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언을 이루시려고 (마태12,14-21)
제1독서<그들은 탐이 나면 밭과 집을 차지해 버린다.>(미카2,1-5)
1 불행하여라,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 그들은 능력이 있어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긴다.
2 탐이 나면 밭도 빼앗고 집도 차지해 버린다. 그들은 주인과 그 집안을, 임자와 그 재산을 유린한다.
3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 족속을 거슬러 재앙을 내리려고 하니 너희는 거기에서 목을 빼내지 못하고 으스대며 걷지도 못하리라. 재앙의 때이기 때문이다.
4 그날에는 사람들이 너희를 두고서 조롱의 노래를 부르고 너희는 서럽게 애가를 읊으리라. ‘우리는 완전히 망했네. 그분께서 내 백성의 몫을 바꾸어 버리셨네. 어떻게 우리 밭을 빼앗으시어 변절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5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고 줄을 드리워 줄 이가 주님의 회중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화답송>시편10,1-2.3-4ㄱㄴ.7-8ㄱㄴ.14(◎12ㄴ) ◎ 주님, 가련한 이들을 잊지 마소서.
○ 주님,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시나이까?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어 계시나이까? 가련한 이는 악인의 교만에 애가 타고, 그들이 꾸민 흉계에 빠져드나이다. ◎
○ 악인은 뽐내며 탐욕을 부리고, 강도는 악담을 퍼부으며 주님을 업신여기나이다. 악인이 콧대를 세워 말하나이다. “하느님은 벌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없다!” ◎
○ 저주만 퍼붓나이다. 그 입은 거짓과 위협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혓바닥 밑에는 재앙과 환난이 도사리고 있나이다. 마을 은밀한 곳에 숨어 앉아, 죄 없는 사람을 몰래 죽이려 하나이다. ◎
○ 당신은 재앙과 재난을 보시고, 손수 나서시려 살피고 계시나이다. 힘없는 이가 당신께 몸을 맡기고, 당신은 친히 고아를 돌보시나이다. ◎
복음<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마태12,14-21)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제1독서(미카2,1~5)
"불행하여라,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 그들은 능력이 있어,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긴다." (1)
미카서 1장 10~16절에서는 각 성읍을 향한 예고와 권고 형식을 사용하여 남부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였다.
이제 미카서 2장 1절 이하 11절에서는 선민의 사회적 악행의 사례를 제시하고 심판을 경고하며(1~5절), 또한 선민의 종교적이면서도 비인도적인 악행의 사례를 제시하고 심판을 경고한다(6~11절). 그 가운데 미카서 2장 1절과 2절은 계략을 꾸미고 수탈을 자행하는 등의 사회적 악행의 사례가 제시된다.
'불행하여라' 라고 번역한 감탄사 '호이'(hoy)는 1장에 이어서 이스라엘에 다가올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암시하는 점에서 미카서 2장 1~11절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함축하는 도입부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선민들이 잠자리(침상)에서 악을 꾸민다고 지적한다. '잠자리'(침상)에 해당하는 '미쉬코브'(mishikob)는 시서에서 신앙의 사람들이 거룩한 생각을 하는 장소(시편4,5), 하느님과 친교하는 장소 (시편36,5; 63,7)로 종종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죄악의 장소(이사57,8; 에제23,17), 사치와 방탕의 장소 (아모6,4)로도 종종 묘사된다. 침상은 고요함의 의미,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며, 그곳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은 그의 신앙과 인격,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태를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용례로 사용되어 그들이 홀로 있을 때 그들의 도모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내면이 악으로 찌들어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이란 구절이 쓰여진 용도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시 부유한 자들이 사치스러운 침상에 누워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착취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지탄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악을 꾸미는 자들! 그들은 능력이 있어'(1)
미카서 2장 1절에서 사용된 세 개의 동사는 점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악을 행하게 되는 과정을 점점 더 강도를 높여 묘사한다.
먼저 상반절의 '불의를 꾀하고'라는 표현에서 '꾀하고'에 해당하는 '호세베'(hoshebe)의 원형 '하샤브'(hashab)는 죄악이 싹트는 단계로 마음속으로 범죄를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악한 일을 계획하는 것을 묘사한다(즈카7,10).
또한 본문의 '악을 꾸미는'에서 '꾸미는'에 해당하는 '우포알레' (uphoale)의 원형 '파알'(phaal)은 '행하다' 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그런데 '파알'(phaal)은 다른 사람에게 직접 위해를 가한다는 의미보다는 머리 속에만 있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착수하였다는 의미 내지는 죄악을 행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꾸미는 행위는 마음속의 생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밤새 궁리한 악한 일을 실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만들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착수할 구체적인 준비까지 완료된 상태임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 '실행에 옮긴다'에 해당하는 '야아수하'(yaasuha)의 원형 '아사'(asa)는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이나 부당한 방법을 통해 가하는 행위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아사'(asa)는 그 단어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의미인데, 이제까지 생각하고 계획한 일이 악한 것이었기에 행하는 일도 악행일 수밖에 없다.
'아침이 밝자마자'
'아침'에 해당하는 '보케르'(boqer)는 '새벽' 혹은 '아침','날'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밝자마자' 에 해당하는 '뻬오르'(beor)에서 전치사 '뻬'(be)는 '~(때)에'라는 의미이고, 명사 '오르'(or)는 '빛'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막 해가 떠서 빛이 비추는 이른 아침의 때를 가리킨다. 시간에 대한 본문의 이러한 표현은 상반절의 '침상에서'라는 장소에 대한 표현과 대구를 이룬다.
침상은 장소적 표현이지만, 모든 사람이 잠든 밤중이라는 시점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본절의 이러한 표현들은 악인이 밤새 악행을 행할 궁리를 하고, 자신의 죄악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계획까지 세워두었다가 날이 새자마자 악행을 실천하였다는 뉘앙스를 지닌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의 묘사는 이들의 죄악이 부지불식간에 실수로 행한 잘못이나 순간적 분노로 인한 우발적 죄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계획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죄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물론 죄악을 미워하시고, 누구든지간에 악을 행하였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아니라 동시에 그 마음과 뜻을 살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형벌이나 사죄 여부에 대해 그 고의성 여부 또한 살피시고 헤아리신다.
또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그것을 끝내 고집하느냐 여부, 즉 예언자 등의 가르침에 대해 합당하게 반응하느냐 여부도 염두에 두신다.
이런 것들을 감안할 때, 악의적으로 죄를 계획하고 그것을 주저함없이 저지르는 자들, 그 악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중단할 것을 요청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내 고집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공의와 자비로우심을 멸시하는 자이므로 자비와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철저한 심판을 자초하는 자라 할 수 있다.
[녹]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안식일 법을 어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없애 버릴 모의를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물러가십니다. 얼핏 보면 도망이나 회피처럼 비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를 피하여 달아나신 것이 아니라 상한 갈대와 연기 나는 심지와 같은 이들에게 다가가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러가셨다.”라는 표현을 통하여 이것이 예수님의 의도적인 행동이셨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폭력을 폭력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많은 이를 고쳐 주시는, 곧 ‘하느님의 일’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 모습 안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종의 모습이 실현되었음을 확신합니다.
바리사이들과의 관계에서는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으시는 모습을 보았고, 군중을 고쳐 주시는 모습에서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우리를 향한 폭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주한 그 폭력이 ‘하느님의 일’을 위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상한 갈대는 꺾고, 연기만 내는 심지는 꺼 버리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갈대와 심지를 포기하지 않고 돌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임을 보여 주십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심판, 판단은 바르지 못한 생각으로 스스로 하는 것
(마태12,14-21)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 왜?, 안식일에 하느님께 제사, 제물 드리는 일 외에,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빵-말씀)으로만 지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 주신 것이다.
앞13절~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다른 손처럼 성해져 건강하게 되었다.
= 말씀 선포로 회복시켜 주신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제사의 의미, 곧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을 믿고, 먹고, 편안한 쉼, 안식을 누리라는 사랑(배려)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변질이 된 것이다.
(마르2,27)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그 잘못된 생각, 마음이 오그라든 것이고,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바로 그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잘못 알고 있는, 그 생각이 오그라들어 죽어야 할 사람들을 살리시려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니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을 얻도록 말씀으로 고쳐 주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안식일 지킴, 그 인간의 행위에 가치를 둔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바리사이들이다. 그래서 그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 했던 것이다.
그 바라사이 中 한사람,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기 前 자기 의로움으로 흠 없이 살았던,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이들을 박해하고 죽이려 했던 바리사이의 사울(바오로)이다.
그 사도 바오로가 후에~
(필립3,5-6)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 완전하지 못한 구원의 힘, 가치가 없는 인간의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은,(이사64,5) 그 인간의 완전하지 못한 그릇됨을 대속하신 십자가의 예수님, 그 의로움을 헛되게 하는 큰 죄인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필립3,7-9)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의로움, 하느님께 칭찬 받는 의로움, 우리는 어떤 신앙을 사는지~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위한 의로움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인간의 의로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다.(로마4,13 5,1참조)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사이, 그들이 틀렸다고 죽이려는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그 자체가 치유, 고침을 받은 것이다.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 말씀으로 안식을 주시는 주님이 아닌, 곧 믿음과 상관없는 육의 치유를 위한 주님으로 알리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 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진리)을 선포하리라.
= 온 세상이, 많은 사람들이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에 올바름, 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그릇된 것은 선과 악, 도덕과 윤리의 신앙으로 나를 위한, 내 이름을 위한, 그 ‘인본주의 신앙’이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사람의 죄와 의, 그 인간의 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구원의 근거, 심판은 十字架이다. 곧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리로 믿었을 때, 죄가 씻겨 받는다.
(마태7,21-23)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 내가하는 예언, 구마, 기적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구마는 타 종교에도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구마는 치유, 용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기적은 믿음과 관계가 없다. 기적은 사탄도 일으켜 하느님의 백성을 현혹시켜 오히려 구원에서 떨어지게 한다.
(마르13,22)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2테살2,9-10) 9 그 무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으로, 그는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10 멸망할 자들을 상대로 온갖 불의한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여 구원받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 선이 악을 대속하고 생명을 주시는 그 선(예수)의 대속이 진리이다.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 말씀은 거리(길), 곧 세상 사람들의 길(道)을 위한 말로 선포되지 않는다. 선포된 주님의 말씀, 영(靈)은 선택받은 이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셔서 일 하신다. 믿음을 만들어 내신다는 것이다.(히브10,16 필립2,13 에페3,20 1테살2,13참조)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 주님은 심판하지 않으신다.
(요한12,47)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희망이시다. *우리는 창조이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곧 그분의 피로 이미 죄를 용서받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심판이 없는 것이다. 심판은 아담처럼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스로 들어가는 땅속, 지옥(地獄)인 것이다.
(히브4,1-3)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부족한 저희가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을 희망하며 살게해 주시니 감사 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2,14~21)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18~21)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신 이유를 구약의 이사야서 42장 1~4절에서 찾고 있다. 주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 즉 이 세상에 보내실 메시야는 이방에 공의를 선포하며,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지 않으며, 이방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되실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메시야로서 자기 본래의 사명을 다 완수하기도 전에 백성들의 세속적 기대에 부응하여 단지 병고치는 분으로 널리 알려지길 원치 않으셨다.
마태오 복음 12장 18절의 '종'으로 번역된 '파이스'(pais; servant)는 사회적 신분으로서 '종'뿐 아니라 혈통적인 관계에 있어서 '아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분을 잘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마지 못해서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와 같은 '종'('둘로스'; doulos)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아버지께서 마음에 드시는 일을 행하는 아들과 같은 종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라는 뜻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 내면에 하느님께서 마음에 드실 만한 요건이 충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요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안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며(요한14,10),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당신 독자적인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요한7,16).
또한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I will put my Spirit on him)에서 '내가 ~주리니'에 해당하는 '테소'(theso; I will put)는 '두다', '놓다'는 뜻을 지닌 동사 '티테미'(tithemi)의 미래 1인칭 단수로서 '내가 둘 것이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당신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두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 머리 위에 내려오신 사건(요한3,16)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에서 '그가 ~선포하리라'로 번역한 '아팡겔레이'(apanggelei; he will proclaim)의 원형 '아팡겔로'(apanggello)는 '~로부터'(from)라는 기원과 근원을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소식이나 사건을 알리다', '전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앙겔로'(anggello)가 결합된 합성 동사로서, 다른데서 얻은 소식 따위를 공개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민족들에게 알릴 '올바름'이 하느님께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것이 공개적으로 알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기서 '올바름'으로 번역된 '크리신'(krisin; judgement; justice)의 원형 '크리시스'(krisis)는 '심판'보다는 '정의'(공의)의 의미를 더 함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민족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정의를 널리 선포할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서 인류의 구원자인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전해진 '복음'이 그의 제자들을 통해 널리 증거되어질 것(마태28,18~20)을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2장 19절의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는 같은 뜻을 지닌 내용을 두 번 반복해서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동의적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소리치지도'로 번역된 '크라우가세이'(kraugasei; cry out)의 원형 '크라우가조'(kraugazo)는 '크게 소리지르다', '야단스럽게 떠들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식의 의(義)를 내세우기 위해 타인과 논쟁한 경우가 없으며, 자신이 한 행동을 자랑하기 위해 이곳 저곳 다니면서 떠들어 댄 적도 없었고, 길에서 소리 높여 광고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메시야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마태11,29).
그리고 마태오 복음 19장 20절의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도 마태오 복음 12장 19절과 마찬가지로 동의적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부러진'으로 번역된 '쉰테트림메논'(syntetrimmenon; bruised)는 '깨트리다', '산산이 부수다', '상하다'는 뜻을 지닌 원형 '쉰트리보'(syntribo)의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 갈대가 '이미 썩어 부서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썩어 부서진 갈대는 그 자체로, 꺾지 않고 그대로 놔 두어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그러한 갈대를 꺾어 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부러진 갈대'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을 비유하며,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람을 꺾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푼다는 뜻이다.
또한 '연기 나는'으로 번역된 '튀포메논'(typhomenon; smoking)은 '연기를 뿜다', '꺼져가다'는 뜻을 지닌 원형 '튀포'(typho)의 현재 분사로서, 심지가 '현재 연기를 내고 있는 것'을 뜻한다. 초의 심지에 연기가 나고 있다는 것은 그 심지의 불꽃이 금방 꺼져버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고 금방 꺼져버린 심지는 끄지 않고 그대로 놔 두어도 불꽃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심지를 끄는 행위 역시 잔인하며 몰인정한 것이다.
여기서의 심지도 산산조각난 갈대처럼, 죄로 말미암아 아무런 희망없이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비유한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종, 또한 하느님께서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시는 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셔서 희망없이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분이심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끝으로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는 '승리를 향하여 올바름을 이끌 때까지' 혹은 '승리를 위하여 올바름을 이끌 때까지'로 번역될 수 있는데, 마태오 복음 12장 18절의 '올바름'에 해당하는 '심판' 혹은 '정의'가 무지한 사람들에게 짓밟히지 않고, 영광스럽게 그 뜻을 펼칠 때까지를 가리킨다.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고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 말미암아, 언젠가는 하느님의 정의가 그 목적을 성취할 것이며, 그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인생들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2024년 07월 20일 토요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복음에서 두드러지는 표현이 있습니다. ‘모두 고쳐 주셨다.’는 표현입니다.
공관 복음서 가운데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묘사할 때, 이 표현을 두드러지게 자주 씁니다(4,23; 8,16; 9,35; 10,1; 12,15 참조).
오늘 복음에도 이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분께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께는 소외된 사람도 잊힌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오 복음서가 인용한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그분께서는, 그 갈대가 다시 온전해지고 연기 나는 심지에 다시 불이 타오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 희망을 둡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잊지 맙시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여러 이유로 우리가 죄에 떨어지더라도, 그분을 따르는 믿음만은 버리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께 잊힌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믿음으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모두 반드시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인간의 의(義)를 구원의 진리로 하는 것이 죄(罪)다.
복음(마태12,8.13-21)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안식일, 곧 주일 미사 때 선포되는 독서(牘書)와 복음(福音)말씀 안에 들어있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용서, 쉼, 안식을 얻는가? 아니면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것으로 만족해 하지는 않는지, 빠지지 않고 참석한 그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못 박으신 그 피의 새 계약을 주신 하느님의 마음, 사랑을 깨닫고 감사, 영광 드리는 것이 미사(missa 파견하다)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혼인잔치며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容恕), 영의 치유, 안식, 건강임을 깨달아야 한다.
13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다른 손처럼 성해져 건강하게 되었다. 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 바리사이, 그들의 율법에는 지키는 사람의 행(行)함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곧 미사(missa 파견하다)를 내 뜻, 소원을 위한 제사(祭祀)드림, 그 행위에 만족하며 뿌듯해 한다면 그것은 결함이 있는 잘못된 것이라며,(마태6,7-8 히브8,7 참조) 하느님의 사랑에 찬미, 영광 드리는 감사의 잔치, 예배(禮拜)여야 한다고 말하면 듣기 싫어한다.(요한4,23-24참조)
자신들의 뜻, 욕망(慾望)을 채우려는 이들에게서 주님은 물러가신다.(요한6,15)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 질병(疾病)은 죽음, 죄(선악)의 증상이다.(창세2,17) 곧 죄를 용서하심, 고치심(구원)을 깨달아야 한다. 구원자 그리스도로서 죄인들의 질병을 가져가시고 하늘의 용서, 평화, 안식을 주심을 깨달아야 한다.(이사53,1-4 마태8,16-17)
그런데 보이는 육(肉)의 치유로 보이는 육의 뜻을 위한 구원자로 전(傳) 할까봐 엄중히 경고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 거리, 곧 세상이 주장하는 세상의 길, 올바름(선악의 계명)이 아니라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十字架)의 복음(福音)을 구원의 올바름(진리)으로 구원의 새 계명으로 선포(宣布)하신다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의 길로는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올바름, 진리(眞理)다.
(시편46,11) 11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나는 민족들 위에 드높이 있노라, 세상 위에 드높이 있노라!”
= 율법(제사와 윤리)의 결함인 자기 뜻, 의(義)를 위한 행위를 멈추고, 하늘의 올바른 진리(眞理), 구원의 의로움을 찾아라, 깨달아 알아라. 하신다.(마태6,33) 곧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요한14,6 로마3,24)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1코린2,9) 9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 땅, 흙의 먼지인 인간이 스스로 깨달을 수도, 도달(到達)할 수 없는 하늘의 뜻, 길이다. 그래서 다음 10절에 보호자 성령(聖靈)을 약속하셨다.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 죄(罪)로 죽어가는, 생명이 꺾어지고 꺼져가는 이들, 나를 살려내신 그 하늘의 진리(眞理), 승리(勝利)를 말씀하심이다. 곧 구원의 승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내셨고(요한9,30 1코린15,57) 그 주님의 승리를 전가(傳家)시켜 주셨기에 우리, 나의 희망(希望)이시다. 믿음으로 얻는 승리다.(1요한5,4-5)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속죄제물)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세상의 선악의 논리가 멸망할 죄라는 것이다. 왜? 선악의 분별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사람(아담)은 그 하느님의 선악(善惡)을 뱀의 유혹으로 인간들의 계명, 법으로 만들어 모두가세상이 죄 안에 갇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갈라3,22)
그러나 악(죄)을 선(예수)이 덮어 살려내시는 그 하느님의 선악(善惡)의 논리(論理)인 구원(救援)의 진리(眞理)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한3,17-18)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외아들의 이름, 외아들(모노게네스- 하나로 갖은자), 곧 선악을 둘로, 심판의 법, 죽음이 아닌 선(善)이 악(惡)을 덮어 생명을 주시는 그 생명 하나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선이 악을 대속하신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얻는 생명을 믿지 않으면 심판(審判)이다.
세상이 올바르다 주장하는 도덕과 윤리의 계명을 진리로 착각, 오해하여 자기 열심, 의(義)쌓기 위한 신앙을 산다면 불법(불의, 죄)으로 뱀의 후손이 되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 (마태7,21-23 로마10,1-3 참조)
+노파심+ 착하게, 의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는 육(肉)을 입고 사는 동안 지켜야할 질서(秩序), 계명(誡命)이다. 다만 그 육의 계명, 법을 잘 지킨 인간의 의로움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티토1,14참조)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는, ‘육(肉)의 죄로 영(靈)의 죄를 깨달으라.’ 주신 모형(模型)이기 때문이다.
(로마7,1)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율법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말합니다. 율법(제사와 윤리의 계명)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요한16,8-11)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代身) 죽음의 심판(審判)을 받아 십자가(十字架)에서 피를 흘리신, 그 새 계약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罪)를 씻어 깨끗하게, 의롭게 하시고 아버지께 가신 그 주님을 믿지 않는 것, 당연히 죄(罪)다.
예수님께서 앞서 말씀하셨듯(요한3,18) 믿지 않는 세상 모든 이들은 이미 심판을 받았음을 뜻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세상의 우두머리로 대신 죽음의 심판을 받으셨음을 말씀하심이다.
☨하느님의 영으로, 어떠한 눈도 본적이 없고 어떠한 귀로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하늘의 진리를 깨닫고, 믿게 하시는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 마음 안에 충만 하소서.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 안에 머물러 올바른 진리, 하늘의 안식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