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수요일] 회칠한 무덤 (마태23,27-32)

2024. 8. 27. 오후 1: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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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일 수요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회칠한 무덤 (마태23,27-32)


   

1독서<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2테살3,6-10.16-18)

6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17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이것이 내 모든 편지의 표지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편지를 씁니다.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화답송>시편128,1-2.4-5(1)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복음<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마태23,27-32)

예수님께서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또는,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1요한 4,7-16)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2테살3,6-10.16-18)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10)


여기서 직설법 동사 '텔레이'(thelei; would)와 명령법 동사 '에스티에토'(esthieto; should eat)가 3인칭 단수로 되어 있는데이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닌 그러한 조건에 들어맞는 일반인을 지칭하므로 이 본문을 '누구든지 일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은 먹지도 말라'로 고쳐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우 텔레이'(u thelei; would not)는 자기 의지로써 원치 않는 것즉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일을 할 기회가 있지만 일하기를 거부하는 뉘앙스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와 같이 시간과 건강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아담에게 동산을 관리할 책임을 주셨으며죄가 들어온 이후에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3,19)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일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태도는 극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임박한 종말론이나 기타 다른 광신적 신비주의에 취해 노동을 내팽개치고 살아가는 것은 깊은 신앙심의 표시가 아니라이 땅에서 힘써 일하며 살아가게 하신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인 것이다.




 영적인 순수함과 유연함을 품고  

오늘의 시대는 순수한 신앙의 가치를 살아내기에 너무도 힘들고 강력한 도전들이 널려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살다 보면 속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제아무리 진실한 마음과 바른 생각을 지녔다 해도 그럴싸하게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겉은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23,27-28 참조)라고 하시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신다.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지키며 의로운 체하는 이들의 표리부동을 질책하신 것이다.

당시 길가에는 무덤들이 많았는데, 유다인들의 3대 명절 때는 순례자들이 붐벼 무덤에 몸이나 옷이 닿곤 했다. 그렇게 되면 불결해져서 축제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이를 막으려고 길가의 모든 무덤에 회칠을 해두는 것이 관례였다.

회칠한 무덤들은 맑은 날에는 하얗게 빛나 보였고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였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언자들의 신앙에 참여하고 예언자들이 당하던 박해를 보속하는 뜻에서 기념관과 같은 무덤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30절)라고 말한다.

실제는 어땠는가? 그들은 위선적인 행동으로 예언자들을 박해하던 이스라엘인들 편에 서 있었다. 그들은 구세사를 제 입맛대로 해석하고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쓰라린 대화를 곡해하였다. 그들의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위선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썩어가는 시체의 악취로 진동하고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찬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영적인 유연함의 결핍이다. 영적으로 유연하다는 것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인내로이 기다리는 태도를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충고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독선은 영신 생활에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영으로 유연한 사람은 성 프란치스코가 가르치는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듯” “사랑의 정신으로 자진해서 서로 봉사하고 순종하며”(인준받지 않은 수도규칙 5,14),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권고 9)이다. 그리고 형제의 죄 앞에 인내와 겸손을 지닐 줄 아는 사람이다.

위선에 빠지지 않으려면 영적인 허영으로 가득 찬 말을 중요시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성실은 쓸모가 없다. 화려한 언변이나 있어 보이는 외모나 옷차림, 명품 핸드백과 같은 것 때문에 다른 이에게 호감을 받거나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자신의 내적인 불성실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행동은 참으로 경건했으나 그들의 내면은 교활했고 부패한 죄로 가득했다. 나 또한 속은 썩어 있고 미움과 탐욕, 절망과 부정적 시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죽은 무덤을 실속 없이 화려하게 꾸미는데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영적 유연함을 잃고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빛깔의 독버섯이나 회칠한 무덤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복음(마태23,27~32)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7~28) 


마태오 복음 23장 27절과 28절은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여섯번째 저주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유다인들이 부정하게 여겼던 무덤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무덤'으로 번역된 '타포이스'(taphois; tombs)의 원형 '타포스'(taphos)는 '매장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탑토'(thapto)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원래는 '장례 의식'(funeral rites)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후에는 '묘'(tomb)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었다. 


유다의 무덤은 초기에 동굴 위주였으나 후기로 오면서 '토굴'(crypt) 위주로 바뀌었다. 그리고 '회칠한'으로 번역된 '케코네아메노이스'(kekoniamenois; whitewashed)의 원형 '코니아오'(koniao)는 '석회로 바르다', '회반죽을 바르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여기서는 수동태 완료 분사로 쓰여서 '석회질이 된'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타포이스 케코니아 메노이스'(taphois kekoniamenois)는 '석회질이 된 무덤들'이라는 의미이다. 


유다인들은 유다력으로 아다르월(월력12월; 양력3월) 15일에 무덤을 회칠하는 관례를 가졌는데, 이것은 무덤을 잘 띄게 함으로써 거기를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실수로 무덤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무덤에 몸이 닿은 이는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수19,16).


마태오 복음 23장 27절과 병행 구절인 루카 복음 11장 44절에 의하면,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은 알지 못한다'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드러나지 않는'이라고 번역된 '아델라'(adela)라는 단어는 '숨겨져서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마태오 복음의 기록과는 다르다. 


루카 복음사가는 일반 사람들이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더러운 내면의 세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의미로 그들을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라고 했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음 속은 온갖 부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깨끗한 '회칠한 무덤'처럼 깨끗한 체하는 그들의 이중적인 삶을 강조하기 위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한 것이다. 


한편, '같기'로 번역된 '파로모이아제테'(paramoiazete; you are like)는 '닮았다'는 의미를 지닌 원형 동사 '파로모이아조'(paromoiazo)의 복수 2인칭 현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회칠한 무덤을 닮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회칠한 무덤 같다'는 비유는 실제 내용물은 시체나 말라 비틀어진, 가득찬 뼈들과 동하는 부패한 냄새인데, 겉포장은 희고 깨끗해 아름다우므로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이 회칠한 무덤을 닮았다는 것은 그들의 외적 행위는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그들의 실상인 도덕적, 영적 상태는 썩어 냄새나는 것이라는 사실, 즉 위선의 극치를 가리키는 것이다(마르7,1~23참조). 


'겉은 ~의인으로 보이지만' 


'의인으로'로 번역된 '디카이오이'(dikaioi; righteous)의 원형 '디카이오스'(dikaios)는 '합법적인', '옳은', '의로운'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차디크'(tsadiq)에 해당하는 단어로서 '의로운', '하느님과 인간의 법을 준수하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만'으로 번역된 '파이네스테'(phainesthe; appear)의 원형 '파이노' (phaino) '빛나게 하다', '비추다' 또는 '나타나다'를 뜻하는 동사로, 여기서는 복수 2인칭 수동태로 쓰였다. 이것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보여진다는 뜻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외적인 경건한 노력과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율법 준수의 모습을 보고서, 그들이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의롭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마태23,27-32)

27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 구원은 인간의 지혜 그 길(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지혜의 길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길, 그분의 뜻을 믿었던 의인들과 예언했던 예언자들을 죽였던 것이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길은 그들을 살리시기 위한 하늘의 죽음이신 무지개 계약인 것이다.

 

노아의 홍수 후~

(창세9,15-16)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 덩어리들을 파멸 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 무지개- 레인보우(활), 활은 무지개처럼 하늘을 향해있다. 하늘이 화살을 맞아 대신 죽어 다시 살리시겠다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약이 무지개 계약인 것이다.

또 하나(여러번 묵상했듯이~) 나무 하나의 희생, 그 계명이 있다.

 

(탈출15,2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나무 하나, 곧 예수님의 십자 나무, 그 대속의 죽음으로 쓴물(죄인)이 단물(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규정, 법규,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 곧 생명의 길이요 진리이신 것이고 그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를 무시했고 그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던 의인, 예언자들을 모두 죽였던 것이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 하느님의 무지개 계약이며 구원의 규정 법규 진리이신 예수님 당신을 죽이는 일을 마저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마태20,18-19)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히브7,27)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한 그 헛된 신앙으로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그 하느님의 뜻인 십자가의 복음, 그 약속의 말씀을 저버리고 곧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의지하는 신앙을 살지 못한다면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을 죽이는~ 그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큰 살인, 죄인 것이다.

 

(마르7,13)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 많은 사람들이 그 헛된 신앙을 살고 있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우리 교회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요~~

 

천주의 성령님 저희 많은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아멘♡




 

20240828일 수요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2테살 3,10).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바오로 사도가 신자들에게 하였던 말이고, 특히 그 자신과 같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권고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복음으로 생활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1코린 9,14)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폐를 끼치지 않고자, 그리고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그것으로 먹고살 때, 더구나 여유 있는 삶을 누릴 때,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하였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아모 7,12) 같은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양심에는 거리낌이 없다 하여도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고, 복음 선포조차 돈벌이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정말 믿을 수 있어서 오해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확신하였던 필리피 신자들에게서만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른 교회들도 자신이 복음을 처음 전하여 주었고 자신이 세운 교회들이었지만, 그는 그 교회들에서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분명히 같은 위험이 있습니다.

복음 선포도 얼마든지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쓰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려고까지 할 때는, 이것은 이미 걸림돌이나 오해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나는 바오로 사도보다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느라고 천막 만드는 일을 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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