해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로 시작하신다.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 빵 세 개만(트레스알토스-셋빵) ‘셋 이라는 빵’이다. 셋(3)이라는 성격의 빵인 것.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일,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피, 그 말씀이 진리의 생명수, 물인 것이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일로 , 일차로 증언하시는 성령, 곧 셋을 하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 우리의 내일의 꼭 필요한 양식인 것이다.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단식하며 계속 간청하는 기도, 그 의미와 다른 것이다. 줄곧 졸라대면(아나데이아- 수치, 체면을 버리고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기도하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라 하시는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먼저 주신다고 약속 하셨으니 주실 것이라는 것, 그 약속은 구약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요한16,23)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이름(쉠-분석된 말씀), 곧 하늘의 진리의 말씀으로~, 성경에서 이름을 말씀으로 읽어도 된다는 것이다.
*찾아라(제테오-껍데기 속의 것) 성경의 율법과 말씀 그 문자 속에, 그리고 우주 만물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두드려라(낙하-죽일 목적으로 치다.) 양들의 문이신 예수님, 그분을 표징과 기적의 능력의 예수님이 아닌,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매 맞으시고 죽으시는 구원자로 보라는 것, 그러면 하늘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생명의 물이 나온다.
(요한19,34)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십자가의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민수20,11 참조-같은 의미)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 *열리다(아노고이고- 위에 것으로 열리다) 하늘의 지혜로 알아듣게 된다는 것.
(1코린2,6-10)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면, 생명의 말씀을 죽음의 거짓된 법으로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참 양식)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거짓 양식)을 주겠느냐? 12 달걀(생명)을 청하는데 전갈(죽음)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위에 모든 말씀이 이해되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아래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아멘.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1,5-1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르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10)
루카 복음사가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11장 5~8절에서 '한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를 들고, 기도 응답에 대한 보다 분명한 확신을 주기 위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받으며,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내용이 기록된 11장 9~13절을 첨가한다.
11장 9절에 '청하여라'로 번역된 '아이테이테'(aiteite; ask)는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청하는 것을 뜻할 때 사용되는 '아이테오'(ai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아들의 신분인 하느님의 자녀가 위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 동사가 현재 명령법으로 사용되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청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으며, 또한 능동태로 사용되어 자신이 직접 청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단어가 '기도'와 관련해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루카10,13; 마태18,19; 마르11,24).
한편 '주실 것이다'로 번역된 '도테세타이'(dothesetai; it will be given)는 '주다'를 뜻하는 '디도미'(didomi)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희랍어 문법에서 미래 직설법은 미래에 반드시 발생할 어떤 사건에 대한 강한 확신을 뜻하므로, 여기서는 하느님께 청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강한 확신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찾아라'로 번역된 '제테이테'(zeteite; seek)는'발견하기 위해서 애써서 찾는 것'을 의미하는 '제테오'(zeteo)의 현재 명령형이다.
'제테오'(zeteo)는 되찾은 은전의 비유(루카15,8),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18,12)에도 사용되었고, 하느님을 찾는 데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신명2,29; 이사55,6; 65,1; 사도17,27), 천국의 잔치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루카13,24).
따라서 '찾아라'는 것은 단지 성도 개인에게 필요한 것만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자신을 찾으라는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한편 '얻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휴레세테'(hyuresete; you will find)는 미래 능동태로서 '너희들이 능동적으로 발견할 것이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생겨나는 것을 암시한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예레29,13~14ㄱ)
그리고 '문을 두드려라'로 번역된 '크루에테'(kruete; knock)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는 안되게끔 열성을 다해 간절히 두드린다는 의미를 가진 '크루오'(kru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가 구하는 실제 내용이 하느님께 상달되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문을 하느님께서 반드시 확실하게 열어 주신다는 것이다.
'열릴 것이다'에 해당하는 '아노이케세타이'(anoigesetai; will be opened)는 '열다'를 뜻하는 '아노이고'(anoigo)의 미래 직설법 수동태이다.
이것은 멀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어 주고, 또한 수동태로서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느님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루카 복음 11장 9절의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는 점점 적극성을 띠는 자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이같은 집요함과 끈질긴 인내, 그리고 열성이 담긴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루카 복음 11장 10절에서는 11장 9절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 '가르'(gar; for; 왜냐하면)로 시작하여 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준다.
11장 10절의 원문은 모두 동사가 현재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의 기도의 응답이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일이라는 것을 생동감있고 실감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성령을 찾고 두들기고 청하여라.
복음 (루카11,5-13)
5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다시 기도(祈禱)에 관한 가르침을 주심이다.
5ㄴ“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 ‘빵 세 개만’ - ‘트레스 알토스’ ☞ ‘셋이라는 빵’ 이다. 주님의 기도에서 핵심(核心)이었던 일용할 양식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생명, 구원의 양식으로 깨달아 믿으면(먹으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고, 아버지의 나라가 (내 속에) 오신 것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인데, 그 모두는 보호자 성령께서 깨닫고, 믿게 하심으로 이루어짐이다.
‘셋 이라는 빵’은 하느님이신 *말씀(물), *그리스도의 피, *보호자 성령,이다.
(1요한5,5-8)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말씀)과 피(대속, 새 계약)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성령, 물, 피' - 하늘(하느님)을 구(求)하는 것이다.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0 스테파노 사제(司祭)께서 <우리 인간은 나약하기에 한번 기도하고 안 되면 그냥 포기합니다. 그래서 한번 청(請)해서 안 들어 준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함으로 하느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비유(比喩)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의 청은 들어주지 않아도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준다는 비유를 드시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을 귀찮게 할 정도로 하느님께 청(請)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祈禱)에 응답하게 하시는 ‘마중물 기도’인 것입니다.> 하셨는데 아니다.
벗(필로스), 인간적으로는 안 되더라도 줄곧 졸라대면(아나데이아) 체면, 수치를 버리고 뻔뻔스럽게, 곧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을 죽이고, 줄곧 졸라대면 셋 이라는 빵, 하늘의 것을 필요한 만큼 다 준다는 말씀이시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제테오- 겉 안에 속의 것),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낙하- 채칙으로 치다. 죽이다),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 생선, 달걀은 생명을 품고 있다. 뱀, 전갈은 독(毒), 법(法), 죽음을 품고 있다. 곧 사람을 살리는 생명, 진리의 말씀, 영(靈)이지, 사람을 죽이는 심판(審判)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줄곧 졸라대면 내 뜻,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약속이 아니다. 인간에게 감추어지고, 숨겨진(마태10,26),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1코린2,9), 곧 하늘의 의(義), 지혜(智慧), 안식(安息), 생명(生命)이기에 하느님의 진리의 영으로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 성령을 보호자로 약속하신 것이다.(1코린2,10)
인간 스스로는 깨달을 수도, 도달(到達)할 수도 없는 하늘의 진리(眞理), 구원(救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약속하신 것, 당당하게 청하면(아이테오- 빚갚으세요) 받고, 찾으면(제테오-속의 것) 얻고, 문(門)MF 두드리면(낙하- 채칙으로 치다. 죽이다) 열리는 것이다.
문(門)이신 예수님을 채칙으로 쳐서 죽이면, 곧 내 뜻(소원)을 들어주시는 기적과 능력, 표징의 예수님이 아닌, 표징(標徵)의 실체이신 십자가에서 매 맞고 죽으신 예수님이 구원의 진리,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면, 그분에게서 물과 피, 곧 약속하셨던 성령(聖靈)이 흘러나와(요한19,4 티토3,6-7) 감추어지고 숨겨진 하느님의 뜻, 진리가 깨달아지고 믿게 되어 하늘(위)로 새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요한,3-5)
(요한7,37-39) 37 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 ‘그 속에서’ (코일리아- 자궁) 성령께서 내 안에, 속에서 계셔야한다. 성령의 성전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내 속에 이루어짐이다.(1코린6,19-20)
(에제36,25-28) 25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킵)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 하느님의 영으로, 새 영이신 하느님의 규정(規定), 법규(法規)를 지키게 하신다. 행위의 ‘킵’이 아니다. *킵- 깨달음을 믿음으로 마음에 간직, 지키게 하심이다.
기도의 시작이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 하느님이 나를 손수 빚어 이 세상에 나게하신 우리(나) 친아버지, 나의 모든 것을 품으시고 책임져 주시는, 인간의 지각(知覺)을 뛰어넘는 사람의 아버지를 믿고, “아나데이아” 곧 자신을 죽이고(버리고) 줄곧 졸라대면 필요한 만큼 하늘의 의로움, 안식, 생명에 대한 깨달음(믿음)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진리의 성령이 약속된 주님의 기도(祈禱)다.
☨ 하느님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아나데이아” 그 올바른 기도를 할 줄 모르는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도록 날마다 의탁합니다.깨닫고 믿게 하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도록 신자들을 호린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편지를 쓸 때 문제가 된 것은, 유다교를 배경으로 하면서 유다인이 아닌 이들에게까지 율법을 따르라고 요구한 이들이었습니다.
본래 유다인이었던 이들과 달리 이교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경우 굳이 할례를 받고 율법 규정들을 따르는 것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말하자면 유다교를 거쳐 그리스도교로 가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 이들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복음에 대한 믿음이 필요할 뿐이라고 힘껏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염려한 것은 “율법에 따른 행위”(갈라 3,2)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업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경쟁자는 나 자신이고, 내가 예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서간들의 뒷부분에서 주로 볼 수 있듯이 구원된 이의 삶은 복음을 알지 못하던 때의 삶과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에 뒤따르는 결과이지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닙니다.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교인과 똑같이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산다면 오히려 그가 정말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따르는 삶이 구원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사도16,14)
복음 (루카11,5-13)
5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 ‘빵 세 개’ - ‘트레스 알토스’ ☞ ‘셋이라는 빵’
‘셋 이라는 빵’은 하느님이신 *말씀(물), *그리스도의 피, *보호자 성령,이다.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빵을 거절하는 일이 유대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단다. 그것은 신앙의 중심, 기본이기 때문이다. 혹, 주지 않더라도~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 줄곧 졸라대면- 아나데이아( 수치, 체면을 버리고 뻔뻔스럽게)
묵상해보자⇨ 빵을 먹어야할 벗, 빵을 가지고 있는, 줄 수 있는 사람, 벗을 위해 아나데이아 빵을 구하는 친구.
내가 기도해야할 곧 벗, 이웃을 위해 수치, 체면을 버리고 뻔뻔스럽게 빵을 달라고 줄곧 졸라대야 하는 이웃의 벗이다. 누구에게?, 생명의 빵을 갖은 아버지의 지혜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진리의 영, 보호자이신 성령께...
(1요한5,6-8) 6 그분께서 바로 물(말씀)과 피(대속,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셋이 하나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셋이라는 빵. 곧 하느님께서 죄인들의 의로움, 구원을 계획하셨고, 아드님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代贖)으로 그 하늘의 의(義)를 이루셨고, 성령께서 그 십자가의 의(義)를 진리로 증언하심으로 완성된다. 셋이 하나 되는 셋이라는 빵, 하늘의 앙식 말씀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아이테오- 빚 갚으세요),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제테오- 겉 안에 속의 것),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낙하- 채칙으로 치다. 죽이다),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청하여라(아이테오-빚갚으세요) 예제키엘36,26.28 1코린2,9-10.말씀을 깨닫고 믿고, 지키게하실 성령을 약속하심. 그러니 빚갚으세요⇨요한16,23
찾아라(제테오-껍데기 속의 것) 요한5,44 히브11,3 로마8,24. 보이는 땅의 영광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광을 찾아라. 또한 문자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이다.
두드려라(낙하-채찍으로치다. 살해하다.) 민수20,11 1코린10,4 바위(그리스도)의 매 맞으심. 죽으심. 히브10,20- 예수님의 몸(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여야 사는, 우리는 그건 존재다.(마태20,28)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물이 부어진다. 곧 성령께서 부어 지신다.(사도2,33 티토3,5-6)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열릴 것이다.(아노이고-위엣 것으로 열리다.) 그리스도의 매맞으심, 죽으심(낙하)으로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열리는 하늘이다. 곧 사랑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 사랑이신 하느님이 생명을 청하는데 죽음을 주시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코린2,16)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16,23-24) 23 그날(성령의 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 성령께서 가르치신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하느님을 아버지로, 그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마헬-내일의 양식), 곧 하늘의 양식으로, 그리고 모든 용서(容恕)가 이루어지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된다.
☨ 하느님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묵상이 지식으로 남지않게 하소서. 진심으로, 기쁨으로, 감사로 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