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루카8,19-21)

2024. 9. 23. 오후 3: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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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일 화요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루카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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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여러 가지 교훈>(잠언21,1-6.10-13)

1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2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3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4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리고 악인들의 개간지는 죄악일 뿐이다.

5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6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10 악인의 영혼은 악만 갈망하고 그의 눈에는 제 이웃도 가엾지 않다.

11 빈정꾼이 벌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지혜로운 이가 지도를 받으면 지식을 얻는다.

12 의인은 악인의 집을 살피고 악인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13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

 

<화답송>시편119,1.27.30.34.35.44(35) 주님,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당신 규정의 길을 깨우쳐 주소서. 당신의 기적을 묵상하오리다.

저는 진실의 길을 택하였고, 제 앞에 당신 법규를 세웠나이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저는 언제나 당신의 가르침을, 길이길이 지키오리다.

 

복음<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8,19-21)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연중 제 25주간 화요일(잠언21,1-6.10-13)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1)

 

본절부터 3절까지는 주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에 관한 말씀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서 본절은 주님이 세상 모든 일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하는 구절로서,주님은 지혜와 힘이 인간 중에 가장 높고 크다고 생각되는 임금들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솔로몬은 임금의 마음이 주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물이 담긴 보(洑; 나루 보)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둑을 쌓아 냇물을 막아 두는 곳' 의미하는 '보'(洑)로 번역된 '팔르게'(phallge)의 원형 '펠레그'(phelleg)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놓는 규모가 작은 물웅덩이를 가리킨다. 이것은 강우량이 적은 팔레스티나 지방의 농사에서 필수적인 관개시설이다.

 

솔로몬은 농부가 이곳에 물을 저장해 놓았다가 물이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점에 착안하여 하느님께서 임금의 마음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섭리하고 주관하심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성경에서 '주님 손' 다양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주님 손' 우주와 인간에 대한 권능(2역대20,6)이나 섭리(시편31,15)를 나타내거나 혹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보호(이사51,16)와 도우심(시편145,16)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때때로 악인에 대한 심판(시편75,8)이나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나 형벌(이사50,11)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임금의 마음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섭리하고 주관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특히 본절 후반절에 '~대로'(임의로)로 번역된 '알 콜'(al kol)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위에' 의미를 지닌 전치사 '알'(al)과 '모두','전부' 의미하는 명사 '콜'(kol)이 결합된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주권적인 행사와 섭리가 모든 것 위에 미치며, 완전한 것임을 함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본절 자체의 의미를 감안할 때, 임금의 마음과 생각, 행사 모든 것이 하느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의미 전달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2)

 

본절은 사람의 판단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반면, 하느님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심을 대조적으로 기술함으로써, 하느님을 의존하고 그 인도에 따라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하느님의 판단이 완전한 이유는 사람은 가시적이고 외적인 행동이나 일의 결과만 보는 반면, 하느님께서는 드러나지 않는 내적 동기와 목적까지도 깊이 꿰뚫어 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조는 특히 상반절의 '제 눈에는' 해당하는 '베에나이우'(beenaiu)에 들어있는 '눈'이란 의미의 '아인'(ain)과 후반절의 '마음을' 해당하는 '립보트'(libboth)의 원형 '레브'(leb; 마음)의 대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즉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근거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할 수 밖에 없으나,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신 것이다(1사무16,7).

 

한편 '살피시는'에 해당하는 '웨토켄'(wethoken)의 원형 '타칸'(thakan)은 원래 '무게를 재다'(weigh), '시험하다'(examine)라는 의미를 지니며, 문자적으로는 주님께서 사람의 마음의 무게를 잰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있는 동기와 목적들까지도 훤히 꿰뚫어 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의 가족들이 그분을 찾아왔던 일은 공관 복음서 모두에 실려 있습니다.

다만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군중을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밖으로 불러내려 하였다는 내용이나(마르 3,31 참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마르 3,33)라고 하신 조금은 냉정해 보이는 예수님의 반문은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의 가족들은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께 그저 방해가 되는 존재,

또는 그분에게서 외면당한 이들로 여겨지는 오해를 벗고, 독자의 관심은 오롯이 예수님과 그분께 귀 기울이는 군중에게 향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서민들은 하루 품삯으로 온 식구가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빠듯하였습니다.

작고 가난한 이 사람들이 당신 곁에 모여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듣고 새 삶을 결심하는 그 자리가 매우 소중하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미루어 둔 채 이들에게만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씨 뿌리는 사람’과 ‘등불’의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삶 안에서 열매로 맺어 내라는 가르침(루카 8,4-15.16-18 참조)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은, 겉치레뿐인 예배가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실현하고, 악인의 행실을 멀리하며,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삶입니다(제1독서 참조).

막연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주 읽으며 삶의 방향을 잡고, 깨달은 바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주님의 어머니요 형제’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루카 8,19-21)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 실행(實行)~ 말씀을 도덕과 윤리의 계명으로 들어 열심히 지킨 행함, 그것이 아니다.

그 말씀의 실행, 오늘 앞절과 뒷절에 답이있다.

 

앞 16절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등불(그리스도의 빛), 그릇(사람-피조물), 등경(교회-묵시1,20 등잔대).

진리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그 십자가의 사랑, 그 의로움을~ 인간들의 사랑, 의로움이 덮지 말라고, 가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계명으로 지킨 그 인간의 의로움을 진리로 가르쳐~ 교회에 들어오는 이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의로움을 보지 못하도록 하지 말고~

십자가의 의로움, 그 구원의 빛 하늘의 진리를 볼 수 있도록, 개짐(똥걸레)일 뿐인 인간의 의로움을 치워 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 22절 22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시어 그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이르시니, 그들이 출발하였다.

= 배를 타고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 교회(배)가 세상(호수)의 저쪽, 곧 하느님나라로 출발하는 그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23 그들이 배를 저어 갈 때에 예수님께서는 잠이 드셨다. 그때에 돌풍이 호수로 내리 몰아치면서 물이 차 들어와 그들이 위태롭게 되었다.

= 성경은 죽음의 상태를 잠으로 표현한다. 예수님께서 잠이 드셨다는 것은 그 교회(배)에 말씀이 죽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배(교회)안에 그 제자들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믿음 없음의 그 잠든, 죽음의 상태를 뜻한다.

곧 배(교회)안으로 호수(세상)의 물(말, 가르침)이 들어와 그 세상의 말(물), 가르침을 더 의지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기에, 말씀이 제자들 안에서 일을 하실 수 없는 잠, 곧 죽음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24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잠잠해지며 고요해졌다.

= 세상의 말을 의지하고 믿는 ,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죽음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 그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예수님(말씀)을 깨우는,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된 죄인임을 고백 하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그 구원의 진리의 빛으로~ 마음의 풍랑이 잠잠해져 하늘의 평화를 얻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실행인 것이다.

 

(요한6,28-29)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오늘 본문 앞18절에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하셨고 뒤 2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수(세상)의 풍랑으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물으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 길, 구원의 진리로 들어 하늘의 생명, 그 하늘의 복에 믿음을 두었는지, 아니면 인간의 뜻, 길, 계명으로 땅의 목숨, 땅의 복에 믿음을 두었는지~우리의 믿음을 살펴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 성경 말씀을 하느님의 뜻인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 계명으로 들어~그 하느님의 뜻에 믿음을 두는, 그 실천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 독서(잠언21,1-2) 1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 다시 임금(예수님)의 마음은 주님(하느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생명수), 주님(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댜ㅐ로 이끄신다.

 

2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 사람의 길(도덕과 윤리, 규정과 교리)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진리로) 보여도 마음(감추어진 이기적 속셈)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에페3,12)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멘~!!!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복음(루카8,19-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21)

 

루카 복음 8장 19~21절의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2장 46~50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형제들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하고 계실 때 찾아온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적이 군중들에게 영향을 끼쳐 단순히 소문과 명성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베에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마태12,22~32)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찾아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회당에서 가르침을 하는 도중에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 불리움을 받은 제자들도 이러한 공적(公的)인 가르침 중에 사적(私的)인 육정(肉情)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교육적인 차원에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8장 21절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로 나오는 마태오 복음 12장 50절과 병행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혈육적이고 혈연적인 관계보다도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에 해당하는 '메테르 무 카이 아델포이 무'(meter mu kai adelphoi mu)에서 '형제들'에 해당하는 '아델포이'(adelphoi)의 단수는 '아델포스'(adelphos)이다.

여기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이게 가톨릭 사제들의 한계점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時), 그리고 출산 후(後)에도 평생동정(平生童貞)이시라는 교리 신덕 도리 이천년 동안 가르쳐오고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 절대 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성경적 무지로 오류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대처주의를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합리화시키려고 하니까 터무니 없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ing)의 원형은 '듣다',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쿠오'(akuo)인데, 이것은 자식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권위의 대리자들인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인간들의 삶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이신 하느님께 대해 자녀로서의 순종은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는 뉘앙스를 주는 말이다

 


 


 

20240924일 화요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서 819-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 군중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 밖에 서 계실 때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고, 1127-28절에서는 군중 가운데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행복하다고 말할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복음 환호송 참조).

오늘의 화답송인 시편 119(118)편에서도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176절에 걸쳐 율법에 대하여 말하는 이 시편은 행복하여라.”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은 복음의 여러 곳에서 말하듯이 자신을 버려야 하는 길이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길이지만, 그것은 또한 행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어리석어 보이는 길인데도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 외에는 다른 무엇도 나를 지배하지 못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처럼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같은 표현들이 나오게 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주님과 뗄 수 없이 결합된 삶의 방식으로 이해될 때, 그 길은 기꺼이 달려갈 길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고 일컬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군중이 예수님의 식구들보다 더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곁을 내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결합되어 새로운 가족을 이룹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

 

독서(잠언21,11) 11 *빈정 꾼이 벌 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지혜로운 이가 지도를 받으면 지식을 얻는다.

= 빈정 꾼-거만한 자(공동번역), 곧 교만한 자는 하느님의 선악을 스스로 판단해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은 자로 선악의 심판으로 벌 받게 되고, 오히려 어수룩한 자, 어리석은 자는 구원의 지혜와 지식을 얻는다.

 

(1코린1,27)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복음(루카8,19-21)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 성경에서 군중의 의미는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깨닫기 위해서라기 보다, 말씀으로 자신들의 소원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의 기적과 표징을 소문으로 듣고 찾아온 예수님의 뜻, 길 밖에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지 못해 그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의 가족들이다.(루가5,15. 11,29참조)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요한12,33-34)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34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메시아는 영원히 사실 것이라고 들었는데어떻게 선생님은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져야(십자가한다고 말씀하십니까그 사람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 줄, 채워줄 죽지 않는, 기적과 능력의 메시아를 환호하며 따랐던 군중이다.(마태21,6참조)  그런 뜻(생각)을 갖은 이들은 지도자들의 거짓말, 유혹에 넘어간다.

 

(마태27,20.22-23) 20 그동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제사와 윤리, 그 인간의 열심, 의(義)를 부정하고 인간들의뜻(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메시아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22 빌라도가 그들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였다. 23 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 예수님 밖에 말, 가르침을 뛰어 넘어야 진리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실행- 하느님의 뜻인 말씀을 진리로 마음에 간직하여 지키는 것이 실행이다. 

말씀 안에 숨겨지고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 안에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마음에 간직하고, 지키고, 율법, 인본주의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들어가 그분과 한 몸이 되는 것,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지 못한, 내 밖에 분리된 그리스도로 계속 계시면 그리스도께서 섬김의 대상이 되어 새 것, 구원의 진리가 되실 수 없다.

 

(마태20,28)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신앙의 목적지,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와 혼인(한 몸)이다. 내 뜻을 위해, 내 밖의 능력의 예수님(神)을 열심히 섬기는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슬람, 불교 등....

모든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고 신(神- 인간들이 만들어낸)을 섬기지만, 그리스도교는 창조주이신 신(神)이 인간들을 찾아 오셔서 그들의 죄로 죽음으로 인간을 섬겨주는 구원의 신앙이다.

 

(루가23,39-43)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죄인이 용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죽음의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은 받지 못했다. 목숨을 살려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자비는 베풀지 않았다.

 

(요한19,32-34)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신앙의 목적은 세상의 재물, 지위, 병의 치유, 등, 땅의 것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 받아 하늘나라에서 나를 끔찍히 사랑하시는 ‘님과 함께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육(肉)이 죽게 놔두신 것이다.

 

(갈라5,24)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육신의 욕망인 내가 죽으면 죽을수록 거기서 구원의 의(義), 옷을 입혀주시는 하느님이 드러나고, 그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신다.(이사61,10 로마,25참조)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육의 욕망, 그 헛됨을 배워, 육(肉)의 자아를 죽이는, 부인하는 가르침을 받아야지, 다른 종교들처럼 육의 욕망을 채워주는 가르침을 받아 ‘섬김의 신앙’을 살면 안된다. 그러면 군중과 예수님의 가족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미사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 ‘생(生)미사’로? 육의 뜻, 소원을 들어주는 그리스도로 섬기면 안된다. 

입시철만 되면 대학 입학을 위해, 성당이나 성지등에서 다른 종교와 똑같은 헛된 기도를 하게하고 있다. 주님께서 악하다 하신 세상의 교만의 지식, 지혜가 교회(성당) 안으로 들어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핍박 받아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칭찬을 받고 있다.

 

(요한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세상의 핍박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이며, 구원의 증거임을 깨닫고, 기뻐할 줄 알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다(사도5,41)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성경 말씀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선악의 가르침을 빈정대는 그 눈먼 지도자와 함께 선악의 심판으로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게 된다.(마태15,14)

 

☨ 탄식으로 기도하시며 우리의 눈발이 되시며 진리의 길로 이끄시는 천주의 성령님!

사람의 말과 사람에게 매여또한 사람이 주는 상처에 묶여 사는 이 세상 삶에서 자유하게 하소서말씀에 의탁하여 영의 자유안식의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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