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루카4,31-37)

2024. 9. 2. 오후 5: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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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일 화요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루카4,31-37)


   


1독서<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1코린2,10-16)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화답송>시편145,8-9.10-11.12-13ㄱㄴ.13ㄷㄹ-14(17)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복음<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또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독서(2코린 4,1-2.5-7)와 복음(루카 22,24-30)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1코린2,10ㄴ-16)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0ㄴ)

 

원문에는 원인인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어, 본문은 성령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비밀스런 지혜를 열어 보이실 수 있는 이유 및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하느님의 지혜를 보이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는 모든 것, 곧 하느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통찰하십니다' 로 번역된 '에라우나'(erauna)는 '탐색하다', '주의깊게 조사하다',  '탐구하다' 를 뜻하는 '에류나오'(ereunao)의 현재형이다. 이 동사는 고대 검사관의 보고서에 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파생된 '에라우네타이'(eraunetai)가 바로 세관 업무를 보는 '검사관들' 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로마서 8장 27절에서는 바로 이 동사가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까지 살펴 보신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것을 완전하게 아시는 분이심이 분명하다. 여기서 바오로는 이 동사를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시제인 현재형으로 씀으로써 성령께서 통찰하시는 그 일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바오로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비밀' 까지도 통찰하신다. 여기서 '깊은 비밀' 이라고 번역된 '바테'(bathe)는 '깊이', '깊음'(로마8,39) 혹은 '충만'(2코린8,2)을 뜻하는 '바토스'(bathos)의 목적격으로,  인간이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깊고 풍성하신 하느님의 비밀을 의미한다.(묵시2,24 ; 로마11,33 비교)

 

바오로는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 성령께서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심오한 뜻과 속성,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의 계획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시므로,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은 하느님의 오묘하신 뜻과 섭리는 제3위 하느님으로서,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되시는 성령만이 알 수 있고, 또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1)

 

바오로는 여기서 사람의 속사정을 그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알 수 없다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생각도 그 분의 영인 성령 외에는 알 수 없다는 사실, 곧 성령만이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신다는 10절의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영' 이란 말은 물론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영혼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남녀의 구별이 없는 보편 인류 속에 존재하는 자아 의식으로서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 위에는, '사람의 영' 과는 달리, '사람의 영' 을 수식하고 있는 '그 안에 있는' 이라는 뜻의 '엔 아우토'(en auto; with him)가 빠져 있다. 이 점에서 '하느님의 영' 은 단순한 그분의 자아 의식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란 점이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성부 하느님과 관계하시는, 또 다른 제3위 하느님으로서 '인격적인 분' 이시다.

 

'사람들의 것들은 사람의 영이 알고, 하느님의 것들은 하느님의 영이 안다' 라는 표현같은 어법은, '같은 것은 같은 것에 의해 알려진다' (like is known by like ; Gleiches durch Gleiches)는 일반 원리를 바오로가 차용한 것이겠지만, 하느님의 영과 인간의 영에 대한 바오로의 유비에 있어서는, '엔 아우토'(en auto ; with him)라는 표현의 사용 유무에 따라서 인간의 영과 철저히 구분되는 성령의 독자성을 부각시킨다.

 

한편, 바오로는 '마찬가지로'로 번역된 '후토스'(hutos)로 대변되고 있는 이런 유비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코린토 전서 2장 6-10절에 선포된 하느님의 지혜를 나타나시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점 나타내었다.(로마11,34)

 

바오로가 하느님의 지혜인 복음이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진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받은 이 복음의 진리가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시는 분, 곧 성령의 증거에 의한 것이므로 견고하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바오로는 이처럼 구원의 진리는 성령을 통하여서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함으로써 인간적 요소가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교회가 하나로 뭉쳐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15)

 

'영적인 사람'으로 번역된 '호~프뉴마티코스'(ho~pneumatikos)는 14절에서 '현세적 인간'으로 번역된 '프쉬키코스'(psychikos)와 대조되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영적인 사람','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의 사람' 뜻한다.

 

이 사람은 모든 영적 진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에 속한 사람은 깨우쳐지고 밝혀진 마음의 눈(에페1,18)을 갖고 있어 더 이상 이 세상의 신(2코린4,4)에 의해 유혹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의 영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은 구원의 진리에 입각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이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성령을 소유한 사람의 특권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현세적 인간' 아무리 많은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영적인 사람' 구원에 관해 계시된 모든 것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 알지만, '현세적 인간' 성령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세적 인간' '영적인 사람' 판단할 수 없으며, 반대로 '영적인 사람' '현세적 인간' 의해서 판단받지 않는다.

 

한편, 본절을 결코 소위 '영적인 사람'들이 모든 것에 대한 유권적 해석을 독점하고, 어떤 사람의 징계나 권면에 의해서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해석은 코린토 교회를 향해 바오로가 책망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으로 회귀할 위험을 내포한다.

 

바오로가 여기서 '영적인 사람' 모든 것을 판단하고,'현세적 인간' 의해 판단받지 않는다는 지적한 것은, '영적인 사람'이 모든 일에 있어서 결코 실수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성령을 받은 코린토 교인들도 여러 가지 실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듯이, 성령을 받은 '영적인 사람'들 역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바오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관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반면, '영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복음서는 공통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첫 번째 기적이 마귀의 추방이라고 말합니다(마태 4,24; 마르 1,23-26; 루카 4,33-35 참조).

예수님께서는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오늘 복음처럼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어 그를 해방하십니다.

마귀가 떨어져 나간 사람은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자유를 얻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마귀의 영”이라는 말이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다양한 것들에 사로잡혀 살아갈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를 현혹하는 광고와 황당한 뉴스에 눈과 귀를 빼앗겨 소비주의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소중한 자유를 잃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많은 나쁜 것에 중독될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신은 그 어떤 것에도 매여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조차도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신봉하고 그것에 매여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루카 복음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미리 유산을 받아 멀리 떠난 작은 아들이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방탕한 생활을 하며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15,11-19 참조).

마귀들은 똑똑하고 교활합니다.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창세 3,1).

마귀들은 신학에도 밝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들은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선을 거슬러 거세게 저항합니다. 우리 안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조용히 차분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귀와 대적할 힘을 주님께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1테살5,9)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다.

 

복음(루카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 하느님(성자)께서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려 이 땅, 세상으로 내려오신 그 구원자(救援者)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심이다. 오늘은 카파르나움(자기를 위한 성전) 곧, 자신의 힘으로 안식을 누리려는 그 잘못된 믿음으로 억압받는 이를 해방시키려 하신다.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하느님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의 권위다. 곧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권위다. 하느님의 말씀이 듣는 가운데서 해방을 이루신 권위다.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당신을 죽이려는, 죄인들을 살리시려 대신 죽음 속을 지나가시는 사랑의 권위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 마귀의 영(靈)이 들렸다는 것은, 뱀(마귀)의 유혹을 먹은 아담 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선악의 말로 듣고 있었음을 뜻한다.

 

34 “나자렛 사람 예수님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마귀의 영이 들린 이가 알고 말하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믿지 않는가? 무슨 차이일까?

선악의 하느님으로 알고 있는 것과, 선(예수)이 악을 대속하시고 용서,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의 그리스도로 믿는 것과의 차이다.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아는 것과, 대속, 그 진리로 믿는 것과의 차이다.

 

(루가8,25)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셨다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워하며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

= 자신의 모든 것, 목숨을 책임져 주실 그 능력의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바다의 풍랑으로 죽을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너희 믿음은 어디 있느냐?”

앞뒤 문맥상 말씀을 어떻게 듣고, 어디에 두었느냐? 곧 말씀을 하느님의 뜻, 진리로 듣고, 그 진리이신 하느님께 믿음을 두었느냐? 사람의 선악의 말로 듣고 사람의 의지, 노력을 믿는 그 자신에게 두었느냐?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十字架)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느냐? 어디에 믿음을 두었기에 두려워하느냐? 물으시는 것이다.

 

(갈라5,4) 4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 마귀는 거짓 사도(사제)들을 통해 사람의 의로움도 꼭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구원의 길로 정해진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 그 피의 새 계약을 헛되게 하려는 계략(計略)이다.

*하나 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믿음이냐? 땅의 목숨, 육(肉)의 만족을 위한 믿음이냐 를 물으신 것이다.

내 뜻, 내 소원, 육의 만족을 위한 예수님으로 믿는다면, 그 역시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러 오셨다. 또 마귀는 자기에게 육의 만족을 위해 청(請)하면 들어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약속하며 유혹한다.(루가4,3-6 참조)

우리를 주님과 상관없는 자로 만들려는 마귀의 계락 이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이 십자가를 통하여 얻는 하늘의 생명이 아닌,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열심, 노력을 의지하는, 그리고 육의 만족을 위한 신앙, 믿음 이라면 (다음구절) 예수님의 명령을 내 것으로 받아야 한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아멘)

= 한가운데 내동댕이침, 마음 한가운데에, 믿음이 아닌, 아는 지식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구원, 희년, 해방의 말씀이 그 자리(마음) 한가운데에 *이미 계셨기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것이다.(앞21절 참조)

이 체험을 한 사람은 절대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믿음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건다.(나의 체험이다) 그러니 우리의 시련, 고난이 나쁜 것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건너야 할 과정일 뿐이다.(로마5,20-21 참조)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소문으로 나갔다. 예수님께서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묶여 무거운 짐의 신앙으로 억압받고 있던 이를 해방시켰고, 십자가의 대속, 그 정해진 구원의 진리를 못 보는, 눈 먼 이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신 그 구원의 복음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구마를 하신 주님으로만 퍼져나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까지 정해진 구원의 진리, 십자가, 그 새 계약을 믿음으로 차지하지 못해 구마 등, 여러 은사자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종교 활동, 선행으로 자기 의로움을 세우려고 무거운 짐 같은 신앙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하시니까 어떤 이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한다.

 

(마태7,23)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내게서 물러들 가라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 구마, 예언, 기적 등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셨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것이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기적이며, 그것이 곧 구마, 예언의 완성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첫째 계약(율법-제사와 윤리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10,19)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총의 천주 성령님! 그리스도께서는 선인(善人)이든 악인(惡人)이든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돌아가셨다. 하시니 저희 모두가 그 사랑을 차지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복음(루카4,31~37)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4)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드러나신 후에 출신지인 나자렛도 존귀한 지명이 되었다(사도3,6).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에  나자렛은 유대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었다(요한1,46).

 

따라서 마귀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크게 떠든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이며, 이것은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였던 카파르나움 고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교하고 사악한 방법이었다.

 

'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귀들린 사람의 화두에 있는 감탄사 '에아'(ea; Ah!)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유일하게 쓰인 독특한 용어이며,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위협을 받게 된 마귀의 놀라움과 두려움, 혐오감과 적대감 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원문의 '에아, 티 헤민 카이 소이'(ea, ti hemin kai soi)는 'Ah, what do you want with us?'(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뜻이며, '에아'(Ea; Ah!)를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들을 홀로 두소서'(Let us alone)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더러운 마귀의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여호22,24; 판관11,12; 1열왕17,18).

 

또한 여기서 더러운 마귀의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저희'(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마귀가 마귀들린 자와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마귀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이것은 문법적으로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투의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으로 상당한 지력을 지녔던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꺾어서,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코2,10; 1요한3,8).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야가 오면 모든 악한 영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여기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u theu; the Holy One of God)는 33절의 '더러운 마귀의 영'('프뉴마 다이모니우 아카타르투'; pneuma daimoniu akathartu; an unclean devil spirit)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학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이 하느님께 대해 사용한 '거룩하신 분'(이사40,25; 57,15) 이라는 표현과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께 대해서 사용한 '거룩하신 이' (사도21,27; 3,4; 4,27)라는 표현과도 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영적 지각력을 갖추었던 마귀들은 이미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예수님 앞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는 예수님을 '안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압니다'에 해당하는 '오이다'(oida; I know)는 능동태 완료 동사이다.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마귀는 예수님을 알되, 예전부터 그리고 능동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적 존재인 마귀는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시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직접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정확한 고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인 마귀는,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순종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오늘날도 적지 않은 신학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마귀의 지식과 유사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구와 배움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식이 어떻게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며 영신적 유익을 주겠는가? 야고보서 2장 19절에는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라고 나온다.

 

그리고 잠언 1장 7절에도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라고 나온다.

 

우리는 신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앎을 기초로 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240903일 화요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마귀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 4,34)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어떤 주장이 교리에 맞는지 그 여부를 따집니다. 물론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교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들이 있고, 이를 식별하지 못한다면 이름뿐인 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를 정확히 안다고 모두 좋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마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만 여기며 벼랑에서 떨어뜨리려 하였던 나자렛 사람들보다 나아 보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던 것을 마귀는 인정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4,34).

아직 제자들도 그렇게 말할 수 없던 때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적절한 말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예수님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 순종해서 떠나가기까지 합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길, 진리, 생명이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자신을 멸망시키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신 예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그 사실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그릇은 귀한 것을 담았을 때 

 

복음(루카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 카파르나움- 자신을 위한 고을(성전)이라는 뜻이다. 곧 인간 스스로의 열심히 안식을 얻으려는 그 고을에, 안식일의 주인, 안식일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마태12,87) 자유, 쉼, 그 안식에 대해서 가르치셨음이다.

우리의 죄로 저주의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고 하늘의 의(義), 거룩을 은혜로, 선물로, 거저 주시는 그 자유, 쉼, 안식이다.

 

(마태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 

= 예수님의 멍에, 우리의 죄로 죽으심으로 죄를 없애신 십자가(十字架)다.(골로2,14) 귀하고 귀한 복음 말씀이다. 배워보자~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말씀(빛)이 선포되는 곳에는 어둠, 악(惡)이 드러나는 법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나자렛 사람 예수님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마귀(魔鬼)의 믿음이다.

 

(마르5,6-7) 6 (더러운 영이 들린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마귀(더러운 영)가 고백한 예수님과 같지 않은가?

 

분명 다르기에~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 마귀는 절대로 사람을 파괴, 해칠 수 없음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마귀의 믿음을 다시보자, 마귀의 믿음- 뱀의 지혜다. 곧 뱀의 지혜를 받으면 뱀이 되는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만을 의지, 의탁하여 안식, 구원에 이르러야할 피조물인 인간이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의 의(義), 열심으로 안식,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이 마귀의 믿음이다.

마귀는 거짓 예언자들을 통하여 순한 양(羊)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다가온다.(마태7,15)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 기적들을 일으킨다.(마태24,24)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을 부리게 한다.

곧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인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은 의로움은 알지 못한 채, 뱀의 선악의 지혜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는데 힘을 쓰게 한다.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게 한다.(로마10,2-3) 행위의 신앙에 열심을 부리게 한다.

 

(루가18,11-14) 11 바리사이는꼿꼿이서서혼잣말로이렇게기도하였다. ‘하느님제가다른사람들강도짓을하는자나불의를저지르는자나간음을하는자와같지않고세리와도같지않으니하느님께감사드립니다. 12 저는일주일에단식하고모든소득의십일조를바칩니다.’ (가장 이상적인 신앙인의 모습 아닌가?)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하느님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이는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품고 죽으심으로 그분 안에서 높아진다.

그러니까 마귀는 인간의 법으로 선하게 의롭게 살면 복주시는, 곧 세상의 높은 사람, 윗 자리에 앉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믿게 한다.  곧 나의 열심, 노력, 의로움을 믿게 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길이다.(마태7,14)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것을 부수셔서, 버리게 하셔서 낮은 자로 만드시기 위해 오셨다. 하늘의 윗자리, 곧 하늘의 영광, 생명, 평화, 안식의 자리에 앉게 해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죄로 죽으러 오셨다. 마귀의 믿음과 우리의 참 믿음과의 차이다.

흙의 그릇인 인간은 스스로 귀한 존재가 절대로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담았을 때, 그분의 피로 씻겨 졌을 때, 귀한 그릇, 존재가 된다.(히브10,22)

 

(2코린5,17)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2코린4,7)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보물, 생명의 빛, 말씀으로 담고 있을 때에 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요한1,1-4. 9-14참조) 그때 비로소 자존심, 자존감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의 열심, 의로 자존심, 자존감을 세우자’하는 것이 마귀의 믿음이며 가르침이다.

마귀가 약속한 세상의 재물, 빵, 영광으로 채워봐야 헛되고 헛된 오물그릇(똥통)일 뿐이다.(루가4,6) 절대 자존심, 자존감이 생길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갖추고도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뱀은 흙의 먼지, 곧 죄인(아담)들을 먹어 ‘뱀의 집단으로 이 세상을 영원한 죽음의 나라로 이루고(창세3,14), 예수님은 그 죄인(뱀)들에게 발꿈치를 물려, 곧 피를 빨려 먹히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이루신다. (창세3,15- 요한19,30-34 히브10,22) 그래서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 말씀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 앉으셨습니다

 

은총이시며 우리의 깨어있음이 되시는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지극히 높으신 분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으로 하늘의 영광이 현실이 되는 귀한 그릇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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