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그라든 손 치유 (루카6,6-11)

2024. 9. 8. 오후 3: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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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일 월요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그라든 손 치유 (루카6,6-11)

   


1독서<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1코린5,1-8)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화답송>시편5,5-6ㄱㄴ.6-7.12(9) 주님, 당신의 정의로 저를 이끄소서.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환호하리이다.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 당신이 감싸시니, 그들은 당신 안에서 기뻐하리이다.

 

복음<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루카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5,1-8)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7)

 

교회 안에 죄를 방치하는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을 강한 어조로 책망하던 바오로가 본절에서 코린토 교인들에게 그들 자신이 누룩없는 자라는 것을 먼저 상기시킨다. 또한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라고 명령한다.

6절에서 바오로는 당시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누룩과 관련한 속담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을 사용하여 교훈을 준 반면, 본절에서는 그 누룩을 파스카(유월절 ; 과월절 ; passover) 누룩과 연결시킨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빕월 14일부터 21일에 이르는 7일동안 무교절을 지키는데, 그때에는 누룩을 집안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탈출12,1-14 ;15-20 ;21-28 ;신명16,1-8) 이것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한 그들의 축제요, 예식이었다.

출애굽 전에 하느님께서 모든 누룩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것은 이집트에서의 우상 숭배와 모든 죄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탈출12,6.15.39 ;13,6 ;23,15 ;34,18 ;신명16,3)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면서 이집트의 모든 죄들과 결정적 단절을 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그들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이집트에서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해야 했던 것이다.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 코린토 교회의 죄에 대한 반응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한편, '여러분은 ~ 입니다' 로 번역된 '에스테'(este)는 '~이다', '있다'를 뜻하는 '에이미'(eimi)의 현재 직설법이다. 또한, '깨끗이 치우고'로 번역된 '엑카타라테'(ekkatharate)는 '제거하다', '치워버리다' 라는 뜻을 지닌 '엑카타이로'(ekkathairo)의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 즉각적이고 유효적인 강한 명령의 의미를 드러낸다. 즉 이것은 즉각적 조치를 명령하는 것이다.

 

바오로의 윤리적 명령의 기본 구조의 특징 명령법이 직설법에 근거해 있다는 점이다.(로마 6,11-4.19) 바오로에게 있어서, 명령법은 불가능한 복종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밝히는 직설법을 배제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직설법에 도덕적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법이 결여될 경우, 직설법 자체의 의미는 약화된다.

 

그렇다면, 본문은 코린토 교회 전체가 한 사람 때문에 범죄의 소굴이 되기 전에, 당장 범죄한 그를 내보내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그를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냄으로써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회복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범죄자, 교회 공동체에 악표양을 끼치는 자들에 대해, 교회가 제적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거룩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암적 존재에 대한 정당한 징계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린토 교인들은 근친상간의 죄와 불륜의 죄, 기타 죄악들을 그들의 공동체에서 제해버림으로써, 새롭게 계약 공동체로서 자리매김을 해야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스카절이 시작되기 전에, 집에 있는 모든 누룩들을 샅샅이 제거하는 것처럼, 그들 모두는 각각 자신의 옛 생활의 잔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점검하여 제거하는, 거룩한 순결을 회복하기 위한 쇄신과 갱신 작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코린토 교회 그리스도인 각자가 옛 삶의 잔재를 청산할 때에, 교회 전체가 갱신되어 하느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바오로는 코린토 교인들을 향해 묵은 누룩(ten palaian zymen 텐 팔라이안 쥐엔 ; the old yeast/leaven)을 깨끗이 버리고 청산하는 목적이 '새 반죽이 되기 위함' 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새 반죽'(neon phyrama ; 네온 퓌라마 ; a new batch/lump)은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없는영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것이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새 반죽이 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명령법, 즉 '너희는 누룩없는 자들이 되라'가 아니라 직설법, 즉 '여러분은 누룩없는 빵입니다' 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코린토 교인들이 장차 미래에 누릴 완성된 상태나 이미 발생된 과거의 상태도 아닌, 지금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신분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그들의 현재 상태를 반성하고 누룩없는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 ; fo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본문은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본문은 코린토 교인들이 어떻게 누룩없는 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바오로는 본문을 통해 누룩으로 시작한 내용을 파스카 예식과 결합시킨다.

 

파스카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출애굽 당시 하느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들이 죽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징표로 목숨을 건졌다.(탈출12,1-14)

 양의 희생적 죽음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했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성혈이 바로 모든 인류의 생명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처럼 본절은 과거 파스카 절기의 의미를 영적으로 적용하여, 파스카 절에 이스라엘이 누룩을 제거하여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자신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했듯이, 파스카 양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묵은 누룩이 상징하는 죄를 제거함으로써,영적으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되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죄의 누룩이 없는 자, 즉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1코린2,15) 그리스도의 희생을 힘입어 새 생명을 얻은 자의 당연한 귀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8)

 

앞의 7절에서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희생양으로 비유했던 바오로가  본절에서는 바로 그 축제를 지키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권면한다.

여기서 '축제를 지냅시다' 로 번역된 '헤오르타조멘'(heortazomen)은 '명절', '축제일' 뜻하는 명사 '헤오르테'(heorte)에서 유래한 동사 '헤오르타조(heortazo)의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우리가 그 축제(절기)를 계속해서 지키자' 라는 뜻을 나타낸다.

 

사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구약의 율법과 의식 자체는  폐하고 그 의미만을 취하므로, 신약의 백성들은 구약의 파스카절 자체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카절을 준수할 것을 명령하는 것은 파스카절의 의미를 영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계속하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 바오로는 먼저 묵은 누룩, 곧 악의(malice)와 사악(wickedness)이라는 누룩으로 파스카절을 지내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묵은 누룩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은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 속하기 전에 가졌던 죄악된 습관을 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여 누룩없는 빵을 먹으며 파스카절을 지켰듯이,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로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백성들 역시 '누룩'이 상징하는 과거의 죄악된 습성을 버림으로써, 자신이 얻은 구원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한편, 바오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없는 빵을 취할 것을 명령한다.  

여기서 '순결'이라 번역된 '에일리크리네이아스'(eilikrineias; sincerity)는 '햇빛'이란 뜻을 지닌 '헬레'(hele) '판단하다' 라는 뜻을 지닌 '크리노'(krino)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햇빛 아래서 판단하다' 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주 '모범적인 행동'(착한 표양)을 의미한다.

 

또한 '진실'로 번역된 '알레테이아스'(aletheias ;truth)는  부정 접두어 '아'(a)와 '숨기다', '감추다'라는 뜻을 지닌 '레도'(letho)의 합성어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다'란 뜻을 나타낸다.

이렇게 바오로는 파스카절 '누룩없는 빵'의 성격을,  햇빛 아래서 판단하는 것과 또한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여, 코린토 교인들이 과거에 죄악된 삶과 구별되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매일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사이에 일어난 단식 논쟁(루카 5,33-39 참조)은 안식일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유다인들의 구전 율법 미쉬나는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모든 경우는 안식일 법에 우선한다.’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시대가 지나면서 유다인들도 율법의 예외적 적용의 필요성을 점차 깊이 인식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논쟁을 벌였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경우, 그들의 의도는 처음부터 악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만을 찾을 뿐, 안식일에도 구덩이에 빠진 양을 끌어낼 수 있었던 당시의 통념마저 거슬러(마태 12,11 참조), 

정작 장애를 지닌 동족의 고통은 외면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는 이때 예수님께서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마르 3,5)라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의미를 인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통하여 밝히셨습니다.

안식일이 ‘좋은 일을 하는 날’이며 ‘목숨을 구하는 날’이라 하신 것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창조의 일곱째 날로서 하느님께서 ‘완성이라는 일을 하신 날’이며(“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창세 2,2].)

당신 백성을 ‘억압에서 해방시키신 날’임을 기억하고(신명 5,15 참조) 그 뜻을 실천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손을 뻗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편협한 마음과 잔뜩 오그라든 손으로 때때로 누군가를 가리켰던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이 구워 낸 새 빵이 되어’(제1독서 참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새 삶을 시작합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 6,6-11)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 앞 1~5절에서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을 들었고 묵상했다. 안식은 하느님으오부터 받는 죄의 용서로 누리는 자유, 쉼인 것이고~ 그 하늘의 죄의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묵상했다.

 

그런데~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안식일의 의미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법으로 지키려는 그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는 죄의 용서, 그 자유, 쉼, 안식을 알려주어 죄로 죽을 죄인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그가 일어나 서자

= 손이 오그라든? 예수님의 십자가로 안식을 얻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는,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 그들의 선악(율법)의 그 이원론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일어나 가운데 서라’ 그 받아들이지 않는 오그라든 마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의 말씀 그 *가운데에 들어와 하늘 아버지를 향해*서라는 뜻이다. (더 깊은 뜻은 에덴 가운데 선악과를 묵상해야 하는데~~ 다음 기회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하늘의 합당한 좋은 일이란~

 

오늘독서 (1코린5,5-7) 5 그러한 자(불륜-)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 이웃의 잘못을 지적하고 말씀으로 그의 영을 살리는 것,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에 섞으면 누룩과 같이 사람의 말음을 자만으로 부풀게 한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 인간의 힘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 그 대속, 희생으로 얻는 안식인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 말씀이 치유 하신다. 말씀이 창조하시고(창세 1,3 6 9 11 14 외 다수) 우주 만물 또한 그 말씀으로 지탱하신다.(히브1,3 지혜9,1 2베드3,5 참조)

그 말씀의 힘~

참조-(시편119,133) 133 당신 *말씀으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저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소서.

 

(지혜18,22) 22 그가 그 격분을 이겨 낸 것은 육체의 힘도 아니고 무기들의 효력도 아니었습니다조상들에게 주어진 맹세와 계약을 상기시키면서 *말씀으로 징벌자를 누그러뜨렸습니다.

 

(집회42,15) 1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마태8,16)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성모님이 말씀을 잉태하여 예수(말씀, 깨달음)님을 낳았듯,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신명8,3)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그 모든 능력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우리 가운데 늘~함께 계신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 그 말씀을 마음 한가운데 모시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또한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고 만든 사람의 말, 계명으로 지킨 그 자신의 힘(의로움)을 의지하는 이들은 말씀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수님(말씀)을 죽이는 것이다.

참조~

(잠언30,6)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사57,12)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예레2,21-22) 21 나는 좋은 포도나무로옹골찬 씨앗으로 너를 심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낯선 들포도나무로 변해 버렸느냐? 22 네가 비록 잿물로 네 몸을 씻고 비누를 아무리 많이 쓴다 해도 죄악의 얼룩은 그대로 내 앞에 남아 있다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 잿물과 비누같이 사람의 지혜로 만들어낸 그 법으로 지킨 의로움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아멘~!!!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이미 주셨음에 감사하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복음(루카6,6-11)

6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 오른손은 오른, 올바르다의 하느님의 뜻, 진리를 뜻한다. 곧 오른 안식()에 대한 생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아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선악과로 따먹은 손이다.

 

(창세3,4-6)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뱀의 유혹을 먹고, 뱀의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뜻(말씀)을 자신의 욕망을 위한 선악과로 따먹은 손 이다. 곧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은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선악을 자신이 주관하게 되었으니, 즉 선이 악을 품고(대속) 생명(안식)을 주시는 그 하느님의 약속, 계약의 말씀에서 떨어졌으니 스스로 선을 행하고, 악은 짓지 않는 그 스스로의 열심, 의로움으로 안식에 이르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열심히 지켜야 했기에 쉼, 안식을 누려야 하는 안식일에, 법을 지켜야 하는 그 안식일 법(교리)에 매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사는, 오른 안식의 의미, 정신을 잃어 다른 안식()을 살았던 그 생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된 그 안식의 의미, 신비를 올바로 깨달았다면 주일이 어찌 짐 같이 느껴지겠는가?. 안식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그 시간(주일)을 고대하며 기다릴 것이다.

 

(콜로1,27)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 오늘 안식이신 분 앞에서 그분을 몰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 그들이 마음(생각)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7 그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 뱀의 유혹을 먹고, 창조주 하느님의 자리에 앉은 욕망의 자리, 그래서 스스로 선악을 판단, 주관하는 자리, 그래서 아담 처럼 스스로 부끄럽다’. 자신을 판단한 자리, 그래서 늘 죄의식에 시달렸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있는 너희의 죄악을 대속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 앞에 서라는 말씀이다.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안식일에 너희 선악의 법으로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그 심판으로 남을 해치는(죽이는)것이 합당(合當)하냐? 하느님께서 선이 악을 대속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로 부끄러움()을 없애는 그 용서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합당하냐?‘ 물으시는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 말씀은 듣는가운데 이루어진다.(루가4,21) 신비다. 그 신비(미스테리온-비밀)의 말씀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을 사는 것이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말씀을 진리로 받으면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그 안식을 받지만,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 도덕과 윤리로 받으면 늘 부끄러움, 곧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율법(제사와 윤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그 완성된 안식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놓치고 있다. 예수님의 다 이루어졌다하심을 잊고 놓친, 그 잘못된 생각(마음)으로 오그라든 신앙을 살고있는 것이다. 첫째는 성경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기도)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미사를 드리면 안 된다. 그래서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로 기도하며 미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달라고,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성령(聖靈)께 의탁(依託)해서 말씀을 열심히 보고, 묵상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요한14,26 15,7참조)

미사(Missa)는 물론, 성사생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말씀을, 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진리로 가르치며 그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묵상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화답송으로 드리는 시편의 기도 또한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받았음을) 아는, 시편을 그렇게 보는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실천하자!, 실천하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예수님의 실천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안식)을 내가 먼저 받았을 때, 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선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들의 선악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래서 다른 하느님, 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모두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마태15,14 참조)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시편119,137) 하느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당신의 법규는 바릅니다.

 

천주의 성령님! 우리 가운데 계신, 안식이신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손을 뻗어라하신 말씀이 우리 마음에 아루어지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루카6,6~11)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8)

 

루카 복음 6장 8절의 서두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아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아시고'로 번역한 '에데이'(edei; knew)는 '알다'라는 동사 '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로서 이미 완료된 동작의 남은 결과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엿보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이미 아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루카 복음 6장 7절에 밝혀져 있듯이 예수님을 책잡아 고발하려는 불순한 음모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아마도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신적인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계셨음을  강조하고 싶어서 독자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들 가운데에 자신들을 숨기고 있는 반면에, 이 사실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을 고치는 행위를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를 사람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서게 하신다.

 

악한 목적을 가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선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행하신다.

 

예수님께서 공개적 치유를 행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치시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러한 행위가 적대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을 알고 계셨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하실 일을 당당하게 행하셨다.

 


 

  

20240909일 월요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십계명에서 안식일 규정의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일곱째 날에 쉬시면서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날을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는 측면과(탈출 20,8-11 참조),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음을 기억하여 인간이 해방을 누리게 하여야 한다는 측면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인간이 나와 식구들과 종들이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축과 이방인까지도 일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신명 5,12-15 참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신 일들은 그 두 측면에서 모두 그분께서 안식일의 주인”(루카 6,5)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첫째로 안식일이 주님께 속한 날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그날의 주인이시므로, 안식일 규정에 매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안식일이 인간이 해방되는 날이기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제약에서 풀려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안식일 계명은, 주일이 주님의 시간이고 또 인간의 시간이라는 두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본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살아갈 때, 안식일 규정은 폐지되지 않습니다.

현대인에게 주일은 평일에 하지 못한 밀린 일들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즐기기 위한 날이 되기도 하여 그 거룩함이 잊히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기억하고 인간이 해방되는 안식일의 본뜻을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9월 09[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성경은 우리를 꾸짖어 살리시려는 미리 기록해 놓으신 구원의 약속,말씀이다.

미사를 매일 제사로 드리며 도덕과 윤리의 계명을 지키려 열심을 부렸던 내가인본주의율법주의 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아주 많이 놀랬다.

 

복음(루카6,6-11)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율법의 회당이다율법 신앙을 사는 이들이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이며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다.

*오른손오른쪽올바른 나라하느님의 진리()가 오른안식인 나라다곧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의 의()로 안식을 이루려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대속그 하늘의 의()로 받는 용서자유평화그 하느님의 오른 안식을 마음에서 오그라뜨린 영적 불구자라는 것이다.

곧 창조 이전 세우신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인 그리스도의 대속그 의로움의 죽음을그리고 그 피의 새 계약으로 거저 얻는 의(), 거룩을 자신에게 오그라뜨려묶어 버렸다는 것이다. (로마3,24 히브10,10)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거저 얻는 평화안식을 이웃에게 전해 주지도 못하고계속 율법을 지키도록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지우게 했던 종교 지도자들이다.

 

(루가11,52) 52 불행하여라너희 율법 교사들아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생각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그가 일어나 서자

가운데에 계신 오른 안식(安息)’의 당신 앞에 서라는 말씀이다.

 

(루가17,21) 21 또 보라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보라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마태12,8)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곧 창조 이전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자, ‘오른 안식의 그리스도 당신 앞에 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율법그 옛 계약으로는 절대 올바른 안식을 얻을 수 없다사람을 살리는 올바른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율법그 묵은 옛 계약의 가르침은 사람을 해쳐 영을 불구자로 죽일 뿐이다.(로마3,20) 그 옛 계약을 완성하시고옛 계약이 요구하는 의로움을 전가시켜 살리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로마8,3-4)

그 모든 것을 계획계약하는 사랑자비의 삼위 하느님께 제사가 아닌 감사찬양을 드리는 축제의 미사(missa)가 올바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독서(1코린5,7-8)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십자가의 대속)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순결과 진실(진리)이라는 누룩 없는 빵(피의 새 계약)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하느님께서 창조 때이미 올바른 손(마음)을 주셨는데사악한 뱀의 유혹인 선악의 논리로 안식이 아닌 두려움죄악을 마음에 갖게 되었던 것이다그래서 창조의 말씀이 다시그 사람의 손(마음안에 오그라든묶여 있었던 오른 안식을 풀어 다시 성하게 해 주신 것이다이제 오른(올바른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비로소 이웃과 나누는 이웃 사랑도 하게 된 것이다사람의 의지도노력도 없었다하느님의 은총(은혜)의 말씀이 하신 것이다.

 

(묵시22,17) 17 성령과 신부(교회)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거저 주신다는 것은제사와 윤리인간의 열심노력의로움그 어떤 것으로도 값을 치룰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거저 은총으로선물로 주실 수밖에 없으신 것이다그러나 뱀의 유혹을 먹고 인간의 의()를 가치로 여기는 이들은 그 거저 주심의 하느님 은총은혜를 믿지 않는다안 이해할 수도 없다.

 

11 (그래서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인간 중심의 사람들그 인본주의는 사람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그래서 오른(올바른), 그 주님의 가르침을 들어먹지를 않는다그리고 성령을 받기 전 베드로처럼가족을 떠나면서까지 온갖 열심자기 열의로 영들을 죽이는 일에 힘을 쓴다.

 

(마태23,15) 15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말씀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곧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보내주신 하느님의 지혜거룩한 영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옛 계약의 가르침곧 사람의 말로 자신 안에 이미 거저 주어진 오른 안식을 오그라뜨려묶어 놓고는 오른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두려움의 신앙을 살게 된다내가 그랬었다그러나 말씀으로 거저 자유하게 되었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믿겠다는유다인(인본주의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신 진리의 성령님!

거저 주신 말씀 안에 머물러 묶여있는 안식이 깨어나 오른 안식의 삶을 누리며 하느님께 감사영광 드리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올바른 미사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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