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

2024. 7. 18. 오후 5: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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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일 금요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

 


1독서<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이사38,1-6.21-22.7-8)

1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2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3 말씀드렸다. “,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4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5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6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

21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22 히즈키야가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7 “이것은 주님이 말한 일을 그대로 이룬다는 표징으로서, 주님이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8 보라, 지는 해를 따라 내려갔던 아하즈의 해시계의 그림자를 내가 열 칸 뒤로 돌리겠다.” 그러자 아하즈의 해시계 위에 드리워졌던 해가 열 칸 뒤로 돌아갔다.

 

<화답송>이사 38,10.11.12ㄱㄴㄷㄹ.16(17) 주님은 멸망의 구렁에서 제 목숨 건져 주셨나이다.

나는 생각하였네. “한창 나이에 나는 떠나는구나. 저승문으로 불려 가, 남은 햇수를 지내야 하는구나.”

나는 또 생각하였네.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을 뵙지 못하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 아무도 못 보겠구나.”

양치기 천막처럼 뽑혀, 나의 거처 치워졌네. 나는 베를 짜듯 나의 삶을 엮는데, 그분은 베틀에서 나를 잘라 버리셨네.

주님, 저는 당신만을 바라오니, 제 목숨 구해 주소서. 저를 고쳐 주소서. 저를 살려 주소서.

 

복음<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12,1-8)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제1독서(이사38,1-6.21-22.7-8)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주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내렸다. "가서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1~5)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네 집을 정리하라' 혹은 '너는 너의 집을 위하여 명령하라'로 번역한 '차우 레베테카'(tsau lebetheka)에서 '차우'(tzau)의 원형 '차와'(tsawa)는 명령을 내리거나 정돈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네 집'에 해당하는 '레베테카'(lebetheka)의 원형 '빠아트'(baath)는 '가정', '가문', '왕조','국가' 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은 히즈키야가 자신의 집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정해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왕궁 안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지시 사항을 자기 신하들을 통해 정리하는 등, 왕으로서 마지막 해야 할 일을 다 하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그의 사후 왕위 계승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후계자를 정해 놓으라는 의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의 문제와 제반 문제들을 아직 정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히즈키야가 지금까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본문의 명령은 그에게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원문은 본문이 이유 접속사 '키'(ki)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것은 왜 히즈키야가 자신의 집을 정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임을 나타낸다.

본문은 히즈키야의 죽음을 긍정문과 부정문을 사용하여 강조해서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강한 부정의 의미를 가진 부정어 '로'(lo)와 미완료 형태의 동사를 사용하여 반드시 죽을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강조적, 확정적 의미를 지닌 예언은 히즈키야에게 절망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생명을 연장받게 된다(9절).

이같은 사실은 본서 전체의 예언을 닫혀진 미래의 일로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느님 대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자 히즈키야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2)

 

앞선 1절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이사야 예언자가 히즈키야에게 가서 죽음을 예고하고 유언을 권면한 내용이었다. 이제 2절과 3절은 이러한 말씀을 전해들은 히즈키야가 하느님을 향해서 진심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의 본절에서 사용된 두 동사는 계속적 '와우'(wau)가 사용되어 예언자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기도에 전념하였음을 보여준다.

 

히즈키야는 죽음이 선고된 순간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주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사실 이 당시 히즈키야는 39세의 젊은 나이였으며, 그의 왕위를 이을 므나쎄가 42세에 태어났으므로(2열왕21,1), 그에게는 후계자가 될 직계 자식도 없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국가는 아시리아의 침공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 역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게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신을 죽음을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매달렸다.

 

한편, 히즈키야의 기도의 자세는 매우 독특하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다.

'쪽으로 돌리고'에 해당하는 '와이얏세브'(waiyasseb)는 계속적 '와우'(wau)와 '돌이키다'(turn)라는 의미를 가진 '싸바브'(sabab)의 사역형이 결합한 형태이다.

 

히즈키야의 즉각적이고도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이 표현은 '벽'이란 단어와 함께 사용되어 이전의 불신앙적 태도에서 완전히 돌이켜 온전히 주 하느님만을 의지하였음을 형상화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벽쪽으로 돌리고'란 표현은 히즈키야가 모든 세상적 방법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끊고 오직 하느님께 전적으로 매달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도 보았다'

 

같은 뜻의 대구로 되어 있는 본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전지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다 보고 계시며,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듣고 계신다.

 

본문의 '들었고'와 '보았다'는 이러한 의미에서 듣고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네 기도들'과 '네 눈물을'에 해당하는 표현 각각에 사용된 2인칭 접미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서 구별하여, 히즈키야 개인에 대해 가지신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 해 주겠다'

 

'자, 내가'로 번역된 '히느니'(hinni)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behold I)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어 전개되는 말씀들이 놀라운 것이며 매우 중요한 것으로 주의깊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둔 히즈키야의 즉각적인 회복은 기적적인 일이며 국가의 운명과도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너의 수명에다 열 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너의 날들 위에 15년을 추가할 것이다'이다.

이런 표현은 히즈키야의 정해진 날이 끝났으나 하느님의 은혜로 15년을 더 살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즉 아무런 소망이 없던 히즈키야가 제2의 인생을 살게 하셨음을 보여준다.

 

한편, 열왕기 하권 20장 5절에는 '이제 내가 너를 치유해 주겠다. 사흘 안에 너는 주님의 집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이 본문의 내용 바로 앞에 있다. 이것은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치유의 말씀을 전한 날로부터 3일안에 그 병이 기적적으로 완전히 치유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율법의 세부 규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서른세 가지의 노동이 금지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밀 이삭을 뜯는’ 행동이 포함된 추수 작업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이 규정에 기대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율법도, 말씀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언하십니다.

살다 보면 알맹이는 보지 못한 채 껍데기만 볼 때가 있고, 의미와 사람은 보지 못하고 규정만 볼 때도 있습니다.

종교적 규범은 세세한 것까지 들여다보지만, 배고픔이라는 인간이 놓인 절박한 상황은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바리사이들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누구나 개인으로, 또 집단으로 바리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규범과 관행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동은 교회를 “박물관의 전시물”로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계명과 규정들을 일컬어 “두 얼굴”, 곧 “하느님의 얼굴과 형제의 얼굴을 알아보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58.61항 참조).

여러분은 계명과 규정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과 형제들의 얼굴을 만나고 있는지요?

부끄럽게도 전례와 교회 규범을 조심히 살피는 저 자신을 꽤나 훌륭한 사제라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 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를 지적하는 것을 합리화할 정도로 말입니다.

지켜야 할 계명과 규범들과 함께 그것을 마주한 형제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아야 하겠습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싸밧)-일곱번 말하다.

 

(마태12,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안식일을 행위로 지키려는, 곧 안식일의 의미를 깨닫기 위한 신앙이 아닌 법, 교리로, 자기 ​의무, 의로움으로 챙기려는 이들이 생각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 신약으로 건너오면~ 제사의 빵- 생명의 양식은 배고픔을 아는 이, 곧 마음이 가난한 이, 죄인들이 먹는 말씀이다.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 성전 안에 있는 그 자체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 곧 성전이신 예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 안식이며,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을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예’가 된다.

 

(2코린1,19) 19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는 늘 !”만 있을 따름입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성전이신 예수님 안이 안식(용서, 생명, 평화)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 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피(대속), 그 새 계약으로 더러운 옛 사람의 내가 사라지고 깨끗한 새 사람이 되었으니, ‘희생 제사를 계속 드리는 그 헛된 수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히브10,11)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 보이는 성전을 기념하거나 주일, 안식일을 자신의 의(義)를 위한 행위로 지키지 말라는 말씀이다.  성사생활은 열심히 행(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사 안에 들어있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의, 생명, 그 하느님의 진리, 사랑, 자비를 깨달아 입는 것이다. 

그랬을 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 된 감사와 찬미, 영광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고, 우리에게 하늘의 평화, 안식이 내려오는 것이다. 여러 번 묵상 했듯 우리 구원의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드림 이다.(이사43,7) 그것이 안 되면 절대 하늘의 평화, 안식을 누릴 수 없다.

 

(루가2,14)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아멘)

= 그러니 파라오 처럼 자기 뜻을 고집하는 이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없고, 안식을 살 수가 없다.

 

 (탈출11,10 -12,11)

10ㄱ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에서 모든 기적을 일으켰다.

= 이집트는 육(肉)을 만족시켜 주는 세상을 모형(模型)한 것이며 파라오는 그 세상의 힘의 원리로 자신의 뜻을 고집하며 사는 우리의 모형이다.

 

10그러나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그리하여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기 땅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 파라오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완고하게(?) 하셨단다. 하느님의 말씀, 기적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기적으로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기적으로, 그 우상으로 받지 못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말씀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속, 피의 새 계약으로 우리의 더러운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그 기적의 말씀을 듣고도 세상의 돈과 명예, 의로움, 그 자기 뜻을 내 보내지 않는, 고집하는 우리의 그 실체, 속셈, 그 모습을 보라는 말씀이다.

하나 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파라오(우리)가 자신의 뜻을 고집하도록 마음을 완고하게, 곧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그 모든 죄를 대속 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 구원의 새 계약을 주시기 위한, 하늘의 안식을 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 자비, 배려였다는 것을 깨닫고 간과(看過)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로마3,26)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어 그리스도로 의롭게 되는 그것이 그리스도교인 것이다.

 

그래서 12,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 파라오化 된 이스라엘(우리), 곧 자신의 뜻을 내 보내지 않는, 그 죄에서 우리를 구하실 대속, 희생제물, 흠 없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라 하신다.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희생제물 예수)를 먹어야 하는데불에 구워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곧 대속,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주신 성령(불)께 의탁해서, 육을 만족 시켜주는 세상의 누룩(말, 가르침)을 빼고 영원한 안식,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들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 본문의 말씀은 구약, 옛 계약이다. 그러나 아침, 곧 그 옛 계약의 실체인 신약의 새 계약 때에는 버리라는 말씀이다.(히브10,9~참조)

그러니까 현세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버리고, 성령을 통한 깨달음을 위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 허리에 띠, 발에 신, 손에 지팡이,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 성령을 뜻한다.(에페6,10-17) 서둘러 먹으라는 말씀은 서둘러 갈 곳이 있다는 말씀인데, 말씀을 먹고 내 뜻을 고집하던 그 삶, 신앙에서 떠나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삶, 그 참 신앙으로 ‘서둘러 가라’는 말씀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그리스도로 의롭게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니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복음(마태12,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제가 성전에서 일을 하는 것에는 안식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예를 구약 성경(민수28,8.9)을 근거로 해서 드신 다음에 마태오 복음 12장 6절의 의미심장한 말을 하신다.

 

'더 큰 이가'에 해당하는 '메이존'(meizon; one greater)은 '큰'(large), '위대한'(great)이란 뜻을 지닌 '메가스'(megas)의 비교급 중성 단수로 번역되는데, 그 뜻은 어떤 뜻일까?

 

어떤 학자는 성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어떤 일이라고 해석했고, 어떤 학자는 마태오 복음 12장 7절의 제사보다는 자비를 더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해석했으며, 어떤 학자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모두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임재라고 해석했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여기서 성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안식일의 규정도 예외로 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러한 성전보다 크고 위대한 어떤 것,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는 안식일의 인위적인 유전이나 전통으로 어찌 단죄 할 수 있는가 라는 뜻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7~8)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말씀은 호세아서 6장 6절의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자비'로 번역된 '엘레오스'(eleos)는 불쌍한 자와 고통받는 자를 향하여 그들을 구제하고자 원하는 호의나 친절을 말한다.

 

사실 안식일 규정도 안식일 그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살이를 하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과거를 기억하게 하여(신명5,15)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이 쉬게 해주지 않으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계속 일만 해야 하는 남녀 종을 비롯하여 소나 나귀, 모든 집짐승, 이방인 나그네 등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일주일 중에 하루를 쉬게 하는 규정을 주신 것이다(신명5,14).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도 이처럼 말 못하는 땅과 종들의 노고를 풀어주고, 그 해만큼은 자유롭게 쉬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레위25,1~22).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을 안식일 그 자체를 위해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포함한 당신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유대 율법학자들은 율법에도 없는 안식일 금지 사항을 39가지나 만들어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피곤하게 했는데, 이것은 안식일 제정에 대한 하느님의 원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더욱이 지금 제자들이 배가 몹시 고픈 상태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대한 하느님의 깊으신 뜻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제자들의 행위를 범법 행위로 비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 12장 1절에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동행하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뜯어'로 번역된 '틸레인'(tillein; to pluck)의 원형 '틸로'(tillo)는 손으로 곡물의 이삭 따위를 따거나 뜯는 것을 말한다.

제자들은 낫이나 주머니칼과 같은 도구로 많은 이삭을 자르지 않고, 다만 소량의 이삭을 손으로 찍접 따서 먹었던 것이다.

 

신명기 23장 25~26절에 의하면, 극빈자를 위해서는 이런 것은 허용하고 있다.

"너희가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갈 경우, 원하는 만큼 배불리 포도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릇에 담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신명23, 25~26)

그러니까 타인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이같은 방법으로 곡물의 이삭을 따먹는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모세 율법이 금하는 것은 낫을 사용하여 대량으로 베어가는 행위였다. 제자들의 행위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던 것이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탈출20,8)로 규정되어 있고,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밭갈이하는 철에도 거둠질하는 철에도 쉬어야 한다'(탈출34,21)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손으로 이삭을 따먹는 사소한 행위는 노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자기 식대로 해석함으로써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안식일에는 39가지나 되는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 규정에 의하면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행위는 추수 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고, 손으로 비빈 행위는 타작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이며, 이삭 껍데기를 입으로 부는 행위는 키질 금지 규정을 위반한 행위로 간주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전통을 이어받아 이것을 절대 진리로 생각하고 이것을 고수했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위를 안식일 규정의 위반으로 보고, 예수님을 책잡을 수 있는 호기로 삼았던 것이다.

 

한편, 레위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듯이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의 소유권을 메시야이신 당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권한을 월권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人子)이 안식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적 안식일 규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바리사이인들에게 올바른 권위로 책망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2장 27절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인위적인 안식일 규정으로써 주객을 전도시켜 오로지 인간을 억압하는 유대교의 형식주의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하지만 여기 본문에서 이러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안식일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밝혀서,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메시야이시며 바로 하느님 되심을 강조하기 위한 마태오 복음사가의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20240719일 금요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두고 바리사이들이 비난합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 어디에도,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바리사이들이 비난의 근거로 삼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한 규정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 되어, 하느님을 자비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또는 교회 안에서 중요한 직분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주님이요,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 마음을 잊어버리게 될 때,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을 자비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가장 작은 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섬기기 위한 봉사가 이웃들을 비난하고 단죄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하느님과 더욱더 일치하고자 하는 그분의 특별한 부르심이 하나의 권력이 되어 함께 봉사하는 이들의 마음을 찢어 놓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지위와 직분을 어느 순간부터 강조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말로 자꾸만 상처와 갈등이 생긴다면, 성체 앞에 앉아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봉사하고 있는 그 일의 주인도,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주신 분도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모든 일과 규정, 계명을 통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만나는 데 우리가 봉사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19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복음(마태12,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죄인들의 희생 제사의 제물로 죽으신, 그리고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그분과 한몸이 되었다면, 안식일을 지킨 안식의 완성이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늘 ‘예’가 되기 때문이다.

 

(2코린1,19) 19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는 늘 !”만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5,17)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페2,21-22)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골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 그래서 우리의 창조의 목적인 하느님께 영광드림 또한 이루어진 것이다.

 

(에페1,11-12)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론(結論)-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기 위해서는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을 지킨 자기 의(義)는 결함, 곧 구원의 가치가 없음을, 또한 세상의 힘의 원리로 쌓은 재물, 명예, 영광이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하는, 사라질 연기, 헛 것일 뿐임을 인정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삶으로 이루어진다.

곧 신앙의 성숙은 율법(제사와 윤리)을 잘 지켜서 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容恕) 받아야 할 죄인(罪人)의 자리로 내려앉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의 믿음이며 신앙의 성숙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 처럼 ‘죄인 중에 죄인, 첫째 가는 죄인’이라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곧 그 어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1티모1,14-15)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우리 주님의 은총(은혜)이 넘쳐흘렀습니다.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 사랑이 된다. 곧 자유, 용서, 거룩, 새것, 생명, 안식이 된다. 매일 낮아져야 한다.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비워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신앙 생활이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성령(聖靈)께 의탁해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자유(自由)를 주시는 진리(眞理)의 성령(聖靈)이시다.

 

(1테살2,13) 13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히브4,12-13)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율법과 선악에 의한 사람의 의(義)가 없음으로 구원에 불리한 조항으로 드러내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반드시 해결해야, 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속(代贖)의 십자가(十字架)에서’.....

 

(골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 자유, 쉼, 안식이다.

 

은총이신 진리의 천주 성령님!

저희들 마음 안에 충만 하소서그리스도의 대속그 새 계약의 말씀 안에 머물러 안식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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