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열두 사도 (마태10,1-7)

2024. 7. 10. 오전 7: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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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일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열두 사도 (마태10,1-7)


   


1독서<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호세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화답송>시편105,2-3.4-5.6-7(4) 언제나 주님 얼굴을 찾아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복음<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10,1-7)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1독서(호세10,1~3.7~8.1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임금이 있다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2~3)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을 향하여 두 마음을 품었음을 고발하고그로 인해 징벌을 받을 것을 지적한다.

본절 하반부의 '그 제단들과 '그 기념 기둥들에 해당하는 '미즈뻬호탐'(mizbehotham)과 '맛체보탐'(matsebotham)은 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지중지하면서 섬겼던 것들로서 본절이 직접적으로 1절과 관련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열매를 잘 맺는다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1)

 

또한 그런 점에서 본절의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에 해당하는 '할라크 립밤'(halaq libbam)이라는 표현이 바로 앞선 1절의 '이스라엘은 열매를 잘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는 어구와 거의 동의어이거나 깊은 관련을 갖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일단 '할라크'(halaq)라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매끄럽게 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무엇인가를 둘 이상으로 나누거나(창세14,15; 탈출15,9), 혀로 아첨을 하는 것(시편5,10; 잠언28,23)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마음'에 해당하는 '립밤'(libbam)이 주어가 되어서 문자적으로 '그들의 마음은 나뉘어졌다'(their heart is divided)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거짓되다는 의미로서(their heart is deceiful) 혼합주의적 신앙과 더불어 그들이 주님으로 인해 부강해지고또 겉으로는 번영을 이루는 등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울창한 포도나무 같았지만주님께 대해서는 그분이 원하는 열매를 아무것도 맺지 못하는공허하고 텅빈 포도나무와도 같았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은 주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면서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근동에서 풍요 다산과 번영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고번성을 기원하기 위해 남성 주상(기념 기둥)들을 만들고 아름답게 꾸미는데 열성을 다 바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제단들을 다 부수시고그 기념 기둥들을 다 허물어 버리실 것이라는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원문으로 보면제단들을 부수시고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심으로써 심판을 단행하시는 주체인 '하느님'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이에 해당하는 ''(hu)는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이다이 표현은 '부수시고'나 '허물어 버리시리라에 해당하는 동작을 행하는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강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즉 바로 '그분께서부수시고 허물어 버리실 것을 나타낸 것이다바로 그분은 이스라엘에 번성(번영)의 축복을 주셨지만그들로부터 아무런 보답이나 기쁨도 얻지 못하고오히려 멸시를 당한 주 하느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3)

 

앞선 1절과 2절에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하고 사악함의 근원이 신앙 변질과 우상 숭배에 있음을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였다이제 이어지는 본절(3)과 4절은 이스라엘이 주님을 떠남으로써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타락하였다는 것과 이것 때문에 사회 전반이 혼란에 빠져 있으며 부패하였음을 질책하는 내용이다.

 

3()의 해석은 세 가지로 가능하다.

하나는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을 당한 이후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어진 상황에서 냉소적으로 임금이 없다는 사실을 탄식하고설령 임금이 있어도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며 탄식하는 넋두리 정도로 보는 것이다이것은 한편으로 이들의 패망의 확실성과 그 패망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부각시킨다.

 

다른 하나는이스라엘에 멸망하기 이전 상황에서 예로보함 2세 통치 이후거듭된 암살과 권력 투쟁으로 임금이 수없이 많이 교체되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의 다윗와 같은 임금다운 임금이 없음을 탄식하고또한 그런 임금이 등극할지라도 자신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듯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의미라고 보는 것이다.

 

세번째는백성들이 순리와 법도와 질서를 거스르는 오만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즉 임금이 무능력하여 전혀 필요없다는 백성들의 오만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다시 말해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 설사 임금이 없어진 상황이 된다고 해도그들이 잘못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임금까지도 필요없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극한적 교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 가지 견해는 각각 그 시점이 포로시기포로시기 직전현재와 매우 가까운 상황과 관련되어 있으며이 모든 견해가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첫번째와 두번째의 견해를 따른다면, '이제'에 해당하는 단어 '앗타'(attha)는 '장차'라는 의미가 되며, '그들은 말하리라'에 해당하는 '요메루'(yomeru)는 미완료 시제로서 훗날 본절과 같이 말할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그들이 말할 것이다).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B.C.722년에 멸망하게 되는 것은 야훼 유일신 신앙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진 교만에 있다.

주변 잘 사는 국가들이 임금이 있는 것을 보고 임금을 만들어 달라고 외쳐서 신정(神政)체제가 왕정(王政)체제가 되었지만임금은 항상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느님께로부터 축복받는 나라가 된다.

 

그러나 북부 이스라엘의 임금들은 자신의 권력과 힘이 세어지면 세어질수록 하느님을 버리고 주변 이방 국가들의 모습을 닮아가고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우상 숭배에 빠지는 교만과 불순명을 저질렀고결국 그들이 섬기던 이교 잡신들의 제단들과 기념 기둥들을 주 하느님께서 직접 허물고 임금도 나라도 잃게 만드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신명기 6장 4~5절의 말씀을 명심하고 야훼 유일신께 절대적 신앙을 드러내어야 했었다.

"이스라엘아들어라주 우리 하느님응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를 모두 고쳐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가까이”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당신의 삶에 더 깊이 참여하라는 뜻이며, 이것이야말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더러운 영들이 쫓겨나고 병자와 허약한 이가 치유 받는 것은 성경에서 ‘하느님 나라의 승리’를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승리가 당신의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열두 제자의 이름이 “사도”라는 호칭으로 소개됩니다.

복음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기도 하지만 그 명단에 자신 또는 친밀한 이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본당에서 봉사자를 선발하여 명단을 발표하여도 교우들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그 명단에 올릴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어찌 신자들뿐이겠습니까?

사제품을 받으며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라고 바쳤던 기도가 점차 “쟤가 있지 않습니까? 쟤를 보내십시오.”라는 기도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제자들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승리를 계속 이루십니다. 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빠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봅시다.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주님께서 주신 權限은 새 創造를 이루시는 말씀이다.


(마태10,1-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예수님께서 구마의 권한(權限)을 주셨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사탄아! 귀신아! 물러가라”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게 했다가 봉변 당한 사람이 있다.

 

(사도19,11-12) 11 *하느님께서는 *바오로를 *통하여 비범한 기적들을 일으키셨다. 12 그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그들에게서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다.

= 바오로의 살갗, 얼굴은 얼(영)이 들어있는 굴이다. 곧 그가 하느님께 받은 영의 치유와 구마인 것이다. 하느님의 영께서 그를 통해 일하셨다는 것이다.

 

(사도19,13-16) 13 그러자 구마자로 돌아다니는 몇몇 유다인까지도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면서악령 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14 그런데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그렇게 하자, 15 악령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 하였다. 16 그때에 악령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모조리 억누르고 짓누르는 바람에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어 그 집에서 달아났다.

= 권한은 말씀이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구마하셨다.

 

(마태8,16)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마르1,39)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말씀의 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악령(惡靈), 마귀(魔鬼)를 쫓아낼 수가 없다.

 

(마태17,19-20)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 *(율법)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은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이 작고 약해 보인다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며(마르4,14) 그 말씀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요한1,14)

곧 구유의 아기그 작은 씨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죄로 대신 죽으시고 많은 열매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신 그 진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악령마귀)이 선악의 법으로 주었던 그 산같은힘겨운 모든 짐심판에서 자유 할 수 있게 되는데그것이 구마인 것이다.

 

(로마5,17-19)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은총(은혜)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한 사람(예수)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씨)이 진리로, 믿음으로 연결이 안 된다.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이 그들에게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1코린1,23-24)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그 부르심을 받은 사도, 우리들이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토마스와 세리 마태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둘을 보면 모두 이기적이며 부족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은 끝까지, 죽기까지 사랑 하셨다.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전부 다 도망가고, 배반을 했어도 부활하신 후 찾아 다니셨던 주님이시다. 그와 같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끝까지(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니 그 주님의 사랑을 진리로 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 우리 죄인들의 죄로, 대신 죽으신 그 구원, 진리의 말씀을 다른 민족, 즉 세상 사람들이 추구 하는 것으로 주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사람의 뜻을 위한 신앙, 우상 같은 말로 주지 말라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이스라엘 집안이란,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창조 이전에 선택 받은 영적 이스라엘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히브4,3)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 그 선택 받은, 다 이루어진(완성된) 이들이 이 땅에 온 것이다. 왜?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 안에서 선택되고 완성된 것임 알라고, 그 믿음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가는 하느님 나라이다.

옛날 교리 문답 중 <질문> ‘사람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느뇨?’ (답)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느니라.’

곧 선이 악을 대속해 생명을 주는 그 진리의 길이 아닌 선과악, 그 법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길을 잃고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의 길로~~

 

(시편33,10-11) 10 주님께서 민족들의 결의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신다. 11 주님의 결의는 영원히그분 마음의 계획들은 대대로 이어진다.

 

(에페2,2-5) 2 그래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길을 잃은 이들에게 그 진리의 나라가 왔으니 돌아오라고, 선포하라는 말씀이시다. 그 진리로 하느님나라, 말씀으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1,4) 4 그분(말씀-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 사람의 의지와 계획을 꺾으시고, 흩으시고 영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대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0,1~7)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5~6)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의 두번째 가르침(마태10,1~42) 가운데 서론적 내용인 열두 사도의 부르심에 대한 내용(마태10,1~4)을 마치신 후이제 마태오 복음 10장 5절에서부터 본격적인 가르침에 들어간다그중에 마태오 복음 10장 5절에서 1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선교 활동의 대상과 내용선교사로서의 자세에 관한 교훈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마태오 복음 10장 5()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교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부하고 계신다이렇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야로서의 예수님과 유다인과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기록한 복음서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은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8~10절이나 루카 복음 9장 2~4절에는 기록되지 않고오로지 마태오 복음에만 나온다사마리아인들은 과거 북부 이스라엘이 이방인 아시리아인들과 혼인하여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을 더렵혔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로 매도당하였으며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개처럼 취급받았다.

 

더군다나 이방인들(다른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0장 5()은 이러한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을 열두 사도의 선교 대상에서 일단 유보시킴으로써예수님의 선교 활동의 일차적인 대상이 마태오 복음 9장 36절에 나온 것과 같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한편새성경 한글 번역에는 생략되었지만원문인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는 '~대신에'(instead of), '반드시'(surely), '분명히'라는 뜻을 가진 '말론'(mallon; rather)이라는 단어가 나온다이것은 마치 복음을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 전할 바에는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전하는 것이 낫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 같지만실제로 마태오 복음사가의 강조점은 당시의 시점에서도 반드시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 전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따라서 본문을 '반드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라고 번역해야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이라는 구절은 마태오 복음 9장 36절의 '목자 없는 양들'의 이미지와 같은 은유를 사용한 수사적 표현이다이것은 마태오 복음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려 오신 예수님의 강생(육화)의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수록한 내용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과 20절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명령하신 내용을 보도하고 있으므로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서 복음전파의 대상으로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을 일단 유보하고그 일차적인 대상으로 유다가 지목되고 있는 사실은결국 유다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한 거부로 인해 필연적으로 선교의 대상이 모든 민족들로 확장되어 가는 논리적인 연결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서 강조하는 것은복음서 전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이방인들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민이요 소유가 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애착과 우선적 선택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20240710일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첫자리에 두셨을까요?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느님을 잘 알고 있고, 하느님께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구원의 역사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 말씀에도 익숙하였고, 회개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어떻게 하여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1,11)라는 요한 복음서의 말씀처럼, 이들은 누구보다도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움직이나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나요?

아니면 이미 하느님에 대해서, 또한 그분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분과 상관없이 사는 삶에 더 익숙하지는 않나요?

익숙하거나 매우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함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아주 먼 관계일 수 있음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들음이 사라진 관계를 하느님과 맺지 마십시오.

들음이 끊긴 삶은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서로 멀어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자신이 그분에게서 멀리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삶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10일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義는 찾는 것이지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음(마태10,1-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왜 열둘을 뽑으셨을까? 숫자 12는 열두 명 이라는 의미보다 하늘의 완전 수로 ‘하늘의 아들들’을 뜻한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토마스와 세리 마태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완전 수 12, 그런데 열 두 제자 모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못해 두려워 숨어 지냈다. 곧 우리의 모습이다. 완전하지 못한 그들을 하느님께서 계시의 영, 성령을 보내시어 하늘나라의 완전한 아들로 만들어 내신다.(사도2장) 그것이 구원의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만 가라’는 말씀이 아니다. ‘창조(創造) 이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온 세상에 퍼져있는 하느님의 자녀, 백성들에게 가라’는 말씀이다.(에페1,4-5)

그 하늘 백성들에게 그들의 본향, 하늘나라 소식을 알리라는 말씀이다. 곧 이 세상은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이 세상의 힘의 논리, 법의 지배를 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從)살이 하지 말라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세상의 물질, 문명이 너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그 매혹적인 것이 영(靈)을 병들게, 허약하게 만들어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 하늘을 날 수 있는 백조가 자신의 존재, 신분을 잃어버리고 오리로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꼴이다. 하늘의 왕자, 공주가 자신의 하늘 존재, 신분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거지, 종(從), 노예로 살아가는 격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첫째는 성경(聖經)말씀을 모르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더러운 영들의 지배를 받는 거짓 도사들의 거짓 가르침 때문이다. (마태24,24 2베드2,1참조)

곧 많은 사람들이 성경(聖經)을 문자 그대로,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계명(誡命) 정도로 보고(티토1,14) , 또 가르침도 그 계명 수준이기 때문이다. 문자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전(傳)할 줄 모르니 모두 ‘눈 먼 소경, 말 못하는 벙어리’ 신앙을 살고 있다. 

예(例) 제사를 자주 드리며 도덕과 윤리로 착하게, 강도짓 안하며, 십일조 바치며, 단식하는 사람을 우리는 의롭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롭지 않다’하신다. (루가18,11-14) 또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키며 훌륭한 은사(隱私)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법이라고 하신다.(마태7,22-23)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열심히 섬기는 ‘마르타를 본받자’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신다.(루가10,38-42) 

모든 사람들이 훌륭한 은사다. 의롭다. 필요하다. 하는 것을 왜 예수님은 불의, 불법, 필요없다 하실까?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1코린15,19) 이 세상에서 하늘 백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그림자일 뿐이다.(골로1,26-17) 그 그림자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믿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2코린4,18 히브10,1)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제 십자가, 우리의 모든 것이 그릇되고 필요없는(요한16,8), 곧 불의, 불법임을 인정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否認)을 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저주의 십자가에서 대속 하시고 죽으신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님의 십자가(十字架)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곧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義), 거룩이다.(로마3,24 히브10,10)

내 모든 죄(罪)가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었기 때문이다.(골로2,14) 그 대속(代贖)의 십자가가 주시는 하늘의 용서, 의, 거룩의 힘, 능력은 영원하기 때문이다.(히브10,14)

물론 현실의 내 십자가를 열심히 지고 살아갔을 때, 내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나의 죄악을 보고 죽을 죄임을 인정했을 때, 곧 자기 부인(否認)을 했을 때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로 갈 수 있다.

 

(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은총이신 진리의 성령님!

하늘가는 길도하늘의 신분도 잃어버리고도잃어버린줄도 모르고 사는 저희들입니다세상을 다스려야할 하늘의 존재인 우리가 세상의 지배로 종(노예)으로 살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소서잃어버린 신분을 찾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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