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5-20)

2024. 8. 13. 오전 5: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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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일 수요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5-20)


   


1독서<예루살렘의 역거운 짓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에제9,1-7; 10,18-22)

주님께서는 1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10,18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 위에 멈추었다.

19 그러자 커룹들은 날개를 펴고,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았다.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들도 옆에서 함께 나갔다. 그들이 주님의 집 동쪽 대문 어귀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 나는 크바르 강 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커룹임을 알 수 있었다.

21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인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형상이 있었다.

22 또 그들의 얼굴 형상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화답송>시편113,1ㄴㄷ-2.3-4.5-6(4) 주님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드높은 곳에 좌정하신 분,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복음<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18,15-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또는,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독서(지혜 3,1-9 또는 1요한 3,13-18)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제1독서(에제9,1~7; 10,18~22)

"늙은이도 젊은이도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9,6)


본문은 하느님께 바쳐진 예리코 성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모든 자들을 다 죽였던 사실(여호6,21)과 주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의 남녀와 어린아이와 젖 먹는 아이까지 다 죽이라고 명하셨던 사실(1사무15,3)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면적인 살육은 과거 사악한 자들을 내좇고 주님의 계약의 백성으로서 그 땅을 상속으로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그들 역시 과거 조상들이 완전히 멸망시켰던 그 가나안 족과 아말렉 족처럼 범죄할 경우에 그들과 동일한 심판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열거되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로서 동정을 받으리라고 기대되는 자들이다따라서 이들에 대한 열거는 심판의 엄정함과 더불어 참혹함을 강조하며하느님 대전에 회개의 태도를 가지지 않는 그 어느 누구도 심판을 면할 길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여기서 '다 죽여 없애라'에 해당하는 '타하르구 레마쉬히트'(thahargu lemashihith)는 '너희는 멸망하도록 살육하라'(do slay to destruction)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에 걸려든 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진멸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도살하다'는 의미의 '타하르구'(thahargu)의 원형 '하라그'(harag)는 칼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민수22,29; 여호13,22; 판관9,54).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본문은 9장 4절에서 왜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9장 4절에서 주 하느님께서 죄악으로 고통스러워하며 회개하는 자들을 심판에서 면제하실 것을 예고한다.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심판의 면제를 위해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고 명하시는데여기서 ''에 해당하는 '타우'(thau)는 고대 히브리어의 자음 가운데 하나인 '타우'(thau)를 의미한다

에제키엘 당시 그 문자는 오늘날 영어의 소문자 ''(t)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다이러한 이유로 신약 시대의 초대 교회 주석가들은 이 표시를 십자가 표시로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이마에 표를 한다는 것은 심판의 면제를 확실하게 나타내는 것이다즉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을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꼭 구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받을 자에 대한 환상은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의인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그 땅에 남겨지거나혹은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삶을 계속할 것을 암시한다고 하겠다(2열왕24,14~16).


다시 9장 6절로 돌아와서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을 건드리지 마라는 것은 자신과 동족들의 죄에 대해서 크게 슬퍼하며 회개하는 의인들을 심판 가운데서 살리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건드리지'에 해당하는 '틱가슈'(thigashu)의 원형 '나가쉬'(nagash)는 '접근하다'라는 의미로서 부정어 ''(al)과 함께 사용되어 조금도 상해를 입히지 말라는 의미를 과장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조금의 해를 입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하시고 오직 표가 없는 자들을 심판한다는 것이다.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자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예언이었을 것이다.

성전은 주 하느님의 계약의 궤가 있는 곳으로서 주님의 절대적인 보호의 장소라고 생각했는데바로 그 성전이 주님 심판의 대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심판이 주님의 성전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에제키엘서 8장 5~16절에서 기록된 것과 같이 우상 숭배가 성전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계약의 백성 자신들이 주님 현존의 상징적 처소인 거룩한 성전에서 가증스러운 우상들을 숭배했기 때문에주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베드로 전서 4장 17절에서 사도 베드로도 하느님의 심판이 하느님의 집에서 먼저 시작될 때가 되었다고 했는데이것은 본문의 선언과 영적인 의미에서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에 해당하는 '핫제케님'(hazeqenim)은 본절 앞에 있는 일반적 의미로서의 나이 많은 남자들을 지칭할 수도 있고성전 벽 뒤에 있는 골방에서 이집트의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곤충우상 등을 섬기는 일흔 명의 원로들(에제8,11)을 지칭할 수 있으며주님의 집 안뜰에서 태양신에게 경배하던 이십 오명의 사제들(에제8,16)을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본절 앞에 나오는 '늙은이'에 해당하는 '자켄'(zaken)은 단수형으로서 예루살렘 성내에서 거주하는 일반적 의미의 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대표 단수이고본문에 기록된 '핫제케님'(hazeqeim)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자들로 한정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집에서 우상 숭배하던 모든 원로들과 사제들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8,15~2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으로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18-20)


마태오 복음 18장 15~17절에서 형제의 죄에 대한 3단계 처리책에 대해 논했는데그 마지막 단계가 교회의 권면이었다따라서 교회의 공식적인 권면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교회에서 추방하는 징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한 조치이지만이 일은 교회 차원에서만 행해지고실로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18장 18~20절에서 교회의 징계 권한에 대한 합법성을 부여하심과 동시에 기도가 선행되어야 하고 사려깊게 시행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다.


마태오 복음 18장 18절은 동사가 복수 2인칭으로 쓰였다는 점만 빼고는마태오 복음 16장 19절과 동일하다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에 주어진 권위를 나타낸다이렇게 볼 때 본문의 '매고 푸는 것'은 교회 구성원의 죄에 대한 징계 권한의 시행을 의미하는 것이 명백하다.


한편마태오 복음 18장 19절에 대해서 한글 새 성경은 번역하지 않았지만원문에는 '만일'로 번역될 수 있는 '에안'(ean; if)이 문장 서두에 기록되어 있어서합심하여 청하는 상황이 충족되기만 하면청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무엇이든'에 해당하는 '페리 판토스 프라그마토스'(peri pantos pragmatos; about anything)에서 '프라그마토스'(pragmatos)의 원형 '프라그마'(pragma)는 '', '사건', '과업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소송', '논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음을 모아'에 해당하는 '쉼포네소신'(symphonesosin; agree)의 원형 '쉼포네오'(symphoneo)는 영어에서 '교향곡'이라는 뜻을 지니는 '심포니'(symphony)의 어원을 이루는 말로서서로 뜻을 같이 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그런데 19절의 '프라그마토스'(pragmatos)는 본 단락이 교회의 징계 권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징계 권한'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쉼포네오'(symphoneo)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징계 권한이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이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두 사람 이상의 합치된 의견과 한 마음으로 청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전제될 때비로소 교회의 징계 권한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권위있게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

본절은 교회의 구심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야 함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여기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 해당하는 '뒤오 에 트레이스'(dyo e treis; two or three)는 소수의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모이다'는 의미로 번역된 '쉬네그메노이'(synegmenoi; come together; gather together)의 원형 '쉬나고'(synago)는 '~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syn)과 '오다', '가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아고'(ago)가 결합된 합성어로서 '함께 모이다'는 의미가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하느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집회소인 '회당'을 가리키는 '쉬나고게'(synagoge)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니까 '쉬나고'(synago)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여기서 모이는 지향점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내 이름으로'로 번역된 '에이스 토 에몬 오노마'(eis to emon onoma; in my name)에서 '~안으로'(into)라는 뜻의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eis)가 쓰였는데이 '에이스'(eis)가 때로는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 ''(en; in)의 대용어로도 쓰이는데여기서는 방향과 위치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고예수님의 이름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이처럼 마태오 복음 18장 20절은 교회의 지향점과 구심점이 예수님의 이름임을 잘 보여준다.


한편,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에서 '나도 ~있다'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 I am)는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희랍어의 현재형이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예수님께서도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일반적인 진리나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겠다는 뜻이다.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마태28,20).


예수님께서는 이 약속에 따라 오늘날에도 믿는 이들 가운데 영으로 현존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인격적으로 친교하고 계신다

그런데이 구절이 교회가 시행하는 '징계 권한'의 문맥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믿는 이들의 일치된 뜻에 의한 교회의 '징계 권한'이 하느님의 인준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20240814일 수요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독서에서는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에제 10,18) 떠납니다.

바빌론에 유배 가 있던 에제키엘이 본 환시이고, 예루살렘의 함락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서, 심지어는 성전 안에서도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에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선고하시고, 그 선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때 결국 하느님께서는 성전을 떠나가시고 성전은 파괴됩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형제가 잘못할 때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가 교회의 말도”(요한 18,17)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는 그를 더 이상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땅에서 교회는 푸는 권한만이 아니라 매는 권한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풀기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복음에서 내 마음에 드는 구절만 골라 읽는 것입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그것이 차이를 가져옵니다.

예언자를 보내시어 경고하시고, 형제를 통하여 일깨우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 버릴 때, 남은 길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습니다. 듣지 않을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아예 경고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 분명 다른 사람도 나에게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귀를 막아 버린 나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알려 줄 때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돌아봅시다.

이것은 나를 회심의 길로 이끌거나, 아니면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길로 이끌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돌아갑시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마태18,15-20)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도덕과 윤리로 잘못 산 그 죄를 타이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하마트리아, 과녁을 벗어나다). 곧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길을 벗어나 인간들의 뜻을 구원의 길로 걷는 그 잘못을 타이르라는 말씀이신 것.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인간들의 계명, 규정과 교리 그 인간의 의로움의 길을 구원의 길로 잘못 알고 걷고 있다면~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이 구원의 진리라고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타일러라(아쿠오- 들려주다)

그러면 그를 살리는 곧 예수님의 지체로 한 형제를 얻는 것이다.

 

(에페3,6)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 둘은 선악의 두 법을(셋은 하늘의 숫자) 그리고 그 선악의 법을 구원으로 완성하시는 십자가 곧 선의 대속으로 악이 용서 받아 구원 받는 그 진리(성령)의 확정을 받는 것.

다시~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을 뜻하며 성령께서 확정하신다. 그것이 또한 교회의 가르침인 것.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 세리 처럼~ 죄인으로 간주하여 죄인을 살피시는 하느님께 맏기는 것.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이 땅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이타의 사랑, 곧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로마1,20참조) 그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깨달아 믿으면 하늘이 열릴 것이고 그것이 아닌 땅의 순리, 법을 중시하여 살기만 한다면 땅에서 잘 살다~ 영원히 땅에 갇히게 되는, 지옥이 되는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두 사람, 그 두 마음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 곧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한 마음으로 구하면 하느님의 뜻인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 둘이나 셋,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의 진리나 모두 예수님의 이름(말씀)으로 그분의 뜻으로 알아들으면, 깨달으면 하느님의 뜻인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하늘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21절이하 용서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참조~(요한5,39-40)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 영원한 생명은 사람의 희생, 열심히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희생으로 얻는 것을 성경 전체를 통해 배우는 것, 깨닫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들을 위해 간구하여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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