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14,13-21)

2024. 8. 4. 오후 12: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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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일 월요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14,13-21)

 


1독서<하난야, 당신은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예레28,1-17)

1 유다 임금 치드키야의 통치 초기 제사년 다섯째 달에, 브온 출신의 예언자이며 아쭈르의 아들인 하난야가 주님의 집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말하였다.

2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3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 놓겠다.

4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

5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제들과, 주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6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였다. “아무렴,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 주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말을 실현시키시어, 주님의 집 모든 기물과 모든 유배자를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오.

7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의 귀와 온 백성의 귀에 전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시오. 8 예로부터, 나와 당신에 앞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들에게 전쟁과 재앙과 흑사병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소.

9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가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드러나는 것이오.”

10 그러자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내어 부수었다.

11 그러고 나서 하난야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벗겨 이와 같이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길을 떠났다.

12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13 “가서 하난야에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14 참으로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모든 민족들의 목에 쇠 멍에를 씌우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화답송>시편119,29.43.79.80.95.102(68) 주님,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저를 거짓의 길에서 멀리하시고,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당신 법규에 희망을 두오니, 진리의 말씀을 제 입에서 결코 거두지 마소서.

당신을 경외하는 이, 당신 법을 아는 이, 모두 저에게 돌아오게 하소서.

당신 법령 안에서 제 마음 흠 없게 하소서. 제가 부끄럽지 않으리이다.

악인들이 저를 없애려 노리지만, 저는 당신 법을 마음에 새기나이다.

당신이 저를 가르치셨기에, 당신 법규에서 벗어나지 않았나이다.

 

복음<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마태14,13-21)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제1독서 (예레 28,1-17)

 

"하난야 예언자는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17)

 

하느님께서는 하난야가 금년 내에 죽을 것을 예언하셨으며, 그는 예언대로 그해 7월에 죽었다.

 

만일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섯째 달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1절), 하난야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선포된 지 2개월 내에 죽은 것이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섯째 달 이후에 주어졌다면, 그보다 더 짧은 기간에 하난야가 죽은 것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난야의 죽음이 원인모를 질병이나 자연사에 의한 죽음이 아닌, 하느님의 사형 선고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적어도 당시 이 사건을 알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짓 예언자 하난야가 하느님의 사형 선고로 인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거짓 예언자를 보다 더 경계하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찰해 본다면, 하느님께서 하난야를 즉석에서 죽이지 않고 왜 잠시 기간을 주셨는가? 하는 점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레위10,1~7)와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경우(사도5,1~10)에 즉석 심판으로 그들의 생명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하난야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주셨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해 보고,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난야가 2개월 내에 죽었다는 사실을 볼 때, 그는 결코 그 기회에 회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난야는 하느님의 은혜를 거부한 반역의 태도를 철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하난야를 그 해가 넘기기 전에 죽이심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전능의 하느님이심과 더불어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쓰임받는 참 예언자임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하난야의 죽음 사건은 예레미야와 하난야의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남부 유다 백성 전체를 향한 하느님의 매우 강렬한 메시지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을 목도한 남부 유다 백성들은 이처럼 거짓 예언자의 죽음을 통해서 전하시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듣고 참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에 경청하는 것이 기대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의 사건을 경험하고도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남부 유다 백성들은 자신의 죄악의 길에서 결코 돌이키지 않았다.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바라신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극심한 경쟁 구도 속에서 각자의 이익과 손실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

폭력과 전쟁과 억울한 죽음이 난무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이가 평화를 누리고 아무도 굶지 않는 세상을 말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이 새로운 세상을 희망으로 일구어 가십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전하며 시작됩니다.

그의 죽음은 세상의 권력자인 헤로데가 자신의 생일을 맞아 연 연회 때에 일어났습니다.

식사가 의인의 죽음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세상의 식사가 펼쳐집니다.

이 새로운 세상은 이전의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곧 옛 세상의 삶의 방식에서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연민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살이에 지치고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논리에 충실합니다.

세상의 논리에 따라 생각하며 예수님께 말씀 드립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의 뜻을 좀처럼 굽히지 않습니다.

많은 군중을 먹이기에는 자신들이 가진 것이 너무나 적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가지 먹을거리를 더한 수는 일곱입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좋은 수, 완전한 수입니다.

많은 이를 위하여 일곱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자들의 말이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는 순간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온전히 예수님께 가져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바라신 세상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내 사람들이 풀밭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이전 세상에서는 주인이 좋은 자리에 앉아 종들의 시중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제자들이 허기진 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그들의 시중을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져온 빵을 들어 올리시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신 뒤 그것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도로 내주시어 사람들과 나누게 하십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많은 이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입니다.

 

이런 기적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응한 이들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온갖 무상의 선물에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응답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스폴랑코 니조마임-자비慈悲,

애간장이 녹는 마음이다또 조건 없이 생명을 키우는 여자의 자궁을 뜻한다.

 

 

복음(마태14,13-21)

13ㄱ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에레모스-광야)으로 물러가셨다.

= 앞 절에서 당시 메시아(머리)의 역할을 했던 요한이 죽고, 메시아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구원의 일을 하려 하심을 배웠다. 구원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심으로 이루어지기에(신명8,1-3참조) 예수님께서 외딴곳, 광야로 가신 것이다.

 

13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 가엾은 마음- 하느님의 자비다. 오늘 그 하느님의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 자비(慈悲)로 병을 고쳐주심이다. 곧 예수님께서 죄(罪), 병(病)을 가져가심으로 고쳐진 그 대속(代贖), 자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사53,3-4)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병고에 익숙한 이였다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하느님께 매맞은 자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 그 대속(代贖)을 다음절부터 다시 보여 주시는 것이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빵 다섯(모세5경-율법(律法)이다) 물고기 두 마리 (선(善)과 악(惡), 그 둘이다) 모두 심판(審判)으로 하늘의 생명을 받을 수 없는 부정함을 뜻한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 찬미(讚美 유로게오)- 유(선) + 로게오(말씀) 말씀으로 덮으시니 양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곧 말씀이신 예수께서 그 부정(不淨)한 음식을 당신이 덮으셔서 없애시고(뺏어 버리시고), 하늘의 양식(糧食)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비(慈悲)다.(루가1,50-55참조)

그리고 부정한 음식을 덮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부정함으로 들어가시어 부정함이 되시고 대신 당신의 생명을 양식으로 주셨다는 의미이다. 자비(慈悲)다.

 

(히브2,14-15) 14 이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 남은(페리쉬어- 차원이 다른) 부정한 땅의 음식과 차원이 다른, 곧 하늘의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 열둘(12)로 하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숫자12는 하느님의 아들, 사도를 뜻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자비, 새 계약으로, 그 생명의 말씀으로 먹었을 때....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 많은 사람들이 먹었다는 의미 보다, 많은 사람이 다섯, 곧 인간의 입에 맞는 육(肉)의 뜻을 위한 율법(律法)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제사(祭祀)와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자신의 뜻을 위한 인간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信仰)을 살고 있는 것이다.

 

(로마3,20-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제사윤리)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아가페)과 구원의 새 계약(언약(言約), 약속(約束))과 함께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그 애(哎)가 녹는 그 자비의 마음을 넣어 주셨으니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과 마음을 이웃과 살게 하소서, ~아멘!!!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4,13~21)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여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14) 

 

'군중'에 해당하는 '오클로스'(ochlos; multitude; crowd)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본문은 여기에 양과 정도가 몹시 많음을 나타내는 '폴뤼스'(polys; great; large)란 형용사까지 사용하여 마태오 복음 14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람들의 수효가 마태오 복음 14장 21절에 의하면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따라서 여자들과 아이들 수까지 모두 포함하면, 그 수가 2만명에 육박하는 상당히 많은 군중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14장 14절의 언급에서도 할 수 있지만, '군중'을 가리키는 희랍어 '오클로스'(ochlos)가 '귀족'과 대조를 이루는 '천민'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데서도 암시가 된다. 

 

이들은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께 큰 희망을 걸고 무리지어 나왔던 것이다. 

 

한편,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e; was moved with compassion; had compassion)의 원형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gchnizomai)는 '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있으며 상대방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목놓아 기다리다가 상당히 거리가 먼데도 아들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탕자의 아버지가 가졌던 측은한 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보여진다(루카15,20).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병자들을'에 해당하는 '아르로스투스'(arrostous; sick)의 원형 '아르로스토스'(arrostos)는 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 '알파'(a)와 '올바로 살다', '평안하다'(사도15,29)로 번역되는 '론뉘미'(ronnymi)의 변형이 합하여진 단어로서 '평안함이 없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육체적으로 병든 자를 가리키지만(마르코6,5; 16,18), 마음에 괴로움을 안고 사는 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당시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음을 알 수 있고, 14장 15절에 저녁때가 되었다는 표현도 예수님께 나아온 병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들을 고쳐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20240805일 월요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예레미야는 하난야의 말에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예레 28,6)라고 말합니다.

그는 멸망을 바라지 않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심판을 선고하라는 것이었기에 그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난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임금과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물리쳐 버립니다.

내 마음 안에도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명백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받아들일 때도 있지만, 알면서 거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거짓 예언자가 나를 속이는 순간에는, 정말 깊이 돌아보지 않으면 속아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하난야의 말을 따라가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부수시고 성전 기물들을 되찾게 하여 주신다는 말이, 그들이 믿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서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마음으로 속게 됩니다.

그런 마음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속삭입니다. 식별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에, 어떤 도식에 따라 간단하게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난야에게, 평화를 예언할 때는 그 말이 이루어져야 참예언자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멸망을 예언할 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판 선고를 들은 이들이 회개하면 그 심판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을 때는, 진실하게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05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성경(聖經)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복음(마태14,13-21)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 *‘배(교회)를 타시고’는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길, 방법이다. 그리고 그 배(船)는 구원의 진리(眞理), 길(道)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육로는 인간의 뜻을 위한 세상의 방법, 길(道)이다. *외딴 곳, 광야는 우리의 인생 길(道)로 마실 물, 먹을 양식이 없는 세상으로, ‘하늘에서 내리시는 말씀(물)을 먹는 것이 구원의 삶’이라 신명기 8장을 통해 공부했다.

그래서 땅(세상)의 양식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늘의 양식으로 바꾸어 먹이신 것이다. 곧 빵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먹이신 것’이라 공부했다.(토요묵상 참조)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 왜 가엾은 마음이 드셨을까? 구원의 길인 배(예수)를 타지 않고, 인간들의 뜻인 육로(陸路)로, 곧 인간의 길, 방법으로 찾아온, 열심을 부린 그들의 행위가 영(靈)이 병(病)든 모습이기에 가엾은 마음이 드셨던 것이다.

인간의 뜻(소원)을 이루기 위한 열심히는 하늘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병행복음인 마르코 복음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라한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구원의 양식으로 올바로 전해주는, 먹여주는 목자가 없어 영이 병들었다는 것이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 제자들도 하느님의 뜻,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을 깨닫지 못했기에, 육로의 길로 돌려보내 육(肉)의 양식(糧食)을 구(求)하도록 한 것이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곧 배, 교회 안에 함께 계신 예수님의 말씀이 구원의 진리, 구원의 양식임을 깨닫지 못해, ‘없다’고 한 것이다.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늘의 구원, 생명의 약속인 말씀, 성경(聖經)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육의 길인 교회 밖 세상의 말을 더 좋아하고 믿으려한다. 육(肉)을 만족시켜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거짓 사도들이 오늘 독서의 ‘하난야’처럼 사람의 욕망의 마음에 흡족한 말을 해, 헛된 거짓을 믿게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것이 믿음이라 착각하고 있다.

 

독서(예레28,15-17)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잘 들으시오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2티모3,15-16) 15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16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 성경은 육로의 길이 잘못된 것이라 꾸짖고, 구원의 길인 배(船) 안에 그리스도로 거저 새롭게, 의롭게 되도록 바로 잡으신다.(2코린5,17 로마3,24참조)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 육의 양식, 빵을 하늘의 양식, 말씀으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성찬례(聖餐禮)의 원형이다. 곧 십자가의 대속, 피의 새 계약의 말씀인 당신의 생명을 먹이신 것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 제자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예수님을 ‘모든 죄(罪)를 용서(容恕)하시는 새 계약’으로 전(傳)해 주어야 한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12) 광주리에 가득 찼다.

= 숫자 ‘12’는 하늘의 완전 수, 하늘아들의 숫자이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 그러나 모두 그 하늘(12)의 양식으로 먹지 못했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곧 자기 배를 불리는 기적의 빵으로 먹었다. 그래서 다음절이 예수께서 군중을 재촉하시어 그 표징(기적)의 자리를 서둘러 떠나게 하시고 풍랑(風浪)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몸(빵)을 용서(容恕), 구원의 새 계약(契約)의 말씀(12)으로 먹지 못하고 있다.

육로인 인간들의 지혜, 계명으로 육의 뜻, 만족을 위해 열심히 예수님을 찾으며, 그것이 믿음이라 착각하고 살았다. 믿음은 열심히 지켜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은 세상을,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육적(肉的) 나’, 옛 사람의 ‘나’를 버리게, 부인(否認)하게 한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게기도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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