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수요일] 하늘나라 (마태13,44-46

2024. 7. 30. 오후 4: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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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일 수요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하늘나라 (마태13,44-46)

   


1독서<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예레15,10.16-21)

10 ,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16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7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19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1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

 

<화답송>시편59,2-3.4.10-11.17.18(17) 하느님은 곤경의 날에 저의 피신처가 되셨나이다.

저의 하느님, 원수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적에게서 저를 보호하소서. 나쁜 짓 하는 자에게서 저를 구하시고, 피에 주린 자에게서 저를 구원하소서.

보소서, 그들이 제 목숨을 노리며, 힘센 자들은 저를 공격하나이다. 주님, 저는 잘못이 없고 죄가 없나이다.

저의 힘이시여, 당신만을 바라나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성채이시옵니다. 자애로우신 하느님은 나를 찾아오시리라. 하느님은 내가 원수들을 내려다보게 하시리라.

저는 당신의 힘을 노래하오리다. 아침이면 당신 자애에 환호하오리다. 당신은 저의 성채가 되시고, 곤경의 날에 피신처가 되셨나이다.

저의 힘이시여,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성채, 자애로우신 하느님이시옵니다.

 

복음<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13,44-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 기념일 독서(1코린 10,3111,1)와 복음(루카 14,25-33)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제1독서(예레15,10.16~21)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16.18~19)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6)

 

예레미야서 15장 16절이하 18절에서는 악한 시대의 고독한 예언자로서 영육간에 고갈을 호소하는 내용이 소개된다.

 

"Thy words were found, and I did eat them ; and thy word was unto me the joy and rejoicing of mine heart ; for I am called by thy name , O LORD GOD of hosts !"

 

원문따라 문자적으로 풀어본 영역본의 하나를 소개했다.

여기서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로 번역된 '니므체우 데바레카'(nimtseu debareka)에서 '발견하고'에 해당하는 '니므체우'는 '찾다'(1열왕21,20), '드러내다','발견하다'(신명24,1)란 뜻을 지닌 동사 '마차'(matsa)의 수동형 3인칭 복수형으로서 그 주어는 '데바레카'(debareka) 곧 '당신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신의 말씀이 발견되었다'는 의미이고, 이 표현은 곧 주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사실 가리킨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마치 음식을 먹듯이 그 말씀을 '내가 받아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말씀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참된 기쁨이 되었다.

그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제게 기쁨'이란 표현과 '제 마음에 즐거움'이란 표현을 중복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은 자신이 이름 뿐인 예언자가 아닌,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사모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참된 예언자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의 말씀이 기쁨이 되는 그 이유를 자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의 원문의 문두에 나오는 접속사 '키'(ki)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예언자 예레미야의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는가를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그대로 전하는 예언자가 됨으로써 어떤 부나 명예가 따라와서가 아니라 주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진정한 기쁨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순수하고 진실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대변했는가 드러내는 일종의 변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끝으로 예레미야는 '주 만군의 하느님'이란 감탄의 부르짖음으로 주 하느님의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순수성과 진실함에 대한 고백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본절 전반의 표현은 15절('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저를 기억하시고 찾아 주소서.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복수하여 주소서. 당신 분노를 늦추시다가 저를 잃지 마시고, 당신 때문에 제가 수모를 당하는 줄 알아주소서.')에서 그가 호소했듯이,

 자신이 당하는 박해와  치욕은 온전히 주님의 예언자로서 주님을 위해 일하였기 때문이며, 주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그대로 전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다.'(18ㄱ)

 

'어찌하여'라는 뜻의 의문사 '람마'(lamma)로 시작되는 본절은 앞서 15~17절에서 피력했듯이 예레미야가 오직 주 하느님만을 위하여 주님의 예언자로서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싸웠고, 또 그로 인해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는가를 하소연하고 있는 내용이다.

즉 예언자 예레미야는 영육간의 극도의 피곤함과 고갈됨을 경험하고, 이것을 하느님께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극한의 고난과 곤경, 고독 속에 자신이 처하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조차 베풀지 않으시는 듯한 하느님을 향하여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이 상처와 고통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지, 또 어째서 이처럼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지를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느님께 버림받은 듯한 상황속에 처하여 곤경과 핍박을 호소하는 본문의 표현은 메시아의 버림받음과 대속적 수난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시편 22장 2절과 3절을 연상시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18ㄴ)

 

'믿을 수 없는'으로 번역된 '로 네에마누'(lo neemanu)에서 '로'(lo)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를 지닌 부정어이며,  '네에마누'는 '참되다', '진실하다'(창세42,20),'믿다'(탈출4,8), '참되다', '확실하다'(시편93,5),  '믿음직하다','견고하다'(1사무2,35),'성실하다', '충성되다'(2사무20,19) 등을 뜻하는 동사 '아만'(aman)의 수동 완료형 3인칭 복수형이다.

따라서 '로 네에마누'는 '(물이) 확실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기에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지만, 건기에는 물이 말라버리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기후적 특색과 간헐천(wadi)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레미야는 주 하느님 지체를 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물을 얻을 수 없게 되버린 '가짜 시냇물'(속이는 시내)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는 '생수의 원천인 나'(예레2,13), 곧 주 하느님을 의지하여 그 구원하심을  믿어 왔던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만일 끝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주님은 곧 '가짜 시냇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레미야의 절박한 반어법적인 호소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 내가 주님의 구원을 믿고 찾아 왔는데, 만일 그 생수를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은 가짜 시냇물이 되시렵니까?

정녕 그리하실 것입니까?' 라고 예언자는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례미야의 간절한 표현과 더불어 다소 과격해 보이는 표현은 단순히 하느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같은 본문의 표현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생수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자신의 갈급하고 고통스런 상황을 굽어 살피시고 도우시는 은혜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미, 곧 예언자의 하느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와 구원의 간구가 함축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네가 돌아 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19)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에 해당하는 '타슈브'(tashub)는 '돌아오다', '돌이키다' 뜻을 지닌 '슈브'(shub)의 능동 미완료 2인칭 단수형이다.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에 해당하는 '와아쉬베카'(waashibeka) 역시 동일한 '슈브'동사의 사역형 미완료 3인칭 단수형에 접속사 '와우'(wau)와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를 결합시킨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러면 내가 너를 돌이킬 것이다.'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전자의 '타슈브'는 예레미야가 하느님께로 돌아옴, 즉 현재의 고통으로 인한 불신앙적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말고, 처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언자적 소명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말이다.

후자의 '와아쉬베카'는 만일 그러한 불신앙적 흔들림을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지금의 고통스런 상황에서 돌이켜 회복시키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본문은 동사 '슈브'의 상호 교차적인 사용으로 하느님과 예언자 양자의 역학 관계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동사는 하느님과 예언자와 그 백성 삼자의 역학 관계 묘사하기에 이른다.

 

본절 후반부에서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언자가 나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슈부'동사를 거듭 사용하셔서 현실적인 고통과 절망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코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백성들과 같은 길에 빠져서는 안되고, 백성들이 약함을 본받거나 그들의 약함에 유혹 당해서는 안되며, 더 나아가 오직 백성을 그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예언자가 가야할 길임을 각인시키고 계신 것이다.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에 해당하는 '밋졸렐'(mizzollel)은 동사 '잘랄'(zallal)의 분사형에 '분리, 이탈, 구별' 등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민'(min)이 결합된 형태로서 '헛된 것들로부터'(쓸모없는 것들로부터)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헛된 것들로부터' '귀한 것(값진 것)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금속 제련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이 과정에서 순수한 금속은 불순물로부터 분리되어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현재의 고통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불만이나 불평,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모든 불신앙적 요소들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순수한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예레미야는 '너는 나의 입' 곧 진정으로 주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귀한 보물이라는 사실과, 그 보물을 발견한 이의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값비싼 보물을 집이 아닌 땅속에 묻어 보관하던 팔레스타인에서는 가끔 전쟁이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땅 주인이 바뀌는 일이 있었습니다.

땅 주인이 바뀌면 땅속에 묻힌 보물은 새 주인의 소유가 되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모를 수 있기에 오늘 복음의 상황처럼 주인이 아닌 소작농 같은 이들이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 생깁니다.

주인의 땅에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땅을 사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파는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보물은 움직입니다.’

과거의 보물이 지금은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고, 과거에는 별스럽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큰 보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8).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보물의 움직임을 체험하고 있는지요?

한편 오늘 복음에서는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의 기쁨이 중심 주제임에도, 보물의 존재를 모르고 밭을 판 사람과 값진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판 이들의 속상함도 크게 느껴집니다.

보물이 묻힌 밭과 좋은 진주를 알아보지 못한 이들은 신앙이라는 보물, 하느님 말씀과 교회와 성사라는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과 같습니다.

나와 교회, 세상 안에서 보물을 찾고자 더욱 노력하고, 또 그 보물을 얻기 위한 선택과 포기가 좀 더 과감해져야 하겠습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寶物을 찾은 사람과 그 寶物(眞珠)을 찾는 商人은 하느님과 우리 救援의 관계다.

 

(마태13,44-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성경(예수)과 우주 만물 안에 숨겨진 하늘의 보물, 곧 하늘의 생명을 깨달은 사람은 땅(육)의 모든 것의 가치 없음을 깨닫는 그 자기부인, 팔아버림의 삶을 살게 된다.

 

(필립3,4-9)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제사와 윤리)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 사도는 자기 義, 목숨을 否認하고(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생명, 그 보물(진주)을 찾았다. 하느님은 그 하늘의 생명(보물-진주)을 갖은 이를 찾으신다.

 

45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 하느님은 당신의 목숨인 사랑하는 외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자기 버림, 부인으로 보물, 진주를 찾은 그를 위한 속죄 제물로 내주시어 그를 사신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원리, 양식인 것이다.

 

(에페1,9-11)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비밀)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콜로3,3) 3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필립3,10-12)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로 육이 죽어 그리스도로 영이 살아나기를 원한다. 사도처럼, 영으로 살아나기 위해 육의 것을 다 파는 그 죽음의 길을 달려가 보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것을 다 팔아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나를 당신의 것으로 차지하셨으니 내 뜻, 고집을 버리는 그 길을 가 보려한다. 곧 다른 이를 인정하는, 이해하려는 그 길을 가 보고자 한다.

인간의 계명으로 착하게, 의롭게 살아야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의 대속, 그 하느님의 새 계명, 새 계약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저 받은 하늘의 용서, 의로움, 자유, 생명, 구원이기에, 감사에서 나오는 육의 의로움을 위한 삶 또한 가보려 한다. 아니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면(안다면) 당연히 나와야 함을 자각했기에 가보려 한다. 그 원함이 없기에 기도하면서....

 

(갈라5,13)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베드2,16) 16 자유인으로서 행동하십시오. 그러나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삼지 말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행동하십시오.

= 죄의 대속인 십자가로 얻는 자유, 곧 자유의 법인 하느님의 새 계약, 그 예수 그리스도의 十字架가 다 이루시어 자유롭게 되었지만, 그 십자가의 용서를 내 죄를 위한 변명으로, 또 내 뜻을 위해 合當化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늘의 용서, 자유 안에서 이다.

 

(야고1,25)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實行은 말씀 안에 머무름이다. 그랬을 때, 말씀으로 구원, 자유, 심판을 받는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야고2,12) 12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나의 다 팔아버림, 그 죽음과 하느님의 모든 것을 처분하심, 그 죽으심과 만나는 것이 영원한 생명, 구원이다.

 

☨ 보호자 성령님! 깨닫게 하신 그 버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넘어져도 일어나 걸어 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17주간 수요일복음(마태13,44~46)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44~46)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좋은 진주의 비유는 천국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숨겨진'으로 번역된 '케크림메노'(kekrymmeno) '감추다', '숨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크립토'(krypto; hid)의 수동태 완료 분사로서, 과거 어느 시점에 보물의 주인이 밭을 깊숙이 파고 그것을 숨겨 두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그것도 은행이 없었던 시절에 값비싼 보물을 땅속에 숨겨 두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잠언 2장 4절에는 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세속 민담에도 종종 나타난다.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실체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사도 아깝지 않을 만큼 큰 것이다.

 

말하자면,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산 것처럼천국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비유에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 보물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거기에 묻혀 있는 밭 주인의 소유라는 사회 규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밭을 살 때까지 그 보물을 땅 속에 그대로 묻어 두고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사 버린다.

 

원문에 나오는 '(그가) 가진'에 해당하는 '에케이'(echei), '팔아'에 해당하는 '폴레이'(polei), 그리고 '산다'에 해당하는 '아고라제이'(agorazei)라는 세 개의 동사의 시제가 모두 현재이다.

 

동사의 시제가 속담이나 일반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현재라는 것은, 여기에 나타난 행위가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어떤 특정한 일을 예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팔아'에 해당하는 '판타 호사 에케이'(panta hosa echei; all that he had)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모두'를 말한다.

즉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진 전 재산보다도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역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마태10,37; 마르코10,29).

 

한편, 두번째로 나오는 좋은 진주의 비유도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비유로 끝나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비유를 더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천국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상인'에 해당하는 '안트로포 엠포로'(anthropo emporo; a merchant)에서 '안트로포'(anthropo)는 사람이란 뜻이며, '엠포로'(emporo)는 상업을 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도매 상인'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안트로포 엠포로'는 '도매상을 하는 상인'이라는 말이다.

이 사람은 지금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각처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찾는'으로 번역된 '제툰티'(zetunti; looking for; seeking)는 '얻으려고 애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좋은 진주를 얻으려고 사방 팔방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에서 '발견하자'로 번역된 '휴론'(heuron)은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의 '발견한'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서, '발견하다'는 뜻의 동사 '휴리스코'(heurisk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이며 그 뜻은 '발견했을 때'이다.

 

애쓰며 돌아다니던 상인은 좋은 진주를 얻고자 노력한 결과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했다는 사실만 다를 뿐, 두 사람의 상황은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대치 이상으로 훨씬 좋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물을 발견했고, '좋은'('칼루스'; kalous; fine; goodly) 진주를 찾으로 다니던 상인도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값진'('플뤼티몬'; polytimon; of great value; of great price)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발견된 천국의 실체도 자신이 상상조차 못했거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훨씬 영광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천국의 영광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천국과 관계되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8,18)

 


 

 

 

20240731일 수요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는 우연히발견된 보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밭을 가는 사람은 보물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밭을 갈다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보물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보물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만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보물을 차지하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본 이들만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상인은 주도적으로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좋은 진주를 발견하자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진주를 차지합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고 열망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발견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좋은 진주를 찾고자 길을 나선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삶,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함께 그 말씀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삶, 주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 미사 안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삶,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나라라는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선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선물처럼 우연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고, 또 신앙생활로 우리 삶 안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것들을 차지한 것처럼, 하느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2티모 3,16-17).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2024년 07월 31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고그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우리도 모든 것을 버린다.

 

복음(마태13,44-46)

예수님께서 44ㄱ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 밭인 우리 안에 보물(寶物)로 하늘나라가 있음이다.

 

(2코린4,7-9)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 그 보물(하늘, 빛)을 간직한 밭(사람)을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팔아 사신 것이다.

 

44ㄴ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예수)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목숨)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보물(寶物)을 간직한 밭(우리)임을 놓치면 안된다.

 

45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 진주(眞珠)-브델리움.

 

(민수11,6-7) 6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아무것도 없구나.” 7 만나는 고수 씨앗과 비슷하고 그 빛깔은 *브델리움(진주같았다.

= ‘만나’는 광야(廣野)같은 이 세상, 인생길에서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 곧 세상의 힘(기운)을 빼기(버리기) 위해 먹어야 할(생명의 빛깔인 진주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신명8,3)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빛깔인 진주)의 양식(糧食)으로 생각하는 이는 자신을 낮추어, 곧 자기 버림(부인)의 삶으로 말씀(만나-지주)을 찾는다.

 

(묵시2,17) 17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말씀)를 주고 흰 돌(예수)도 주겠다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새 계약의 그리스도)이 새겨져 있다.’” (이사62,2 묵시3,12참조)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의 종입니다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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