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4일 토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와서 보시오.” (요한1,45-51)
제1독서<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묵시21,9ㄴ-14)
9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화답송>시편145,10-11.12-13ㄱㄴ.17-18(◎12) ◎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복음<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1,45-51)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제1독서 (묵시21,9ㄴ-14)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1)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2)
묵시록 21장 11절부터 14절까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도성의 아름다운 모습과 열두 성문과 열두 초석에 대하여 묘사한다. 특히 묵시록 21장 11절은 새 예루살렘의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아름답게 표현한다.
'있었습니다'로 번역된 '에쿠산'(echusan; having)은 '소유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코'(echo)의 현재분사로 묵시록 21장 10절에 언급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관련된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영광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텐 독산'(ten doksan; the glory)은 '에쿠산'(echusan)의 목적어인데, 이것의 원형 '호 독사'(ho doksa)는 '하느님의 거룩한 임재' 곧 '셰키나'(shekinah)를 뜻한다.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제43,5).
새 성경에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원문에는 '하느님의 영광'에 해당하는 '텐 독산 투 테우'(ten doksan tu theu) 다음에 바로 '광채'로 번역된 '호 포스테르'(ho poster)가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광채는 하느님의 영광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양자가 동격 관계임을 암시한다(이사60,1.2.19).
한편 '광채'에 해당하는 '포스테르'(poster)는 신약 성경에서 73회 사용되어 빛 자체를 나타내는 '포스'(pos)와는 달리, 외부의 빛을 투영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로 신약 성경에서 2회(필리2,15; 묵시21,11) 밖에 쓰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스스로 광채를 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 광채를 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이 투사하는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과 '수정처럼 맑은 벽옥'이 발하는 광채(빛) 두 가지로 비유되고 있다.
'크고 높은 성벽이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로 번역된 '에쿠사'(echusa)는 '소유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코'(echo)의 현재분사로 묵시록 21장 10절에 언급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관련됨을 보여준다. 즉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영광을 지니고 있을(묵시21,11)뿐만 아니라 크고 높은 성벽도 가지고 있다.
'성벽'으로 번역된 '테이코스'(teichos)는 '성곽'을 지칭하는데, 이와 같이 '크고 높은 성벽'은 묵시록 21장 13-20절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된다.
그런데 성벽을 수식하는 '크고 높은'(mega kai hypsellon; 메가 카이 휩셀론; great and high)이라는 형용사는 묵시록 21장 10절에서 사도 요한이 성령의 압도적인 감동 속에서 올라갔었던 '산'을 묘사하는 데 적용되었던 바로 그 표현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문자적으로 '크고 높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하느님의 천주성(神性)과 관련된 묵시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규모가 묵시록 21장 16절과 17절에 묘사되고 있지만, 본문에 언급된 '크고 높은 성벽'은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얼마나 견고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크고 높은 성벽'은 새 도성 예루살렘이 완전하고, 완결(완성)되어졌으며, 안전하고 웅장하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위험이나 불안, 위협이나 침략, 부정하고 불순한 세력들에 의해 노출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미 악은 두 번째 죽음 곧 불못에 던져졌다(묵시19,20; 20,10; 20,14-15).
이것은 이사야서의 예언을 연상시킨다. "다시는 너의 땅 안에서 폭력이라는 말이, 너의 영토 안에서 파멸과 파괴라는 말이 들리지 않으리라. 너는 너의 성벽을 '구원'이라, 너의 성문을 '찬미'라 부르리라." (이사60,18)
'열두 성문이 ~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열두 지파 이름이' (12)
'있는데'로 번역된 '에쿠사'(echusa)는 '소유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코'(echo)의 현재분사로 전체적으로는 묵시록 21장 10절에 언급된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연결되지만, 문맥상으로는 앞서 언급된 '성벽'(teichos; 테이코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성벽은 '열두 성문' (퓔로나스 도데카; pyllonas dodeka)을 가지고 있다.
묵시록 21장 13절은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의 이 열두 성문이 균형적으로 분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땅의 임금들이 자기들의 보화를 가지고 이 문을 통해 들어오며(묵시21,24), 그것은 항상 닫히지 않고 열려져 있다(묵시21,25). 따라서 이 성문 역시 성벽과 같이 단순히 외적의 방어와 적대 세력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고안되고 제작된 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성문에는 열두 천사('앙겔루스 도데카'; anggellus dodeka)가 있다. 이 천사들은 열두 성문 각각을 지키고 있는 하느님의 천사이다.
"예루살렘아, 너의 성벽 위에 내가 파수꾼을 세웠다. 그들은 낮이고 밤이고 잠시도 잠잠하지 않으리라. 주님의 기억을 일깨우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마라. " (이사62,6)
이들은 악한 세력들과 싸우기 위해 성문을 지키는 천사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든 이들이 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묵시21,27참조). 이와 같은 점은 그 성문 들위에 적힌 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도데카 필론'; dodeka pyllon)의 이름이라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언급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의 의미는 이미 묵시록 7장 5-8절에서 언급된 것과 깊이 관련된다. 즉 각 지파에 속하는 일만 이천 명씩 도합 십사만 사천 명 곧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묵시7,9)만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문'과 '천사'와 '지파'가 각각 '열둘'인 것은 명백히 이 도성 예루살렘이 승리한 하느님의 백성들만을 위한 도시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주목할 것은 이러한 사도 요한의 묘사가 에제키엘 예언자의 환시와 밀접하게 병행된다는 점이다(에제48,30-34). 에제키엘 예언자는 종말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각자의 땅을 분배할 때 자신들에게 할당된 충분한 상속 재산(기업)을 취하며, 회복된 도성 예루살렘으로 출입할 수 있는 각 지파 소유의 대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것은 종말에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하느님의 임재와 현존 가운데 들어갈 동등한 권리와 축복을 누릴 것이라는 원대한 비전인 것이다.
사도 요한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이러한 종말론적 비전을, 자신이 본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도래의 환시가 내포하고 있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자유롭게 끌어 들인다. 이로써 사도 요한은 하느님과 그의 모든 백성들이 영광스럽고 놀라운 완전한 종말론적 친교와 일치 가운데 들어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매일묵상
성서학자들은 나타나엘과 바르톨로메오를 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나타나엘은 그의 고유한 이름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이고, 바르톨로메오는 부친의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톨마이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나타나엘은 동료 필립보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납니다.
많은 이가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처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성경에서 예언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라고 예수님을 소개하자 나타나엘은 의심합니다.
나타나엘은 성경을 아는 사람이었고, 메시아는 자신의 고향인 카나나 나자렛과 같은 갈릴래아의 작은 고을이 아니라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요한 7,41-42)
나타나엘이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미카 4,4; 즈카 3,10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집 앞마당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서 성경을 읽는 것을 아름다운 이상으로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올바르고 참된 이스라엘 사람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자신의 생각을 접고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메시아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기대가 있었던 나타나엘도 예수님을 뵙고 마음을 바꿉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사람의 생각이나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입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시작일 뿐,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통교(通交)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먼 옛날 야곱의 꿈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현실이 됩니다(창세 28,10-22 참조).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동료들 안에서 만나고 체험하며, 그분과 살면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신앙인(信仰人)에게 게으름은 최대의 적(敵)
복음(요한1,45-51)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 나타나엘- 하느님의 선물(膳物)이라는 뜻,
46ㄱ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 무시하는 듯한 말은, 보잘 것 없는 나자렛에서 풍요의 다윗왕국을 재건할 힘이 있는 메시아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민속 메시아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나타나엘은 율법학자로 구약에 능통했다.
(미가5,1)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 나셨고, 나자렛에서 자라셨다.
46ㄴ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율법학자들에게 ‘거짓의 아비’라 하셨는데, 나타나엘에게는 거짓이 없다? 그것은 나타나엘 자신이 무시했던 예수님 쪽으로, 곧 그분의 뜻을 향해 왔음, 그 안에 이유가 있다.( 뒷부분에서 다시~)
*거짓(돌로스-속이는 자, 간사한 자) 속이는 자, 간사한 인물이 야곱이다. 그는 후에 이스라엘(승리-신약)로 이름이 바뀐다.
예수님은~ 야뽁강 가에서 하느님과 씨름하기 전, 야곱(속이는 자. 간사한 자)이 씨름 후 그의 육적 자아가 죽고(엉덩이 뼈를 다쳐 절뚝거리는 모습) 하느님만을 의지 해야 하는 그 영의 승리자, 이스라엘로 살아나는(창세32,24-)그 구원의 이야기를 하시려 하시는 것이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 보았다(에이도). 예지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주목하고 있었다’는 의지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 곧 나타나엘을 필립보가 부를 것을 아셨고, 부르기 전에 그를 아셨다는 것이다.
(요한6,37)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필립보를 통해 부르신 것이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당시 메시아의 또 다른 호칭(呼稱)이다.(2사무7,12-16참조) 예수님을 주님, 메시아로 불렀다. 그러나 다윗의 풍요를(국사적, 경제적) 재건하실 힘 있는 민속 메시아로 부른 것이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교육하거나 기도, 묵상을 하곤 했다. 나타나엘이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묵상하고 고민했음을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곧 아무리 제사를 열심히 드려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될 기미가 보이 질 않고, 윤리적인 삶으로 아무리 착하게, 의롭게 살아도 참 안식, 평화를 누릴 수 없었기에 고민하고, 기도하고, 묵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민속 메시아사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다른 유대인들처럼 선민사상이나 율법주의에 의해서 하느님의 계약(언약)이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은혜(恩惠)로 하느님의 계약(구원)이 이루어질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야곱이 야뽁강 가에서 하느님과 씨름했듯, 무화과나무 아래서 율법을 묵상하고, 고민하고, 씨름한 끝에 부족하나마 깨달음을 예수님께서 보신(에이도) 것이다. 그 모습이 하느님과 씨름 후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모습인 것이고(영적 이스라엘), 그래서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고 하신 것이고 그런 그에게 ‘그 보다 더 큰 일’을 말씀해 주신다. 곧 경제적, 군사적, 태평성대를 누리게 해 줄 민속 메시아가 아닌 하늘을 열고 하늘과 땅의 중개자(仲介者), 구원의 메시아를 알려주신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 갈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창세28,11-12)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 야곱은 하늘을 층계 위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았고, 예수님은 그 층계가 사람의 아들(人子), 곧 당신임을 밝히신 것이다. 곧 당신이 ‘구원의 길’ 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하늘(구원)은 우리의 모든 죄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메시아) 위로 곧 그분의 죽음을 밟고 오르는 길 밖에 없다. 그 말씀을 믿고, 그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더 큰일’이다.
(요한14,12)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 야곱 처럼, 나타나엘 처럼, 말씀과 씨름 할 때 가능하다. 목숨 걸고 기도하고 공부할 때 가능하다. 게으름을 부릴 때가 아니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 안에 머물며 말씀과 씨름 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복음(요한1,45~51)
베델에서 꿈꾸는 야곱과 층계(사다리); 창세기 28장 12절;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7ㄷ)~~~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48ㄴ)
'거짓이 없다'로 번역된 '돌로스'(dolos; deceit; false)는 '미끼', '올무', '속임', '간교함', '교활함', '거짓됨' 등을 뜻한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며(마르7,22), 사탄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고(마태26,4), 하느님께서 죽어 마땅하다고 경고하신 죄의 목록 중에 포함된 것인데(로마1,29), 나타나엘의 마음 속에는 대개의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이것이 없다는 게 그의 훌륭한 인품에 대한 예수님의 증거이다.
특히 '없다'로 번역된 '우크 에스틴'(ouk estin; is nothing)이라는 현재 시제는 사실은 그가 계속적으로 온전한 마음을 유지했음을 시사한다.
요한 복음 1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 포도나무 아래에 있다, 올리브나무 아래에 있다'라고 하면, 그것은 묵상기도 중에 있다, 명상 중에 있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우리들은 이런 성경 말씀에 대한 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이길래 나타나엘이 놀라운 반응을 나타내면서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1,49) 라는 신앙 고백을 할까? 하고 의아해한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묵상기도를 하고 있을 때 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타나엘의 놀라움과 신앙고백의 반응은 자신의 영혼의 속,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기도 내용을 알아차리시고 다 알고 계시는 분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 밖에 더 계시는가?
바로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이시다라는 말이다.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fig tree)는 이스라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종이며, 유다 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도 나타난다.
더욱이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어서, 그 무성한 가지 아래 앉아 율법을 배우고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은 경건한 유다인들의 오래된 관습이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지적은 그가 메시야 오심을 희망하면서 경건한 생활에 힘써 왔다는 것을 알게 한다.
특히 '있는 것을'로 번역된 '온타'(onta; when you were)는 현재 분사 시제로 그가 계속해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이 일을 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이같이 하는 모습을 '보았다'라고 했는데, '보았다'에 해당하는 '에이돈'(eidon; I saw)은 시각으로 감지하는 것을 나타내는데, 카나 출신 나타나엘이 경건하게 묵상에 잠긴 모습을 신적(神的) 전지(全知)로 이미 보셨던 것이다.
아마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약속된 메시야가 과연 오셨는가?
도대체 세례자 요한은 누구이며, 예수라는 분은 누구신지를 아버지 하느님께 물으면서 묵상하고 있었을거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타나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천주 성자 이신데, 같은 하느님으로서 성부 하느님 사이에 천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것은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의 현재 위치이신 이 세상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영적인 차원에 계시는 성부 하느님 사이의 간극을 의미하는 말이다.
동시에 성령의 도구인 천사들이 성자 하느님과 성부 하느님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은 여기 나타나엘의 묵상기도를 포함해서 지상에서의 모든 기도가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 하느님께 봉헌되며, 성부 하느님으로부터의 기도의 응답도 반드시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다는 명명백백한 진리를 계시하시는 내용이다.
또한 성령의 도구인 천사가 날개가 있다면 단번에 성부 하느님께 오를텐데,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은 우리도 완덕의 근원이시고 모범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길이 step by step 한 단계 한 단계씩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시는 완덕과 성덕에의 진보도, 은총과 은사를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봉사하는 일도 서서히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너무 욕심을 내거나 예수님을 앞서 가거나 서둘러서는 안되고, 한 단계 한 단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밟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08월 24일 토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신약 성경에서 바르톨로메오 또는 나타나엘 사도의 이름을 찾아보면, 열두 사도의 이름이 열거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4 참조) 오늘 복음에서만 그 이름이 나타납니다.
역설적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사도인데, 그가 복음을 전하였다거나 제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하였다는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에게 복음이 전해진 장면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서 1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 장에서는 증언들이 고리처럼 이어집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안드레아가 다시 형 시몬을 데려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만나 그를 부르시고, 그다음에 오늘 복음의 첫 구절에서처럼 필립보가 다시 나타나엘(바르톨로메오)을 부릅니다.
이로써 복음서에서는, 바르톨로메오가 사도로서 복음을 선포하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전해진 증언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필립보는 먼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말로 증언하였고,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던 나타나엘에게 직접 와서 보도록 초대하였고 그래서 마침내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서 1장이 끝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사도들로부터 우리에게까지 신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에서도 사도들을 “초석”(묵시 21,14)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신앙을 토대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복음을 인간의 감정(知慧)으로 풀면, 하느님의 뜻(智慧)에서 벗어나 거짓이 될 위험이 크다.
복음(요한1,47-51)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이 거짓이 없는 것? - 나타나엘이 마지막 때의 계시인(미카4,1-5) 하느님의 가르침, 하느님의 이름, 뜻, 길로 살아가고자 갈망(渴望)했고 노력했다는 말씀이신데~
(미카4,1-5) 1 마지막 때에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산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이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백성들이 이리로 밀려들고 2 수많은 민족이 모여 오며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올라가자.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3 그분께서 수많은 백성 사이의 시비를 가리시고 멀리 떨어진 강한 민족들의 잘잘못을 밝혀 주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4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쉼, 안식) 지내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5 정녕 모든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신의 이름으로 걸어가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언제까지나 영원히 걸어가리라.
= 포도나무- 신약을, 무화과나무- 구약을 모형한다. 2권(卷)이 아닌 한 권이듯, 한 나무로 하나의 뜻을 말한다.
* 나무, 기둥, 계약, 같은 단어 “스타오로스”- 나무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기둥)을 뜻하며 십자나무(새 계약)를 모형 한다.
그래서 그 모든 나무의 실체, 진리이신, 곧 모든 것을 품어 없애시고 참(眞)을 주시는 안식(쉼()의 주님께 오는 것을 보시고 ‘거짓이 없다’하신다.(마태12,8)
그것이 하느님의 영원한 뜻(진리), 그 하나의 길이다. 또한 나단의 예언인 불안, 불의 없는 한 곳이다.(2사무7,10)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더 큰일 -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 위로 하늘을 오르내리는 일인데, 하늘이 어떻게 열리고 주님 위를 어떻게 오르내리나?
- 아담의 범죄이후로 사람들이 갈 수 없도록 좁아진, 그 좁은 문으로 막혔던 하늘 문(휘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로 열리고(찢어지고), 죽었던 이들이 살아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열린 하늘로 들어가게 됨을 말씀하심이다.
(마태27,50-52) 50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51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승천(昇天)하시기 전~
(사도1,3)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가르침), 곧 제자(우리)들이 해야 할 하느님의 일에 관한 말씀을 다시 주신 것이다. ‘믿는 일’이다.
(요한6,28-29)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보내신 이,- 하느님께서 우리의 속죄(贖罪)제물로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십자나무에 달리게 하신 그 주님만을 믿으라.’ 하신 것이 아니다. 그 ‘십자가의 주님을 진리를 깨닫고 믿게 해 주실 다른 보호자 성령’님까지를 말씀하심 이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 배고플 때 양식을 주셨고, 아플 때 병을 고쳐 주셨고, 풍랑이 일 때는 풍랑을 물리쳐 주심으로 보호해 주셨다.
그 모든 것들은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주님으로 살게 될 안식(安息)의 모형들이다. 이제 남겨진 제자들은 예수님 승천 후, 믿음으로 살아야만 한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아 믿음으로 살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히브11,3) 사람의 길(지혜)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시, 지혜이신 다른 보호자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한다. 그러면 위협받지 않고, 곧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십자나무, 그 새 계약아래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용서, 자유, 안식을 살게 된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
(요한14,16.26) 16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깨닫도록)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믿게) 해 주실 것이다.
(로마8,24-26)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주님과 하느님의 지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믿고 사는가, 땅(인간)의 길(지혜)을 믿고 사는가~
(로마8,9-10)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믿음)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더 큰일’이다.
(요한14,12)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 모든 거짓, 죄악들을 품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한 빛의 나라에서 영원한 용서, 자유, 쉼, 안식, 평화, 생명을, 곧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이 없는 따듯하고 포근한 하느님의 품, 영원한 안식, 사랑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도의 기도로 마친다.~
(에페1,16-19)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나라(진리)가, 아버지의 뜻(더 큰일)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