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15일 목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1,39-56)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다는 믿을 교리에 따라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의무 축일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제1독서<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묵시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화답송>시편45,10.11.12.16(◎10ㄷㄹ) ◎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당신 사랑을 받는 여인들 가운데, 제왕의 딸들이 있고,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 ◎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
○ 임금님이 너의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 ◎
○ 기쁨과 즐거움에 이끌려, 임금님 궁전으로 들어가는구나. ◎
제2독서<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1코린15,20-27ㄱ)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복음<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42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묵시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 두개의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11,19; 12,1~5)
요한 묵시록 11장 19절에는 하느님의 계약궤가 보인 후, 최후 대재앙의 징조들 곧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고 계시한다. 여기에 언급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과 큰 우박은 모두 종말론적인 심판과 하느님의 현현의 맥락에서 나오는 전용 술어이다.
묵시록에서 이와 관련하여 언어적 병행을 이루는 최초의 언급은 4장 5절인데, 이것은 종말론적 심판의 진원지가 하늘 어좌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심판의 강도가 어떠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늘 어좌에서 시작된 종말론적 심판은 묵시록이 진행될수록 그 강도가 더할 나위없이 점증한다.
묵시록 8장 5절, 11장 19절, 16장 18절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데, 그 중에서 11장 19절은 모든 계약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일련의 말세의 대재앙을 통해 당신의 계약을 이루실 것을 시각적 이미자와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매우 생생하게 잘 드러낸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 두개의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12,1)
사도 요한이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환시 가운데서 본 것은 한 여인이었다. 여기서 '여인'으로 번역된 '귀네'(gyne)는 앞서 언급된 '표징'(세메이온; semeion)과 동격을 이룬다. 따라서 요한이 본 큰 표징 가운데 첫 번째의 것은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도 요한의 환시에 등장한 여인은 태양을 입고 있었다. 본문에서 '입고'로 번역된 '페리베불레메네'(peribeblemene)는 '착용하다', '옷을 입다'라는 뜻을 지닌 '페리발로'(periballo)의 완료 동사이다.
이것은 '호 헬리오스'(ho hellios; the sun; 태양)의 목적격으로서 '태양을'으로 번역된 '톤 헬리온'(ton hellion)과 함께 쓰여 태양을 옷삼아 입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묘사는 즉시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고귀와 영화를 입으시고 빛을 겉옷처럼 두르셨습니다. 하늘을 차일처럼 펼치시고' (시편104,1~2) 라는 시인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또한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둔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아가6,10)을 연상시킨다.
하느님께서 옷을 입은 것과 같이 빛을 입으신 것처럼,이 여 인은 옷을 입은 것과 같이 태양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이 여인이 하느님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태양을 입고 있는 이 여인은 명백히 묵시록 17장 4절에 언급된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는 여자' 곧 대탕녀 바빌론과 대조된다.
다음으로 이 여인의 발밑에 달이 있었다. 본절에서 '발끝에'에 해당하는 '휘포카토 톤 포돈 아우테스'(hypokato ton podon autes)에서 '밑에' 혹은 '아래'로 번역된 '휘포카토'는 본래 공간적으로 '아래'란 뜻이다.
여기서는 '발'을 뜻하는 '호 푸스'(ho pus)의 속격 '톤 포돈'(ton podon)과 함께 쓰여 지배와 군림의 비유적 뉘앙스를 드러낸다. 또한 여기서 '달'(he selene; the moon)은 고대 월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여인이 달을 밟았다는 것은 그녀가 시간에 대한 완전한 통치의 권세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그녀는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쓰고 있었다 ('스테파노스 아스테르논 도데카'; 'stephanos asteron dodeka'; a crown of twelve stars on her head).
일반적으로 면류관(화관)은 승리와 왕권의 상징이다(묵시2,10). 또한 숫자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묵시21,12)나 어린양의 열두 사도와 관련된다(묵시21,14). 특히 여기서는 간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별'은 약속의 자손을 나타낸다(창세15,5). 따라서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은 승리한 하느님 백성의 충만한 수효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 역시 묵시록 12장 3절에 묘사된 붉은 용의 머리에 있는 일곱개의 작은 관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요약하면, 본절에 묘사된 한 여인은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며 시간의 흐름 즉 역사에 대한 통치의 권세를 소유하고 있고, 심지어 열두 지파나 열두 사도가 상징하고 있는 모든 간택받은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다.
이 여인은 우선 문맥상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묵시1,17). 이 여인은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위해 예비된 그의 '신부'('헤 귀네'; 'he gyne'; 신부)이다 (묵시19,7).
본문에 언급된 태양과 달과 별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영적 신부이신 하느님의 교회, 즉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이 지니는 영광스러움의 빛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2)
찬란한 영광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를 상징하는 여인, 곧 어린양의 신부(아내)는 아기를 배어 해산하게 되자 아파서 괴로움으로 울부짖는다.
사도 요한은 본절에 언급되는 동사의 시제를 모두 현재형으로 쓰면서 마치 해산하고 있는 여인 곁에서 해산의 전과정을 목도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즉 아기를 배어 고통중에 해산하는 여인의 모습을 시각적이면서도 청각적으로 매우 생생하고 실감나게 드러낸다.
본문에서 '아기'로 번역된 '가스트리'(gastri)는 문자적으로 '복부', '자궁'을 뜻하는 '가스테르'(gaster)의 여격으로서,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엔'(en)과 '소유하다' 라는 뜻을 지닌 원형 '에코'(echo)의 현재분사 '에쿠사'(echusa)와 함께 여인이 자궁 속에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아이는 누구인가? 묵시록 12장 5절에 의하면, 그 사내아이는 장차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이다(묵시12,17). 그러므로 이 아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3)
사도 요한은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묵시록 12장 1절에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라는표현을 상기시킨다.
즉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묵시록 12장 1절에 언급된 동일한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묵시록 12장 3절 이하의 내용과 묵시록 12장 1~2절에 언급된 내용을 구조적으로 병행시킨다.
즉 그는 여인이 해산하는 장면과 크고 붉은 용의 등장을 이중 노출(double exposure) 기법을 사용하여 뚜렷하게 대조한다. 이것은 앞으로 여인이 낳을 아이와 붉은 용 그리고 여인과 붉은 용과 관련하여 그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큰' 에 해당하는 '메가스'(megas)는 '커다란', '위대한'이란 뜻으로 용의 대단한 위엄과 용모를 짐작케 한다. 또한 '붉은'으로 번역된 '퓌르로스'(pyrros)는 대체적으로 '살인', '학살', '살기' 등 호전성을 자극하는 색깔이란 점에서 본문에 언급된 용의 호전성과 공격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요한8,44).
구약 성경에서는 용에 대한 암시가 대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이스라엘의 적대자와 결부되어 나타난다. 시편 74장 13~15절, 이사야 27장 1절, 이사야 51장 9절, 에제키엘 29장 3절, 욥기 40장 18절, 욥기 40장 15절에 언급된다. 구약 성경에서 용과 관계된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하느님의 적대자로 간주된다.
사도 요한은 이방 신화나 이교 문헌들이 아니라 바로 구약 성경의 이러한 용의 이미지를 빌어와서 '사탄'(묵시12,9)을 상징화한 것이다(묵시20,2).
이 용은 본절에서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는데, 사탄의 외양이 이처럼 자세히 묘사된다.
'머리'(kephallas; 케팔라스)는 주로 지식과 지능, 나아가 권세를 상징한다. 더군다나 용의 머리의 수효가 '일곱'(hepta; 헵타)인데, 묵시록에서 숫자 '7'은 완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하므로(묵시1,4; 5,1; 13,1; 17,3), 붉은 용이 일곱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용이 강력한 악의 세력임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또한 용은 열 뿔을 가지고 있는데, '열 뿔'('케라타 데카'; kerata dek)은 틀림없이 다니엘 7장
7절, 8절에서 다니엘이 본 네 번째 짐승 환시와 병행된다.
'뿔'(kerata)이 본래 '권세'나 '힘'을 상징하고, 숫자 10 역시 7과 더불어 완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한다면, 용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급된 열 뿔 역시 사탄의 강력한 권세에 대한 상징적 묘사로 이해된다(묵시록 13장 1절과 묵시록17장 12절의 바다에서 나온 짐승도 동일한 표현임).
나아가 사탄을 상징하는 크고 붉은 용은 그가 가진 일곱 머리에 일곱 관(작은 면류관)을 썼다. 그런데 본문에서 '작은 관'으로 번역된 '디아데마타'(diademata)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묵시록 2장 10절에서 순교자적 충성을 요구하면서 약속했던 '생명의 화관'과 대조된다.
'디아데마타'는 '둘러싸다', '둘러감다' 라는 뜻을 지닌 '디아데오'(diadeo)에서 파생한 명사 '디아데마'(diadema)의 복수형이다(묵시13,1참조). 이것은 본래 페르시아 왕들이 그들의 관을 두르는데 사용한 푸른 띠를 가리킨다.
이것은 '작은 왕관을 그 머리에 많이 쓰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묵시19,12)에 대한
거짓 모방이다. 따라서 사탄이 쓴 일곱 작은 관은 '승리의 면류관이 아니라 찬탈한 권위의 면류관' 곧 거짓 면류관이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었습니다' (4)
본문에서 '꼬리'(ura; 우라)를 사용하여 자신의 위엄과 용모를 자랑하고 있는 용은 마치 '전갈같은 꼬리에다 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꼬리에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칠 권한이 있었던'(묵시9,10) 메뚜기(황충)을 연상시킨다.
메뚜기의 꼬리가 사람을 해치는 권한을 지니고 있듯이, 용의 꼬리 역시 하늘의 별의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에 던질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특히 꼬리를 부각시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머리가 정정당당함을 상징하는 것과 반대로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정한 방법, 즉 속임수를 사용하였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에 묘사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던지는 용의 행위는 다니엘 8장 10절, 곧 '그것은 하늘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지더니, 그 군대와 별들 가운데에서 일부를 땅에 떨어뜨려 짓밟았다'라는 어구와 관련된 듯이 보인다.
여기서 '삼분의 일'(to triton; 토 트리톤)이 일곱 나팔 재앙 시리즈(묵시8,1~12)에서 언급된 '삼분의 일'이 함축하듯이 '제한'과 '한정'의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면, 이것은 하늘의 별들을 모조리 땅으로 쏟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 나팔 재앙이 피조계와 사람에 대해 치명적이듯이, 본문의 용의 행위 역시 그 결과가 치명적이다(묵시9,1참조). 여기서 언급된 하늘의 별 삼분의 일 역시 천사의 자리에서 타락한, 부분적인 마귀 세력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땅으로 던져진 별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본절 하반절에 언급된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라는 문구와 관련된다. 즉 용이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 것은 여인이 해산할 바로 그 아이를 삼키기 위한 일종의 예비 과정이다.
본문에서 '앞에 지켜 서'로 번역된 '헤스테켄 에노피온'(hesteken enopion)은 '앞에서'(before)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에노피온'과 '자리잡다', '서다', '세우다'라는 뜻을 지닌 '히스테미'(histemi)의 미완료 능동태가 함께 사용된 것이다.
'헤스테켄'은 미완료 능동태로서 이제 막 해산하려는 여인에 대한 용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낸다. 용이 여인 앞에 이와같이 버티고 서 있는 것(stood before; stood in front of the woman)은 여인이 해산하면 아이를 삼키기 위해서이다.
또한 본문에서 '삼켜 버리려고'로 번역된 '카타파게'(kataphage; devour)는 '먹어치우다'는 뜻을 지닌 '카테스티오'(katesthi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이다.
이 표현은 탈출기 1장 16절과 예레미야서 51장 34절을 연상시킨다. 탈출기 1장 16절에 파라오는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라고 말하며,
예레미야서 51장 34절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나를 잡아먹고 나를 무너뜨렸다. 그는 나를 빈 그릇으로 만들었다. 그가 용처럼 나를 삼켜 나를 진미로 삼아 자기 배를 채우더니 다시 뱉어 냈다.'라고 하며 네부카드네자르의 이스라엘 침공을 묘사한다.
말하자면, 파라오가 히브리인 남아를 살해하라고 명령한 것과 같이 그리고 네부카드네자르가 이스라엘을 삼킨 것같이, 본문에서 붉은 용으로 상징되는 사탄은 아이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삼키려고 한다.
사탄의 이와같은 시도는 실제로 영아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려는 헤로데의 시도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 내내 계속되다가 십자가 처형으로 절정에 달한 바 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5)
묵시록 12장 5, 6절에서는 민족을 다스릴 아이의 출생과 여인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묘사하고 있다.
붉은 용의 위해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들을 낳았다. 본문에서 여인이 아이를 해산하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 Incarnatio)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본절의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라는 것은 '너는 그들을 쇠지팡이로 쳐부수고 옹기장이 그릇처럼 바수리라'는 시편 2장 9절의 노래와 같다.
동일한 표현이 티아티라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약속인 묵시록 2장 27절에서도 언급되고,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종말론적인 심판을 수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강력한 면모는 묵시록 19장 15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한편, 본문에서 '들어 올려졌습니다'로 번역된 '헤르파스테'(herpasthe)는 '이끌려 가다', '끌어 올리다'라는 뜻을 지닌 '하르파죠'(harpazo)의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그런데 본문은 누가 그 아이를 하느님 대전과 그분의 어좌로 올려 갔는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하느님께와 그분의 어좌로' 승천하신 사건을 가리킨다면, 성부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주도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본절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이 누락된 채 강생과 그의 승천 사실만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용이 여인을 경계한 것이 아무 소용없었다'라는 사실, 곧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패배시키기는 커녕,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어좌 앞으로 유유히 올라 가심으로써 사탄에 대한 승리를 확증하셨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태양을 입은 여인은 하느님의 속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달을 밟고 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 즉 역사(歷史)에 대한 완전한 통치의 권세를 소유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쓰고 있다는 것은 12지파와 12사도를 상징하는 간택받은 교회, 승리한 하느님 백성의 충만한 수효를 의미하며, 이것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정배인 성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톨릭 교회는 이것을 성부의 딸이시요, 구세주의 모친이시며 성령의 정배(짝)이신 성모 마리아에게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3년 08월 15일 월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대형 유람선을 탄 승객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다 그날 식단과 놀 거리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영원성을 삭제하면 지평선은 언제나 좁게 보인다.”라는 어느 이탈리아 주교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먼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들에게는 올여름에 어디 갈 것인지, 돌아오는 금요일에는 어떤 클럽에 갈 것인지,
오늘 저녁을 먹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흥미로운 관심사입니다.
이런 현상은 어른들 탓이 큽니다.
어른들의 생각과 삶 속에서 점점 ‘힘들지만 참는다’, ‘영원하다’,
‘결정적이다’ 등과 같은 말이 사라졌고, 그 영향이 젊은이들에게서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는 점점 ‘지속’, ‘충실’, ‘인내’와 같은 낱말을 멀리하려 합니다.
현재가 영원할까요? 현재를 영원한 것으로 믿고 살아야 할까요?
오늘 제1독서인 요한 묵시록은 우리에게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그는 한 아기를 낳은 빛나는 옷을 입은 여인입니다. 붉은 용이 이 여인을 적대시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아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여인은 광야로 숨습니다.
이 여인은 명백히 교회를 상징합니다. 또한 구세주 메시아를 바라는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용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뱀을 떠오르게 합니다.
모든 악이 폭력을 휘두르며 아기와 교회를 반대하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교회는 아기를 지켜 내고 우리는 광야로 피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주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귀의 시련과 유혹에 시달리겠지만 그가 우리를 죽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성모님의 위대함을 알리는 진짜 이유를 알려 줍니다.
바로 그분의 믿음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믿음은 성모님의 온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가 썩을 몸으로 끝날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리라는 것을 믿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인생입니까? 우리가 탄 배의 종착지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귀양살이하는 하와의 자손들이 슬픔의 골짜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성모 찬송’ 참조)라는 말처럼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이 길의 끝은 성모님 생애의 끝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어머니처럼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8월 15일 월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묵시 11,19ㄱ; 12,1-6)
11,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 ‘계약 궤’- 속죄판(대속의 예수) 때문에~ 천사가 심판을 할 수가 없어 죄인들이 용서를 받는 그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계약의 궤이다. 그것이 하느님나라의 원리이고 그 하느님의 계약이 나타난 것이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 여인, 여자(테무트)는 그릇을 뜻한다. 곧 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인 사람으로 열두개의 별을 받은 열두지파인 아들들, 사도교회를 뜻한다.
(시편89,36-38) 36 나의 거룩함을 걸고 이 하나를 맹세하였노라. 나는 결코 다윗을 속이지 않으리라. 37 그의 후손들은 영원히 존속하고 그의 왕좌는 태양같이 내 앞에 있으리라. 38 구름 사이에 자리 잡은 충실한 증인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달과 같으리라.”
= 태양과 달은 빛이신 예수님을 뜻한다.
그리고 요셉의 꿈 (창세37,9) 9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절을 하더군요.”
= 요셉 또한 예수님의 모형으로, 예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의 머리로 열두 아들 사도인 교회의 큰절을 받는, 곧 교회는 그분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다시 그 예수님을 머리로 교회가 깨달음으로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 깨달음은 아기를 낳는 그 진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죽음을 듣고 애통애하는, 근심하는 제자(12)들에게~
(요한16,21-22)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열두제자, 교회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깨달으라, 낳아라 하신다. 그러면 애통과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 하신다.
그런데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 붉은 용, 옛 뱀으로 악마, 사탄이다(9절) 곧 에덴의 선이 악을 품어 생명(구원)을 주는 나무를 선악의 법의 나무로 거짓되게 했던 그 뱀으로, 하느님의 계명, 말씀을 인간의 계명으로, 그 거짓 가르침으로 구원을 방해한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 뱀의 거짓, 그 거짓 가르침으로 올바른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낳지 못하게 거짓 예언자(무법자)를 통해 호시탐탐 노린다.
(2테살2,9-12) 9 그 무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으로, 그는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10 멸망할 자들을 상대로 온갖 불의한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여 구원받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속이는 힘을 보내시어 거짓을 믿게 하십니다.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한 자들이 모두 심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기적, 신비에 빠진 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자꾸 생기게 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기적과 신비적인 일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5ㄱ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 쇠지팡이로 다스릴 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시편2,7-12) 7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8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 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9 너는 그들을 쇠 지팡이로 쳐부수고 옹기장이 그릇처럼 바수리라.” 10 자, 이제 임금들아,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징계를 받아들여라. 11 경외하며 주님을 섬기고 떨며 그분의 발에 입 맞추어라. 12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노하시어 너희가 도중에 멸망하리니 자칫하면 그분의 진노가 타오르기 때문이다.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5ㄴ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 졌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이다. 예수님의 승천 후 교회는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양육을 받는다. 그 보살핌의 처소란 우리 삶의 현장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듯 교회인 여자, 우리 또한 육의 뜻을 만족 시켜주는 그 사탄의 유혹을 삶 속에서 이겨내야, 살아내야 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에 늘 넘어진다는 것을, 내 뜻을 위해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그 우리의 나약함을 경험하고,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로마11,32)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 그때,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러 오셨다는 말씀에 감사하며 그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승리를 전가시켜 주신, 그 승리의 주님께 피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의 보호하심이 이끌어 가신다.
(1코린15,57-58)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요한6,29)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속죄판으로 오신, 곧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 깨닫는 것, 낳는 것이다. 아멘.
오늘 우리들이 ‘여인, 여자’를 성모님으로만 묵상한다면 하느님,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기 되는 것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복음(루카1,39~56)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어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1~53)
루카 복음 1장 51절에서 53절까지는 하느님의 공평하신 속성에 대한 찬양이 이어진다.
51절의 '팔'로 번역된 '브라키오니'(brachioni; arm)는 단순히 신체의 한 부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야드'(yad)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구약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신명26,8; 시편29,14).
이 단어가 '권능'으로 번역된 '크라토스'(kratos; strength; mighty deeds)와 함께 사용되어 하느님의 크고 무한하신 힘과 능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교만한 자들'에 해당하는 '휘페레파누스'(hyperephanus; the proud)는 '~위에', '~을 넘어서', '~이상의' 등의 뜻을 가진 전치사 '휘페르'(hyper)와 '나타나다', '자신을 나타내 보이다'등의 의미를 가진 '파이노'(phaino)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내보이는 자들',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이것은 50절의 '경외하는 이들'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 결과 또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그분의 자비가 미치지만, 반면에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흩어지는' 심판이 따른다는 것이다.
51절은 '주님이신 그분께 맞서는 자들은 깨어진다'(1사무2,10)는 한나의 노래를 연상시키는데, 여기서 마리아는 교만한 자들을 치시는 하느님의 성품을 정확하게 깨닫고, 자신의 모습을 비천한 종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높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이제 52절은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어 귀인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1사무2,8) 라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으로서,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통치자들'과 '비천한 이들','끌어내리시고'와 '들어 높이셨으며'라는 단어들이다.
권세있는 자와 비천한 자에 대한 하느님의 공평하신 심판을 다루고 있는 52절은 이 단어들의 대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먼저 '통치자들'로 번역된 '뒤나스타스'(dynastas; the mighty; rulers)는 '주권자','통치자'등을 의미하는 '뒤나스테스'(dynastes)의 복수이므로, '권세있는 자들','통치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왕좌'로 번역된 '트로논'(thronon; thier thrones)은 그 통치자들이 앉는 '권좌들', '보좌들'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끌어내리신다'는 것은 비록 세상 가운데서 권세있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합당치 않는 자들을 얼마든지 그 권좌에서 내리칠 수 있는 능력의 하느님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한편, '비천한 이들'로 번역된 '타페이누스'(tapeinus; the humble)는 '낮은 지위의', '천한', '겸손한' 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 '타페이노스'(tapeinos)의 복수형이므로, '비천한 이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이 단어는 앞의 '통치자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직접적으로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의미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비록 그들이 세상에서는 낮고 천한 자들일지라도, 하느님 대전에 겸손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높이시는 분임이 드러난다.
세상 사람들은 좀 더 높은 지위와 권세를 위해 목숨을 걸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 앞에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 대전에 우리가 먼저 겸손한 모습으로 바로 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53절에서도 52절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이들'과 '부유한 자들', '좋은 것'과 '빈손','배불리시고'와 '내치셨습니다'라는 단어들의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굶주린 이들'과 '부유한 자들'은 복수형으로 일차적으로 경제적 의미에서의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보면 부자들은 그들의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가난하게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본문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5,3),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5,6) 등과 같은 산상설교의 표현처럼, 자신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자들과 교만하여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좋은 것'으로 번역된 '아가톤'(agathon)는 '선한', '적합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로서, 하느님께서 굶주린 이들에게 주시는 '좋은 것'은 바로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들임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배불리시고'로 번역된 '에네플레센'(eneplesen; He has filled)은 '채우다','만족하다'는 의미를 가진 '엠피플레미'(empiplemi)가 원형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는, 가득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대전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주리는 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들로서 부족함이 없이 가득 채워 배부르게 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빈손으로'라고 번역된 '케누스'(kenus; empty away)는 '빈', '헛된', '내용이 없는'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로서, '좋은 것으로'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루는 단어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의미하는 '케누스'(kenus)는 부족할 것이 없는 부자들이 받게 될 심판의 엄중함을 부각시켜 주며, 두 단어의 대구를 통해 심판을 행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부자라고 할지라도, 하느님 대전에 교만한 자라면 얼마든지 '텅 빈' 가난뱅이로 만드실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배불리시고'와 대조를 이루는 '내치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엑사페르테일렌'(eksapesteilen; he has sent)은 '밖으로'란 뜻의 '에크'(ek)와 '내보내다'란 의미를 가진 '아포스텔로'(apostello)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밖으로 멀리 내보내어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 부자라고 하는 자들을 빈 손으로 멀리 내보내시어 가까이하지 않는 공의로우신 하느님을 드러낸다.
1854년 교황 비오9세에 의해 원죄없는 잉태 교리가 반포되었으며,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승천 교리를 정식으로 정의하고 선포하였다
"원죄 없으신 천주의 모친 평생 동정 마리아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을 갖고서 천상 영광에로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교리임을 선언하고 선포하며 정의 하는 바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도 "예수의 모친은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으로 영광을 누리고 계심으로써, 후세에 완성될 교회의 모상이며 시작이 되신다"(교회헌장 68항) 고 하면서 마리아께서 받으신 특권과 각별한 은총을 재확인 하였다.
같이 천국에 가셨지만 주님의 경우는 승천이라고 하고 성모의 경우는 ’피승천’ 즉 ’몽소 승천’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께서는 하느님이시므로, 자력으로 승천하셨고, 성모님은 역시 사람이므로 자력으로 못하시고 주님의 힘으로 승천하셨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18 나는 이 책(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무엇을 빼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얻을 그의 몫을 빼어 버리실 것입니다. 20 이 일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곧 간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21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묵시22;18-21)
2024년 08월 15일 목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종착점을 보여 줍니다. 그 종착점은 예수님께서 당신 부활로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는 성모님의 승천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차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맏물”(1코린 15,23)이신 그리스도께서, 미완성의 상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르게 될 완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다음 성모님의 승천이 구원된 이들의 미래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고 있습니까? 삶의 많은 근심 걱정이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도, 한 달 후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말합니다. 하늘에 들어 올려지신 성모님께서는 오늘 감사송에서 말하듯이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성장하시며, 천사를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시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으셨고, 그 계획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피난을 가시고 낯선 땅에서 사셔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삶에서도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마음에 새겨야 하셨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하셨으며, 예수님의 죽음까지 보아야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 모든 미완성을 거쳐 가신 성모님께서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우리보다 앞서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우리도 우리의 삶 안에서 온갖 불완전함을 겪으면서도 하늘을 바라봅니다. 믿으셨기에 복되셨던 성모님처럼 우리도 믿음을 간직한다면 복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15일 [광복절. 성모 승천 대축일]
나는 성모님을 尊敬한다.
승천은 하늘로 오름을 뜻하지 않는다. 하느님나라에 들어감을 뜻한다. 하느님 나라는 땅으로 오심, 곧 들어오심이다.(묵시12,1~)
가톨릭교회에서 1950년 비오 12세 교황님께서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통해서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敎理)’로 선포하셨습니다. “원죄(原罪)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童貞)이셨던 하느님의 모친(母親, 어머니)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肉身)과 함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 원죄(原罪)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은 피조물(被造物)이 아니며, ‘예수님께서 원죄가 있으신 분께 잉태되실 수가 없어서’ 그런 교리(敎理)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짐승들의 먹이통으로 오셨음’과 ‘더러운 죄인들과 한 몸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는 성경(聖經)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
그리고 썩어질 육(肉)도 함께 하늘에 오르셨다? - 모든 피조물은 육신(肉身)이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몸, 옷을 입는 것이 구원(救援)이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성모님의 승천(昇天)은 성경에 나오지도 않지만 성경적이지 않다.’ *성모 마리아(쓴물)는 빈 그릇(처녀)들인 우리(쓴물)모두의 모형(模型)이다.
‘성모승천 대축일’ 사람들의 전승(傳承)을 ‘믿을 교리(敎理)로 만들어’ 따로 성모님을 위한 대 축일로 지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성모님께 내 뜻, 소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섬겼다. 나 또한 그랬다. 말씀을 깨닫고 나니 예수님의 ‘올바른 기도(祈禱)가 아닌 우상(偶像) 섬김’이다.
얼마전 어느 젊은 자매에게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로 신(神)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우리 신자(信者)들의 실체(實體)다. (신(神)으로 생각은 하지 않더라도 신(神)처럼 섬긴다.) 성모님은 신성(神性)이 아닌 인성(人性)의 어머니다.(긴~~~ 설명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여인’이라 부르시며 요한을 ‘아들’로, 또 요한에게 ‘어머니’로 맡겼던 것이다.
*성모승천 대축일 외에 모든 기념일, 축일들은 성모님의 소중(所重)하고 귀(貴)한, 꼭 간직해야할 신심(信心)을 흐리게 할 뿐이다. *확인(確認)해 보자~
(루가11,27-28) 27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킵)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가슴에 지키는(킵) 것, 곧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용서, 생명(복), 그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 뜻을 깨닫고 믿어, 세상의 것을 위한 유혹(誘惑)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빼앗기지 않고, 마음(가슴)에 지키는 이가 행복(幸福)한 사람이다.
젖~
(창세21,7-8) 7 그리고 또 말하였다.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리라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감히 말할 수 있었으랴? 그렇지만 내가 늙은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지 않았는가!”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 ‘ 젖을 떼던 날 큰 잔치를 베풀었다. ’ 왜? 아버지의 말씀을 먹을 때가 되었기에 큰 기쁨의 날인 것이다.
(1코린3,1-2)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단한 음식,~
(히브5,12-14. 6,1-3) 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14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훈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6,1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다시 기초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2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3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의 보충,- 오늘 복음(福音)의 성모님처럼 자신이 비천(卑賤)한 존재임을,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 곧 처녀(處女)인 자신에게 아기를 잉태(孕胎)하게 하심으로 행복하다는 것, 그 아기가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 자비(慈悲)라는 것,
곧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심,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심뿐만 아니라, 마음속 생각이 교만(驕慢)한 자들을 흩으시고, 통치자(統治者)들을 끌어내리시고, 부유(富裕)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칙심이 구원을 위한 자비(慈悲)임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비의 하느님께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그것이 성모 신심이다.)
복음(루카1,46-56)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석(3) 달,
다윗이 하느님의 계약 궤(櫃 구원의 말씀)‘를 자신의 성(城, 마음)으로 옮겨오려 할 때, 하느님의 뜻으로가 아닌 인간의 뜻(방법)으로 옮기려 했던 두 사람이 하느님의 진노(震怒)로 죽자~
(2사무6,9-11) 9 그날 다윗은 주님을 두려워하며, “이래서야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가져가려 하지 않고,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마음)으로 옮겼다. 11 주님의 궤가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에서 *석 달을 머무르는 동안, 주님께서는 오벳 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리셨다.
= 다윗도 두려워했던 하느님의 궤를 받아들여 복(福)을 받은 오벳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뜻(길)으로 받으면 저주(詛呪)요 죽음(死亡)이다. 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아 마음에 새기면 복(福)이다.
그것이 석 달- 3(하늘의 숫자), 곧 하느님의 뜻인 창조이전 죄인(罪人)들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죽음과 사흗날의 부활(復活)이다.
(1코린15,2-4)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에페1,3-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 내가 태어나기도 전(前)에 그리스도께서 내 죄(罪)로 이미 죽으셨다. 그래서 나는 하늘의 복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나는 믿는다. 그 믿음으로, 곧 ‘3의 복(福), 그리스도의 대속’을 알려주기 위해, 아니 그 하늘의 복(생명)을 되찾아 주기 위해, 세상 복을 구하는 율법(제사와 윤리)자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이웃 사랑이며, 성모신심이다.
(성모님께 세상의 것을 구하며 섬기는 것, 성모신심이 아니다.)
올바른 기도는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오신 하느님의 지혜(智慧), 계시의 영이신 성령(聖靈)께 청(請)하면 대신 기도, 간구(懇求)해 주신다.
(로마8,26)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1독서(묵시11,19. 12,1.5-6) 11,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새하늘)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나면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여인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보살핌을 받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교육, 훈련소)가 있었습니다.
= 여인? 성모(聖母)님이 아니다. 하느님의 계약 궤(櫃)가 하늘의 용서, 자유, 안식,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임을 깨닫고 믿기까지 교육(敎育), 훈련(訓練)받을 나(우리, 교회)다.
광야(廣野)에 있는 처소(處所)? - 육(肉)의 뜻(만족)을 위한 그 옛 계약의 자신을 버리고 부인(否認)하도록 훈련받을 세상 삶의 현장(現場)이다.
(히브9,15)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율법)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 그래서 성모님처럼, 교만한 마음속 생각을 흩으시고, 끌어 내리시고, 빈손으로 내치심으로 내 영혼을 구해주신, 그 자비의 하느님께 기뻐 찬송하는 신앙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은총(恩寵)이신 천주(天主)의 성령님!
성모님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하소서. 마음에, 발길에 충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