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30일 화요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가라지 비유 (마태13,36-43)
제1독서<주님, 저희와 맺으신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예레14,17ㄴ-22)
17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18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19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
20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21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22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려 줄 수 있습니까?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79,8.9.11과 13(◎9ㄴㄹ) ◎ 주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구하소서.
○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
○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
○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복음<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13,36-43)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38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독서 (예레14,17ㄴ-22)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나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 (17ㄴ)
앞선 15절, 16절에서는 하느님의 심판이 백성을 거짓 예언으로 유혹하는 예언자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유혹을 받아 참 예언을 배척하고 죄를 범하였던 백성들에게도 미침을 예언하였다. 이제 17절과 18절은 하느님의 심판이 시행된 결과로 야기된 참혹한 참사을 부각시킴으로써,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들에게 이 말을 하여라' 란 하느님의 명령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명령하는 주체는 하느님이시며, 명령을 받는 '너'는 예레미야이고 '그들'은 파멸을 겪게 될 남부 유다 백성들이다.
본절의 1인칭 표현은 예레미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즉 이 부분은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예레미야가 심판을 당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느님 자신의 슬픔을 전하되, 전하는 예레미야 자신을 '내' 라고 칭하면서 전하라고 명령하는 주문으로 이해한다.
그럴때, 이러한 본문은 눈물의 예언자로서의 예레미야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된다. 즉 이 부분은 예레미야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심판받고 고통받는 동족에 대한 자신의 슬픔을 나타내는 예언이 소개되는 구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본절 후반부에는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처녀 딸, 내 백성' 이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원문에는 '뻬툴라트 빠트암미'(bethullath bath-ammi)라고 되어 있다.
'처녀'(the virgin)에 해당하는 '뻬툴라트' 와 '딸'(daughter)에 해당하는 '빠트'는 모두 한 단어처럼 연결되어 있는 연계형이다. 이러한 연계형의 의미를 정확하게 살려 이를 다시 번역하면, '내 백성의 처녀 딸' (the virgin daughter of my people)이 된다.
특히 '빠트'와 '암미'(내 백성 ; my people)사이에는 두 단어를 한 단어로 결합시키는 연결 부호 '막켑'(magkep ; '-')이 있으므로, 이것은 '딸 내 백성' 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내 백성의 딸' 로 번역해야 한다.
여기서 '처녀 딸, 내 백성' 이란 의미로 볼 경우, 하느님의 입장에서, '내 백성' 인 남부 유다 백성이 순결한 '처녀' 처럼 다른 민족에게 유린당한 적이 없는 사랑스러운 '딸'이었으나, 지금은 유린당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내 백성이 처녀 딸' 이란 표현으로 볼 경우에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입장에서, 남부 유다 백성 가운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이며, 남자가 아닌 연약한 딸조차 멸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표현이 된다.
또한 고대의 전쟁에서는 패배한 쪽의 처녀들이 무자비한 모욕을 당했으므로, 전쟁에서의 패배와 큰 모욕을 받게 됨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결국 남부 유다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면, 본문은 전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연약하고 어린 여자들까지 큰 파멸과 중한 상처를 입는 끔찍한 현상에 대하여 또한 전쟁에 패하여 극한 수치와 모욕을 받게 된다는 사실로 인하여, 예레미야가 너무나 슬퍼 밤낮으로 눈물을 그치지 않고 흘린다는 의미가 된다.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오,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18)
본절은 남부 유다가 함락되는 날의 참상을, 성 밖의 들과 성읍 안의 광경을 예언함으로써 눈에 보는 듯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그런데 보라'(then behold)로 번역할 수 있는 '웨힌네'(wehinneh)란 표현이 2회 등장한다. 이것은 들에 칼에 맞아 죽은 자들이 널려 있고, 성읍 안에는 기근으로 병든 자들이 널려있는 참혹한 상황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14장 13절에 나오는 '너희는 칼을 보지 않고 굶주림이 너희에게 닥칠 리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너희에게 참 평화를 주겠다'는 거짓 예언자의 예언이 완전한 허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본문 서두에는 '정녕', '진실로' 로 번역된 접속사 '키'(ki)가 나오는데, 이 의미로 보면, 예언자나 사제와 같은 종교 지도자들도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한 전쟁과 기근으로 인하여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비참한 지경에 처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접속사 '키'(ki)를 '오히려'로 번역하면, 백성들이 적의 칼에 죽고 기근으로 죽어가는 상황에,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고 위로하며 하느님께 기도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장소를 떠나 도망다닌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어떤 의미를 취하더라도, 종교 지도자들도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의미만은 동일한다.
그리고 '헤매고 다닌다' 에 해당하는 '싸하루'(saharu)의 원형 '싸하르'(sahar)는 기본적으로 '배회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재앙의 땅 남부 유다를 떠나 방황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보다 보편적인 해석은, 그들이 종교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며, 고통당하는 동족을 버리고 도피하여 이리저리 헤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비록 남부 유다 땅을 빠져나왔지만, 어디로 가며 어떻게 해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지, 혹은 장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바빌론의 침공 때 주로 귀족 계층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포로로 잡혀갔다는 점에서, 18절의 의미를, 그들에게 있어 익숙하지 않았던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복음서에는 배가 자주 등장합니다. 때때로 이 배는 구원의 배, 곧 교회를 상징합니다.
오늘 복음은 배 위에 계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13,3 이하 참조).
마태오 복음사가는 배가 떠 있는 갈릴래아 호수를 “바다”(13,1 원문 직역)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마태오 복음사가가 구상하고 의도한 설정입니다.
복음사가는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홍해를 건너간 것처럼, 새 이스라엘인 교회(우리)도 예수님께서 계시는 구원의 배 위에 올라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 구원의 항해를 하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밀과 가라지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의 적들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호의를 교묘히 이용하여 선을 악으로 되돌려 주는 이들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표현에 따르면 “가라지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라지들이 사실 ‘내’가 아닌 ‘저들’ 또는 ‘저기’에만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라지는 언제인가부터 우리 안에서 계속 생겨나고 자라납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13,25), 우리가 넋을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동안에 그러한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잊고 그분의 뜻을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의 욕망을 쫒아 사는 동안, 가라지는 세상을 물들이고 우리 인생을 갉아먹고 망가뜨립니다.
우리는 세상과 우리 안에 선악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꾼인 우리는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밀밭에서 열심히 일하며 세상과 우리 안에서 좋은 밀이 자라나도록 끊임없이 선을 지향하는 삶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구원의 배에 의지하고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세상과 우리 안에서 가라지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믿으며 가라지와 싸워 승리하는 하루가 되도록 함께 힘을 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13,24-43)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 씨, 말씀. 그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은 이가 좋은씨, 그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37절에서)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 성경에서 잠은 죽음을 뜻하는데 그것은 곧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을 향해 깨어있지 못하고 땅, 세상을 향해있는 그 상태의 때를 ‘잔다, 죽었다’ 라고 한다.
그 때에 악마(뱀)의 거짓말을 뿌린 것,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가르침을 준 것.
그러면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 그 인간의 계명, 거짓 가르침이 자라면,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신앙이 아닌 인간의 뜻을 위한 열심한 종교행위의 신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 사람은 자기의 지혜로 밀과 가라지를 분별할 수 없다.(1코린2,6~참조)
보이지 않는 깨달음의 신앙보다 보이는 인간의 행위의 열심한 신앙이 더 크고 멋져 보이기에 분별할 수 없는 것,
그래서 하늘의 일군 천사(39절)를 시키시는 것, 천사만이 하느님의 눈으로 구별할 수 있기에~~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 29절‘아니다, (쉴레고)’는 허락하다, 용납하다. 라는 뜻이다. (공동번역 성서는 ‘가만 두어라’로 번역했음.)
그러니까 그 가라지들을 허락, 용납하셨다는 것, 그것은 밀의 구별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31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세상. 38절) 뿌렸다.
= 사람의 비유, 곧 예수님의 말씀 선포를 뜻하는 것이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 하늘의 새(악마, 49절)는 거짓 가르침으로 받은 율법, 구약을 뜻하는 것으로~ 작은 겨자씨, 곧 작게 보여 감추어진 그 신약의 진리가 구원의 힘, 능력이 없는 그 행위로 커 보이는 구약, 율법을 품는 모습인 것이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 여자의 비유, 여자는 피조물과 교회를 뜻하는 것, 누룩 또한 겨자씨와 같이 작아 보이는 말씀을 뜻하지만 그 말씀에다 인간의 생각과 뜻을 넣어(섞어) 헛된 바램이 들어가 부풀린 상태의 그 잘못된 교회, 나라를 뜻한다.
누룩은 항상 버려야 할 것으로 말씀 하셨다는 것.(탈출12,8~ 13,3~ 외 다수 50곳이상)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의 비유 말씀이 옳음과 그름의 나라를 서로 대조를 이루는 것이지 같은 맥락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밀과 가라지를 대조 하셨듯이 성경은 그 두가지를 대조하여 가르친다. 그러니까 남자의 씨를 받은 것이 밀이고 여자의 누룩으로 받은 것이 가라지인 것이다.
(마태16,12) 12 그제야 그들은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말씀으로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않고 인간의 계명, 교리로 받아 열심한 종교 행위에 만족한다면 헛된 신앙을 사는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 죄를 덮으시기 위한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인간들의 계명, 법으로 주어 하느님의 뜻, 계명을 거스르게 죄를 짓게 하는, 그래서 십자가의 용서를 못 받는 죄의 상태로 남게 되는 그 죄 짓게 하는 이들 또한 하늘의 의로움이 아닌 인간의 자기 의로움을 위해 사는 그 불의한 이들은~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억울해서 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씹을 것이 없어 이빨끼리 부디치는 것, 땅의 법으로 열심히 자기열심, 의로움 그 양식만을 모았으니 하늘의 의로움, 그 구원의 양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하느님의 귀(지혜)로, 뜻으로 들어라~ 그러면 십자가의 대속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거저 의인이 된다 하시는 것.
(로마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아멘.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3,36~43)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1~42)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처음에 씨를 뿌렸던 '사람의 아들'(인자)이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자로 서게 된다.
그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자신의 나라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던 악한 자의 자녀들을 그 나라 밖으로 거두어 내어, 영원히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던져넣으실 것이다.
여기서 '그의 나라'에 해당하는 '테스 바실레이아스 아우투'(tes basileias autou)는 '그의 왕국'(his kingdom)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그'(he)는 '사람의 아들'(人子)을 가리키므로, '그의 왕국'은 '사람의 아들의 왕국', 즉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왕국이지만, 거기에는 악한 자의 자녀들도 활동하고 있던 것이다.
하나의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서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하나의 세상에 천국의 자녀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이 서로 뒤엉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결국에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 그 나라에서 거두어 내던져질 것이다.
여기서 '~에서'로 번역된 '에크'(ek; out of)는 어떤 공간이나 영역 '밖으로'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이므로,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왕국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던 악한 자의 자녀들을 그의 왕국 밖으로 완전히 축출할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사실은 '거두어'에 해당하는 '쉴렉수신'(sylleksousin; they will weed; they will gather)는 마태오 복음 13장 28절과 29절에서 '뽑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쉴레고'(syllego)의 미래 능동태로서, 적극적으로 뽑아 격리시킬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서도 확인된다.
한편 마태오 복음 13장 41절은 주님의 원수인 악마에 의해 그리스도의 왕국 가운데 심기워지고, 종말에는 그 왕국 밖으로 거두어 내어져 불구덩이에 던져질 악한 자의 자녀들(마태13,38.39)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는 자들인지 보여 준다.
여기서 '남을 죄짓게 하는 자'로 번역된 '스칸달라'(skandala; thing that offend; thing that causes sin)의 원형 '스칼달론'(skandalon)은 중성 명사로서 동물을 잡는 '덫'이나 '올가미', 또는 길에 숨겨 놓아 지나가는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뜻한다.
'스칼달론'은 중성 명사이며 뜻도 중성적이지만, 심판받을 대상은 사람이므로 본문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임을 알 수있다(마태16,23참조).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은 원문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으로 직역될 수 있는데, 여기서 넘어지게 한다는 것은 확신과 결단력이 약하거나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을 죄로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고, 신앙에서 떠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믿는 이들 가운데 존재하면서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들은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불의'로 번역된 '아노미안'(anomian; iniquity)의 원형 '아노미아'(anomia)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 '아'(a)와 '율법'이라는 뜻의 명사 '노모스'(nomo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율법이 없는 자의 상태'라는 뜻이다.
여기서 '율법'은 하느님의 의로우신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하느님의 모든 신적(神的)인 법률을 말한다.
따라서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의 통치 원리인 신, 구약의 모든 율법이 그 사람 안에 아예 없는 자들과 인위적으로 그 법을 조작하거나 무시하며 깨뜨리는 자들로서, 하느님 나라의 통치 체제 자체를 뒤흔드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져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진 것 때문에, 과거의 자기 행위를 후회하면서 극도의 절망과 비탄으로 절규하게 된다.
2024년 07월 30일 화요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하느님을 왜 믿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3-14).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 부활로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가 왜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를 잊은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여 보았다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많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인들에 대한 심판은 마지막 날에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이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1독서는 우리가 마지막 날에 하느님을 ‘의인’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 줍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죄로 넘어질 때마다 우리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하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는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회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마지막 날에 ‘의인’으로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성찰’과 ‘고해성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를 이 신비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줍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인간의 눈은 꽃을 좋아한다.
그 꽃이 떨어져 맺은 열매(씨)가 양식(구원)이다.
복음(마태13,36-43)
36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ㄱ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 *하늘나라의 자녀 - 자신의 뜻, 생각(머리)이 결함있음(어둠임)을 인정하는 자기(自己)부인(否認)으로 하느님의 ‘말씀(씨)이 사람이 되어 오신 좋은 씨’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된 하늘의 사람이다.(요한1,1-12참조)
*악한 자녀 - 악마(惡魔,뱀), 곧 거짓 말, 거짓 가르침을 먹고 그리스도 밖에 서서 제사와 선악의 계명을 열심히 행하여 자기 의(義)를 쌓는 율법의 사람들이다.
(창세3,15) 15 나(야훼)는 너(뱀)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율법자들)과 그 여자의 후손(예수)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겠다는 유다인들에게~
(요한8,37-38. 43-44)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지(지키지)않고, 뱀의 유혹을 먹은 후손으로 말씀을 선악의 말로 받아 행위로 지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호라우-깨달아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 자기 의(義), 영광(榮光)을 위해서다.
43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뱀)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39ㄴ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 인간의 눈으로는 밀과 가라지, 곧 말씀을 깨달아 간직한 사람,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義)를 믿음으로 받아 간직하고 의탁하는 삶을 사는 그 진짜보다. 선악의 말, 계명으로 받아 잘 간지킨 자기 의(義), 영광을 내세우는 가짜가, 더 진짜같아 보이기에 인간은 밀(참)과 가라지(가짜)를 구별할 수 없어, 추수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들이 추수한다.
그런데 왜 인간의 의로움이 가라지, 가짜인가?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인간의 의로움이 가려(죽여) 죄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죄보다 인간의 의가 더 죄다. 인간의 의를 참이라 하는 것이 더 큰 죄라는 것이다.(로마3,20참조) 그래서 인간의 의(義), 그 영광의 꽃은 떨어져야 한다.
(1베드1,23-25)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25 주님의 말씀(*씨)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남을 죄짓게 하는 자, 불의를 저지르는 자, 모두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율법자들이다. 곧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을 사람의 뜻(소원)을 위한 선악의 계명으로 받아 열심히 행하게 하는 것, 남을 죄짓게 하는 불의(不義)다. 그러나 그것이 흙(사람)의 본성이다.
(루가17,1-2)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2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 사람의 욕망, 본성인 세상의 힘의 원리가 곧 죄(罪)라는 말씀이다. (갈라3,22참조) 그래서 세상의죄를 없애시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이고, 우리는 인간의 본성, 그 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율법, 계명, 그 옛 계약이 죄의 심판을 할 수 없게된 것이다.
그런데 제사와 도덕, 윤리의 신앙을 계속 권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씨)을 깨닫지 못해, 마음에 지키지(간직하지) 못해, ‘되새겨야(씹어야)할 구원, 희망의 말씀이 없어 절망으로 울며 이(齒)만 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의인(義人)-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씻긴 사람이다.(로마3,24 히브10,1-22) *자기(自己)버림, 부인(否認)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한 몸이 된 사람이다.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빛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니, 어둠 이었던 내가 빛으로 드러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