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30일 금요일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열 처녀에 비유 (마태25,1-13)
제1독서<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1,17-25)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33(32),1-2.4-5.10-11(◎5ㄴ) ◎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
○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
○ 주님은 민족들의 의지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흩으신다.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
복음<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마태25,1-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독서 (1코린1,17-25)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8)
코린토 1서 본론의 서두인 1장 10-17절은 코린토 교회 내의 분열의 실상과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책망하는 내용이다. 이제 이어지는 18절 이하부터 4장 21절까지, 하느님의 절대적 지혜로 된 '십자가에 관한 말 '<십자가의 도(道)>의 유일성에 대한 가르침인데, 이 논리를 가지고 몇 가지 측면에서, 교회의 분열이 부당하며 불의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 첫번째 단락인 1장 17절부터 1장 25절까지는, 특히 교회의 설립과 통합의 유일한 기반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한편,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왜냐하면'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럴 경우, 본절은 앞서 17절에서 밝혔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오로가 말재주(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십자가에 관한 말씀'<십자가의 도(道)>가 하느님의 힘(능력)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십자가에 관한 말씀'<십자가의 도(道)>로 번역된 '호 로고스 가르 호 투 스타우루'
(ho logos gar ho tu stauru; for the preaching ot the cross)는 문자적으로 '그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17절에 언급된 '소피아 로구'(sophia logu) 즉 말의 지혜(말재주)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바오로는 이러한 대조적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 '말의 지혜' 곧 철학적 논증 등에 대해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코린토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온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다.
복음은 말의 지혜나 철학적 논증에 머무를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계시이다(갈라3,1). 이러한 성격을 갖는 복음에 대한 평가나 결과는 이중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구원을 받을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능력)이 된다(2코린2,15-16참조).
여기서 '멸망할'로 번역된 '아폴뤼메노이스'(apollymenois)는 '멸망시키다','파괴하다'란 뜻을 지닌'아폴뤼미'(apollymi)의 현재 분사형이며, '구원을 받을'로 번역된 '소조메노이스'(sozomenois) 역시 '구원하다'를 뜻하는 원형 '소조'(sozo)의 현재 분사형이다.
그런데 여기서 현재 분사는 지속적임을 보여주므로, 이러한 표현은 파멸의 길과 구원의 길에 서 있는 자들의 상태가 영구적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즉 바오로는 본절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이루어지는 영원한 멸망과 영원한 구원이 날카롭게 대립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하느님의 힘'로 번역된 '뒤나미스 테우'(dynamis theu)는 로마서 1장 9절에 등장하는 과 동일한 표현으로, '어리석은 것'(모리아; moria; 미련한 것)이라는 표현과 대조적으로 사용되었다(1코린4,20).
즉 바오로에게 있어서, 어리석은 것 즉 미련한 것은 '말재주'나 '하느님의 지혜'와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능력)과 대조된다. 이것은 바오로의 독특한 복음에 대한 이해이다.
여기서 '힘'(능력)으로 번역된 '뒤나미스'(dynamis)는 신체적,지적,영적 능력을 포함한 총체적 능력을 지칭하며, 바오로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우주의 원리로서의 생명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는 전능함과 생명력을 지닌 그리스도의 힘과 권능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말이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느님의 초월적이며 생명력을 갖는 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신랑은 그리스도이시고, 열 처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저마다 그리스도의 신부고 교회입니다(에페 5,22-32 참조).
슬기로운 처녀들은 모범적인 신앙인들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착하기는커녕, 약고 야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슬기로운 처녀들의 지인이고 친구였을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에 기름이 떨어지자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그것을 좀 나누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이 기름은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뜻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의 깨어 있음을 대신해 줄 수 없고,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한 결 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등잔의 불은 어두운 밤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충실히 사는 삶을 상징합니다.
등불의 기름은 행실이 동반되는 지속적인 믿음의 삶입니다.
이 기름은 뒤늦게 급히 마련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가난한 형제들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기름 = 말씀(앎) = 성령
복음(마태25,1-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 등(燈)은 교회를 뜻한다.(묵시1,20) 열처녀는 신랑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성도(聖徒)들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 등(燈), 교회(敎會)는 다니지만 기름을 간직하지 못한 어리석음이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 교회 안에서 그릇(자신)을 비우고 기름을 간직한 슬기로움이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 기름을 간직 했건, 간직하지 못했건, 졸고 잠들기는 매(每)한 가지다. 곧 기름과 상관없이 육(肉)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 본질의 한계(限界), 불가능을 보라 하신다.
(로마7,22-25)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 인간의 생각이다. 기름은 나눌 수도, 살 수도 없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 순전히 기름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 야박한 신랑(예수)? 사실 신랑은 어리석은 처녀들을 모른다. *어리석음 - 두 얼(영)이 섞인 것, 곧 하느님의 뜻(말씀)에 인간의 뜻(말)을 넣은 어리석음, 죄(罪)다.(레위19,19 참조)
*신랑(新郞)은 자신의 영(기름)을 간직한 신부(新婦)만 알아본다. 착하게 살았던, 악하게 살았던 상관없다(마태22,8-13참조) 그러나 증표(證票)인 기름이 있어야 한다. 마태오는 예복(禮服)으로 전한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깨어 있어라’- 어제 묵상을 기억해 보자. 진리의 영,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신다고 하셨다. 그 성령께 의탁하는 것이 늘 깨어있음인 것이고, 그러면 성령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시어 늘 지켜주신다고 묵상 했다. 그러니 기름은 성령(聖靈)이다.
*하느님은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救援)하신다. 그리스도는 십자가(十字架) 수난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부활(復活)하여 영광의 자리로 돌아가시고, 대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다. 곧 성령께서 신랑 예수께로 이끄시며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요한15,26)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그런데 성령을 깨닫고 사는 신자(信者)나 성령을 모르고 사는 신자나 모두 육적(肉的)삶을 살기에 매한가지다. 다만 성령과 함께하는 신자는 하느님의 뜻이 나에게 이뤄지기를 기도(祈禱)한다. 성령을 모르는 신자는 자신의 뜻이 하느님께 이루어지기를 열심히 기도한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신자는 육적 삶의 무력함, 헛됨을 인정하는 그 자기 부인(自己否認) 의 삶을 살려고 힘쓰고, 성령을 믿지 못하는 신자는 자기 의로움을 세우려 여러 활동으로 애쓰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고집한다.
(요한12,1-3)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 예수님을 위한 죽음, 혼인잔치의 예표다.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을, 마리아는 자신의 전 재산, 곧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린다. 마르타는 혼인잔치에서 시중드는 일을, 마리아는 혼인 잔치의 주인공, 신부가 된 것이다.
(요한12,7)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마리아)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마리아는 모든 죄인들(자신)의 대속으로 죽으시는 그 예수님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한 몸이 되기 위해 자신을 비운 것이다. 그것이 기름을 간직한 깨어있음이다.
늘 시중드는 활동(活動)에 바빴던 마르타 와는 달리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기에 성령께서 깨달음으로 이끄셨던 것이다.(루가10,38-42참조)
(루가10,39.42)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로마8,8-10)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면 의로움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신 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죄인이었던 우리가 거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힘의 원리인 재물, 의, 명예, 법(말)을 따랐던 그 자신을 버리고(비우고) 내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길(道), 진리(眞理), 생명(生命)으로 채우면(받아들이면) 성령께서 생명이 되어 주신다.
(시편119,105) 105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모든 길, 방법이 말씀 안에 있다. 말씀을 아는 것, 깨닫는 것, 깨어있음이다.
☨천주의 성령님! 육(肉)을 벗어나는 날까지 늘 함께하시며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25,1-1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대답하였다." (3~4.9)
마태오 복음 25장은 24장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기 사흘 전에 주신 올리브산에서의 말씀이 계속되는 부분으로서, 특히 도둑의 비유, 두 종의 비유인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태24,42~51)와 더불어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하는 세 가지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세 가지 비유란 '열 처녀의 비유', '탈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를 나누는 임금의 비유'를 말한다.
여기서 '천국은 마치 ~~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천국이 열 처녀에 비유되는 것이 아니라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상황에 비유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다의 혼인 풍습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러 간단한 종교적 의식을 치른 후,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 혼인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신랑의 집이 먼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혼인 예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본 장에 있어서의 혼인 잔치는 어느 곳에서 벌어졌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혼인 잔치는 신부의 집에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나중에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했을 때 그 요청을 거부한 사람이 신랑이었던 사실(11~12절)에 비추어 보면, 혼인 잔치는 신랑 집에서 베풀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만일 혼인 잔치가 신부 집에서 신부 집에서 베풀어졌다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요청을 거부하는 주체가 신랑이 아닌 신부의 아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 잔치가 어디서 열렸는지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시 유다 관습에 의하면, 혼례식은 보통 해가 진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집 문 밖에 나가서 등을 들고 있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당도하면 영접하였다.
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에 가는 시간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등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했다.
특히 본문에서 신랑이 예측치 못한 시간에 온 것이 강조되는 것은 종말, 또는 모든 성도들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예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부의 들러리인 열 처녀가 들고 나간 '등'으로 번역된 '람파다스'(lampadas)는 수지질의 소나무로 만든 횃불이나 등불, 또는 심지를 꽂아서 쓰는 속이 등근 접시나 기름병을 의미하는 명사 '람파스'(lampas)의 목적격 복수로서 '여러 개의 등'이다.
원문에는 이 단어 뒤에 새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단어 '헤아우톤'(heauton)이 있다.
이 '헤아우톤'(heauton)은 여성 3인칭 복수 소유격 재귀 대명사로서 '그녀들 자신들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열 처녀는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의 등을 들고 나갔다.
여기서 '나간 장소'가 신부의 집인지, 처녀 자신들의 집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이것은 이 비유의 전개에서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본 비유에서 '신랑'으로 번역된 '뉨피우'(nymphiu)의 원형 '뉨피오스' (nymphios)라는 단어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11절). 따라서 비유에서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신부가 아닌, 들러리 처녀 열 명이다.
당시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의 친구들이 맡았으며, 들러리들이 드는 등불은 모두 열 개라고 한다. 유다인들은 열을 이상적인 숫자, 완전 숫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당에서의 공식 집회도 열 명이 참석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비유에서도 그러한 풍습에 따라 들러리 처녀들이 열 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재림은 열 처녀로 상징되는 '모든 성도'가 대비하고 준비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 앞에서 단 한명도 열 처녀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슬기로운 처녀가 아니면 어리석은 처녀에 해당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리석은'으로 번역된 '모라이'(morai; foolish)의 원형 '모로스'(moros)는 신중하지 못하고 예측 능력이나 지혜가 결여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슬기로운'으로 번역된 '프로니모이'(phronimoi; wise)는 신중하고 사려깊으며 분별력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여기서 쓰인 동사 '에산'(esan; were)은 반복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이것은 신부의 들러리 처녀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다섯 처녀들은 항상 신중하지 못하고 선견지명이 없는 자들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평소처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향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며, 반대로 다른 다섯 처녀들도 평소의 삶의 자세가 사려깊고 분별력이 있으며 신중했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서의 교훈은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님의 재림의 때에 어떠한 자들로 드러날 것인가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이제 마태오 복음 25장 3절에는 열 처녀들이 왜 어리석고 슬기로운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밝힌다.
즉 등을 밝히기 위해서는 등은 물론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반면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준비했을 뿐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메트 헤아우톤'(meth heauton; with them)은 '그녀들 자신들과 함께' 또는 '그녀들 자신들 곁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들러리 처녀들이 등을 밝힐 여분의 기름을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충고해 주는 표현이다.
그리고 '엘라이온'(elaion; oil)은 '올리브 나무'(olive tree)를 의미하는 '엘라이아'(elai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올리브 기름'을 뜻한다.
이 기름은 팔레스티나에서 나는 대표적인 산물로서 등불을 밝히고(2열왕4,10) 병을 치료하는데(루카10,34), 그리고 귀한 손님의 머리에 부어 예의를 표시하는데(루카7,46) 사용되었다.
이 기름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믿음'을 상징한다고 보고, 어떤 학자는 믿음에 대응하는 '선행'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학자는 기름이 성별 의식에 사용된 물질이라는 것과(즈카4,12) 성령이 기름으로 상징된다(루카4,18)는 사실에 근거해서 기름은 내면적 신앙의 모습인 '성령의 능력과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마태오 복음 25장 4절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왜 슬기로운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그릇'으로 번역된 '앙게이오이스'(anggeiois; jars)의 원형 '앙게이온'(anggeion)는 플라스크와 같은 휴대용 병을 말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게올 것을 대비하여 등 말고도 여분으로 플라스크 같은 병을 하나 더 준비하여 거기에 기름을 담아가는 준비성을 갖추었다.
그래서 설사 기름이 다하여 등불이 타다 꺼지더라도 여분의 기름으로 계속해서 등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5절에 '신랑이 늦어지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의 재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체되는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베드로 2서 3장 9절이 이것에 대해 분명히 밝혀준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도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연되는 주님의 재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어 방종에 흐르는 기회로 이용될 수 있음을 베드로 2서 3장 3절과 4절이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조롱꾼들이 나와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그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소? 사실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창조 이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7절에서 '우리 등이 꺼져 가니'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오시는 역사의 깊은 밤중에 성령의 불길이 소멸해가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9절의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라는 표현은 슬기로운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주면 둘 다 등불을 켤 수 없을 것이기에 결코 나누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에서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주님 오시는 순간에 자기의 것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는 말로서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구원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각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모자란 기름을 사러가는 역할도 그 누구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2024년 08월 30일 금요일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의 복음에 대해서, 일반적인 해석은 아닌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해설을 소개하려 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여기서 말하는 잠든 처녀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이고 등잔의 기름은 선행이라고 설명합니다.
등잔에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이 세상에서 재물을 쌓아 두기만 하고 자선을 베풀지 않은 이들입니다.
비유에서 열 명의 처녀들을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동정의 가치를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19,12 참조).
동정은 계명으로 주어진 의무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동정을 훌륭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동정 생활을 하면서 선행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복음은 그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처녀들”(25,3)이라고 일컫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그들이 “몸에 대한 사랑을 극복하였지만 돈에 대한 사랑에는 굴복하였다.”라고 말합니다.
동정 생활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더라도,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이 선행을 전혀 실천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등불에도 처음에는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관대함이 요구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가지고 있지만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다음에는 선행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인들에게 기름을 사는 것은 이 세상에 살 때, 가난한 이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를 위하여 준비할 기름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한없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등잔에 기름을 마련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30일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열(10) 處女에 비유(比喩)
오늘도, 앞장, “깨어 있어라”의 이어진 말씀이다. 등(燈)은 교회(敎會)를(묵시1,20), 기름은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聖靈)을 뜻한다.
복음(마태25,1-13)
1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교회)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 열 처녀, 교회를 다니는 모든 신자(信者)들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교회)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성령)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마음)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 기름을 간직했거나 간직하지 못했거나 ‘모두 잠, 곧 육(肉 죽음)의 상태’라는 것이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교회)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성령)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 어리석은 처녀들은 사라질 옛 계약으로 자신의 뜻을 위한 신앙을 살았기에 교회의 힘인 불이 꺼져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기름, 성령(聖靈)께서 영원한 진리(眞理)의 빛으로 밝히신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ㄱ 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 기름(성령)을 어떻게 구(求)하나? 이미 받았음을 말씀 안에 머무르며 깨닫는 것이다. (요한8,31-32)
10ㄴ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어제 우리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되새기며 믿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라고 공부했다. 그러니 성령을 품고(담고) 있어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6절에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곧 성령께서 찾아오신 말씀을 ‘듣고, 깨닫게, 기억하게, 믿게,’ 하심이다.
세상과 짝하고 살았던 나, 그 육신의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도록 하셔야 그리스도 예수님의 짝, 신부(新婦)로 그분과 한 몸이 되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자기 버림(否認)은 우리의 의지, 노력으로 절대 불가능하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 지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보내신 것이다.
* 성령(聖靈)님은 무당(巫堂)이나 다른 종교에서도 할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시거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신령한 언어, 곧 이상한 언어를 시키러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님은 첫 창조에서 새 창조를, 곧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萬物)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시려는 하느님의 위대하신 일, 말씀을 깨닫고 알아듣게 하시기 위해 오신 영(靈)이시다.
하느님의 지혜(智慧)를 보면서도 인간의 지혜로는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깨닫고, 믿고, 알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사도2,4-6.11) 4 (성령 강림 때)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깨닫고, 믿게 해 주실’ 약속하신 분(요한14,16) 곧 다른 보호자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느님의 일을 하러 떠나지 말라’고 명령 하셨던 것이다. (사도1,4) 그런데 알아들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필리4,13)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가 감옥에서 쓴 편지다. 사도는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 안에서, 감옥에서도 기쁘게 살 수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성령님은 부자되게 해주시고, 높은 지위에 앉게 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버리(否認)도록 ‘헛되고 헛된’ 쓰레기로 볼 줄 알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하늘 가는 길, 영원한 빛, 안식,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필리3,7-8)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 이것이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믿어야 하는 이유다.
☨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마음에 지키게 하소서. 아버지의 나라(진리)가, 아버지의 뜻(더 큰일)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