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씨뿌리는 자 비유 (마태13,1-9)

2024. 7. 23. 오후 5: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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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일 수요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씨뿌리는 자 비유 (마태13,1-9)


   


1독서<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1,1.4-10)

1 벤야민 땅 아나톳에 살던 사제들 가운데 하나인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

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7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8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9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10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화답송>시편71,1-2.3-4ㄱㄷ.5-6ㄱㄴ.15ㄴㄷ과17(15ㄴㄷ)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복음<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마태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제1독서 (예레1,1.4-10)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선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5)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직접 예언자의 소명을 주셨음을 밝힌 예레미야서 1장 4절에 이어지는 예레미야서 1장 5절~10절에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자로서의 소명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예레미야와 하느님 사이의 대화체 형태의 문장들이 소개된다.

 

본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화법을 사용하여 예레미야의 예언자 소명을 계획과 선택의 관점에서 밝힌다.

 예레미야가 소명에 근거한 사명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이 하느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계시하시므로 그에게 확신을 심어준다.

 

한편, 시간적 관점에서 볼 때,'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와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는 하느님께서 그를 아시고 예언자로서 성별하셨으며, 그것에 근거해서 그를 지으시고 나오게 하셨다는 의미, 즉 시간의 진척과 함께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 대해 계획하신 바를 구체화시키는 듯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여기서 '모태에서 너를 빚기전에'란 표현은 성경상의 용례를 감안할 때(이사44,24; 

갈라1,15), 문자적으로 단순히 모태에 수태되기 전을 의미하기 보다는 영원 전에 이루어진 하느님의 계획과 결정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즉 하느님께서는 태초부터 예레미야를 아셨던 것이다.

 

그리고 '너를 알았다'로 번역된 '예디으티카'(yedihthika)의 원형은 '알다'(창세3,7),  '깨닫다'(탈출34,29), '간섭하다'(창세39,6), '선택하다'(창세18,19), '동침하다'(창세4,1)라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 동사 '야다으'(yadah)이다.

 이것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사실 관계에 대한 피상적인 앎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 본질에 대한 확실한 앎을 의미한다(창세3,7).

 

본문에서 이 단어는 전지하신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예레미야에 대하여 머리카락 하나 하나까지 다 세고 계신(마태10,30) 만큼 온전히 아셨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그와 얼마나 친밀하고 가까운 분이신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너를 성별하였다'에 해당하는 '히크따쉬티카'(hiqdashithika)는 '거룩하게 하다', '거룩히 구별하다','거룩하고 깨끗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다쉬'(qadash)의 사역형(Hiphil)으로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 예레미야를 거룩히 구별하셨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사역형 동사가 사용된 것은 행동의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예레미야를 거룩하게 구별하셨다는 선언은 그가 활동 내내 계속되는 생명의 위협(예레11,18)과 감금(예레38,6; 39,15), 매국노라는 오해와 모욕을 견디며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완수할 수있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聖徒) 즉 '거룩한 무리'로 선택을 받아 부르심을 입었다는 거룩한 성별 의식을 가질 때, 신앙 생활 가운데서 어떠한 시련과 유혹, 고난과 역경이 닥칠지라도 성도의 본분과 사명을 꿋꿋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여기서 예레미야의 예언자 직무가 남부 유다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만국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이 명시된다.

 '세웠다'라는 의미의 '네탓티카'(nethatihka)는 '주다'(창세1,29), '놓다'(창세15,10), '세우다'(창세17,2)라는 의미의 동사 '나탄'(nathan)의 원형이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내가 세울 것이다'라는 의미인 '나탄'(nathan)의 미완료형 '에텐카'(ethenka)를 사용하지 않고 완료형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예레미야의 예언자 임명이 이미 하느님의 결정 사항으로서 확정되었으며, 절대 불변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마치 거룩한 임직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만국의 예언자로 임명하시되 천상의 왕이신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자신의 충성스런 대사로 임명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세상의 어떤 핍박이나 유혹, 회유에 대해서 타협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을 예언자로 세우신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결정에 순명하는 것만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임직에 대한 확신은 오늘날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봉사자로 일하는 이들 모두가 반드시 가져야 하며 결코 이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한결같이 충성스런 소명자로 서게 하는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한편, '민족들'로 번역된 '꼬임'(goim)은 단수형 '꼬이'(goi)로 사용될 때에는 '민족'

(창세12,2), '사람들'(2열왕6,18), '무리'(욥기1,6) 등의 집합적인 개념을 가진다.

 그러나 본문처럼 복수형으로 사용되면 '인류'(이사42,6), '이교도'(에제5,6~8), '이방민족'(탈출34,24) 등의 집합적인 의미가 보다 강조된다.

 따라서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웠다는 표현은 예레미야의 활동의 범위가 어디에까지 이르는 것인지를 나타내준다.

 

예레미야는 남부 유다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에 대해서도 예언자로서 활동해야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인생 후반기에 몇 년 동안 이집트에서 살았던 것 외에 외국에 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예레미야서 46장~51장의 여러 나라들을 향한 신탁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그의 예언이 남부 유다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치는 예언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레미야는 남부 유다를 향해 하느님의 심판과 멸망을 선포했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가 선포한 예언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민족들의 예언자로 임명하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남부 유다에만 국한되는 지역神이나 자기 백성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神이 아니라 민족들을 공의(公義)로 심판하시는 전(全) 우주적인 주권자이심을 나타내준다.

 아울러 남부 유다 멸망 당시 대표적인 예언자인 예레미야를 가리켜 이처럼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우셨다는 표현은 구원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즉 선민의 나라인 남부 유다가 멸망당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상속인 가나안 땅이 아닌 이방 땅에 흩어져 살지만, 그들이 흩어져 사는 이방 땅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시며,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녹]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마태오 복음 13장에서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소개합니다. 이는 ‘예수님 삶의 신비’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의 신비’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예수님의 말씀 선포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농부들은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렸기에 씨앗이 길이나 돌밭, 가시덤불, 또는 좋은 땅에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 어디든지 뿌려질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을 선별해서 말씀을 뿌리지 않으시기에 말씀이 떨어지는 곳은 준비가 안 된 곳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때문에 혜택을 본 사람들은 아닐까요?

예수님 말씀이라는 씨앗이 좋은 마음에 뿌려질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씨앗을 뿌리신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열매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실망스러울 때도 있고, 우리 각자 안에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는 실망하지 않으시고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에 대한 희망으로 씨를 뿌리십니다.

그 열매는 씨 뿌리는 과정의 수고와 손해를 모두 보상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

 

(마태13,1-9)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예수님은 배에 계시고, 군중은 예수님 밖에서 서있다. 어제 묵상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모습이다. 곧 선악의 내 생각, 지혜를 부인하지 못해(버리지 못해) 예수님과 분리된 모습이다. 악을 대속하시고 용서, 생명을 주신 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진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씨는 말씀이며, 씨를 뿌리시는 분은 그리스도시다.(마태13,38참조)

 

(복음 환호송)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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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사탄)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 씨(말씀)를 길, 곧 사람의 길(뜻)을 위한 말씀으로 받으면, 하느님의 길(뜻)인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사탄의 거짓 가르침으로 빼앗기게 된다.(마르4,15)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 자신이 흙의 먼지일 뿐임을 모르고 아담 같이 자신의 눈의 욕망을 위한 그 고집, 돌 같은 마음으로 인간의 말, 계명으로 받으면 말씀이 일을 못하신다.(창세3,5-7참조)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 가시덤불-세상 것들에 대한 걱정이다. 말씀을 인간의 길(뜻, 욕망)을 위한 윤리로 받으면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고, 온갖 근심 걱정으로 말씀이 주시는 하늘의 평화,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마태12,8)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시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귀로, 곧 하느님의 지혜를 성령께 의탁해서 들으라는 말씀이다. 인간의 귀, 지혜로 듣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좋은 땅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으로 받는 것이고, 그러면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립2,13)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에페3,20)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1코린1,30) 30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백배, 예순배, 서른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탈출16,12-15)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저녁은 구약의 율법으로 육을 위한 고기 음식인 것이고, 아침은 신약의 말씀으로 육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는 진리, 새 계약을 뜻한다.

구약, 율법의 제사와 윤리로 육을 위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새(사탄)에게 아침양식, 곧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의 말씀(씨)을 빼앗긴다. 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새 계약의 말씀 양식은 우리 육적 인간들에게는 입에 맞지 않아 쉽게 빼앗기기 쉽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 성체(그리스도의 몸, 새 계약의 말씀)를 비유한 만나의 뜻이 “이게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곧 말씀(성체)를 먹었다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면, “이게 뭐야?”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핍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입맛(뜻)에 맞지 않아 “이게 뭐야?”하는 것이 하늘의 생명을 주는 참 양식임을 놓치면 안 된다.  하느님께서 씨를, 곧 씨의 희생, 대속, 그 죽음을 진리로, 양식으로 주셨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말씀이 우리의 소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시니 싫다. 맛이 없다.


 (시편 78,24) 24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창세1,29)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 씨는 말씀이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의 생명,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요한1,1-4.14참조) 곧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하늘의 용서, 구원을 주시는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용서, 생명, 구원의 양식인 것이다. (루가2,7.10-12참조) 예수께서 먹히시고, 예수를 먹어, 한 몸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교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6주간 수요일복음(마태13,1~9)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았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3ㄴ~8) 

 

마태오 복음 13장 1~52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이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은 말씀을 거부함으로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 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은 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 (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즉 '파라볼레'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은 '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호'(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파종하는 자) 즉 농부(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 씨 뿌리는 네가지 밭은 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 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인데, 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 여기서 '길'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 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를 상징한다(마태13,19).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 밖으로 싹이 돋지만, 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

 

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마태13,21).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 '가시'나 '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마태13,22).

 

그래서 그 마음에서 복음의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의 원형 '칼로스'(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호'(ho; some)는 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 그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質)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0240724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씨앗은 고르게 뿌려집니다. , 돌밭, 가시덤불에도 그리고 좋은 땅에도 뿌려진 씨앗은 모두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를 맺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을 받아들이는 에 달려 있습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위로와 감동만을 주고자 주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구원을 위하여 온 삶을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복음의 질서를 우리 마음 안에 세우고 심기를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을 선택하게 하는 말씀일수록, 생각의 틀과 가치 기준을 완전히 뒤엎게 하는 말씀일수록, ‘지키기 어려운 말씀이라고 말하며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 또한 구원을 위한 은총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어도, 미움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 사로잡혀도, 하느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많은 삶 가운데 머물더라도, 주님께서는 오늘도 구원의 열매를 맺어 줄 말씀의 씨앗을 고르게 뿌리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믿음의 밭에 뿌려 주신 말씀으로 우리 삶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24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밭이 스스로 돌을 걸러내고가시를 뽑아 좋은 땅이 될 수 없지 않는가?.

 

복음(마태13,1-9)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 하늘에서 나와 땅(세상)으로 오심을 다시 보여 주심이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완성되지 않은 교회(敎會)의 모습이다. 곧 앞12장에서 예수님 밖에 서 있는, 분리(分離)된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되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예수님과 분리된 모습으로 남으면 안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구원(救援)의 복음(福音)인 씨, 말씀을(마르4,13) 밭(세상)으로 뿌리시러(선포) 나가셨다. 곧 창조 사흗날에 땅을 위한 씨(제라-후손)의 희생의 죽음이며, 원시(元始) 복음(福音)인(창3,15) 여자(땅-죄인)를 살리는 여자의 후손(씨)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창세1,11)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땅을 스스로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그래서 땅을 위해 씨가 들어가 썩어(죽어) 맺은 열매다. 곧 땅(흙)의 존재들의 구원을 위한 약속된 후손(後孫),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다.

 

(마태12,40)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갈라3,16)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래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구원, 생명의 길, 진리(眞理)이신 것이다.(요한14,6참조) 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말씀이다.

 

그가 씨(말씀)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파라호오도스)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다.(다음19절에서) 그리고 (파라호오도스-길가길옆) (파라토마이-범죄곧 하늘의 대속그 진리의 길에서 벗어난 땅인간들의 길인간들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떨어진 것이다그래서 새(사탄)가 하늘의 의(), 생명을 뺏어버린 것이다.(마르4,15) 그 상태가 범죄인 돌밭가시덤불이 가득한 마음인 것이다.

성경은 모든 밭(사람)이 그 쓸모없는 밭이 되었다고 한다(로마3,10-16참조)

 

(로마3,17.20)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 믿음(뿌리)이 없어서’ 라고 하신다.(다음 21절) 흙에는 하느님의 생명력, 숨이 있다.(창세2,7) rthe Tl(제라-후손)인 그리스도의 썩어짐으로 얻는 생명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께서(하늘) 내리 쬐는 시련, 불평, 불만을 하지 않고, 그 시련이 교육, 훈육이 되어 하늘의 평화, 거룩, 구원의 의(義)의 열매를 맺게 하심에 감사(感謝)할 수 있게 된다.(히브12,5-11참조)

 

<보내주신 글> 슬픔은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게 해 줍니다. 세속의 즐거움 때문에 주님을 잊게 되면 슬픔 중에는 더욱 비참해져 절망에 이르게 됩니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 씨,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렸다.(뒤 22절) 곧 말씀 안에 사람들의 생명의 빛을 막은 것이다.(요한1,4) 하느님의 진리(眞理)의 말씀을 사람의 선악(善惡)의 말로 받아먹었기 때문이다.

 

(창세3,17-18)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善惡果)를 따 먹었으니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 그러니까 선악의 도덕과 윤리의 말씀을 먹고 내어 놓은 인간들의 모든 과학, 문명, 경제발전의 소산들이 모두 가시와 엉겅퀴인 것이다. 구원의 힘인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사7,23-25) 23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값이 은전 천 닢이나 되는 포도나무 천 그루가 있는 곳이 모두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덮이리라. 24 온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여 살과 활을 가지고서야 그리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25 괭이로 일구어 오던 모든 산에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서워 너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다만 소나 먹이고 양이나 밟고 다니는 곳이 되고 말리라.

 

(로마8,22)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어떤 것은 백 배어떤 것은 예순 배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좋은 땅,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다.(다음23절)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 좋은 땅이다. 그러면 말씀이 그의 안에서 활동하셔서 열매(믿음)를 맺으신다.(1테살2,23참조)

 

(로마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은혜)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1베드1,23)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 말씀을 깨달아, 군중(群衆)에서 주님의 참 가족(家族)으로 남아야한다.

 

(로마9,25-27) 25 이는 바로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자(돌밭가시엉겅퀴)들을 내 백성’(좋은 땅)이라 부르고 사랑받지 못한 여인(돌밭)을 사랑받는 여인’(좋은 땅)이라 부르리라. 26 그들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 하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27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군중같다 하여도 남은 자(깨달은 좋은 땅)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의 대속씨의 죽음그 생명의 말씀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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