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11일 목요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거저 주어라 (마태10,7-15)

제1독서<내 마음이 미어진다.>(호세11,1-4.8ㅁ-9)
주님께서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화답송>시편80,2ㄱㄷㄹ과 3ㄴㄷ.15-16(◎4ㄴ) ◎ 주님,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복음<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7-15)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또는,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독서(잠언 2,1-9)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제1독서(호세11,1~4.8ㅁ~9)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는다."(9)
이유의 접속사 '키'(ki)로 시작되는 본문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키 엘 아노키 웰로이시'(ki el anoki weloish), 주님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칭대명사 '아노키'(anoki)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화자(話者)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본문은 주님 자신이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지칭하는 '엘'(el)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그분은 사람처럼 감정에 압도되어 분별없이 분노를 발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신적 의지와 지혜는 타오르는 분노의 감정 또한 억제하실 수 있다.
아울러 그분은 오직 정의(공의)로 심판을 내리시지만, 진노 중에도 당신 백성들에 대한 자비와 불쌍히 여기심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전능하심, 그분의 초월자 되심은 바로 이같은 측면을 견지할 때 보다 선명하게 이해된다.
그러면서 본절 중반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머무르시는 거룩한 분이심을 밝힌다.
'거룩한 이' 에 해당하는 '카도쉬'(qadoshi)는 어원상 다른 속된 것들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 거룩함을 유지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주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들을 심판하신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들린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표현 가운데는 하느님께서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죄인에 대한 심판을 통해 나타나지만, 그것은 죄인을 완전히 진멸해 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하여 공의에 입각한 심판을 행하시되,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도록 징계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이다.
즉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악을 제거하고 청소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선민에 대해서는 진멸하는 것이 아닌, 의로운 징계를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빚으시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거룩함이란, 곧 다른 존재와 구별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인간이라면 결코 용서하거나 용납할 수 없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서 무한한 자비와 사랑으로서 용서와 불쌍히 여기시는 연민을 베푸신다는 뜻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이와 함께 사용된 '네 가운데에 있는'이라는 표현은 '거룩' 이라는 표현과 역설 관계를 이루며,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특별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이 받은 사명은 예수님의 활동에 바탕을 둡니다.
그들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마귀를 쫓아내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활동은 사도행전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제자들은 이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본받아 이어 가고
이로써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돈이나 보따리나 옷, 신발이나 지팡이처럼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마련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오로지 사명에 집중하고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평화를 빌어 주는 것은 축복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하신 인사이기도 합니다.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다.’는 것은 제자들의 축복을 바라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축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평화를 위하여 노력할 때에 주님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복음을 충실히 따르며 그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실천할 때에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를 빌어 주지만 이를 거부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축복은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자들의 선포는 우리 또한 동참하도록 복음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말씀이 일한다.
(마태10,7-15)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땅의 나라에 하늘나라가 왔다는 말씀이신데, 뱀의 유혹인 선악의 심판, 죽음, 그 악마의 지배 아래 있는 그 유한한 세상에(1요한5,19) 선이 악을 대속한 무한인 영원한 생명의 나라가 왔다는 말씀이다.
곧 땅, 그 선악의 법의 나라는 악, 어둠, 죽음이기에 하늘의 대속, 덮으심, 그 진리의 나라 하늘의 빛, 선, 생명이 왔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어제 우리는 하늘나라를 예수님 이심을(요한1,4 14,6)봤다.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선이 악을 대속 하시고 생명을 주는 그 하느님의 법, 진리의 말씀을 마귀(뱀)의 유혹으로 선악의 인간들의 계명으로 받아 그 선악의 심판으로 죄 의식에 시달리는 그 앓는 이들을, 또 선악의 기준으로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신의 영이 죽어가고, 썩어 가고 있는 그 아픔, 고통도 모르고 있는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고쳐주라는 말씀이다.
그 모든 것이 마귀의 거짓이기에 그 마귀의 거짓말을 쫓아내라고 하시는 것이다. 어제 배웠듯, 선이 악을 대속하고 거저 생명을 주시는 그 권위(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그 권위의 말씀은 우리가 거저 받았고 그 말씀으로 거저 하늘의 의로움도 받았음도 기억하자(로마3,24)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때, 인간의 길, 계명으로 인간의 의로움을 위한 말로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의 용서, 하늘의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제33,13 로마10,1-3참조)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 인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을 의지하지도, 주지도 말라는 말씀이시다. 인간의 힘인 돈, 보따리, 신발, 지팡이로 무장하지 말고, 하느님의 힘인 옷, 신발, 지팡이로 무장하고 주라는 말씀이다.
(에페6,10-18)
10 끝으로,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선악의 가르침)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 강한 힘, 무기, 말씀을 하늘의 대속, 그 진리로 갖는 것이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 악령(뱀)의 유혹을 먹은 그 선악의 가르침으로 지배한다.(요한16,8- 티토1,14참조)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말씀)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 진리의 띠, 성령이다. 의로움의 갑옷, 하늘의 의로움이신 십자가의 예수님의 옷, 곧 거저 의롭게, 거룩하게 되는 십자가의 복음이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 하늘의 평화를 위한 말씀이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 허리, 발, 머리, 온 몸, 정신을 말씀으로, 성령으로 무장하라고 하시는 것, 일(事)은, 하느님의 영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 성령께서 하신다.(마르13,11참조) -하느님의 말씀,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라 -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 마땅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마태5,3)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 그래서 하늘의 용서, 생명, 의로움을 갈망하는 사람, 하늘의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 아니면 창조 이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사람?(에페1,4)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위한 말씀 선포는 모든 이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를 직역하면 ‘먼지로 털어 버려라’ 입니다. 하느님의 뜻, 숨, 말씀을 진리의 복음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은 흙의 먼지일 뿐이다.(창세2,7참조)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을 떠날 때- 그들을 ‘흙의 먼지로 털어 버려라’ 하신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육욕(肉慾), 불륜(不倫)이다.
(유다1,7) 7 그들과 같은 식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변태적인 육욕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고을들도,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아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 소돔과 고모라 주변 고을들, 곧 온 고을, 세상이 불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변태, 육욕, 불륜은 창조주 하느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피조물인 흙의 먼지일 뿐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그 흙, 육의 만족(의, 명예)을 위해 라는 모든 것이 불의, 불륜, 변태, 동성애라는 것이다.
(로마1,27) 27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자와 맺는 자연스러운 육체관계를 그만두고 저희끼리 색욕을 불태웠습니다. 남자들이 남자들과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다가, 그 탈선에 합당한 대가를 직접 받았습니다.
=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것이 사람, 존재인 것이다.
(창세1,27)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 남자(제라-후손)는 하늘, 예수를 뜻하며, 여자(데무트-그릇)는 땅, 피조물을 뜻한다. 곧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 인간이 하나, 한 몸이 되어야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과 이성끼리 곧 인간이 인간끼리 자신의 듯, 육의 만족(돈, 명예, 의)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원하며 한 몸이 되려는 그 동성애로 살고 있기에 성경에 그 지저분한 얘기가 적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뜻, 욕망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의로움이라는 것도 개짐(더러운 걸레, 더러운 옷)이라고 한 것이며 그 인간의 의로움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본질(흙의 먼지)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다.(정월기 사제)
☨ 은총의 천주의 성령이시여! 주제파악 못하고 사는 저희가 자신의 피조물, 없음의 존재임을 깨닫고 창조주 하느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10,7-15)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이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7-14)
마태오 복음 10장 7절의 '거저'에 해당하는 '도레안'(dorean; freely)는 받는 이의 관점에서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선물로서 받은'이라는 뜻이고, 주는 이의 관점에서는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주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께로부터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선물로서의 구원을 받았다.
이제는 받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아무런 이익도 기대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10장 9절에서 전직 세리 출신으로서 금전 계산에 빨라서 돈의 종류를 일일이 나열한다.
금('크뤼소스'; chrysos; gold), 은('아르귀로스'; argyros; silver), 구리('칼코스'; chalkos; brass)로 세분하면서, 동시에 짧은 문장 안에 '마라'라고 한 번밖에 번역되지 않은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 '메'(me; neither)와 '메데'(mede; nor)가 세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한다.
그 뜻은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불의하게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마태복음사가는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더욱 강조한다.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10장 10절에서 9절과 유사하게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 '메'(me)와 '메데'(mede)가 네 번이나 사용되어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다.
10절에 기록된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 신발이나 지팡이는 유대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인데, 이것을 지니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bag for the journey)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였고,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었고,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 stick)는 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복음 전파의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어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필수품의 소지를 금했을까?
이것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이 마태오 복음 6장 25절이하 34절까지의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산상 설교의 말씀을 먼저 솔선하여 실천해야만 복음을 전할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마태6,25)를 걱정하지 말고, 오직 이 모든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10절 후반에 '받는 것은 당연하다'에 해당하는 '악시오스'(aksios; is worth of)를 통해 복음 전파자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 전파자는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꾼'에 해당하는 '에르가테스'(ergates; worker)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은, 복음 전파자들에게는 생계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복음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1코린9,14.17,18; 1티모5,18).
또한, 복음 전파자가 육신의 편안을 위해 더 나은 숙식을 제공하는 집으로 옮겨 복음 전파자의 관심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 있다는 사실이 희석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와 더불어, 복음 전파의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복음 전파자들을 충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아 한 곳에 머물기를 명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이들은 이교도 취급을 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행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이교도 지역의 흙을 묻혀 들어오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신발을 터는 관습이 있었다.
마태오 복음 10장 14절의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버려라'에서 '털어 버려라'에 해당하는 '에크티낙사테'(ektinaksate; shake off)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흔들다'는 의미의 '티낫소'(tinasso)가 결합되어 '흔들어 분리시키다'는 뜻을 지니는 '에크티낫소'(ektinasso)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명령형은 단 한번의 행동으로 끝내는 경우에 사용되기에 이것은 미련을 두지 말고 단호하게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의미이다.
그들의 거절은 단순히 복음 전파자의 숙박을 거부한 것의 뜻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행위로서 이러한 불신앙의 행위는 결국 15절의 하느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들은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거저 받은 복음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쁘게 전했는지,
오로지 전할 복음의 내용에 충실하며 자신의 전존재와 미래를 온전히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의탁하고 맡기는 신앙으로 살아왔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현세적 생계 수단과 돈벌이를 포기한 복음의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기 위해서 자신이 획득한 수입의 열의 하나를 봉헌하는지를 물어 보아야 한다.
2024년 07월 11일 목요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지니지 마라.” 오늘 복음에서 되풀이되는 표현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삶을 요구하셨을까요?
이성적으로 보면, 길을 떠나는 데 여행을 위한 돈, 여행 보따리, 여벌 옷, 신발, 지팡이, 이 모든 것이 꼭 필요한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본문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이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께 넘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 병자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는 기적의 힘, 마귀들을 내쫓으며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신비, 이 모든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지니고 계신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니신 ‘하느님의 힘’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소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쉽게 찾아오는 유혹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가진 능력만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교만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보여 주듯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분’을 주실 때, 그 일을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은총’도 반드시 함께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은총이 나와 함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힘을 믿는 신앙인이 됩시다.
막막하게 보일수록 우리가 가진 능력을 바라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하느님 은총의 힘으로 해내는 사람들입니다.
혹시라도 봉사할 때마다 함께 봉사하는 이들과 갈등이나 상처가 생기나요? 교회의 부름을 받을 때마다 자신은 이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드나요?
성체 앞에 앉아 어떻게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여 봅시다.
분명 하느님의 힘을 믿는 믿음, 기도로 도움을 청하는 믿음이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하느님께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다는 믿음과 함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먼저 드리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힘은 이러한 방법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니지 마라.”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창조 되었음을 기억하며.
(마태 10,7-15)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하늘나라가 왔다는 것은 하느님의 통치(말씀)가 오셨다는 것이고,
그 통치를 받은 이들~
(묵시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이전 것들~ 곧 율법의 옛 계약, 그 심판의 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마3,20-25)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하늘의 통치는 예수님의 피로 거저 주시는 그리스도의 죄의 용서, 치유, 구마인 것입니다. 거저 받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그러니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 하느님의 통치, 그 말씀을 준비하고 의지하라 시는 것입니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정신으로 사람들의 칭찬, 대접을 받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칭찬을 자기 의로움으로 챙길까 염려하는 말씀입니다.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 예수님의 평화, 곧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자유, 쉼. 그 구원의 평화를 빌어 주라는 말씀이지요.
(미사 때 우리가 나누어야 할 평화의 인사인 것입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 ‘먼지를’이 아닌 직역하면 ‘먼지로’ 털어 버려라 입니다.
(창세2,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하느님의 말씀(통치)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숨을 받지 않는 먼지일 뿐입니다. 그 먼지로 털어 버리라는 말씀이지요.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그러나 더러운 영의 말, 인간을 위한 그 계명에서 하느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 그 진리의 길로 돌아오면~ 새 계약의 말씀 양식을 먹여~(예레31,33~ 히브10,16~ 참조)
다시~~
(호세11,4.8-9)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새 계약(공동번역성서)
(예레31,33-34) 33 그 날(십자가)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새 계약)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34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 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 구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靈), 성령을 통하여 완성하시는 것,
그러면 제자들은 왜 뽑으셨는가? 그들에게 하라 하신 복음 선포로 자신들과 다른 이들이 더러운 영의 말을 들어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또 선악의 자기 의로움을 위한 헛된 신앙으로 하느님을 헛되이 섬겼던 그 잘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 그래서 돌아와 하느님의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지요.(에페2,8-9) 그 깨달음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