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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12일 월요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전 세(稅) (마태17,22-27)
제1독서<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에제1,2-5.24-28ㄷ) 제삼십년 넷째 달 2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화답송>시편148,1ㄴㄷ-2.11-13ㄱㄴ.13ㄷ-14ㄱㄴㄷ ◎ 주님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 하늘 위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주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 홀로 높으시다. ◎ ○ 주님의 위엄 하늘과 땅에 가득하시다. 그분이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높이셨네.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 그분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찬양하여라. ◎
복음<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마태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에제1,2-5.24-28ㄷ)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6-27)
본문은 궁창 위의 한 아름다운 어좌의 형상에 대한 묘사이다. 어좌가 궁창 위에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나타낸다. 즉 궁창이 모든 피조 세계를 하느님의 영광의 어좌 아래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존재의 초월성과 위엄성을 과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궁창 위의 세계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후서 12장 1-4절에 기록한, 그가 환시중에 다녀온 셋째 하늘이며, 사도 요한이 묵시록 4-6장에서 기록한,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는 천국과 동일하다.
에제키엘은 그 궁창 위에 어좌의 '형상'이 있다고 기록한다. 이 형상은 그것이 이 땅에 있는 왕들이 앉는 궁전의 어좌(throne)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지, 정확히 그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어좌 형상의 모양이 마치 청옥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청옥'에 해당하는 '에벤 쌉피르'(eben saphir)라는 단어는 대부분 영역본에서는 푸르스름하며 투명할 뿐 아니라 광채를 발하는 보석인 '사파이어'(sapphire stone)로 번역하였다. 하느님의 어좌를 이 보석에 빗댄 것은 그 어좌의 거룩함과 순결성을 부각시켜 표현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한편 어좌 위의 한 형상이 있으며,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는 것은 정확하게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에제키엘이 목격한 존재가 이 지상의 사람의 모양을 닮았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
이 형상은 강생(육화;Incarnatio)하기 전, 천상에서 신적 신분으로 존재하셨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사람'에 해당하는 '아담'(adam)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만든 '사람' 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단어이다(창세1,26). 이 동일한 단어가 어좌 위에 계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가 장차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강생(육화)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필리2,8).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사람 모양 같은 형상, 즉 강생(육화)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다니엘이 티그리스 강가에서 보았던 그 형상과 외관이 유사하며(다니엘10,5.6), 에제키엘서 8장 2절에 기록된 주님의 권능의 현현을 묘사한 것도 유사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은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하느님의 모습(1티모6,16)을 연상시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불'에 해다하는 '에쉬'(esh)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위엄과 두려움, 심판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사방이' 란 표현은 그 사람 모양의 형상이 온통 불 같은 것으로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또한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에 해당하는 어구 '케엔 하쉬말'(keen hashimal)은 에제키엘서 1장 4절에서도 사용된 어구로서, 문자적으로는 '번쩍거리는 호박 같은 것' (like gleaming amber) 또는 '이글거리는 금속같은 것'(like gleaming metal)이란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
이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감히 쳐다볼 수 조차 없는 하느님의 영광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를 그대로 묘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신적 존재 자체가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요한은 파트모스 섬에서 본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태양이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서 엎드렸다(목시1,16.17). 사람의 모양같은 형상에서 이처럼 눈부신 광채가 비추는 것은 그가 빛 되신 하느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기 때문이다(히브1,3).
그 자신 역시 그 빛을 반영하는 빛과 동일한 존재이신 강생 이전의 성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요한1,9-12). 이러한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은 그분의 찬란한 영광뿐 아니라 그분의 빛으로만 이 세상의 어두움이 소멸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요한8,12).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때때로 성경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난해한 부분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의 말씀으로 시작되어, 곧바로 앞뒤 맥락과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성전 세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나옵니다. 그러고는 물에서 건져 낸 물고기와 그 입 속에 담긴 동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으로, 그 뜻을 유추하고 비교해 볼 다른 성경 구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초대 교회 공동체가 마주하였던 문제를 봅니다.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과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이들 사이에 성전 세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기에, 신자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유다교의 전통에 충실한 이들의 입장을 인정하였다는 설명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한 영성적인 해석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서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의 성경 본문을 직역하면 ‘자녀들은 자유롭다’입니다. 이를 통하여 오늘 복음의 주제를 자녀들의 자유로 보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자유의 대가로 우리가 내야 할 유일한 세금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형제적 사랑이라는 세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세금을 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물속에서 고기를 건져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곧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예속의 조건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시고자 당신 자신을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스스로 사람의 손에 예속되실 만큼 사람을 한없이 신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유롭지 못하고,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부모는 자유 의지로 기꺼이 아이를 보살피면서 스스로 아이에게 매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면 자유인으로서 다시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자유를 얻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내 자유가 예수님처럼 다른 이를 섬기고 사랑하는 자유인지 자문해 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17,22-27)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26ㄷ~27)
'그렇다면'에 해당하는 '아라 게'(ara ge)는 '그러므로', '따라서'라는 뜻을 가진 '아라'(ara; then)의 강조형이다. 왜냐하면 '게'(ge)는 어떤 낱말에 뒤따라와 그 낱말을 강조하는 접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뒤에 오는 '엘류테로이'(eleutheroi)의 원형 '엘류테로스'(eleutheros)는 '자유가 있다'(1코린7,39)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그렇다면! 아들들은 자유이다'(Therefore the sons are free; Then the sons are exempt)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당연히 성전 세가 면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전이 아버지의 집이고(요한2,16),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아들들' 혹은 '자녀들'에 해당하는 '호이 휘오이'(hoi hyoi; the children)가 복수형으로 나오는 것은 앞의 25절에서 복수형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전 세가 면제되는 대상은 성전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뿐이시다.
따라서 '자녀들'이란 표현은 일차적으로 면세의 대상자가 다수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임금의 자녀들의 실례가 예수님께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부분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자유와도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므로, 그들도 스승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서 그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우리가 ~비위를 건드릴 것'에 해당하는 '스칸달리소멘'(skandalisomen; we should offend)의 원형 '스칸달리조'(skandalizo)는 원래 길 가운데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또는 방해물을 놓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죄짓게 하다'(루카17,2; 마르9,43)로도 번역되고 있다. 이것은 상대로 하여금 죄짓도록 유혹하는 악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단어의 용례를 적용하면,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아드님되시는 예수님의 신분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예수님의 행동을 사람들이 이용하여 그들 또한 성전 세를 내지 않는 행동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는 '버리다', '떨어져 나가다'(마태26,31), '배척하다', '못마땅하게 여기다'(마르6,31)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믿고 순종해야 할 대상을 불신하기 시작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내용을 고려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에 대한 태도를 사람들이 오해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불신하게 되는 것을 미리 막고자 하시는 의도도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칸달리조'(skandalizo)는 '귀에 거슬리다', '투덜거리다'(요한6,61)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계셨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이것이 성전에 대한 모독으로 불쾌하게 여기고 분개할 수 있는 사건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앞으로 반드시 수행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중요한 사명이 남아 있었기에, 더 큰 목표를 위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하셨던 것이다.
'낚시를 던져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주어라.' 이 구절은 성전 세를 지불하기 위한 예수님의 기적으로 오직 마태오만이 기록하고 있다.
'낚시를'에 해당하는 '앙귀스트론'(angistron; an hook)은 '구부러진 것'을 뜻하는 '앙코스'(angkos)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서 한 번 사용되었다.
'스타테르 한 닢'에 해당하는 '스타테라'(statera; a piece of money; a four-drachma coin)은 '돈 한 세겔'로서 신약 시대에 통용되었던 '은전'(銀錢)의 명칭이다. 1스타테르는 4드라크마이며, 성전 세겔로는 한 세겔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당연히 율법의 요구에서 면제되신다. 그렇지만, 당신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시어 겸손하게 율법에 순종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 성전 세를 마련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지신 하느님의 참 아드님되신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2024년 08월 12일 월요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부터 두 주간 동안 평일에는 에제키엘서를 읽습니다. 에제키엘은 대략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기 오 년 전쯤부터 예언 활동을 시작하여, 멸망하고 십오 년쯤 지난 때까지 활동합니다. 그는 멸망 전에 사람들이 설마 예루살렘이 파괴되지는 않으리라고 믿던 때에 멸망을 선포하고, 멸망한 뒤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구원을 선포하여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거스르는 예언자였습니다. 처음 그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때는, 이미 바빌론이 한 번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여호야킨 임금을 비롯하여 꽤 많은 사람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다만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이라고, 유배 간 이들이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제였던 에제키엘은 사회의 지도층에 속하고, 그래서 그도 유배를 가서 “칼데아인들의 땅”(에제 1,3)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칼데아인들의 땅’에서 주님의 말씀이 에제키엘에게 내리고, 그는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오늘 독서의 네 생물들에게는 날개가 있고, 또 바퀴가 있습니다(1,15.21절 참조).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날개와 바퀴가 달린 어좌를 타시고, 어디라도 계시며 어디에서도 당신 말씀을 내리십니다. ‘칼데아인들의 땅’에 가서 살고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거기에서도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질 때가 머지 않았습니다. 왜 성전이 무너져야 할까요? 성전 파괴는, 하느님을 성전 안에만 가두어 두는 사람들의 생각을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그리스도를 왜 따르고, 왜 믿는가?
복음(마태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 하느님의 외 아드님께서 사람들을 구(求)하시려 사람의 육신(肉身)을 입고 오셨는데, 그 사람들에 의해 죽으신다. 정말 몹시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 슬픔의 의미가 복음(福音)이다. 곧 땅(죄인), 그 없음의 존재들을 하늘(3)의 존재로 구(求)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사흗날(3)로 부활(復活)하심이다. 창조(創造) 이전에 미리 정(定)해진 ‘구원자(救援者)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에페1,4)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 하느님의 아들, 자녀 됨이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 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죽이고’다. 곧 첫아들로서 ‘구원(救援)의 양식(糧食)으로 오신 주님’을 뜻한다.
(루가2,7)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짐승, 죄인들의 먹이통)에 뉘었다. 여관(율법의 의인)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그리고 ‘스타테르 한 닢’- 직역하면 ‘은전(銀錢)’이다.(공동번역) 그리고 은전(銀錢)은 죄인(罪人)들의 속전(贖錢)을 뜻한다.
(마태27,3-4) 3 그때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그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그 *은돈 서른 닢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면서 4 말하였다. “죄 없는 분을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 성전(聖殿)은 하늘나라를 모형(模型)한다. 곧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속전(贖錢)으로 거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세(聖殿稅)를 걷는 이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라기 보다, 첫아들 곧 당신의 대속(代贖)으로 얻는 몫인 하늘의 상속, 재산인 영원한 생명, 구원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이다.
(마태17,27)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으시오.” (200주년기념성서~)
(1베드1,2-9) 2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선택하신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룩해져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고, 또 그분의 피가 뿌려져 정결하게 되었습니다.(로마8,1-3 에페1,7 히브10,22)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새 창조)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하늘 아래 모든 것이 근심, 걱정임을, 실체가 아닌 헛되고 헛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코헬1장), 하늘의 참, 진리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의 힘인 영원한 용서, 자유, 의로움, 거룩, 안식, 생명에 대한 믿음이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 하늘의 영광, 기쁨은, 땅의 어둠, 시련, 고난 속에서만 느낀다. 보호자 성령(聖靈)께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곧 깨닫는 것이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 신앙(信仰)의 목적(目的)이 하느님의 뜻인 ‘새 창조, 영혼의 구원’일 때 감사(感謝)가 나온다. ‘내 뜻, 소원’일 때는 늘 근심과 걱정만 나온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로 죽으러 오셨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음도 잊지않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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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전 세(稅) (마태17,22-27)
2024. 8. 12. 오전 7: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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