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혼인 예복 (마태22,1-14)

2024. 8. 21. 오후 6: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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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일 목요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혼인 예복 (마태22,1-14)


   


1독서<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영을 넣어 주겠다.>(에제36,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3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화답송>시편51,12-13.14-15.18-19(에제36,25) 정결한 물을 뿌려 모든 부정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라.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복음<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마태22,1-14)

1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연중 제20주간 목요일독서 (에제36,23-28)

 

"나는 너희는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 가겠다."  (24)

 

앞선 21-23절은 하느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당신의 이름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표명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이 하느님의 이름의 거룩함을 회복하여,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에 있음을 밝혔다.

이제 24절 이하 36절에서는 당신의 이름의 명예 회복을 위한 선민 회복에 대한 일방적 약속이 선언된다. 이러한 내용을 시작하는 본절은 포로 귀환에 대해 묘사한다.

 

그런데 유배로 끌려간 포로민들을 바빌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는 지리적 이동과 정치적 해방은 하느님의 궁극적 구원의 과정에서 볼 때는 서곡에 불과하지만, 영적 새로워짐을 통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새 창조에 대한 묘사가 25절부터 에제키엘서 마지막 절까지 계속하여 기록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나 경제적 부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과 하느님 이름의 명예 회복에 그 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5)

 

24절에서는 포로된 선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 약속되었다. 25절이하 36절에서는 고국에 돌아간 후, 회복된 모습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약속의 형태로 제시되는 회복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자세와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25절에서는 정결 의식을 소재로 해서 선민의 변화된 모습을 언급하고 있다. 이 정결 의식은 레위인들이 제사 의식을 돕는 일을 하기 전, 즉 임직에 앞서서 레위인들에게 속죄의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고, 레위인들을 속죄 의식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식이다.(민수8,7)

 

이러한 정결 의식은 에제키엘서 36장 17-19절의 내용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에제키엘서 36장 17-19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이유가 그들이 부정한 행위로 땅을 더럽혔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에 그들이 땅을 더렵혔던행위를 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정결 의식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25절 후반부에서 '너희의 모든 부정에서' 에 해당하는 '믹콜 투메오테켐'(mikol tumothekem)의 원형 '투메아'(tumea)는 17절의 '마치 달거리하는 여자의 부정과 같았다' 란 표현에서 '부정'에 해당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또한 25절 후반부의 '모든 우상에게서' 에 해당하는 '우믹콜 껄룰레켐'(umikol gllullekem) 이라는 표현에도, 18절의 '우상들 때문에' 라는 표현과 동일하게 '껄룰'(gllu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본절에서 '~으로부터' 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과 함께 사용되어 정결의식을 행하는 목적으로 기록된 두 가지 내용, 즉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의 정결과 우상 숭배로부터의 정결은 모두 에제키엘서 36장 17,18절에 기록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했던 두 가지 죄악과 정확히 일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제시되는 정결 의식은 가나안 입성을 위한 정결 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본절에서 제시되는 정결 의식은 단지 과거에 행했던 부정한 일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행한 과거의 죄에 대한 속죄 의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그런 잘못을 행하지 않는 자들로 변화시키기 위한 새로워짐(거듭남)의 의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빌론으로부터 구출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이것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는 부정한 일을 행하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는 에제키엘서 36장 26절, 27절이 말하는 새로운 영과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로 씻어 정결케 하는 본절의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바오로가 코린토 전서 6장 1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지 못할 온갖 죄를 행하던 이방인들이, 코린토 교회의 성도라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행위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성령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로움의 의미하는 것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레위인들의 정결 예식 자체가 하느님께의 헌신과 새로운 직임을 출발하는 예식(봉헌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본절은 과거의 죄로부터의 속죄와 더불어,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사명에 충실한 헌신된 새로운 삶을 출발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 볼 수 있다.

즉 바빌론에서 귀환한 남부 유다 백성들이 맑은 물로 뿌림을 받아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이전의 더러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아울러 선민으로서의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6)

 

25절에서는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 백성에게 행할 정결 의식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그들이 과거의 죄를 청산한다는 측면이 강조되었다면, 26절과 27절에서는 새 마음과 새 영이 주어져 과거의 죄를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점이 강조된다.

'내가 너희에게 주고' 로 직역되는 '웨나탓티 라켐'(wenathathi lakem)과 '내가 너희 안에 넣어 주겠다' 로 직역되는 '엣텐 뻬키르 뻬켐'(ethen beqirbekem)에서 강조하는 것은 새 마음과 새 영을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이다.

 

24절과 25절이, 죄악으로 인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능력이나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는데에서 나오는 죄악을 행함으로써, 거룩하신 하느님과 자신을 분리시켜, 악의 세계로 점점 더 빠져드는 악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받아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는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따라서 하느님께로부터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야만 하는데26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본문에는 '새 마음'에 해당하는 '레브 하다쉬'(leb hadash)와 '새 영'에 해당하는  '웨루아흐 하다샤'(weruah hadasha)가 나온다.

'마음'에 해당하는 '레브'(leb)는 판관기 16장 25절에서는 인간의 감정의 자리 제시되고, 열왕기 상권 3장 9절에서는 사리를 판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의 자리 제시되며, 욥기 27장 6절에서는 사람의 윤리적 양심의 자리 제시된다.

 

구약 성경도, 사람은 창세기 20장 5절 말하는 것처럼, 마음을 통해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길 수 있으며, 반대로 창세기 8장 21절 지적하는 것처럼, 교만한 마음 통해 하느님을 향해 대항하고 범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윗은 바쎄바를 범한 뒤에 예언자 나탄이 그의 죄를 지적했을 때 시편 51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내면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간구했던 것이다.

"하느님,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또한 '영'에 해당하는 '루아흐'(ruah)는 숨이나 바람 혹은 하느님의 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본문에서는 인간의 기질이나 성질이나 정신과 같은 의미로서마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루아흐' 창세기 41장 8절에서는 꿈을 꾼 파라오의 번민하는 마음으로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여호수아 2장 11절에서는 예리코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대가 쳐들어 온다는 말을 듣고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에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의 용례에서, '마음'(레브)와 '영'(루아흐)이라는 단어가 본문처럼 한 문장에 함께 사용된 경우에는, 서로 별개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는,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장소이며, 인격과 인성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총칭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들어,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는 에제키엘 18장 31절의 내용처럼, 이 표현은 자신의 삶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는 인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하느님께서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신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그들의 내면과 인격에 부어주시겠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의 새로움은 이전 것들과의 단절된 새로움이 아니라 이전 것들과 연관된 새로움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절에는 '돌로 된 마음'에서 '돌로 된'에 해당하는 '에벤'(eben)은 '돌'이라는 의미이고, '살로 된 마음'에서 '살로 된'에 해당하는 '빠샤르'(bashar)는 '고기'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돌로 된 마음'(굳은 마음)이란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딱딱한 돌과 같은 마음이고, '살로 된 마음'(부드러운 마음)이란 하느님의 지시와 권고하심에 대해 민감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바뀐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선민은 새 계약의 백성이 될 것을 약속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27절에서는 하느님의 영을 넣어 주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하느님께서 선민에게 성령을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말씀에 순종하는, 성숙하고 헌신된 인격과 인성을 구비하게 해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예수님의 비유의 중심 주제는 늘 하느님 나라이고, 이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잔치로 비유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 속의 혼인 잔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언제나 문을 잠그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의 잔치는 기쁨과 무상성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잔치에서 이런 무상성의 특성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잔치를 연다고 초대하면 벌써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무엇을 들고 가야 하나?’ ‘얼마쯤 넣어 가야 하나?’ 나아가 ‘꼭 가야 하나?’ 등의 별의별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요즘 세상에서 공짜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공짜라고 해 놓고 실제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입니다.

무상의 초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초대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성의 초대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모두 불러오라는 비유 속 주인의 말은 속상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로마 5,6)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이가 초대받아 풍부하게 나누고 먹을 수 있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잔치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복을 마련하는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초대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하느님 나라의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잔치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거기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 욕심만 차리고 저만 위하여 사는 사람이 내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만 아는 이들 속에서 기뻐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옷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 옷, 곧 하느님 나라에 걸맞은 양식으로 살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긴 했는데

 

복음(마태22,1-14)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 왜 가려하지 않았을까? 지기와 상관없는 잔치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사가 혼인잔치 아닌 제사로, 또 마지 못해 와서 동네잔치 구경하듯 하는 이들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 이미 완성된 혼인잔치, 하느님 나라다. 그러나 아직 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오늘날까지 그 아직 인 신앙을 사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스스로 준비하는 신앙을 산다. 혼인잔치는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다 준비하신다. 하늘잔치는 주인의 부르심(말씀)을 듣고 주인이 준비하신 예복(禮服)으로 갈아입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황소는 하느님을, 살진 짐승은 예수님을 뜻한다. 곧 혼인 잔치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 주시고 그 값으로 완성된 하늘나라 잔치라는 것이다.(에페1,4 히브4,3 참조)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당신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잔치를 믿지 못하니 스스로 준비를 하는 그 헛된 수고를 하려는 것이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이사46,4)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 어떻게 죽일 수가~ 스스로 혼인 잔치 준비를 하는, 곧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신들의 수고와 열심을 방해하는 이들이 잘못된 죄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한16,2)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임금은 진노하였다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혼인 예복은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이미 준비하셨다. 그런데 준비된 그 예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입고 있던, 그 자기 의로움의 옷이 더 합당하다고(멋지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자기 버림, 부인이 안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스스로 준비하는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 버림, 부인을 위한 신앙(信仰)을 살아야 한다.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자신이 흙도 아닌 흙의 먼지로 하느님의 숨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그 없음의 존재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예복을 얼른 갈아 입었을 것이다.

 

(이사64,5)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 자신에게서 나오는 인간의 선(善), 의로움이 개짐(더러운 똥걸레)으로 지옥에 갈 죄인일 뿐임을 깨달은, 그 자기 부인이 된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예비 하신 예복을 감사(感謝)로 얼른 갈아입었을 것이다.

 

(마태5,3)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마음(心靈)이 가난해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마음이 부자로, 곧 자신의 욕심, 욕망을 위해 살았던 그 잘못으로 괴로웠던 사람이라면, 거저 주시는 예복을 볼 것도 없이 얼른 갈아입었을 것이다.

 

(마르12,30-31)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하느님의 계명을 살지 못했던, 곧 자신의 생각(뜻)을 위한, 자신만을 사랑했던 그 자신의 추악함, 그 본질을 본 사람 이라면 염치 없이, 두 말할 것도 없이 얼른 갈아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문제는 하느님께서 그 혼인예복을 준비하신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아입을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곧 성경을 깨닫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전능하신 사랑, 자비를 알았다면 판관 입타처럼 스스로 오바한 자신의 헛된 서약으로 사랑하는 딸이 한스러운, 헛된 죽음을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판관11,30-39)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예복을 보자~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가죽 옷, 하느님께서 어린양을 죽이시고 남긴 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곧 죄인(아담)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의 옷, 혼인 예복이다.

 

(묵시19,7-8)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아마포 옷- 예수님의 수의다.(요한20,5~참조) 우리의 죄로 죽으신 그 예수님의 수의를 예복으로 입는 것이 성도(聖徒)들의 특권이며 의로운 행위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룩5,2) 2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이사61,10)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성당 다니는 사람은 많으나 깨닫는 사람은 적다는 말씀이다. 자신의 뜻을 위해 열심인 신앙인은 많으나 하느님의 뜻을 위해 열심인 신앙인은 적다는 말씀이다. 육(肉)의 목숨을 위한 신앙인은 많으나 영(靈)의 구원을 위한 신앙인은 적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많으나 그리스도인은 적다는 말씀이다.

 

(로마13,14)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리 되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예비(豫備), 완성(完成)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22,1-14)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11~12)

 

마태오 복음 22장 11절은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접속사 '데'(de; and; but)로 시작한다.

이것은 여기서부터 또 다른 국면의 사건이 전개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말하자면, 지금부터 임금이 등장하여 임금 중심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임금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잔치가 본격화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인데, 영적으로 천국 잔치의 본격적 시작 시점인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통치는 지금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재림 이후에 있을 본격적인 천국의 잔치에서 예복을 입은 자에게는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될 것이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게는 큰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예복'으로 번역된 '엔뒤마 가무'(endyma gamu; wedding clothes)는 '결혼식 때 입는 옷'을 뜻한다.

본래 '엔뒤마'(endyma)는 '겉옷'이나 '외투'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옷 위에 덧입는 옷이다.

 

 

유다인들의 혼인 잔치에는 혼주가 나누어 주는 예복을 입어야만 했다.  

이들에게도 분명히 임금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창세45,22; 판관14,12).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예복을 입지 않은, 너무나 무례하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임금의 잔치 석상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심판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심판의 날에 입어야 할 예복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갈라3,27), 자기 육(肉)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대신 성령의 능력을 얻어 입어서(갈라5,22~24) 의로운 행위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묵시19,8).

 

한편,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친구'로 번역된 '헤타이레'(hetaire; friend) '헤타이로스'(hetairos)의 호격이다.

'헤타이로스'(hetairos)는 다정한 느낌의 '동료', '동무'를 뜻하기도 하지만(마태11,16),  문책과 심판의 대상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

 

포도밭 임자가 품꾼 중에 원망하는 자들을 부를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마태20,13),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배반하기 위해 오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부를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마태26,50).

따라서 여기 본문의 '친구'도 카리옷 사람 유다처럼 거짓으로 하느님의 나라의 공동체 안에 몸붙이고 있으면서도, 의(義)로움을 좇지 않고 악(惡)을 고집하는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면 무방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로 번역된 '에피모테'(ephimothe; was speechless)의 원형 '피모오'(phimoo)는 '재갈로 입을 막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임금의 질문 앞에 마치 입에 망을 씌운 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임금이 예복을 준비하여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표현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지엄하신 위엄과 그분의 책망으로 말미암아, 악인들이 겪게 될 비참한 운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8월 18일 (녹)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20240822일 목요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마태오 복음서에서, 임금이 준비한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가지가지 이유를 앞세우며 오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을 나타냅니다.

21장에서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았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여기에 해당하고(마태 21,23-27 참조),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말을 듣고도 가지 않은 아들이나(21,28-32 참조)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도(21,18-22 참조) 그들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임금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거부하였음을 의미하고,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게 파괴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다시 초대된 이들은 처음 초대받았던 이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21,31) 들어가고 있는 세리와 창녀,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나중에 초대받은 이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혼인 예복입니다.

초대는 선물로 주어졌지만, 그 초대를 받은 사람 편에서 초대에 알맞게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선물은 효력을 잃고 맙니다.

먼저 초대받았던 이들이 밭과 장사를 앞세웠기 때문에 그 초대를 잃어버렸다면, 그 뒤에 초대받은 우리도 이 초대보다 다른 무엇을 앞세울 때 그 초대를 놓치고 말 것입니다.

마침 오늘 입당송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입니다.

하늘 나라의 초대를 소중히 여기고 잘 간직하여 깨끗한 혼인 예복을 입고 그 나라에 들어갈 날을 준비합시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婚姻 잔치에 招待받은 이들

 

복음(마태22,1-14)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 하느님 나라의 완성(完成)은 안식(安息)이다. 하느님의 아들과 한 몸이 됨으로 이루어지는 안식(安息)이다.

 

(창세2,1-2) 1 이렇게 하늘과 땅과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이루셨다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엿샛 날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렇게 “다 이루어졌다” 하시고 바로 다음날 이렛 날에 쉬셨다. 안식(安息)이다. 곧 사람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졌다” 하신 그 쉼, 안식의 나라로 바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느님 나라는 그렇게 잘 살던 사람(아담)이 뱀의 유혹으로 곧 거짓 가르침으로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는 그 교만의 죄를 짓는 바람에 스스로의 열심, 노력을 부려야만 쉼(안식)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불가능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 되었다.

곧 사람이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엔 자신의 본질인 흙의 먼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창세3,21) 21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하느님께서 어린양을 속죄(贖罪) 제물로 죽이시고, 피 묻은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심으로 하느님을 피하게 했던, 그 사람의 죄(罪 알몸. 부끄러움-창세3,7-8)를 덮어 주셨다. 자비, 사랑이시다. 죄인은 그 피 묻은 가죽 옷을 입으면 되는 것이다.

곧 모든 사람(죄인)은 십자가에서 속죄(贖罪) 제물로 대신 죽으시고 흘리신 피,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로(루가22,20) 그분과 하나, 한 몸이 되어,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이다.

기쁜 소식, 복음이다.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오늘 독서(牘書)에서 말씀하신 새 마음, 새 영(靈)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의 규정들을 따르고,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고집한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 하느님처럼의 자리를 고집한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 창세기의 어린양의 죽음을 다시 말씀하심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 복음 말씀을 전하는 이들까지 죽여 가며, 곧 말씀을 무시하며 스스로 안식을 누리려 열심을 부린다. 하느님 처럼의 인간은 자신들의 열심, 노력을 의(義), 진리라 하며 칭찬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혐오하신다.(루가16,15)

 

임금은 진노하였다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잔칫방(미사)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 하늘나라는 아무나, 곧 악(惡)한 사람, 선(善)한 사람, 모두 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손수 준비하셔서 사람(아담)에게 입혀주셨던 가죽을 입어야 한다. 곧 어린양(그리스도)이 대신 죽어 남긴 ‘피 묻은 가죽 옷’을 입어야 한다. 그것이 혼인예복이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스스로 열심을 부려 해 입은 자신의 옷이 좋고 정당하다고, 주인이 준비해 놓은 가죽 옷으로 갈아 입지 않은 것이다. 사도는 그것을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는 ‘구원받지 못할 죄(罪)’라는 것이다.(로마10,1-3)

교리(敎理)는 먼저‘ 사람이 선행(善行), 의(義)로 성화(聖化)를 이뤄야 하느님과 일치(一致)를 이루게 되고, 하늘의 영화, 영광, 평화,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의 선행(善行), 의로움, 그 성화를 강조한다.

아니다. 먼저 성경(聖經)을 통해 말씀을 깨달아, 하늘의 의(義, 그리스도의 대속)를 진리로 입어야 하느님과 일치(一致)를 이루게 되고, 그 다음 하느님의 평화, 생명, 구원을 받는다.(마태6,33 루가2,14참조)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억울하고 분(憤)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마음에 간직한 새 마음, 새 영(靈)이 되는 하느님의 규정, 법규, 그 새 계약의 말씀, 곧 영원한 안식,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씨)이 없어 씹을 것이 없어 영원히 이(齒)만 갈게 되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그 끔찍한 곳에서 ‘나를 당신 아들의 피’로, ‘새 계약의 말씀’으로 구해주신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 영광(榮光), 감사(感謝)가 고난(苦難)의 삶을 이기는 우리의 힘이며 치유(治癒)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거짓 가르침을 조심해야 한다. 끔찍한 곳으로 들어가게 하는, 곧 믿음과 관련 없는 사람의 열심, 선행, 의로움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하는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을 조심해야 한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믿고, 입어야만 갈 수 있다.

 

(에페2,13) 13  이제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베드1,18-19) 18 여러분도 알다시피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제사와 윤리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인간의 노력)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19  없고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 하느님의 지혜(智慧), 계시(啓示), 진리의 영이신 성령(聖靈)께서 깨닫고 믿게 하심으로 완성(完成)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선택의 자리에 들 수 있도록 저희들의 마음의 발길에 하느님의 지혜진리가 충만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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