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 (마태오13,18-23)

2024. 7. 25. 오후 5: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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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일 금요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 (마태오13,18-23)

 


1독서<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예레3,14-17)

14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나는 너희를 이 성읍에서 하나, 저 가문에서 둘씩 끌어내어 시온으로 데려오겠다.

15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16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17 그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그러고는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화답송>예레31,10.11-12ㄱㄴ.13(10)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그때에는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 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복음<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마태오13,18-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또는, 요아킴, 안나 기념일 독서(집회 44,1.10-15)와 복음(마태 13,16-17)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레 3,14-17)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다시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16)


앞선 상반절에 이어 본문에서는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lo)를 반복 사용하여 계약궤 기념이 더 이상 필요없는 시대가 올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찾지 않을 것이며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란 표현에서도 역시 부정어 ''(lo)를 거듭 사용하여계약궤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거나 이방 나라의 침략에 의해 이동되어진 계약궤가 다시 제작되는 일이 더 이상 없는 영적인 성숙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러한 본문 표현 가운데는우상 숭배자들이 나무 기둥이나 돌기둥을 섬기던 것처럼선민들이 상징물에 불과한 계약궤를 맹신하던 일들이 있었음을 함축하며이것을 질책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에는한걸음 더 나아가계약궤와 더불어 성전을 맹신하던 남부 유다의 형식적 신앙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질책하는 의미 또한 내포되어 있다.

아울러 이것은 상징물에 불과한 계약궤나 성전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참된 신앙이 장차 하느님의 백성들의 심령에 견고히 세워질 날을 희망하게 한다.


곧 계약궤와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하느님 백성들의 심령에 하느님의 계약을 새기시고 인호를 새기실 성령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완전하게 대체될 날을 희망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계약궤는 이제 성령께서 영혼의 역할을 하시는주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 안에서 성체를 모시는 감실(Tabernacle)을 말하게 된다.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모신 성모님이 계약궤이며말씀과 성체름 모시는 우리 자신이 성령의 궁전과 새로운 계약궤로 하느님 뜻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말씀이겠다그럴 때구약의 계약궤도지성소도성전도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체험하게 되는 거룩한 것이 된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마태13,18~23)


"너희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어떤 사람은 백 배어떤 사람은 예순 배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18~23)


마태오 복음 13장 1~52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이며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은 말씀을 거부함으로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은 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즉 '파라볼레'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은 '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파종하는 자), 즉 농부(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씨 뿌리는 네가지 밭은 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이리저리 다니면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인데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여기서 ''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의 눈에 띄게 되고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은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를 상징한다(마태13,19).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밖으로 싹이 돋지만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


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마태13,21).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는 '가시'나 '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마태13,22).

그래서 그 마음에서 복음의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의 원형 '칼로스'(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ho; some)는 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그 결실의 양은 씨앗의 ''()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0240726일 금요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때때로 많은 신자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말씀이 삶에서 무엇을 포기하거나 바꾸도록 요구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만일 의사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살려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것을 포기하여야 하고, 몸에 밴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말입니다.

그때 의사의 말을 듣고 그저 가만히만 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곰곰이 되뇌며 생각과 삶의 태도를 바꾸도록 애쓰겠지요. 왜일까요? 바로 살고 싶은 마음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를 준비시키는 하느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어떤 힘을 일으키나요?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봅시다. ,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으로 비유된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을 가진 사람은 들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길, 돌밭, 가시덤불이 가지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깨달음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들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어, 생각과 삶이 변화되는 열매를 맺습니다.

과연 무엇에 대한 깨달음일까요? 바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깨달음입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구원을 바라보게 되고, ‘살고자’, ‘생명을 얻고자아무리 어렵고 힘든 말씀도 기어코 열매로 맺어 냅니다.

마치 환자가 생명을 얻고자의사의 아무리 어려운 지시 사항도 모두 해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복음이 알려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악마는 어떻게든 우리 마음에서 하느님 말씀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악마에게 하느님 말씀을 빼앗긴 이들은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전혀 떠올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믿음은 오로지 현세적인 것만을 얻으려는 도구로 쓸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신앙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 보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외면하며 살아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지,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 싹 사라져 버린 삶이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고 있는 삶인지 성체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달음을 일으켜 말씀이 열매를 맺는 은총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4<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하)

2024년 7월 26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마태 13,18-23)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구원의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알아들으면 모든 것이 헛것이 되는 것,

성경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큰지를 인간은 알 수 없음을 깨닫고그 높고 깊으신 하느님의 사랑에넓고 크신 그분의 마음에 의지해야 하는 것,


(잠언25,3) 하늘이 높고 땅이 깊은 것처럼 임금의 마음도 헤아릴길 없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사랑에 인간의 사랑을 비유하여그 인간의 사랑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인간의 사랑을 위한 가르침을 주고받으면그것이 인간의 길로 말씀()을 받은그래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이 또한 돌밭이 되는 것죄인들의 생명수이신 말씀()이 나오지 않는 돌밭인 것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우리의 삶인생에는 온갖 시련이 있기 마련인 것이고또한 인간의 사랑의로움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말하면 환난과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요한15,18~참조)

그러나 그 환난과 박해와 함께 가는 것이 신앙이다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안에 숨겨져 있는 그분의 이타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먹고 마셔야(믿어야넘어지지 않고곧 좌절과 실망치 않고 구원의 희망으로 굳건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말씀을 인간의 뜻원함을 위한 것으로 받으면 세상의 재물과 명예의 유혹으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인간의 사랑의로움그리고 인간의 재물로는 구원에 이룰 수 없기에성경말씀은그 모든 것을 부인 하라고버리라고 하시기에 숨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어떤 사람은 백 배어떤 사람은 예순 배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도 또 닮을 수도 없음을 깨닫고 그저 그분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의지하는 그것이 열매인 것이다.

*우주의 크기는 수천억개의 별로 은하계를 이루고 있고 그 같은 은하계가 또 수천억개를 있는 것이 우주라고 한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의 별이 150억 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는데빛의 속도로 30만 키로를 150억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이란다.

하느님은우주를 왜 그렇게 크게 만드셨을까꼭 그렇게 만드셔야 했나그것은 우리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 당신의 무조건적 사랑 고백이신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의 하느님 앞에 인간이 자신들의 이기적 사랑으로 잘 하고 있다고 잘난체하는 꼴이라니~웬 ㅉㅉ~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아멘.

 

※ 저희 창4동본당으로 볼 때 씨 뿌리는 사람은 누구이며 밭은 누구일까? 

제가 보기에 씨 뿌리는 사람은 본당 사제라고 봅니다. 밭은 물론 신자들이고요.

그런데 매일미사와 주일미사에서 하는 강론으로 씨를 뿌린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따로 성경공부반을 형성하여 성경공부를 해야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없어요. 

미사 때에 성경지참하는 신자는 거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매일미사책으로 가름하지요.

그러고도 '예수교 00천주교회'라는 간판이 부끄럽습니다.

이게 우리 본당만의 일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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