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좋은 열매 (마태7,15-20)

2024. 6. 25. 오후 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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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일 수요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좋은 열매 (마태7,15-20)

   


1독서<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2열왕22,8-13; 23,1-3)

8 힐키야 대사제가 사판 서기관에게, “내가 주님의 성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하였소.” 하고 말하면서,

그 책을 사판에게 주었다. 그것을 읽고 나서,

9 사판 서기관은 임금에게 나아갔다. 그는 임금에게 먼저 이렇게 보고하였다. “임금님의 신하들이 주님의 집에 있는 돈을 쏟아 내어, 주님의 집 공사 책임자들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사판 서기관은 임금에게, “그런데 힐키야 사제가 저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하면서,

임금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11 그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임금은 자기 옷을 찢었다.

12 임금은 힐키야 사제, 사판의 아들 아히캄, 미카야의 아들 악보르, 사판 서기관, 그리고 임금의 시종인 아사야에게 명령하였다.

13 “가서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을 두고,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주님께 문의하여 주시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23,1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원로를 소집하였다.

2 임금은 모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사제들과 예언자들, 낮은 자에서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데리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계약 책의 모든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3 그런 다음에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화답송>시편119,33.34.35.36.37.40(33) 주님, 당신 법령의 길을 가르치소서.

주님, 당신 법령의 길을 가르치소서. 저는 끝까지 그 길을 따르오리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탐욕이 아니라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헛된 것을 보지 않게 제 눈을 돌려 주시고, 당신 길을 걷게 하시어 저를 살려 주소서.

보소서, 당신 규정을 애타게 그리오니,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살려 주소서.

 

복음<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7,15-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열왕22,8-13; 23,1-3)

 

"그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임금은 자기 옷을 찢었다."  (11)

 

서기관 사판이 율법책을 읽어주자 요시야 임금은 회개의 자세를 즉각적으로 취했다. 아마도 이것은 사판이 읽어준 율법서의 내용이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직접적인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예; 신명기28장 15-68절)이었고, 그것이 자신과 자신이 다스리는 남부 유다 왕국의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해주었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들은 율법서의 말씀은 남부 유다 임금이었던 요시야에게 그 어떤 위협보다도 더 심각한 것으로 다가왔고, 결국 이것은 종교 개혁의 불씨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자기 옷을 찢었다'에 해당하는 '와이크라으 에트 뻬가다이우' (waiqrah eth begadaiu)는 계속적 의미의 접속사 '와우'(wau)에 '찢다', '산산조각을 내다', '베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카라으'(qarah)의 미완료형이 결합 '와이크라으'(waiqrah)와 전치사 '에트'(eth) 그리고 '자기 옷을'이라는 뜻의 '뻬가다이우'(begadaiu; his robes; his clothes)가 함께 쓰인 것으로서 '자기 옷을 찢다'라는 관용적 표현이다.

 

여기서는 요시야 임금이 하느님의 징계와 메시지가 담긴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옷을 찢는 행위는 슬픔이나 분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서 머리에 먼지를 끼얹거나(여호7,6) 흙이나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행위도 같은 상징적 의미를 나타낸다(2사무13,19; 에스테르4,1.3; 욥기2,8).

그리고 여기서 율법서에 대한 요시야 임금의 반응을 보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가 율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율법서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고, 다만 율법에 대한 피상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당시 왕실에서의 교육이 비록 율법에 근거한 교육이었다고 하더라도, 율법서를 직접 다루지 않고 그것에 대한 해설이나 세부 적용에 중점을 두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율법서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특히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는 심판의 막중함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옷을 찢는 회개의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겸손하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는 바룩이 가져다준 예레미야의 글이 쓰여진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롯불에 태운 남부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사악한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예레36,23).

 

한편, 열왕기 하권 22장과 이어지는 23장의 전체적인 흐름과 관련해서 율법서의 말씀을 들은 이후 요시야 임금의 반응을 묘사하는 22장 11절의 내용은 이어지는 요시야의 종교 개혁과 관련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이것은 앞서 주님 신앙 재건을 위해 성전을 다시 건립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으로 종교 개혁을 시작한 요시야의 태도를 더욱 단호하고 분명하게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요시야가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남부 유다의 영적인 상태와 현재의 처지, 그리고 정차 닥칠 심판과 관련된 비극적 운명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로 요시야는 주님의 말씀과 의로움에 근거한 단호하고 철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즉 이전까지는 성전에만 국한된 재건이, 이후에는 남부 유다 전역과 북부 이스라엘의 영역에까지 미치게 되었고, 단순히 훼손된 성전을 수리하고 재건하는 정도에 국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우상을 파괴하고 우상 숭배자들의 뼈까지 찾아내 그것을 불사르는 등 철저하고 대대적인 개혁의 단행을 시도하게 된다.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제1독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쇄신하고자 한 요시야 임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분열된 유다 왕국의 16대 임금이 된 요시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의 내용을 듣고서, 그들의 조상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에 주님의 진노가 내렸음을 선언합니다.

이어서 모든 백성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가 계약 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주고,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온 백성도 이 계약에 동의합니다.

이후 요시야 임금은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며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이룹니다.

이렇게 하느님 생명의 말씀은 언제나 그것을 새로이 듣고 실천하도록 우리를 다그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하시며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행동은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끌지만, 악하고 거짓된 마음에서 비롯하는 말과 행동은 나쁜 열매를 맺고 사람들을 파멸로 이끕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과연 주님께서 바라시는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하느님의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4.5).

 

하느님과 나누는 친밀한 기도 안에, 말씀과 성체 안에 깊이 머물 때,

우리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닮아 형제들을 더 사랑하여 좋은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갈라티아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5,22-23).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防牌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 ()임을 믿는 것이 열매다.

 

(마태7,15-20)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양의 옷차림을 한 예언자- 앞 절에서 말씀하신 우리의 열심한 그 윤리의 삶으로, 이웃에게 잘해주는 그 실천을 신앙이라고, 황금률이라고 말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칭찬하는 사람의 자기 의로움으로 가는, 그 넓은 길을 진리로 가자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 넓은 길이 영원한 멸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양의 옷차림을 하고 죽음의 길로 이끄는 이리들인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대속을 진리로 믿어 그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전가 받아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요한14,6 로마3,20-24)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 가시나무와 엉겅퀴- 하느님의 선악을 품고 대신 죽어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의 말씀을, 하와가 자신의 욕망의 눈으로 보아 선과 악의 두 법으로 먹었기에 그 선악의 열매가 죽음을 부르는 가시와 엉겅퀴였던 것이다.

 

(창세3,17-18) 17 그리고 사람(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 *좋은 열매(果實)-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말씀이다. 곧 하늘의 용서, 생명을 주는 그 진리의 말이다. *나쁜 열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 그 법의 말이다. 그 윤리의 삶은 인간들이 정한 땅의 법으로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이지 구원을 위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는 나쁜 것이다.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마태23,15) 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는 제사와 윤리의 삶으로 철저하게 착하고 의롭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님도 그들의 의로움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 한다’ 하셨음을(마태5,20)기억해야 한다. 곧 그들의 자기 의로움, 그 윤리의 삶이 지옥(땅)으로 들어갈 헛된 열매라는 것이다.

 

18 그래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 *좋은 나무- 하늘의 용서, 생명을 주는 십자나무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나무의 의로움을 진리로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나쁜 나무는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을 수 없는 나무다. 곧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믿고 의지하면 절대 하늘의 용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나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말로 이웃에게 전하는지, 양의 옷차림을 한 그 윤리의 착한생각, 착한 말로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큰 상(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니 그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창세15,9-12.17-18) 9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 ‘삼(3)을 하나로 가져오라’ 하신 것이다. 삼(3)은 하늘의 숫자이다. 聖父께서 먼저 땅의 구원을 사랑으로 계획하시고, 聖子께서 그 사랑의 계획을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시고, 聖靈께서 그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을 진리로 구원을 완성하신 그 완성의 숫자가 3(삼)이다. 그러니 삼(3)은 사랑, 그 하나이다.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 완성의 숫자 삼(하늘)을 반으로, 둘로 나눈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本能이기 때문이다. 곧 생명을 주는 사랑, 그 하나의 말씀을 선과 악, 그 둘로 나눈 아담의 죄, 그 原罪로, 아브람이 완전한 그 하늘(삼)을 둘로 쪼개어 드린 것이다. 그러면 선악의 법으로 죽음이다.

 

11그래서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 삼(3)을 善과 惡, 그 둘로 가진 아브람은 그 죽음, 공포를 스스로 쫒아낼 수가 없다.

 

17 그래서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야훼 홀로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 그 선악의 죽음과 공포 사이를 빛, 불이신 하느님께서 홀로 지나가시면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죽음과 공포를 품으신 것이다. 그것이 곧 靈의 죽음이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아브람과 맺는 계약이다. 그 계약을 다른 모습으로 보여 준 것이 무지개 계약이며,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이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이 땅- 하느님께서 땅(흙)에 당신의 숨을 넣으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듯이, 그 흙의 구원을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 새 계약의 땅을 의미한다.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말씀을 당신의 귀로 듣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과일이나 채소에 이르기까지 잘 익어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햇빛과 비, 그리고 밑거름이 충분하게 있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보면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큰 사람이었는지는 입술로 하는 말에서가 아니라 그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도 그 끝을 보면 놀라워할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기다리며 햇빛과 비를 감당하고, 거름을 주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외견상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겉만 보아서는 그 사람이 사심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선적으로 사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속이 훤히 드러나게 됩니다. 

거짓예언자가 맺는 열매는 시기, 질투, 미움, 증오, 적개심, 다툼, 분열과 같은 것입니다. 더군다나“사람은 속여도 하늘은 못 속입니다.”

 그러므로 눈속임으로 하지 않고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일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수와 양으로 따져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고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나누어지는 참되고 선한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함께야).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고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멋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없어지면 힘이 듭니다. 

따라서 처음이나 끝이나 변함이 없어야겠지만 기왕이면 갈수록 깊어지는 멋을 담아야겠습니다. 속빈 강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우리의 전체 생활은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 이 세 가지 각각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지 또는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할 때 좋은 열매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집니다.’결국 신앙과 사랑으로 무르익은 삶만이 심판의 불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익은 좋은 열매가 되십시오! 혹 시들한 열매가 보이거든 햇빛을 보게 하고 비를 맞을 수 있게 하며 그리고 거름을 주십시오.  “열매를 보면 나무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 자녀를 보면 부모를 짐작하여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부끄럽게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그들의 말로 백성을 현혹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시며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에 관한 비유를 통해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고와 자기 자신을 반성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 대목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이들과 그리스도인 모두에 대한 경고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7,16-17) 거짓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옳고 그름은 그 결과 곧, 그들의 행실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한국사회에도 신자들을 현혹하는 이단과 무신론, 반그리스도적 사상들, 뉴에이지, 그릇된 신비주의, 혼합주의 등이 넘치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가정을 파괴하거나 명예와 재물을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말이란 아름답고 호감을 주며, 재치 있고, 경건하며 슬기롭고 매혹적일 수 있으나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가는 행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이란 언제라도 바뀔 수 있고, 얼마든지 참된 견해와 실제 의도를 은폐하는 수단으로도 쓰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바로 이런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하고, 이간질로 분열을 조장하여 양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이런 이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7,19-20) 

이 말씀은 특히 거짓 예언자들에게 해당되지만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실천하는 행동만이 예수님의 참 제자임을 말해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좋은 열매’란 산상설교에서 요구하신 가르침, 곧 하느님 뜻에 일치하는 올바른 행실을 말합니다. 

좋은 열매란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영의 열매 곧,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을 가리킵니다(갈라 5,22). 반대로 나쁜 열매는 육의 열매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당파심, 이기심, 싸움, 시기, 분열 등을 말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자기만을 찾는 잘못에 빠졌고 사랑의 일치를 이루기보다는 순진한 양들의 믿음을 악용하고, 파벌과 분열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드러내기 위해서보다는 자기 이익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가르쳤습니다. 말뿐이었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으며, 어떤 열매를 맺고자 하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혹 우리 사이에서 험담이나 중상모략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는 없는지 살펴야겠지요. 

또 사나운 이리처럼 자기 인기에 신경을 쓰고, 자기 공적처럼 자랑하고, 자존심을 앞세우며 누구에게든 인정받으려는 삶의 태도는 없는지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여 남을 헐뜯고, 상대방의 영혼의 괴로움은 헤아려보려고 하지 않고 제 3자의 말만으로 판단하며, 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처신을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말로 남을 현혹하고 말로만 사랑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240626일 수요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를 식별하는 기준을 일러 주십니다.

그 기준은 바로 그들이 맺은 열매입니다.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식별 기준으로서 열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의 행실업적에 따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르치는 것들을 삶으로 옮기는지 그의 행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의를 부르짖지만 정의롭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 가난의 가치를 열심히 말하지만 소유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 겸손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 비천한 곳에 오신 예수님을 전하면서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모습들은 참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입니다.

둘째, 행실이 맺고 있는 업적을 보아야 합니다.

참 예언자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꼭 맞는 삶은 세상에 주님을 드러내고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참예언자들도 그들의 행실이 가르침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야 합니다.

지향은 올바르지만, 인간적인 부족함과 나약함에서 오는지, 아니면 자신의 말과 전혀 다른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지향과 목적에서 오는지는 그가 맺는 열매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지향이 올바른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부족함을 채워 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만일 지향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지향을 아무리 숨기려고 하여도 오직 자신을 위한 열매로서 올바르지 못한 의도가 드러날 것입니다.

날마다 묵상하고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이 내 삶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 삶이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오늘 복음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마태7,1-6.15-20)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 자신 안에 심판의 법이 있기에 남을 심판하고 자신도 심판받게 되는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들보- 나무 기둥으로 성전(집)응 짓는데 필요한 재목(材木)이다. (1열왕6,9 2열왕6,1-4) 곧 나무기둥(십자가)으로 죄인이 하느님의 집(성전)이 되는 것인데~

 

(1코린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의 값’으로다. ‘악에 물든 양심까지 깨끗하게 말끔히 씻겨 거룩하게 하는 피’다. (히브10,22)

그리스도의 피는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어 졌다.” 하신 ‘피의 새 계약’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 곧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없어졌다.(콜로2,17) 속죄 제사가 다 이루어져 더 이상 제사 예물이 필요 없게 되었다.(히브10,18) 당연히 영광 받으셔야 할 하느님의 사랑이시다.

그런데 십자가를 보면서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은 보지 못하고 이웃에게 계속 제사를 드리게 한다면, 그리고 잘못(티)을 보며 지적한다면, 지적(指摘)하는 그 사람 안에는 용서(容恕), 그 새 계약이 아닌 ‘섬김의 십자가’로 들보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대속, 새 계약의 나무’로 봐야 섬김, 그 자신의 열성이 헛된 것임을 깨달아 자신의 뜻(소원)을 위한 그 섬김의 십자가를 빼내야(부셔야) 다른 이의 흠(티)을 보지 않게 된다.

 

(2열왕18,4) 4 그는 산당들을 없애고 기념 기둥들을 부수었으며아세라 목상들을 잘라 버렸다그리고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을 조각내었다느후스탄이라고 불리던 그 구리 뱀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때까지도 향(섬김기도)을 피웠기 때문이다.

= 앞에서 확인 했듯이 삼위(三位) 하느님의 자비, 사랑에 감사의 영광을 드려야할 십자가(十字架)다. 그 구원의 새 계약의 십자가를 육(肉)의 뜻, 소원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죄악(罪惡)이다.(마태6,27-33 참조) 곧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모욕(侮辱)하는 것이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그리스도의 대속, 하느님의 거룩하신 피의 새 계약을 개, 돼지의 것으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레위11,7) 7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마음을 열어(가르고) 듣기는 했지만, 곰곰이 되새기는 그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으ㅟ 뜻,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말씀을 받아들여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이 기도(祈禱)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오히려 말씀이 사람의 말이되어 사람을 짓밟고 물어뜯는, 곧 ‘심판의 들보’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의 ‘보다’의 4단계> ① 옵타노마이 -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 ☞성경, 예수, 자연 등 ② 에이도(아이돌) - ‘너무 크고 위대해 보여 우상(偶像)삼아 보는 것,’ ③ 블랙보우 - ‘생각해 보고, 시험해 보고, 하기위해 보는 것.’ ④ 호라우 - ‘깨달아 하느님의 뜻으로 보는 것.‘

= 그러나 사람은 ‘에이도’, 우상삼아 보는 단계에 머물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흙인 육(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7절 이하 좋은 것, 성령(聖靈)을 청하고, 구하며, 두드리면 주신다.(마태7,7)고 약속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 계시의 영이신 성령의 가르치심(이끄심)이 없이는 절대 ‘호라우’의 단계에 으를 수 없기 때문이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그래서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랬을 때 진리이신 성령께서 일하신다.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옵타노마이’하지 말고 ‘에이도, 블렉보우’를 거쳐 ‘호라우’(‘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음) 하도록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眞理)를 깨닫지 못한, 보이는 그대로 보는 단계(옵타노마이), 우상의 눈으로 보고(에이도) 전(傳)하면 거짓말이 된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말씀을 보이는 대로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전하면, 사람의 의(義), 열심을 말하기에 그 사람의 겉모습은 훌륭하고 위대(偉大)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의(義), 영광을 위한 말은 불법이다. 그래서 자기 의(義)의 행위는 그 안에 불의로 쌓이게 된다.(마태7,21-23 요한16,8 참조)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 가시와 엉겅퀴는 아담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 욕망의 눈으로 나무(말씀)를 보고 선악의 열매로 먹었기에 생긴 죄(罪)의 결과(結果)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보고, 먹으면 포도(포도주),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이 주시는 하늘의 용서, 자유, 의(義), 생명, 그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다는 말씀이다.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 좋은 나무, 옛 계약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십자나무다. 곧 새 계약의 십자나무를 보고, 옛 계약의 헛됨을 깨달아 그 옛 사람의 자신을 부인하는, 낮아짐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 사람의 소원, 욕망을 위해 섬기는 십자가는 우상이 되어,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영원한 땅에 갇히게 한다.

 

(로마9,31-33)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32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그것을 믿음으로 찾지 않고 행위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3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보라내가 시온에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예수)부딪쳐 쓰러지게 하는 바위(예수)를 놓는다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어떻게 보고, 어떤 결론으로 맺는가의 문제다. 말씀의 결론을 구원의 새 계약으로 맺어야한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의로움을 진리로 믿자’ ‘거저 주신다는 그 하늘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성령께 의탁하며 말씀 안에 머무르자‘ 가 아니고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행하며 착하게 살아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자”로 결론 지어 말하면 “헛된, 허황된 거짓을 주고, 받는 것”이다. (루가16,15 로마10,1-3 참조)

좋은 강론(講論)은 사람의 의(義)를 부수는 가르침이다.

 

(예레1,9-10) 9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10 보라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예레23,29-32) 29 “나의 말이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수는 망치와 같지 않으냐? ”주님의 말씀이다. 30 그러므로 이제 내가 저희끼리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예언자들에게 맞서겠다주님의 말씀이다. 31 내가 주님의 말씀이다.” 하면서 제 혀를 놀려 대는 예언자들에게 맞서겠다주님의 말씀이다. 32 이제 내가 거짓 꿈을 예언하고 거짓말과 허황된 말로 내 백성을 잘못 인도하는 예언자들에게 맞서겠다주님의 말씀이다나는 결코 그들을 보낸 적이 없으며 그들에게 명령한 적도 없다그러므로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런 이익(구원)도 주지 못한다주님의 말씀이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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