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마태19,23-30)

2024. 8. 19. 오후 5: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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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일 화요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마태19,23-30)

 


1독서<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에제28,1-10)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3 과연 너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 어떤 비밀도 너에게는 심오하지 않다.

4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다.

5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7 그러므로 나 이제 이방인들을, 가장 잔혹한 민족들을 너에게 끌어들이리니 그들이 칼을 빼 들어 네 지혜로 이룬 아름다운 것들을 치고 너의 영화를 더럽히며

8 너를 구덩이로 내던지리라. 그러면 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9 너를 학살하는 자 앞에서도 네가 감히 나는 신이다.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를 살해하는 자들의 손에 달린 사람일 뿐이지 신이 아니다.

10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죽음을 맞이하리라. 정녕 내가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화답송>신명32,26-27.2830.35ㄷㄹ과 36ㄷㄹ(39)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생각하였다. “그들을 산산조각 내고,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기억을 지워 버리리라.” 그러나 원수가 뽐낼까 보아, “우리 손이 더 강하였다. 이 모든 것을 한 이는 주님이 아니다.” 이렇게 적들이 착각할까 보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녕 이 백성은 생각이 없고, 슬기가 없는 자들이다. 바위이신 분이 그들을 팔아 버리지 않으신다면, 주님이 그들을 넘겨주지 않으신다면, 어찌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수 있으며, 두 사람이 만 명을 몰아낼 수 있으랴?

그들에게 멸망의 날이 다가오고, 재난이 삽시간에 닥친다. 주님은 당신 백성의 권리를 감싸 주시며, 당신 종들을 가엾이 여기시리라.

 

복음<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또는, 베르나르도 학자 기념일 독서(집회 15,1-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제28,1-10)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2)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사람의 아들' 이라는 의미를 갖는 '인자'(人子)에 해당하는 '뻰 아담'(ben adam)은 에제키엘서에서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을 지칭하는 말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이것은 에제키엘로 하여금 하느님과 대조되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존재임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즉 에제키엘로 하여금 스스로의 유한함을 자극하고,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에제키엘이 예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자가 '티로의 군주'로 제시된다. 여기서 '군주에게'에 해당하는 '리네기드'(linegid)의 원형 '나기드'(nagid)는 직역하면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역대기 상권 12장 8절에서는 이스라엘 지파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영도자'(족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역대기 상권 13장 1절에서는 다윗의 군대 장관(지도자)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고, 역대기 하권 28장 7절에서는 왕궁의 대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티로의 군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왕'이라는 의미의 '멜레크'(melek)라는 단어 대신에 '우두머리'라는 의미가 강한 '나기드'(nagid)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티로의 군주가 진정한 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막대한 부와 근동에서의 영향력 있는 위치로 인해 교만해져서 하느님의 자리에까지 오르려고 하는 교만한 티로의 군주를 폄하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티로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비교적 규모가 작은 도시 국가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본문의 '나기드'(nagid)라는 표현은 티로의 군주가 세상 나라에서도 왕의 위세를 갖지 못한 일개 도시 국가의 우두머리에 불과하면서, 온 우주만물의 유일하신 통치자이시며 왕이 되신 하느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깨닫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사용된 것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신이다.'

암몬과 모압과 에돔과 필리스티아에 대한 심판의 내용은 17절 밖에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의 에제키엘서 25장에 모두 함께 기록되었다.

반면에 티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의 내용은 에제키엘서 26~28장으로 무려 세 장이나 되는 많은 분량이다. 또한 이어지는 파라오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내용은 29~32장으로 네 장이나 된다.

 

티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의 내용과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내용에 이처럼 많은 분량이 할애된 것은 먼저 이 나라들이 당시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들 나라의 왕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신격화 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 중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에서 왕은 신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로 여겨졌다. 곧 신이 선택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 권위가 확보되었다.

반면 이집트에서는 왕 자신이 신적인 존재, 즉 신들의 집단 중에 속한 하나의 신으로 여겨졌다.

 

티로의 왕권의 개념은 본래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와 유사했었으나, 이집트와의 밀접한 무역을 통해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역을 통한 부와 영화를 얻게 되고, 국제 사회에서의 그 위상이 매우 높게 올라가게 됨으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

 

본문은 바로 이러한 티로의 군주의 교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신'에 해당하는 '엘'은 민족들이 섬기는 일반적인 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탈출34,14), 구약성경에서는 거의 대부분 '하느님'(탈출34,14; 애가3,41)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티로의 군주는 민족들이 섬기는 신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신으로 선언하였을 것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를 당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은 오직 주 하느님 한 분 뿐이시지만(1코린8,4), 하느님께서 티로의 군주의 선언을 당신께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한편, 자신을 신으로 선포한 티로의 군주의 말은 하느님께 대한 도전이면서 동시에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당시 바빌론은 대제국 아시리아를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을 형성해가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바빌론은 고대 근동의 모든 국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도시 국가인 티로의 군주가 자신을 신으로 선포하는 행위는 바빌론 제국의 왕의 통치를 거부하겠다는 의미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티로의 군주의 말은 당시 근동의 사람들이 신의 거처라고 생각했던 장소를, 우가리트(Ugarit) 북쪽의 예벨 아크라(Jebel Aqra) 즉 페니키아 만신전에서 티로성으로 옮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티로의 군주의 말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만족하지 못하고, 고대 세계의 정치, 종교적 패권을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야심에 찬 공격적인 말이 된다.

이런 티로 군주의 교만한 언사는 곧 바빌론의 공격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티로는 매우 큰 피해를 입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며, 주변 나라들을 무시하고 교만할 뿐 아니라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선포하는 티로를 바빌론을 통하여 심판하신 것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 가운데에 앉아 있다'

티로의 군주가 본절 상반절에서 '나는 신이다' 라고 한 말은 자신을 신과 동등한 신분이라고 주장한 것이고,

본문에서 '나는 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 라고 한 말은 자신이 신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본문은 바다로 둘러싸여 어느 누구도 침략할 수 없는 완전한 곳으로서의 지리적 위치의 우월성만이 아니라 자신이 신적 존재라고 여겼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자리'에 해당하는 '모샤브'(moshab)에는 역대기 상권 6장 54절에서처럼 일정한 무리의 백성들이 거하는 주거지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열왕기 상권 10장 5절에나 시편 107장 32절에서는 원로들이나 고위 관리들의 회합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사무엘 상권 20장 25절에서는 임금이 앉는 자리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경우 '모샤브'는 권력의 자리이고, 권력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자리란 의미이다.

 

또한 '모샤브'는 시편 132장 13절에서 주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 경우 '모샤브'는 일개 나라를 다스리는 장소가 아니고, 온 우주 만물이 통치되는 절대 권력의 자리란 의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좌정하실 수 있다.

 

하지만, 티로의 군주는 자신이 앉는 일개 왕의 자리를 하느님의 자리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이 왕의 권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위치에까지 오르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극도로 교만한 말이었다.

또한 티로의 군주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 자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자리라고 했다.

 

여기서 '바다 한가운데에'에 해당하는 '뼬레브 얌밈'(belleb yammim)이 27장 4절, 25절에서는 티로가 해상 무역의 중심지에 위치한 절대 강자로서 많은 부를 쌓던 자리를 상징하였다.

또한 이 자리는 요새와 같은 바위섬으로, 외세의 침략을 면할 수 있었던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27장 26절, 27절, 34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곳을 티로를 심판하시는 자리로 삼으셨다.

티로의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살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군사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된 티로의 군주는 하느님의 자리까지 넘보았던 것이다.

 

티로의 군주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던 자신의 자리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왕의 자리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를 가졌었더라면, 그는 경제적 부흥의 원천이며 군사적 방어막 역할을 했던, 바다 한 가운데에 있었던 티로 섬에서 왕의 자리를 잘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본문에서 '마음'에 해당하는 '레브'(leb)는 앞선 전반부에서 '한가운데'라는 의미로 번역된 '레브'와 동일한 단어이다.

본절 상반절이 지적하는 티로의 군주의 죄는 자신이 거한 바다 '한가운데'(레브)의 자리를 신의 자리라고 한 교만이 죄였다. 또한, 본문에서 지적하는 티로 군주의 죄는 자신의 '마음'(레브)을 신의 마음과 같다고 여기며 행동하는 교만의 죄이다.

이처럼 본절에서는 '레브'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티로 군주의 교만을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성공과 영화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처럼 여기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많은 이가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바늘구멍”이 아니라 ‘바늘 문’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바늘 문의 원어인 ‘라피스’는 낙타가 등을 구부리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짜기나 작은 출입문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낙타”(카멜론)가 아니라 ‘밧줄’(카밀론)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낙타가 바늘구멍이 아니라 작은 문을 빠져나가는 것이 되고, 낙타가 아닌 밧줄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 부자의 하늘나라 입성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원문을 변형시켜 해석한다고 하여 듣는 이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이 구절이 ‘불가능성’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 심지어 가난한 사람도 스스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지상의 생명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았듯이, 영원한 생명도 선물로 받는 것이지 내 손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부자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 이야기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자는 하늘나라에 가지 못할까요? 그의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富者)는 많이 가짐으로써 만족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하느님께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마음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에 더하여 그분께서 좀 더 도와주시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부가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으며 재물을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가 꼭 붙들고서 삶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하늘나라는 부(富)를 믿고 의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과 태도를 요구합니다.

많은 좋은 것들을 붙들고 누리며 살다가 유일하게 좋은 것,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주님의 힘()으로

복음 (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부자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두 번이나 거듭 말씀하신 이유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 제자들도 가진 것이 있었다. 자신들의 배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부자는 돈(錢), 재물이 아니다. 어제 앞절에서 공부 했듯이 하늘의 대속, 그 사랑, 그 하나의 계명을 열 개(십계명)로 열심히 지켜 쌓아온 그 자기 의로움이 큰 사람이다.

(루가16,13-14)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 바리사이들은 돈보다 자신들의 체면, 명예, 의를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돈을 좋아했다고 전한다. 예수님께서 그 돈의 실체를 말씀하신다.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 인간들의 명예를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사람들의 칭찬, 높은 영광을 받는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부자인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어떻게 가능하게하실까? 그 부자, 곧 그의 스스로의 의로움을 고집하는 죄인을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그의 대속의 제물로 죽이시고 그 죄인을 살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듣고도 계속 고집하면 그 부자를 가난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도 계속 고집하면 그 부자를 가난하게 하시는 것이다. 곧 인간의 의로움, 그 높은 자리가 교만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 교만의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셔서 작게 만들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게 하신다.  그렇게 구원하신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 자비다.

(루가1,51-55)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에게는 시련으로 올 수 있다.

(히브12,7-8)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 시련은 아버지 사랑의 표현이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받겠냐고 한다. 여전히 세상 이야기로 듣는 베드로 이다.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 새 하늘과 새 땅, 하느님 나라다(묵시21-22장 참조)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아버지나 어머니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님만이 진리, 예수님께만 선, 의, 생명, 구원이 있다는 그 복음 때문이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들어가면)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세상의 돈, 명예, 의로움이 큰 사람이 첫째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나라에서 꼴찌가 된다. 십자가의 의로움만을 의지하는 이들은 세상이 볼 때 어리석은 꼴찌 같아 보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된다.

(루가16,19-21)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성전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제단)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 사제의 옷이다. 호화로운 대접을 받는다(19절) 부자의 제단(제사)에는 먹을 양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생명의 양식을 바랬지만 없었다는 것이다. 둘 다 죽어, 라자로는 천국으로. 부자는 저승(지옥)으로 갔다.

(루가16,25)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명예)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꼴찌)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보다 성당 활동으로 바쁜 사람이 첫째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꼴찌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앙생활을 산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님! (독서) 기드온에게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 나에게) 신의 능력, 힘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니 ‘너의 고집, 불만, 자아, 교만의 힘을 빼라’ 하시는 말씀으로 듣게 하소서. 그래서 님의 힘으로 주님 안으로 들어가 하늘이 되게 하소서(아멘) 오늘도 함께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9,2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3-24)

 

마태오 복음 19장 23절에서 30절까지는 앞의 16~22절에 기록된 부자 청년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다.

특히 오늘의 말씀은 물질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삼는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큰 경계가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려울 것이다'로 번역된 '뒤스콜로스'(dyskolos; hardly)는 영어의 'mis'나 'un'과 같이 '어려움', '반대', '방해' 등을 뜻하는 접두사 '뒤스'(dys)와 '음식'이란 뜻을 지닌 '콜론'(kolon)의 합성어로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찾기 어려운'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부자가 보통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될 또 다른 재물이라는 장애가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하늘 나라'에 해당하는 '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 (ten basilleian ton uranon; the kingdom of heaven)이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10장 23절과 루카 복음 18장 24절에서는 모두 '하느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텐 바실레이안 투 테우'(ten basilleian tu theu; the kingdom of God)로 나온다.

양자는 모두 같은 의미이지만, '하늘 나라'는 내세적 의미가 좀 더 강하며, '하느님의 나라'는 내세적 의미와 더불어 현세적 의미가 있다.

 

'바실레이아'(basilleia)는 공간적, 장소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통치', '다스림'(reign, govern),'왕다운 지배권'이라는 뜻이 있는 용어이다.

즉 부자는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통치하심에 순응하기도 어렵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본문인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들어가다'가 미래형으로 되어 있으나, 루카 복음에서는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물질적인 부자 뿐만 아니라 건강한 자, 명예나 권력을 가진 자와 같이 세속적인 측면에서 누리는 것이 많은 자는 자연히 이러한 것들에 쉽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통치를 받기도 힘들며, 또한 장차 천국에 들어가기도 쉽기 않은 것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더 쉽다'에 해당하는 '유코포테론'(uekopoteron; easier)은 비교급이다. 즉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전자가 더 쉽다는 뜻이다.

이러한 비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먼저 '바늘 구멍'(바늘 귀)에 해당하는 '트뤼페마토스 라피도스'(trypematos raphidos; the eye of a needle)를 예루살렘 성에서 주로 밤에 이용되던 속칭 '바늘귀 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문은 입구가 너무 좁고 낮아서 낙타가 걸어서는 통과할 수 없었고, 지방이 들어 있는 물혹과 더불어 짐을 지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낙타는 모든 짐을 내려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이 문을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것은 너무 고통스럽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낙타'에 해당하는 '카멜로스'(kamelos; a camel)를 '밧줄'을 의미하는 '카밀론'(kamilon)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소수의 몇몇 사본이 이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밧줄이 바늘 구멍 (바늘 귀)을 통과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이런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20240820일 화요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에제키엘서 2532장은 여러 민족들에 대한 심판을 담고 있고, 오늘 독서는 그 가운데 티로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예언서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민족들에 대한 심판은, 각 민족이 저지른 일이나 특정한 시대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권이 주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티로 임금에 대한 심판은 매우 전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 심판의 대상이 티로 임금이 아니라 누구라도 다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사야서 10장에서는 아시리아에 대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바빌론에 대해서 비슷한 내용이 선포되고, 다니엘서 4장에서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를 대상으로 하여 같은 주제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문제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어느 나라 또는 어떤 임금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는데, 인간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강하고 지혜롭다고 여길 때, 오늘 독서의 표현으로 나는 신이다.”(에제 28,2)라고 할 때 하느님께서 그것을 잃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너무 전형적인 주제여서, “나는 신이다.”라는 말을 보면 바로 멸망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능력, ‘지혜, ‘재산이라는 바로 그 생각이 어리석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보는 이들은 그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알아봅니다.

알아보지 못하고 착각 속에 사는 그 자신만 불행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이들의 것이고,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20일[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可能하다.

 

복음(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부자는 구원 받기가 어려움을 강조하신다. 부자는 율법주의 자들을 비유하심이다. 곧 앞 16-22절, 하느님의 계명을 행위로 지킨 그 자기 의(義)를 가치로 여긴 부자를 말씀하심이다. 곧 ‘자기 의’를 팔아야(버려야, 부인해야)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가르침이다.

 

제자들은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자비의 하느님께서 부자의 재물, 곧 사람의 의(義)를 부수셔서 가루로 만들어 바늘구멍을 통과 시켜서 구원하시는 가능(可能)이다. 물론 세상 재물을 가진 부자도 포함 되지만 모든 부자가 구원인, 자기 부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제께서>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즉 하느님보다 세상적인 부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부자란, 일반적으로 하느님보다 세상적인 부(富)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아버지나 어머니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심판하는 심판권을 받는다. 그리고 백배- 완전 수, 완전한 하늘나라, 하늘의 참 가족을 받는다. 그곳은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빛의 나라다. (묵시21,4)

 

율법(律法)의 무력(無力)함을 알자~

(로마7,1) 1 형제 여러분여러분이 율법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말합니다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 율법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윤리다.

 

(갈라3,24)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 믿음으로 받는 의(義)다.

 

(히브10,1)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바로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없습니다

 

(야고2,10) 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조목이라도 어기면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새 계약(契約)의 효과를 알자~

(히브7,19) 19 사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은 희망이 주어져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 ‘더 나은 희망,’ 율법(옛 계약)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고, 무죄로 하늘의 의(義), 생명을 주시는 새 계약의 그리스도시다.

 

(로마5,15-17) 15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사실   사람(아담)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선물의 경우도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 왔지만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하느님의 은혜)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7 사실   사람의 범죄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아멘.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이 세상에서는 율법이 참(眞)인 것 같다. 곧 사람의 의(義)가 첫째인 것 같다. 세상의 재물, 명예, 영광이 첫째 같다. 그러나 ‘하느님나라에서는 꼴찌’다.

우리의 죄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로 거저 받는 의(義)는 보이지 않으니, 마리아처럼(루가10,41-42) 말씀 안에 머물러 필요한 한 가지를 깨달아 행위의 열심을 부리지 않게 되니 꼴찌 같아 보인다. 인간의 열심, 행위로 받는 구원이 아니다.(에페2,8-9)

세상의 의(義), 영광은 곧 사라질 것으로 영원한 하늘의 의(義), 영광을 모형(模型)할 뿐이다. 하늘의 거룩한 백성으로 지어저 가는데 쓰이는 교육용 도구요, 교보재다. 그런데 영원하지 못한, 곧 사라질 세상의 것을 붙들고, 온 시간과 힘을 낭비(집착)하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부수셔서 없애 버리실 수밖에 없으시다. 살리시기 위한 구원의 자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1요한2,15-17) 15 여러분은 세상도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로마10,1-4) 1 형제 여러분 마음의 소원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율법의 실체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다 이루어졌다”가 된다.(로마8,3-6참조)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모님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하소서마음에발길에 충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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