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 (마태18,1-5.10.12-14)

2024. 8. 12. 오전 11: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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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일 화요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 (마태18,1-5.10.12-14)

   


1독서<그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시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에제2,8-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화답송>시편119,14.24.72.103.111.131(103) 주님, 당신 말씀 제 혀에 달콤하옵니다.

온갖 재산 다 얻은 듯,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당신 법이 저의 즐거움, 그 법은 저의 조언자이옵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당신 말씀 제 혀에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 다옵니다.

당신 법은 제 마음의 기쁨, 영원히 저의 재산이옵니다.

당신 계명을 열망하기에, 저는 입을 벌리고 헐떡이나이다.

 

복음<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이르셨다.

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제1독서(에제2,8~3,4)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3,3)

 

에제키엘 3장 3절인 본문은 주님께서 먹여 주시는 그 두루마리를 에제키엘 예언자의 몸으로 완전히 흡수하여 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일부분으로 만들어 버리라는 명령이다.

 

에제키엘이 말씀에 완전히 동화될 때에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 주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배와 창자속에 들어가 채워진 말씀이 그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그 자신을 말씀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본문에서 '배'와 '속'(창자)에 해당하는 '뻬텐'(beten)과 '메에'(meeh)는 각각 위(stomach)와 내장(bowel)을 의미하는 단어들로서 인간의 신체 내부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소화기관이나 내장 조직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히브리인들에게 감정과 인격의 자리로 인식되는 곳이다.

 

따라서 이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라는 것은 그의 감정과 인격, 내면을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우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채워라'에 해당하는 '테말레'(themalle)는 원어의 뉘앙스를 고려할 때 차고 넘치도록 가득 채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에제키엘 예언자 자신의 영혼을 말씀으로 충만히 채우라는, 즉 그가 말씀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예언자는 말씀에 충만하여지고, 그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의 생각이 말씀과 같고, 말씀이 곧 그의 생각이 되어 그가 전하는 것마다 모두 말씀이 되는 차원에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의 두루마리로 에제키엘의 내면을 가득 채우라는 명령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타인의 사상, 세상의 이론들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충족하게 채워졌다는것은 동시에 그가 충분히 그 말씀을 대변할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실로 말씀이 에제키엘 안에 깊이 인격화됨으로써 예레미야처럼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20,9)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참되고 의로운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로막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4,20)하고 담대하게 선언한 것처럼, 

예레미야 자신도 자신에게 임하였을 뿐 아니라, 그 내면에 차고 넘치도록 충분하게 채워져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본문에서 '꿀처럼'에 해당하는 '키드바쉬'(kidbash)의 원형 '떼바쉬'(debash)는 벌이 만드는 꿀(honey)을 의미한다(탈출3,8; 1사무14,25).

 

꿀은 강한 단 맛과 높은 영양분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구약 성경에서 주님의 율법 및 말씀은 흔히 꿀보다 더 달콤한 것으로 묘사된다(시편19,11; 119,103).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보배로우며 꿀보다 생청보다 더욱 달다네."(시편19,11)

 

"당신 말씀이 제 혀에 얼마나 감미롭습니까!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 (시편119,103)

 

한편 본문은 사도 요한이 받아 삼킨 두루마리가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다는 사실(묵시10,9~10)과 비교할 때, 뱃속에서는 쓰렸다는 내용이 없는 문장이다.

 

삼킨 말씀이 뱃속에서 쓰렸다는 것은 그 메시지의 내용이 혹독한 심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또는 그 말씀을 인격화하는 작업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반(反)하기에 그만큼 처절한 자기 인내와 수련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에제키엘이 받은 메시지의 경우도 동일하다(에제2,1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뱃속에서의 상태는 기록되지 않고 단지 입 속에서의 상태만 기록된 것은, 반역적이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전해지는 그 메시지의 내용이 옳고 정당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로 선택받은 것을 아는데서 오는 기쁨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곧 유다인 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썼다고 알려진 마태오 복음사가는, 구약의 모세 오경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산상 설교(5,1─7,29 참조)를 필두로, 선교에 관한 말씀(10,1-42 참조), 비유로 전하신 말씀(13,1-52 참조), 교회 공동체를 위한 말씀(18,1-35 참조),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미래에 관한 말씀(24,1─25,46 참조)으로, 이렇게 모세 오경의 가르침에 대응하려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한 예수님 말씀의 첫 부분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맨 먼저 다룹니다.

말씀의 첫 부분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질문에는 세상에서와 같이 교회에서도 큰 사람, 높은 사람, 더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제자들의 본능적인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 자리를 탐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은 이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말씀의 연결성을 생각해 보면 모든 회개의 종착점은 우리가 어린이와 같이 되는 데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마치 아버지의 품 안에 있는 갓난아기처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믿는 이들의 겸손한 마음과 태도라고 말합니다.

겸손한 마음이 우리를 참된 신자로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비결이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온갖 유혹을 떨쳐 내시며 하느님을 신뢰하신 원동력입니다.

 

이른바 ‘어른들’과 ‘주인들’만 가득한 공동체는 미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묵상하며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가장 작은 이가 되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8,1-5.10.12-1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0)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14)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의 원형 '호라오'(horao)는 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다'(요한8,57)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알다', '조심하다', '유의하다'라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두어 유의해서 반드시 지켜야 함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실천적 명령이며, 또한 현재 명령형이기에 희랍어에서 현재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항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kataphromesete; look down; despise)의 원형 '카타프로네오'(kataphroneo)는 '업신여기게 되다','가볍게 여기다'(마태6,24), '업신여기다', '멸시하다'(로마2,4)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에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강력한 금지를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5~9절에 뒤따라 나오지만, 내용상 14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10절에서 14절까지의 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18장 10절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14절) 이루기 위해서는작은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천사들이'에 해당하는 '앙겔로이 아우톤'(anggeloi auton; their angels)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은 앞서 나온 '작은 이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를 임명해 두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2,15).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라고 계시되어 있다.

 

이 천사들의 기능과 역할 및 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을 지키는 천사가 항상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이 하느님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은 '작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이들' 즉 예수님께 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잃어버리는'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ould be lost; should perish)의 원형 '아폴뤼미'(apollymi)는 돌보는 사물 혹은 짐승 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잃다'(마태15,24)라는 뜻만이 아니라, 

일이 어그러지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망하다'(마태26,52)는 뜻과 그리고 영원한 생명(구원)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멸망하다'(요한3,16)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잃어버리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 품을 떠나 죄의 길에 머물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나타낸다.

 

 

 

 

 

 

20240813일 화요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마태오 복음서 18장은 교회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읽은 어린이에 관한 말씀 다음에는 그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고, 그다음에 다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말씀 다음에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의 문제는, 나 혼자만 죄를 짓지 않고 나 혼자만 구원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백 마리 가운데 나를 포함한 아흔아홉 마리가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잘 돌아갔다고 하여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은 에제키엘에게도, 동족에게 가서 경고하라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그가 경고를 하지 않는다면 악인이 죽은 책임을 그에게 묻겠다고 하십니다.

오래전 일이 떠오릅니다.

어떤 신부님과 꽤 먼 길을 가던 중에, 작은 휴게소 같은 가게에 들렀습니다. 가게에 있던 자매님은 자기가 오래전부터 냉담 중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그 자매님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결국 고해성사를 보게 하였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솔직히 신부님이 너무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성사를 보아도 내일부터 다시 냉담을 할 텐데 괜히 마음에 걸리는 일을 더 만드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일이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날까요? 그 일을 저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 자매님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혹시 그 뒤에 또다시 냉담하였다 하더라도, 그날의 기억은 이 자매님을 계속 교회로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신부님의 모습에서 저는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를 보았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그리스도 한 분만이 어린 아이로 오셨고순종하셨다.

 

1독서(에제2,3.8.8-3,4)

야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내가 이스라엘 자손들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 소원(所願)을 위한 신앙(信仰)을 산다는 것이다.

 

그들이 듣든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8 “너 사람의 아들아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 한분이신 창조주(創造主)의 손이다. 곧 창조(創造)의 뜻, 하느님 구원(救援)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떠나 반항(反抗)했기에 비탄(悲嘆)과 한숨의 두루마리가 되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이 두루마리를 먹고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 그런데 입에 꿀처럼 달콤한 말씀을 먹지 않고, 왜 적대(敵對)해 반항(反抗)할까? 입에는 달지만 뱃속으로 들어가 배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곧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면, 말씀이 그 사람의 뜻, 욕망(慾望)을 부수기 때문이다.

어제도 확인 했듯 우리의 뜻, 소원을 들어 주시기 위해 오신 구원자가 아니시기에 말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를 죄(罪)에서 구(求)하시러 오신 그리스도’시다.

 

그 하늘나라를 묵시록(黙示錄)으로 가 보면~

(묵시10,8-11) 8 하늘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가 다시 나(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가서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그 천사의 손에 펼쳐진 두루마리(말씀)를 받아라.”

=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의 권능(權能)을 받은 천사(天使)다.

그래서 내가 그 천사에게 가서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자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받아 삼켜라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10 그래서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11 그때에,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에 관하여 다시 *예언해야 한다.” 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려왔습니다.

= 그러니까 말씀을 떠나든, 먹든 비탄과 탄식,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의 삶이 한숨과 고통, 슬픔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떤안 한숨은 영원한 절망(切望)이지만, 말씀 안에 배 쓰림, 한숨, 슬픔은 영원한 안식(安息), 평화(平和), 생명(生命), 곧 새 창조를 이룬다.

 

(2코린7,8-10) 8 내가 그 편지(두루마리말씀)로 여러분을 슬프게 하였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사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을 슬프게 하였음을 압니다그러나 내가 한때 후회하였을지라도 이제는 기뻐합니다여러분이 슬퍼하였기 때문이 아니라슬퍼하여 마침내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은 하느님의 뜻에 맞게 슬퍼한 것이니우리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10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 회개(悔改 하마트리아)는 잘못을 반성(反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옴’을 뜻한다. 곧 말씀 안에 한숨, 슬픔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아들, 어린 아이 자신을 낮추시어,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의지(依支)하여 그 아버지의 구원(救援)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殉名)하신,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 오늘 복음(福音)이며 성경(聖經) 전체, 곧 하느님의 두루마리 하나, 한 권의 책이다.

 

오늘 복음중 에서 어린이 하나가 예수님을 비유(比喩)하심이다.

복음(마태18,1-5)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시어 하느님 아버지만을 의지(依支)하여 살아야 함을 말씀하심 인데, 그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장(當場)에는 배의 쓰라림, 고통, 슬픔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평화(平和), 기쁨을 낳는다. (히브12,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順從)한 사람이 있는가? 성경(聖經)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러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 한 분만이 ‘어린 아이’로 오셨고, 순종하셨다. 곧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신 예수님, 그분의 지체로 한 몸이 되었을 때,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오늘삶의 쓰라림한숨슬픔이 내일의 영원한 평화기쁨큰 사람이 되게 오늘 말씀이 저희 안에서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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