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3일 금요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마태22,34-40)
제1독서<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에제37,1-14)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화답송>시편107,2-3.4-5.6-7.8-9(◎1)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말하여라, 주님이 구원하신 이들,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이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 북녘과 남녘, 뭇 나라에서 모으신 이들은 말하여라. ◎
○ 사막과 광야에서 그들은 헤매며,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 찾지 못하였네. 굶주리고 목말라, 목숨이 다하였네. ◎
○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셨네. 그들을 바른길로 걷게 하시어,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게 하셨네. ◎
○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
복음<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에제37,1-14)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2ㄹ)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14)
에제키엘서 37장 12절 이하 14절에서 마른 뼈의 환시를 통한 새로운 확신과 희망에 근거하여 하느님께서 에제키엘로 하여금 회복의 약속을 선포하라는 명령이 주어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환시를 받은 자들을 '내 백성아'라고 부르신다.
이것은 비록 현재 그들의 영육의 상태가 마른 뼈처럼 희망없는 가운데 있지만, 이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시고 그들에게 선민의 축복을 회복시키실 것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에제키엘서 37장 1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땅에서 포로로서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자신들의 상황을 자신들의 뼈가 말랐다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의탁하고 신뢰하며 살지 못하는 그들의 상황을 더 비관적으로 무덤 속에 있다고 표현하셨다.
하지만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그들을 무덤으로부터 끌어내어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은 죽었다는 의미이고, 무덤으로부터 끌어내어 나오게 하겠다는 것은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겠다는 의미이다.
이 무덤의 비유는 넓은 계곡 한 가운데 가득하던 마른 뼈들이 힘줄과 살이 붙고 살갗이 붙은 후에 숨이 불어 넣어져 큰 군대가 되게 하신 환시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마른 뼈의 소생 비유나 무덤의 죽은 자들의 소생에 관한 비유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영육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른 뼈나 무덤 속의 시신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남부 유다 공동체의 영적인 죽음 상태를 의미하고, 마른 뼈에 숨(생기)이 불어 넣어져 큰 군대로 소생하는 것이나 무덤 속의 시신이 살아 나오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신앙이 생겨 새롭게 변화되며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표현이 사용되어 정치적인 해방과 국권의 회복을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여기 에제키엘서 37장 12절에서 예언되는 바빌론 유배 포로 공동체의 정치적 해방은 그들을 억류하고 있던 바빌론 제국이 B.C.539년에 멸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그 후 세 차례에 걸친 포로 귀환( B.C. 537년, 458년, 444년)이 이루어져 원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상속받은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적 회복은 그들이 다시 주님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 사건으로는 B.C. 516년에 이루어진 성전 재건과 B.C. 432년에 이루어진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을 들 수 있다.
한편, 에제키엘서 37장 14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영적 측면을 보다 부각시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선민 공동체에 두어 살아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여기 에제키엘서 37장 14절의 '내 영을'에 해당하는 '루히'(ruhi; my spirit)의 원형 '루아흐'(ruah)는 앞의 '숨'(생기)으로도 번역된 단어이다.
여기서 사용된 '루아흐'(ruah)는 에제키엘서 37장 1절에서 에제키엘을 이끌고 계곡으로 갔던 것으로 언급된 '그의 영'에 해당하는 '루아흐 예흐와' (ruah yehwa)와 관련된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즉 '주님의 영',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국 에제키엘서 37장 14절은 본 단락이 제시하는 선민의 회복이 단순히 포로 생활에서의 해방과 국권의 회복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선민들이 하느님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될 것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전에 그들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하고 징계 받도록 한 이전의 잘못된 삶이 완전히 청산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백성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선민의 회복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속하는 새로운 백성들이 될 것임을 나타내는 새성전과 새로운 예배와 새 땅에 대한 환시를 담고 있는 에제키엘서 40장 이하 48장 까지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어릴 적 캄캄한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던 별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십계명 가운데서 한 계명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따르면 십계명은 하느님에게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진 법, 하느님께서 돌판 위에 직접 새겨 주신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을 십계명이 아닌 신명기와 레위기에서 한 구절씩 선택하셨습니다.
십계명은 부정형의 엄중한 명령문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계명,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놀라움을 주는 것은 예수님의 두 번째 대답입니다.
본래의 질문은 가장 큰 계명 하나를 뽑아 달라는 것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에 이어 둘째 계명을 더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서 두 번째 계명이 첫 번째 계명과 같다고 하십니다.
누가 감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그 두 계명을 다르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만 하고 살 수 없습니다.
기도와 침묵, 피정과 묵상을 하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내적이며 영적인 삶을 가꾸는 일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는 경향을 낳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가 사람들에 대한, 또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낳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 성경의 전통, 교회의 가르침에서 모두 동떨어진 것입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내 못남을 맡은 이웃
복음(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거이들의 말을 막아버리신 것이다.
앞절로 가보면~
(마태22,31-32) 31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부활은 육적 자아가 죽어 영적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고, 그들이 산 이들이고 그들의 하느님이시다.
(요한11,25-26)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 예수님의 부활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죽음)의 열매다.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것이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이다. 내 죄의 대속(죽음)으로 부활이다.
(1코린15,21-22.42-43)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42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로마6,4)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 아버지의 영광,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아가페)으로 곧 십자가로다
(로마6,5)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내 죄로 대신 십자가를 지셨음을 깨닫고 육적 나를 버리고(죽이고) 십자가의 주님과 한 몸이 되면 부활이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 율법학자는 부활과 관련된 큰 계명을 묻고있는 것이다.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 하느님의 뜻(사랑)으로, 더러워졌던 마음, 정신, 목숨이었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새롭게 살아난, 부활한 새 마음, 새 생명, 새 정신이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죄인인 나(우리)를 위해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신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으로 당신 생명을 버리신 그 ‘예수님의 마음, 정신, 생명으로 살겠습니다.’ ‘그분만이 구원의 길, 진리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마음, 정신, 목숨입니다.’ 하는 것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존재하는 나(우리)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웃이 나 자신처럼 새 마음, 새 정신인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죽음(대속)과 부활로 살아난 그분의 지체들이다. “너‘가 ’나‘라는 것이다. 모두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큰 계명이다.
(1코린12,12-13.14-15)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 이웃이 ‘나’라는 것이다.
(1코린12,16-27)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약(弱)하고 점쟌치 못한(모자라는), 그 부분이 내 몫일 수도 있었다. 다른 지체가 맡았음이다. 그것을 인정할 때 다툼(분열)이 없게된다. 그래서 다른 지체, 그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큰 계명이다. 그러나 육(肉)을 입고 있는 나는 못한다.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 성령께서 덮으시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
남자(씨)를 모르는 처녀에게 아기(씨- 말씀)를 잉태하게 하시어 구원자를 낳게(깨닫게)하신 분이 아니신가....
(루가1,35.37)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 그러나 사랑은 잘못을 꾸짖어 하느님께 돌아와 새 마음, 새 정신, 하늘의 생명을 얻게하는 것임을 놓치면 안 된다.
(루가17,3)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 진리로 이끌어 자유롭게 하시는 보호자 성령님! 잘못된 길을 가는 이웃이 새 생명을 얻도록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22,34-4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38)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39)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40)
원문과 한글 새 성경의 단어 배열 순서가 다르다.
원문은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이다.
원문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이 먼저 선언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방법론이 제시된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 you shall love; love)의 원형 '아가파오'(agapao)라는 단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뜻할 때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한없는 순종과 내면적 경외심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신명5,10), 그를 섬기며(신명10,12), 그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외적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신명11,22).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을 의미한다(요한14,15; 14,21; 1요한5,3).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장 5절의 인용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에 이 말씀을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일명 '셰마'(shema)라고 불리웠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외모'를 나타내는 '프로소폰' (prosopon)과 대조되는 단어로서, 가식없는 내면의 진실함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2코린5,12; 1테살2,17).
그리고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yche; soul)는 '호흡', '생명'이라는 뜻이 있으며,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생명을 가리킨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생각', '뜻', '지각'이란 뜻으로서 이해하고 느끼며 갈망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전인격(全人格)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가시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여기서 '첫째'로 번역된 '프로테'(prote; the first)는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중요성의 경중에 있어서도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그분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분과 친교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영적, 정서적, 인격적으로 균형있고 충족한 상태로 살아가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과 교훈을 성심껏 순종해야 한다.
코헬렛 12장 13절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라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계시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지 않고, 또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영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과 삶의 행복을 성취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서 성심성의껏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신명10,13).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와 같다'에 해당하는 '호모이아 아우테'(homoia aute; is like it)에서 '아우테'(aute; it)는 여성 3인칭 대명사로서 22장 38절의 여성 명사 '엔톨레'(entole; commandment), 즉 '계명'을 가리킨다.
'같다'로 번역된 '호모이아'(homoia; is like)의 원형 '호모이오스'(homoios)는 '닮은 사람'(요한9,9), '같은 식'(유다1,7), '같은 곳'(묵시18,18)등과 같이 동등한 두 사물을 비교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와 같다'라는 말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이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 의무를 행하다 보면, 사람, 특히 부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마태15,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이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두 가지 의무는 어떤 면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생활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4,20)라고 말한다.
한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십계명 중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문으로서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부터 열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다.
'이웃'으로 번역된 '플레시온'(plesion; neighbor)은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모세 율법이 주어질 당시의 이 표현은 동족이나, 함께 거주하면서 유다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외국인들만 가리켰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의 범위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들은 물론(루카10,29~37), 원수까지도(마태5,44)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 포함시켰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는 마태오 복음 22장 37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여기서 '율법'으로 번역된 '호 노모스'(ho nomos; the Law)는 율법서인 모세 오경 (Torah)을 가리키고, '예언서'로 번역된 '호이 프로페타이'(hoi prophetai; the prophets)는 예언서 (Nebim)을 가리킨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라는 표현은 단지 율법서와 예언서 뿐만 아니라 모세 오경과 예언서와 더불어 구약 성경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성문서(Kethubim)까지 포함하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정신이~달려 있다'로 번역된 '크레마타이'(krematai; hang)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직설법 중간태로서 '매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의존하다', '요약하다'(summarize)는 뜻이다.
당시 랍비들은 도덕 법규들을 세분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율법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며, 거기에서 공통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모든 율법의 근본 정신이요, 원칙이라고 천명하셨다.
실제적으로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성품과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근본 정신이기에 사랑이 결여된 율법 준수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며 위선일 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로마13,10), 사랑의 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했다(로마13,9; 갈라5,14). '경천애인'(敬天愛人) 혹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계명은 전체 구약 성경의 기둥이요, 핵심인 것이다.
2024년 08월 23일 금요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심판을 선고하던 에제키엘이,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심판 선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자들이 막상 멸망하고 나니 절망에 빠지는데, 심판을 선고하였던 예언자는 오히려 희망을 선포합니다.
희망이라는 것, 쉽지 않은 덕목입니다. 문명이 발달하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전보다 더 간절히 희망을 이야기합니까? 어떻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에제키엘에게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선포하는 희망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에제키엘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아십니다”(에제 37,3).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러하였듯이 에제키엘이 보기에도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은 하느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제키엘은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합니다. 마른 뼈들에게 살아나리라고 예언하라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여기던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선포하라는 것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그 말씀을 믿고 선포합니다.
그가 부르심을 받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선고하라고 에제키엘을 보내시면서, 이스라엘이 완고하여 듣지 않으리라고 하시며 그들이 듣든 듣지 않든 선포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2,5). 모두 절망하고 있을 때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예언자이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희망은 오직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마른 뼈들의 교회(敎會, 세상)
독서(에제37,1-14)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 바싹 말라 죽어있다. 곧 하느님의 물(말씀()이 없어 죽어있는 모습이며, 창조(創造)이전 만물, 곧 땅(흙)인 사람의 모습이며 현세(現世)의 죄인(罪人)들의 상태를 보여주심이다.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라하프-품다) 있었다.
=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있어, 어둠인 곳에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로 창조(創造)를 이루신다. 곧 말씀으로 꼴(틀)을 세우시고, 말씀으로 빈곳을 채우시고, 어둠(죽음)인 땅의 물을 영(靈)이 품으신 것이다. 그렇게 창조를 이루셨다. 만물(萬物)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탱하고 있다.(히브1,3)
말씀이 사람의 생명(生命), 생명의 물(생명수)이다. 그런데(어제 확인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뱀의 유혹(誘惑)으로 잃어 버렸고, 사람이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뱀의 선악의 말, 선악의 법, 그 심판(죽음)의 물이 사람의 마음(생각)이 되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생명수)이 없어 바싹 말라 죽어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상태(狀態)다.
(아모8,11) 11 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본문의 ‘뼈’들은 물(말씀)이 없는 흙의 먼지로 죄인들을 비유하심이다.~
3ㄱ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 ‘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모형(模型)한다.
3ㄴ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 ‘주님의 말씀을 먹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죽은 뼈들이 어떻게 듣고 먹나?- 앞장으로 가보자.
(에제36,25-26)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 하느님께서 말씀을 뿌리시고, 넣으심으로 새 창조(創造)를, 새 것으로 다시 살리시겠다는 말씀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피로 맺는 새 계약의 말씀(물)’을 하심이다. (예레 31,31-35 루카22,20 참조)
5 주 하느님이 뼈(먼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첫 창조에서 새 창조를 이루시는 모습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 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말씀 선포)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 말씀이 살아 활동(活動)하심이다.(1테살2,13참조)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 숨, 하느님의 영(靈), 온 세상 만물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힘, 신성(로마1,20), 곧 영원한 보호자로 살리시는 성령(聖靈)이다.(로마8,1-16참조)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 세상 창조의 단계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ㄱ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 인간들의 땅의 희망이 사라져야 하늘의 영원한 희망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러므로~’
12ㄴ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약속의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 흙의 먼지, 그 없음에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사람으로 창조(創造) 하셨듯이, 반드시 죽어있는 죄인들 또한 당신의 숨, 영(靈)을 다시 불어 넣어 새 창조로 새로운 새 생명이 되게 하신다. 새롭고 참된 희망(希望)이다.
문제(問題)는 마른 뼈들이 자신들이 말라 있음도, 죽어 있음도, 모르고, 그래서 주시는 말씀, 생명수(生命水)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세상의 물(논리)을 고집한다는 것이 문제다. 버리지 못하고 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사마리아, 곧 말라있는 여자에게~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세상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생명수, 말씀)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제사(祭祀) 열심히 드리며 윤리적(倫理的)으로도 흠 없이 살아온 니코데모에게~
(요한3,3.5) 3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1코린15,51-57) 51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52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새 계약의 말씀)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53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그리스도)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그리스도)을 입어야 합니다.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옛 계약)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새 계약)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感謝) 드립시다. ~아멘.
☨하느님의 영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저와 맺어주신 모든 이들의 마음(발길)에 충만 하소서. 말씀을 깨닫지 못해 말라있는 저희의 실체를 보게 하시고, 말씀을 갈망하며 말씀을 채우는 삶을 허락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