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2일 월요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 방문 (루카4,16-30)

제1독서<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1코린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화답송>시편119,97.98.99.100.101.102(◎97ㄱ)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 제가 당신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 가르침을 묵상하나이다. ◎
○ 당신 계명은 영원히 저의 것. 그 계명 저를 원수보다 슬기롭게 하나이다. ◎
○ 저는 당신 법을 묵상하기에, 어느 스승보다 지혜롭사옵니다. ◎
○ 당신 규정을 지키기에, 어느 노인보다 현명하옵니다. ◎
○ 당신 말씀을 따르려, 온갖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나이다. ◎
○ 당신이 저를 가르치셨기에, 당신 법규에서 벗어나지 않았나이다. ◎
복음<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4,16-30)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2,1-5)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4~5)
코린토 1서 2장 4절에서 '나의 말'은 사적인 모임에서의 대화를 가리키고, 나의 복음 선포'는 공적인 설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엄격히 구분하기보다는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를 이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하지 않는다. 본절에서 '설득력있는'으로 번역된 '페이토이스'(peithois)는 '구변이 좋은', '설득력 있는' 이라는 뜻을 지닌 '페이토스'(peithos)의 복수형으로서 사도 바오로가 유혹하는 말이나 그럴듯한 말을 사용하여 복음을 미화하거나 군중들을 현혹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인위적 설득에 기초한 웅변이나 혹은 합리적이며 철학적 논증으로 복음을 전할 경우에 결국 말이 지닌 화려함만 남을 뿐, 십자가의 말씀(道)은 헛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거짓 예언자들처럼 그럴듯한 말이나 술수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고, 오히려 인간적으로 연약한 만큼, 더욱 성령의 힘과 드러냄을 의지했던 것이다(1코린1,18).
여기서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란 표현은 '힘(능력)있는 성령의 드러남', 그리고 '성령과 능력의 드러남' 이란 두 가지 번역이 동시에 가능하다.
특히 '힘'(능력)으로 번역된 '뒤나메오스'(dynameos)는 힘이나 기적적 능력을 뜻하는 '뒤나미스'(dynamis)의 소유격으로서 자주 독립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령과 능력(힘)은 종종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서(사도1,8), 특히 본문의 경우 형용사와 명사를 결합하는 대신에 두 개의 명사를 연결하여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기교적 표현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힘(능력)있는 성령의 드러남'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드러내는 것'으로 번역된 '아포데익세이'(apodeiksi)는 '증명', '전시', '증거'를 뜻하는 '아포데익시스'(apodeiksis)의 여격으로서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에 수반된 초자연적 영향력을 뜻한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이러한 '증거'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힘(능력)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령의 힘(능력)의 드러남은 증거를 동반한다는 것인데, 본절에 언급된 '성령의 힘'(능력)이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나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능력(에페1,17~18), 회개와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1테살1,5; 2,13).
실제로 사도 바오로가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혜와 수사학과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어떤 외적 증거의 드러남을 제시하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5)
2장 5절은 사도 바오로가 성령의 능력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한 자신의 코린토 교회 선교 활동을 회상하는 2장 1~5절의 결론 부분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성령의 힘을 의지한 것이 코린토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지닌 믿음을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은 원문에서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 '히나'(hina)가 문두에 등장하여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복음 선포의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잘 보여진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가 오직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코린토 교인들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기초를 둔 참된 믿음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pistis)는 정관사 '헤'(he)와 함께 사용되어 '믿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하심에 기초한 본질적 믿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에 사도 바오로가 전한 복음이 인간의 지혜나 언변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파도가 들이닥치면 힘없이 무너져 버리고 마는 한낱 모래성에 불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보다 더 탁월한 지혜나 언변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면, 사도 바오로가 전한 복음은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복음을 논리적 논증에 입각해 선포했다면, 또 다른 선명한 논리적 논증이 등장할 경우 이내 파기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가 전한 복음은 자신의 지혜나 설득력있는 언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기초하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영원하다.
즉 불변하는 하느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에 의해서도 절대 파기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고 코린토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본절의 내용은, 십자가의 도(말씀)가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 된다는 코린토 1서 1장 18절의 사도 바오로 자신의 확신에 대한 확증인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연중 제22주간부터 우리는 평일 복음에서 루카 복음서를 읽게 됩니다.
그 첫날인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향 나자렛으로 향하십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여러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신 뒤에 고향을 방문하시는데(마태 13,54-58; 마르 6,1-6 참조), 루카 복음서에서는 고향 방문이 그분 공생활의 시작에 나타납니다.
루카 복음서의 나자렛 이야기는 예수님 활동의 서막을 올리며 앞으로 전개될 그분의 행적과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요약하여 미리 제시하는 기능을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는 구약의 예언, 특히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름부음으로 주님의 영이 내리셨다는 말씀은 세례를 받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머리 위로 성령께서 오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3,21-22 참조).
그는 앞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는”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전개되는 예수님의 활동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메시아의 앞길은 성공과 승리가 보장되는 듯 보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전혀 다른 수난과 패배의 길을 걷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겪을 그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공생활의 장엄한 시작을 알리는 단락임에도 그 시작부터 위기에 놓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을 밖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시는 모습은 뒤에 당신의 백성에게 배척당하실 모습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전체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공생활의 시작(나자렛 설교)에서 마침(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여정이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천 년 전 사람들에게 구원의 실현을 알리시던 이 말씀은 같은 복음을 듣고 있는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당신께 온 종일 부르짖사오니!
복음(루카4,16-30)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 성경(구약) 그 중에 이사야서 도 메시아(에수)를 전(傳)한다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하느님의 은혜(은총)로 받는 해방이다. 곧 어제 묵상했듯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 완전한 은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그 완전한 법, 자유의 법인 새 계약으로 받는 해방이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 하느님(뜻)의 자리며, 그 하느님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의 자리에 앉으심이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공동번역)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말씀은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말씀은 시작이시며 완성이시다. 하느님은 시간, 공간이 없으신 분이시다. 해방의 새 계약의 일을 시작하셨고, 완성하셨다는 것이다.(1테살2,13 묵시1,8 참조)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 말씀에 놀라워했다는 것은, 말씀을 믿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왔던 말(가르침)과 다른 그 무엇이 있음을 감지를 하긴 했는데, 알아듣지는 못하겠고,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 삼년 육개월은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의 공생활을 뜻한다. 곧 당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기근이 왔다는 것이다.
(아모스8,11) 11 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 자신들만의 하느님이신 줄 알았는데, 자신들이 짐승처럼 생각했던 그 이방인들에게만 예언자를 파견하시고 고쳐 주셨다니, 자신들이 짐승과 같은 이방인들보다 못한 꼴이 된 것이다.
그러니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 산 위에 있는 고을은 예루살렘(율법)성전으로 성경은 그 율법자들의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율법이 믿는자들이 율법의 완성, 실체이신 메시아를 죽이려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쁜 소식이며 해방인 분을 죽이려는 것이다.
(말씀을 되새기고 곱씹는 묵상을 하지 않고,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놓치게되는 죄의 용서, 해방, 구원이다.)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겠다고 약속한 그들이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뜻인 주님을 죽이려는 것이다. 곧 그들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파괴한 것이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하느님의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실 때의 모습이다.
(창세15,7-10)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 삼(3)은 하늘의 숫자로 삼위 한 분을 뜻한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아담의 죄)의 본능으로 한분이신 하느님(3)의 하나(1)의 뜻을 선악의 둘(2)로 잘라 바친 것이다. 그러면 죽음이다.(창세2,17)
(창세15,11-12) 그래서~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 아브람은 죽음을 쫓아 낼 능력이 없다. 그래서 죽음이다. 하느님의 뜻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창세15,17)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 죽을 아브람 대신 빛이신 하느님(휏불)께서 그 죽음 사이를 지나가신 것이다. 곧 아브람의 계약 파괴, 그 잘못을 하느님께서 대신 지시겠다는 것이다. (당시, 계약 파괴자가 파괴된 물품 사이를 목숨으로 갚겠다는, 그 지나가는 관습을 인용하신 것이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이 하느님의 모습이다. 그 죽을죄인(율법자)들을 살리시려, 대신 그 짐승(죄인)들 한 가운데를 지나가신 것이다. 대신 지나가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기억 하자~
(1요한3,8) 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1요한4,14-15)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아멘.
☨은총의 천주 성령님!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저희 마음에 심어주신 말씀이 자라나 이 죄인들 속을 지나시는 그 사랑 안에 자라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복음(루카4,16~30)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1)
아마도 성경 봉독 후 예수님께서 하신 교훈의 말씀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깊었으며, 내용도 풍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카 복음 4장 21절과 18절, 19절의 내용만으로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요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므로, 루카 복음사가는 21절로 압축 요약해서 전달하였다.
21절에서 '이루어졌다'로 번역된 '페플레로타이'(peplerotai; is fulfilled)는 구약 예언의 완성과 성취를 드러내는 전문용어인 '플레로오'(pleroo)의 수동태 완료로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의 예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회당의 청중들에게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이사야서 61장 1~2절에 나오는, 주님의 영을 받은 의로운 종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며, 당신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명하는 중요한 예언으로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 계속 성취될 예언이기도 한 것이다.
즉 가난한 이들이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고, 죄와 죽음의 권세에 잡혔던 이들이 자유롭게 되며, 영적으로 눈먼 이들이 진리를 보게 되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 가운데 기쁨을 회복하며,
주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로운 해가 도래하는 등의 일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와 생명, 자유와 평화, 그리고 치유와 하느님의 의로운 통치를 동반하고 육화(강생)하신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이시다.
이처럼 예수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이같은 일들은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으며, 예수님 재림때까지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다.
2024년 09월 02일 월요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루카 복음서에서는 오늘 복음의 단락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부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루카 4,18) 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만 따로 모으신 뒤 복음을 전하셨을까요? 그러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리 자캐오나 니코데모,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같은 이들도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지 않았던 이들도, 종을 고쳐 달라고 청하였던 백인대장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전하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그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에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행위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 구원을 간절히 바랐던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위들에서 생명을 얻었지만, 예수님 없이도 부족할 것 없다고 여기던 이들은 그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복음은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들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하느님 앞에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요한 묵시록 3장 17절에서는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런 착각에 빠져 기쁜 소식에 귀를 막지 않도록 우리의 가난함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방문記
(루카 4,16-21)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 성경, 곧 구약의 모든 말씀도 그리스도 예수 이야기인 것이다.(루가24,27.44 요한5,39외 다수)
그래서~
(사도28,23) 23 그들은 바오로와 날짜를 정해 두었다가, 많은 사람을 데리고 바오로의 숙소로 찾아왔다. 바오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을 들어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였다.
= 구약의 모든 말씀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 것, 특히 이사야서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하느님의 은혜(은총)로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을 통한 죄의 용서와 의로움, 곧 구원(하늘의 생명)을 거저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느님의 은혜의 말씀(계명)을 인간의 말 계명(법)으로 받아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도록 가르치고 배워 많은 이들이 그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지 못한 그 가난한 이가 되었다. 그래서 죄 의식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용서 그 해방을 모르고,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오늘 해방 시키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 독서의 말씀으로 깨닫고자 한다.~
(1코린 2,1-7) 1 형제 여러분, 나도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의 뛰어난 언변과 지혜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 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십자가의 복음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 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 인 것이고,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신 것이다.(1코린1,22-23)
3 그래서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성령께 의탁하여 깨달은 그 하느님의 지혜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 그 해방의 기쁜소식, 그 은총의 말씀을 못 들어 죄에 잡혀 가난한, 곧 구원의 진리 그 하느님의 은혜, 은총이신 그리스도를 못 알아보는 눈먼 이가 되는 것이다.
6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 성숙은 인간의 지혜가 구원의 어리석음 임을 아는, 깨닫는 것이다.(1코린1,21)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 많은 지도자들께서 세상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복음과 연결 시켜 말씀들 하시는데~ 그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잘못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세상의 그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람의 도리이지 구원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 사람의 도리를 잘 지켜서 받는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곧 하늘(예수)의 대속의 죽음으로 받는 소금과 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약속, 그 은혜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약속, 그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오늘 인간의 지혜의 길, 그 계명에서 하느님의 지혜의 길, 곧 십자가의 길, 그 복음으로 돌아오면 구원 또한 살아있는, 유효한 것입니다.
(히브4,1) 1 그러므로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아멘.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안식일 금지법 제39. 호짜아흐(Hotza'ah) - 운반하기
율법은 안식일에 개인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물건을 옮기기, 운반하기, 던지기, 밀기 등을 금지한다. 공공영역의 한 장소에서 대략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다. 그러니 떨어뜨릴수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