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03일 토요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마태14,1-12)
제1독서< 주님께서는 나를 보내시어 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예레26,11-16.24)
11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12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14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24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화답송>시편69,15-16.30-31.33-34(◎14) ◎ 주님, 은총의 때이옵니다. 제게 응답하소서.
○ 진창에 빠지지 않게 저를 구출하소서. 원수들에게서, 깊은 물속에서 저를 구출하소서. 급물살이 저를 덮치지 못하고, 깊은 물이 저를 휩쓸지 못하며, 심연이 저를 삼켜도 그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소서. ◎
○ 가련한 저는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하느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감사 노래로 그분을 기리리라. ◎
○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
복음<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마태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제1독서(예레26,11~16.24)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15)
자신의 무죄함을 확신하는 예레미야는 본절에서 재판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만약 무죄한 자신을 죽이면, 그 부당한 죽음의 결과가 그들 및 그들의 도성과 백성들에게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내용의 서두에 나오는 본문은 원문으로 볼 때, 명령법이 아니라 그들이 이어지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크 야도아으 테데우'(ak yadoah thedeu)에서 '아크'(ak)는 '그렇지만', '그러나' 로 번역될 수 있는 대조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부사이고,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로 번역된 '야도아으 테데우'는 '알다'란 의미의 동사 '야다으'(yadah)의 부정사 절대형과 미완료형이 결합한 형태로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구문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면, 그 피가 가해자의 머리로 돌아간다는 율법이 있었기 때문에(신명19,10), 예레미야 재판에 관여한 자들은 예레미야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무고한 재판의 필연적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이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경고했던 것이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로 시작하는 후반절은 상반절에 나오는 바, 예레미야를 죽이는 일이 왜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이며, 왜 비참한 결과를 당해야 하는 것인지 분명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의 고소처럼(예레26,8~9), 주님의 이름을 사칭하는 거짓 예언자가 아니라, 주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보냄을 받은 참 예언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는 것은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일 뿐 아니라 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고 역설한다.
한편 본문에서 '참으로'에 해당하는 단어 '뻬에메트'(beemeth)는 전치사 '뻬'(be)와 '진리', '진실'을 나타내는 명사 '에메트'(emeth)가 결합한 형태이다.
전치사 '뻬'(be)는 기본적으로 '~안에'(in)란 뜻을 지닌다.
그러나 '뻬'(be)는 특색이나 상황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설명은 후자의 입장을 취해서 '뻬에메트'를 '진실로'(truly; for of a truth)의 의미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뻬에메트'란 표현에는 '진리 안에서'(in truth)라는 의미의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이 나타내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확실히', '참으로' 보내셨다는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들려', '진리의 말씀만을 전하도록' 보내셨다는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예언, 즉 예루살렘 성과 성전에 대한 어두운 예언은 주님께서 주신 진리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강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과 예언자들을 대표하여 예레미야를 대적한 자들이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주님의 이름을 사칭한 거짓 예언으로 몰아붙인 것은 그들 자신이 진리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18,37).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허망하고 충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마태 11,11 참조)이라고 하신 이의 죽음에서 어떠한 영웅적인 모습이 보이지도, 하느님의 극적인 개입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저 ‘힘 있는 자들’이 벌인 잔치의 ‘눈요깃감’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죽음으로 지상에서 요한의 삶은 끝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의 죽음에서 불사불멸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세상 권력과의 거창한 투쟁 끝에 장렬한 죽음을 맞기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와 예언자,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서조차 우리가 찾는 특별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정의와 평화, 진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목숨은 오히려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의 구원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어쩌면 가장 없애 버리고 싶은 목숨, 가장 하찮게 여기는 목숨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의 핵심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그에 따르는 비통함이 아닙니다.
악이 하느님의 사람을 죽이지만, 악의 힘으로는 하느님의 사람도, 하느님의 나라도 결코 끝낼 수 없다는 희망을 선포하는 데에 있습니다.
악에 의해서 결코 끝나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체험해 봅시다.
(김인호 루카 신부)
不義한 세상에서 義를 선포하는 사람
(마태14,1-12)
1 그 무렵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왕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신하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3 일찌기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4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5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6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 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9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내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12 그 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 분봉왕 ( 分封王 , tetrarch 영주)
왕이나 황제의 휘하에서 한 나라의 일정 지역을 다스리던 군주. 왕보다는 다소 지위가 낮았으나, 때론 왕으로도 불렸다.
신약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는 헤로데 대왕이 죽자, 그의 세 아들 아켈라오, 헤롯 안티파스, 헤롯 필립 세 사람이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때 아켈라오는 왕으로, 안티파스와 필립은 분봉 왕이란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마태2,22; 루기3,1)
(테트라아르케스) - ‘테트라’와 ‘아르케스’(다스리는 자)의 합성어로, 원래는 한 나라의 1/4에 해당하는 영토를 다스리는 자를 가리키나 통상 분왕(영주)을 일컫는다.
※ 헤로데( Herod ) - ‘영웅의 아들’이란 뜻.
이두매(에돔)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통치했던(B.C.47 - A.D.70년) 헤로데가(家)에 속한 자들을 일컫는다.
헤로데 가문(家門)은 ‘헤로데 안티파테르 1세’(Herod Antipater Ⅰ)에 의해 창시 되었다고 본다. 그는 B.C. 1세기 초 하스몬 왕조의 알렉산드로스 얀나에우스에 의해 에돔의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그 아들 ‘안티파테르 2세’(Antipater Ⅱ)가 그의 뒤를 잇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7년에 안티파테르 2세를 유대의 행정장관(징세관)으로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유대 지경을 다스리게 했다. 그로부터 ‘헤로데 왕가’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고자 유대교로 개종했으나 그와 그 후손들은 ‘에돔 출신’ 곧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생전에 두 아들(파사엘과 헤로데)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데,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통치하도록 했고, 헤로데(후에 ‘헤로데 대왕’)에게는 갈릴리 총독을 맡겼다.
본문의 인물은 헤로데 대왕과 말다게 사이에서 태어난 ‘헤로데 안티파스’를 말함.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 왕(B.C. 4-A.D.39년)이 되었다.
성경에는 ‘영주(분봉왕) ‘헤로데 왕’으로 언급된다(마태14:1; 마르6:14; 루가3:19).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이복형제인 필립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고, 이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살해했다(마태14:1-12).
교활하고 술수에 능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 불렸다(루가13:32).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서 재판을 받고 넘겨진 예수님을 심문했고, 예수님을 희롱한 후 빌라도에게 다시 넘겨주었다(루가23:7-11).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갈릴리 해안에 ‘티베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했고, 갈릴리 바다를 ‘티베리아 바다’로 명명하기도 했다.
탐욕과 병적인 잔혹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마태14:1-22; 루가23:7).
※ 헤로디아( Herodias ) - ‘영웅의 딸’이란 뜻.
헤로데 대왕의 손녀이며, 헤로데 아그립바의 누이. 살로메의 어머니.
필립에게 출가했다가 버리고 시숙(媤叔)인 헤로데 안티파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 부도덕한 일을 책망하는 세례 요한을 죽게 한 장본인.
후에 남편 안티파가 스페인으로 추방되었을 때, 헤로디아도 동행하였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예수님의 소문에 두려워하는 헤로데 (마태 14,1-5)
1 그 무렵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왕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신하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죽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능력이 어디서 솟아나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3 일찌기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4 그것은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거듭거듭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5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에는 불의하게 권력과 지위를 유지한 통치자가 많다. 그중의 한 사람이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디파이다.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 왕이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가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의로운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을 죽여 입을 막았지만, 예수님의 출현으로 죄책감이 살아난 것이다. 높은 지위나 권력이 그에게 평안을 주지 못했다. 악이 악을 낳았고,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 가장 두려움이 많고 염려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가진 것 때문에 염려하고, 자신들의 악행 때문에 더 두려워한다.
도리어 가난한 자가 福이 있고, 義를 위해 박해를 받는 이가 행복한 것이다.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공평한 재판관이 계시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은 당당히 헤로데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용기를 갖춘 예언자였다.
권력에 굴복하여 악을 방치하거나 동조한다면 땅의 삶은 보장 받겠지만 천국의 삶은 잃게 될 것이다.
윤리가 상대화하고, 불의한 일들이 상식이 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기준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기준을 따라 세상의 불의를 질책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義人의 삶은 불가피하게 苦難이 따른다. 말과 삶으로 세상의 불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의를 동조하지 않는 의인을 비웃고 핍박한다. 하물며 불의하다고 책망하는 자를 그냥 놔둘 리 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걸어갈 십자가의 길이다.
헤로데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느님의 역사를 막은 자였다. 예수님은 그를 ‘여우’로 평가하신다.(루가13:32)
세례 요한의 죽음과 장사 (마태14,6-12)
6 그 무렵에 마침 헤로데의 생일이 돌아 와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잔치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로데를 매우 기쁘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9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한 바도 있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어서 소녀의 청대로 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건내자 소녀는 그것을 제 어미에게 갖다 주었다. 12 그 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헤로데는 惡을 덮으려고 더 큰 악을 저질렀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한 악에다, 그 악을 지적하는 요한을 죽이는 惡을 더했다.
헤로데는 자신의 유익과 체면에 철저히 귀속된 불쌍한 인물이다. 사람들 앞에서 섣불리 한 맹세 때문에 결국 무고한 세례자 요한을 죽였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악한 통치자였다. 그 결과 자신도 평안하지 못했고,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도 불행했다.
자기를 否認하며 인생의 몸으로 오신, 자기를 버려 생명을 주신 참 왕이 계심에 늘 감사하자.
敎會(하느님 백성)는 사회를 향해 제사장적 역할과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은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해 예배하게 한다. 예언자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공의를 선포한다.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땅(인간)도 하느님께서 빚어 만드신 하느님의 것이다.
세상 힘의 원리인 남을 이겨야하는, 그리고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그 사람의 뜻인 말(가르침)을 먹으며 만족해하면 안 된다. 그 인물이 오늘 복음의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헤로데, 그리고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다.
복음(마태14,6-12)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 성경은 ‘헤로데 그 나쁜놈’ 하지 말고 헤로데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뜻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의 뜻을 죽이는(무시해 버리는) ‘그런 존재 구나’를, 그런 우리의 솔직한 모습을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변하지 않는 이기적인 나를 보고, 인정하는,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 같은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실 수밖에 없으셨구나.’를 깨달아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罪性을 인정하는 것, 내 自我(뜻)를 죽이는 그 勝利다.
(로마7,22-25)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세례자 요한, 왜 머리가 잘려 죽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왜 그 사실을 예수님께 알렸을까? 당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곧 신앙의 主, 머리로 알았다. 그러니 모형인 그의 메시아, 主, 머리가 잘려야 팜 메시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체들을 살리시는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13절 이하에서 부정한 빵(5)과 물고기(2)를 당신이 받으시고 대신 하늘의 빵(양식)으로 먹이시어 열둘(12)로, 곧 하늘의 존재, 하느님의 자녀로 살리시는 일을 하시는 그 희년의 복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보호자 성령님! 하늘로,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 죄인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먹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4,1~12)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해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8~11).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에서 '부추기는 대로'에 해당하는 '프로비바스테이사'(probibastheisa; being before instructed; prompted)는 '~앞에'라는 뜻을 지니는 전치사 '프로'(pro)와 '폭력을 사용하다', '강제로 들어가다' 등의 뜻을 지니는 '비아조'(biazo)가 결합되어 '앞으로 내세우다', '선동하다'라는 뜻을 지닌 '프로비바조'(probibazo)의 분사 수동형이다.
이것은 어린 살로메가 간교하고 사악하며 잔인한 어머니 헤로디아의 강압에 가까운 권유에 따라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에서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도스'(dos; give)는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부정 과거 명령형은 반복되는 동작이 아니라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동작을 요구할 때 쓰인다.
또한 '이리'라는 뜻의 부사 '호데'(hode; here)가 사용되어 바로 잔치가 벌어진 그 장소에서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살로메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른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세례자 요한의 즉각적인 처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임금은 괴로웠지만'에서 '임금'('호 바실류스'; ho basileus; the king)이라는 말이 세례자 요한의 순교 기사가 수록된 마태오 복음 14장 1~12절 가운데서 여기만 나온다.
1절에서 그의 신분을 나타내는 '분봉왕'('테트라아스케스'; tetraarches; tetarach)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온 후, 계속 '헤로데'(Herodes)란 이름이 나오다가 본문에서 '분봉왕'이 아니라 '임금','왕'이라는 직함이 등장하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처형 결정의 기로에 놓인 이러한 시점에서 특별히 '임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가 임금으로서의 권한만을 행사하는 데 대한 조롱과 고발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웠지만'에 해당하는 '뤼페테이스'(lypetheis; was sorry; was distressed)의 원형 '뤼페오'(lypeo)는 여기서 수동형으로 쓰였는데, 이럴 경우 '슬퍼하다', '마음이 상하다', '고민스럽다'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닌다.
당시 헤로데 안티파스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의로운 이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상했을 것이고, 또한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세례자 요한을 처형한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소요 사태에 대하여 고민도 하는 혼란 가운데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원문 성경에는 '맹세'에 해당하는 '투스 호르쿠스'(tous horkoos; the oath's sake; of his oaths)가 복수형으로 나와 있어서 헤로데 안티파스가 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맹세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맹세를 되돌릴 수가 없었다.
당시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21절에 의하면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이었다.
자신의 그릇된 맹세와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불의(不義)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례자 요한의 처형을 명령한 이러한 행동에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비열함이 잘 나타난다.
한편, '소녀'에 해당하는 '코라시오'(korasio; girl; damsel)의 원형 '코라시온'(korasion)은 '처녀'를 뜻하는 '코레'(kore)의 지소어(指小語)로서 '작은 소녀'라는 뜻을 가지며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소녀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shalom)에서 파생한 '살로메'이며, 당시 나이는 15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평화'였으나 그녀는 전혀 평화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던 위대한 예언자를 죽게 함으로써 역사에서 악녀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특히 마태오 복음 14장 11절을 보면, 죄와 쾌락에 눈이 어두워 실로 주어서는 안되고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을 태연스럽게 주고 받는 비극의 역사가 연출되고 있다.
2024년 08월 03일 토요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헤로데가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말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는 요한이 누구인지 온전히 알지는 못하였지만 요한이 지닌 능력을 인정하기는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은 요한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데 다만 군중이 그를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가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요한을 죽이는 사람은 결국 헤로데입니다. 핑계를 대어도 소용없습니다. 헤로디아 때문에, 살로메 때문에 죽였다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헤로디아의 딸에게 약속하고 맹세한 것도 헤로데이고, 요한의 목을 베라고 끝내 명령을 내린 것도 헤로데입니다. 그는 진리를 알고 있었으나 자기 손으로 진리를 죽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마음에서 80퍼센트 정도 진리를 따르고 하느님을 따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순간에 진리를 저버릴 수 있습니다. 그가 양보할 수 없는 나머지 20퍼센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려놓을 수 없는 무엇이 남아 있을 때 그 진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진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목숨을 사람들의 손에 맡깁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보다, 자기 목숨보다 중요하였고 80퍼센트가 아닌 100퍼센트를 그 말씀에 바쳤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따름은 ‘전부’를 요구합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03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세례자 요한은 머리가 잘려야 했다.
복음(마태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 헤로데 자신이 죽인 요한이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 권력(勸力), 세상의 힘을 탐(貪)하는 자는 하느님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한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인식(認識)하지 못한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자식(子息)까지 망친다. 하느님의 힘보다 세상의 힘, 권력을 잡도록 부추킨다. 그것은 하느님께 등을 돌려 자식을 ‘몰록’(火神)에게 바치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역겨워하는 무서운 죄악(罪惡)이다.
(레위20,1-2)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누구든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사람이든 이스라엘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든, 제 자식을 *몰록에게 바치면, 그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 땅의 백성이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예레32,33-35) 33 그들은 나에게 얼굴이 아니라 등을 돌렸다. 내가 그들을 줄곧 가르쳤건만, 그들은 순종하지도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34 오히려 그들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 안에 *역겨운 것들(신상 탈출20,4)을 세워 그 집을 더럽혔다. 35 또한 그들은 ‘벤 힌놈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들을 짓고, 저희 아들딸들을 몰록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런 일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적도 없다. 유다에게 이따위 역겨운 일을 저질러 죄짓게 할 생각은 내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 인간의 맹세는 자신의 뜻, 의(義), 체면을 세우기 위한 것이나, 하느님의 맹세는 죄인(罪人)들의 구원(救援)의 약속이다.
(탈출6,8) 8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 차지로 주겠다. 나는 주님이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당시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루가3,15)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머리가 잘려야했다. 메시아 머리는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예수님께 알려졌고, 참 메시아, 주인,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체들에게 구원(救援)의 양식(糧食)을 먹여 살리시려 외딴 곳(에레모스-광야)으로 나가신다.
13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 외딴 곳, 광야(廣野)는 우리의 삶의 여정(旅程), 인생길이다. 광야는 마실 물, 먹을 양식이 없음을 뜻한다. 곧 세상에는 구원의 물, 양식이 없는 곳으로 하늘에서 내리시는 물(말씀)만 바라며 의지해 살아야하는 곳이다.
(신명8,2-3)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낮추고 굶주리게 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절대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뜻, 입에 맞지 않아서이다.(히브4,12) 말씀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영혼 구원의 양식이다.
그래서 부모(父母)들이 입(뜻)에 맞는 육신(肉身)의 양식을 먹도록 자식(子息)들을 부추킨다. 자신(自身)과 자식(子息)들을 망(亡)치며 죽이고 있는 것이다.
(시편53,4-5) 4 모두 빗나가 온통 썩어 버려 착한(구원) 일 하는 이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5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는가? 나쁜 짓 하는 자들 내 백성을 빵 먹듯 집어삼키는 저들 하느님을 부르지 않는 저들.
= 나쁜 짓 하는 자, 사람의 입맛(뜻, 욕망)에 맞춘 가르침, 곧 사람의 의(義), 소원을 위한 제사(祭祀)와 윤리(倫理)의 가르침으로 하늘의 의(義),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
(시편5,10) 10 그들 입에는 진실(진리)이 없고 그들 속에는 흉계만이 들어 있으며 그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들 혀는 아첨하기 때문입니다.
= 모든 이들이 영원한 멸망(滅亡)에 빠지는 길을 걷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외 아드님을 이 세상에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구원의 양식으로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다음절이 예수님께서 외딴 곳, 광야에서 땅(세상)의 양식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늘의 양식으로 바꾸어 먹이신다.
곧 빵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먹이신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자식들을 올바로 부추키게 하소서. 우리의 실체, 속셈을 보게 하소서. 구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올바른 기도를 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