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수확 때까지 두어라.(마태13,24-30)
제1독서<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예레7,1-11)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주님의 집 대문에 서서 이 말씀을 외쳐라. “주님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서는 유다의 모든 주민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3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4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5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6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8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9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10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 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11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도 이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화답송>시편84,3.4.5와 6과 8ㄱ.11(◎2) ◎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 ◎
○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
복음<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24-30)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24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독서 (예레7,1-11)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8)
왜곡된 성전 숭배를 중심으로 한 총체적 신앙 오염 행태를 지적하는 7장 1-11절의 마지막 단락인 8-11절에서는, 당시 의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면서 온갖 죄악을 자행하는 남부 유다 사람들의 패역부도한 삶의 면모들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먼저 본문은 그들이 무익한 거짓말을 의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에서는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동사 표현만 가지고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인칭 대명사를 생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인칭 대명사 '앗템'(athem ; you) 사용을 통한 주어 표시와 그것을 다시 받는 재귀적 표현 '라켐'(lakem ; for yourselves)을 다시금 사용하여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마치 자신들 스스로 만든 거짓말로 자신들 스스로를 속인다는 뉘앙스의 표현을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온갖 악을 자행하면서도, 성전이 있음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안전이 절대적으로 보장된다는 그릇된 성전 신학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말' 은 앞선 4절의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 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는 말씀과 관련된다.
즉 주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제사의식과 성전 예배가 지속되고 있는 한, 자신들의 안전은 항상 보장될 것이라는 거짓 신념을 여기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말' 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9)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당신의 계명을 어기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 성전에 나아가서는 구원을 열망하는 남부 유다 사람들의 모순된 태도를 반어적인 질문을 통해 질책한다.
본절에 제시되는 죄목들은 선민의 삶의 기본 토대이며 윤리 강령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과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계명 전체를 위반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는 대인(對人),대사회적(對 社會的)인 신법(神法)<신정법(神定法)>적 삶과 직결된 5계명 이하 10계명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들이다.
아울러 이미 제시되는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즉 섬긴다는 표현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의 관계에 대한 계명으로 이해되는 제1계명~제3계명과 관련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은 부르면서도, 하느님이 명하신 모든 계명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즉 그들은 성전 예배를 통해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느님의 임재를 고백했지만, 일상 생활속에서는 하느님 없는 삶, 하느님을 무시하고 제거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한편, 이들이 범하는 다양한 죄악 가운데, '바알에게 분향한다' 는 표현은 그 죄악을 구체적으로 폭로한다.
즉 우상의 이름을 제시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하였는지를 나타내준다.
여기서 제시된 '바알'(baal)은 문자적으로 '주', '자유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가나안 원주민에게 풍요다산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선민을 타락에 빠트린 대표적인 우상 숭배의 대상이다.
그리고 '분향한다' 로 번역된 '캇테르'(qater)는 '연기를 내다', '향을 태우다', '제물을 바치다' 라는 의미의 동사 '카타르'(qatar)의 강조 부정사로서 예배 행위를 나타낸다.
이러한 예배 행위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드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민들은 바알을 위해 예배함으로써, 하느님을 대적하고 모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남부 유다가 섬겼던 '다른 신들' 을 수식하는 '모르는' 이란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에, '알다', '이해하다' 란 뜻을 지닌 '야다으'(yadah)의 미완료형에, 남성 3인칭 복수 접미어가 부착된 것으로, '그들이 결코 알지 못한다' 는 의미의 표현이다.
사실 선민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역사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으며 선조들을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충분히 들어 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배반하여 알지도 못하는 우상을 숭배한 그들의 죄악은 실로 용납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빠르고 강력하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듯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방해자들만 늘어가는 것 같은 상황에,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고 예수님을 향한 마음도 흔들렸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그 영향력과 힘, 생명력을 느끼기 어려울 때도 있고 가라지와 같은 악의 존재 때문에 그 열매들이 흐릿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성장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마태 13,32 참조). 씨앗은 ‘저절로’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활동에 의존하거나 인간의 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박해와 같이 퇴보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성장합니다.
또한 누룩은 온 반죽에 파고들어 그 반죽을 부풀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마태 13,33 참조).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신앙이라는 누룩이 우리 삶의 모든 곳에 파고들고, 신앙인 한 사람이 가정과 사회에 파고들어 점차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빠르고 강력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는 하느님 나라에 주목하는 사이 작지만 소중한 성장의 표지들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돌봄이 필요한 이를 떠올리고, 세상의 정의를 위하여 좀 더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피조물 보호를 위하여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것 등. 그 또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7월 27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월천공원 매미들의 합창이 싱그럽네요.
말씀을 다시 듣고 배워 하느님의 뜻으로 일어나라고 난리치는듯 하네요.
소리(콜☞코프+라메드), 코프- (파괴하고 다시 세움). 라메드- (가르치다. 교훈하다).
복음(마태13,24-30)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 밭은 나(우리), 씨는 말씀이며 그리스도께서 뿌리신다.
25 그런데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 원수- 양의 옷차림을 하고 하느님의 뜻, 진리를 적대(敵對)하는, 곧 뱀의 유혹인 善과 惡,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지 못하게 뺏어 버리는 거짓 사도, 거짓 가르침이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 인간은 선과 악, 도덕과 윤리, 그 인간의 법으로 판단하기에 추수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좌 악을 대속한 선의 죽음인 십자가로만 심판하신다. 죄는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의 피로만 씻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현세)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는 행위(제사)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삼위 하느님께 감사, 찬미로 영광을 드리는 때라는 것이다.
(에페1,5-7)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은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 인간의 도리, 열 개의 계명으로 행위의 신앙을 산다면 ‘가라지’다. 하느님의 새 계명인 악을 대속한 선의 죽음, 그 진리의 새 계약을 간직한 사람이 ‘밀’이다.
☨ 우리의 구원을 당신의 대속으로 친히 완성하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13,24-30)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때까지 둘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24-30)
하늘나라(천국; 하느님의 다스림)는 '~하는 사람과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해설하는 데 있어서 'A는 B와 같은 경우와 유사하다'는 아람어의 관용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J. Jeremias는 말한다.
여기서 '씨'로 번역된 '스페르마'(sperma; seed)는 '어떤 사물을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제라'(zera)의 희랍어 역어로서 식물의 씨앗(창세1,11.12) 뿐만 아니라 후손을 번성케 하는 동물의 정액(레위15,16; 18,21) 이라는 뜻도 있다.
신약성경에서 '스페르마'(sperma)는 43회 쓰였는데,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영적 기업을 상속으로 받게 되는 '계약(언약)의 후손'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마태22,24; 루카1,55; 사도3,25; 로마9,8; 갈라3,16; 히브2,16등등).
이 비유에서도 '스페르마'(sperma)는 '좋은'('칼로스'; kalos)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기업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될 '하늘나라(천국)의 자녀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마태13,38).
'좋은 씨' 즉 '하늘 나(천국)의 자녀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세상에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번창해 나갈 것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밭'에 해당하는 '토 아그로 아우투'(to agro autou; his field)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 세상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이 세상과 더불어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원천적으로도 현상적으로도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이 세상을 돌보시고 가꾸시며 인간을 당신의 섭리 안에 두고 계신다.
한편, 본문의 '그의 원수'에 해당하는 '아우투 호 에크트로스'(autou ho echthros; his enemy)는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인 '사람의 아들'(인자; 人子; 마태13,37)인 예수님의 원수인 '악마'(마귀; 마태13,39)를 가리킨다.
그리고 '가라지'로 번역된 '지자니아'(zizania; tares; weeds)의 원형 '지자니온'(zizanion)은 성장 기간에는 밀과 닮아 보이지만, 그 낟알에는 독소를 품고 있는 독보리를 가리키는 명사이다.
흔히 밀밭에는 낟알이 약간 거무스름할 뿐, 쉽게 분별하기 힘든 독보리들이 성장하게 되는데, 밀 사이에 자라고 있는 독보리들은 그 뿌리가 밀의 뿌리에 엉켜있다.
그래서 독보리의 낟알이 검은 것을 보고 농부가 그 줄기를 잡아 뽑게 되면, 옆에 있는 밀 줄기까지 따라 뽑히게 된다(마태13,29).
따라서 경험이 많은 농부들은 추수 때까지 그 독보리를 그냥 놓아둔다(마태13,30).
본문에서 '지자니온'(zizanion)은 복수로 되어 있어서 마귀가 독보리를 수없이 많이 뿌렸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비유에서 이 수많은 독보리들은 '악마'(악한 자)의 자녀들을 상징하고 있다(마태13,38).
그런데 마태오 복음 13장 26절에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고 한다.
'열매를 맺을'에 해당하는 '카르폰 에포이에센'(karpon epoiesen)을 직역하면 '그것이 이삭 혹은 열매를 만들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것이 만들다' 즉 '에포이에센'(epoiesen)의 주체는 마태오 복음 13장 24절의 '좋은 씨'이다.
좋은 씨가 그 속에 배태하고 있던 생명으로 말미암아 좋은 이삭을 막 맺기 시작할 때, 가라지는 그 좋은 씨가 맺은 이삭과는 다른 이삭을 맺게 된다.
따라서 농부들은 줄기 끝에 맺혀 있는 이삭을 보고 가라지를 쉽게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7,16)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어디서'로 번역된 '포텐'(pothen; from where)은 기원이나 근원을 캐는 부사로서 '어떤 장소로부터'라는 의미와 더불어 '어떤 존재(사람)로 부터?'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마태13,54.56절).
여기서는 곡식 밭에 가라지를 덧뿌린 원수를 가리키므로, 장소보다도 사람의 의미로 쓰였다.
'생기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케이'(echei)는 '가지다','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능동형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현재 ~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좋은 씨가 뿌려진 주인의 밭에서 가라지가 스스로 생겨나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해서 그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선(善)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어떻게 악(惡)이 존재하며, 그 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를 드러낸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
마태오 복음 13장 25절에서 '원수'가 '호 에크트로스'(ho echtros)였는데, 여기 28절에서는 '에크트로스 안트로포스'(echtros anthropos)가 되었는데, 같은 실체인데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크트로스'(echtros)는 '증오받는', '가증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이란 의미의 형용사이며, '안트로포스'(anthropos)는 보편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이므로 '에프트로스 안트로포스'는 '가증한 사람', '집주인에게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로 '악마'(마귀)를 뜻하는데,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심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선교와 구원 사업을 방해하고 분쇄하려고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심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저희가 ~거두다'(뽑다)는 의미로 번역된 '쉴렉소멘'(sylleksomen)의 원형 '쉴레고'(syllego)는 '긁어 모으다'는 의미인데, '그릇에 담다', '열매를 따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가라지의 윗부분을 잡고 '긁어 모어듯이 훑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종들은 영적 통찰력이 부족해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훑어버리고 싶어하지만, 신적 통찰력을 가지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집주인은 전후 모든 사정을 잘 알고서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아니다'('ou'; '우'; no)라고 말한다.
마태오 복음 13장 29절의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쉴레곤테스'(syllegontes)의 원형 '쉴레고'(syllego)는 28절에도 쓰인 단어로서 '긁어 모으다', '모으듯이 훑어버리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밀까지 함께 '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에크리조세테'(ekrizosete)의 원형 '에크리조오'(ekrizoo)는 '뿌리째 뽑아버리다'는 뜻이다.
가라지의 뿌리는 주변에 있는 밀의 뿌리와 너무나 얼키설키 엉켜 있어서 가라지의 목을 잡고 그것만 훑는다 해도 밀의 뿌리가 뽑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가라지를 훑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7).
아담과 하와가 죄를 저지르고 난 뒤에 한 첫 행동은 ‘알몸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더 이상 알몸을 보여 주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누구에게 ‘알몸’을 보여 줄 수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몸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몸을 보여 주기 싫어졌다는 것은 이제 그 사람과 맺은 사랑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죄는 하느님과 우리가 맺은 사랑의 관계를 깨지게 합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죄는 우리 마음 속에 착각을 일으킵니다. 죄 안에 있거나 그 죄를 계속해서 저질러도 ‘우리는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하는 착각, 하느님과 깨져 버린 관계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착각 속에 우리를 가둡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마지막 날까지 미루셨습니다. 모두 회개하여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느껴집니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해소에서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 우리의 알몸을 그분께 보여 드릴 수 있는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27일 토요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사람의 눈으로는 밀(빛)과 가라지(어둠)를 분별할 수 없다
복음(마태13,24-30)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24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 하느님께서 당신이 이미 선택한 밭, 사람들에게 말씀(씨, 제라-후손의 희생, 대속)을 주시어 그 말씀을 받아들인 이들을 당신의 자녀, 백성으로 하느님나라를 완성하신다.
앞(13,1-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좋은 땅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 좋은땅”인 것을 확인했다. 예수님은 그를 하늘나라의 자녀라 하셨다.(13,38)
(요한1,4-5.9.11-12.14) 4 그분(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세상)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1 그분(말씀)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율법(제사와 윤리)과 세상의 힘의 원리로 구축된 나를 버리고(否認)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로 하나 되는 것, 하느님의 자녀(백성), 곧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속이는 자가 ‘어둠이 빛’이라 우기며 고집한다.
(2코린11,13-14) 13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입니다.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 사람의 눈, 관점으로는 밀(빛)과 가라지(어둠)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聖靈)께서만 수확(收穫)하실 수 있다(13,40) 원수(怨讐), 하느님의 원수, 하느님의 뜻을 속이는 적대자(敵對者), 악마(惡魔)다.(13,39)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마르8,33 13,22) 8,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 결론(結論), 모든 사람은 성령은 입기 전(前), 베드로처럼 마음에 가라지가 들어 있다는 말씀이다. 본문 28절에서 종들이 ‘가라지를 거두어 낼까요?’ 하자 본문 29절에서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아니다.(쉘레고- 허락하다. 용납하다. 용서해라) 곧 육의 본성, 본질을 허락, 용납, 용서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왜? 씨(말씀)가 사람의 육(肉)을 입고 오셔서 그 육(肉)의 죄악들을 대속(代贖)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면 말이다.
(마태16,19.21)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의(義) 열쇄로, 땅(가라지)에서 풀려 밀이 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쁜 소식(복음)이다. 뱀의 유혹(誘惑)인(창세3,5)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착하게 산, 땅의 결함이 있는 그 의(義)로 들어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2코린5,1-5) 1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땅, 육)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2 이 천막집에서 우리는 탄식하며, 우리의 하늘 거처를 옷처럼 덧입기를 갈망합니다. 3 사실 우리가 천막을 벗더라도 알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4 우리는 이 천막 속에 살면서 무겁게 짓눌려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천막을 벗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선악의 율법, 옛 계약)을 생명(진리의 새 계약)이 삼키도록 말입니다. 5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고난, 시련의 훈련)시키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히브10,15-18)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율법-옛 계약)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대속-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아멘)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모두 뱀의 유혹을 먹은 선악(善惡)의 율법(律法)과 세상의 계명(誡命), 그 옛 계약의 ‘죄(罪)와 의(義)’의 나를 버리는(否認), 죽이는 그 고난, 시련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들어가 그 분과 한 몸이 되어 얻는 하늘의 은총(은혜)의 구원이다.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충만 속에서 가라지에서 밀이 되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사랑)가 아버지의 뜻(생명)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