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4일 수요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하느님 나라 기쁜 소식 (루카4,38-44)
제1독서<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화답송>시편33,12-13.14-15.20-21(◎12ㄴ) ◎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펴보신다. ◎
○ 당신 머무시는 곳에서, 땅에 사는 모든 이를 지켜보신다. 그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빚으시고, 그들의 행위를 속속들이 헤아리신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
복음<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루카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코린3,1-9)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6)
먼저 '나' (ego)에 해당하는 사도 바오로가 한 일은 심는 일이다. 여기서 '심고'로 번역된 '에픽튜사'(ephykteusa)는 '심다'는 뜻을 지닌 '퓌튜오'(phyteuo)의 과거형으로 사도 바오로가 과거 코린토에서 활동한 최초의 복음 선포자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것은 로마서 15장 20절에 나오는 "이와같이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는 것입니다."는 사도 바오로의 선교 원칙을 상기시킨다.
반면에 아폴로는 나중에 코린토에 도착해서 복음 전파 활동을 계속했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도왔다.
이런 사실은 '물을 주었습니다' 로 번역된 '에포티센'(epotisen)이란 표현이 잘 보여준다. 이 동사는 코린토 1서 3장 2절에서도 등장했던 동사로 '포티죠'(potizo)의 과거형이다. 이것은 아폴로의 활동 역시 과거에 있었던 일이며, 사도행전 18장 24절에서 19장 1절에 언급된 아폴로의 선교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와 아폴로가 심고 물을 주었을지라도, 자라나게 하신 이는 하느님이시다.
여기서 '자라나게 하신'으로 번역된 '에윅사넨'(eyksanen)은 '늘리다', '증가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욱사노'(auksano)의 미완료형이다.
앞선 두 동사가 과거형인 반면에 이 단어가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미완료형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자라나게 하는 하느님의 활동이 지금도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는 본절과 같은 식물 재배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과 아폴로의 코린토 선교는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하느님의 활동은 지금도 계속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코린토의 복음 선교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절대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언급함으로써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인들이 바오로파와 아폴로파를 만들어 바오로와 아폴로를 각각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전혀 타당성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각 파의 우두머리의 우두머리 됨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사목자들의 위상을 오용하고 있는 코린토 교회를 향해 자신과 아폴로와 같은 사목자들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가치, 즉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된 독자적 가치를 단호하게 부인한다.
농사에서 심는 일과 물주는 일이 식물 생장의 효율을 위해서 필요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이처럼 교회에서의 사목자들의 행위 역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것이 결코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 절대적 조건은 아니며 부수적 사항일 뿐이다.
농사에 있어서나 교회 사목에 있어서나 생장의 절대적 핵심 원인은 오직 하느님 한 분밖에 안계시다.
그렇게 본다면, 사도 바오로와 아폴로는 생장에 있어서 절대적 역할를 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자신의 역할에 따라 분업하여 돕는 일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린토 교인들은 이를 망각하고 각자가 존경하는 사목자들에 대해 독자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을 자신의 자랑거리나 추종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복음 선교 활동의 주체이신 하느님이 아니고, 단지 하느님의 일꾼으로 사용된 자들을 우두머리로 삼아 분쟁한 코린토 교인들의 처사는 본말을 전도시킨 어리석은 행위이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있어서 사도 바오로의 심는 일과 아폴로의 물주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즉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0장 14절에서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 라고 말하는 동시에 로마서 10장 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농부가 심지않고 물주지 않으면서 추수를 기다리는 것은 마치 입을 벌리고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기를 기대하고, 나무에 열매가 저절로 달려서 입으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처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오로가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고 새 생명을 양육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생명의 창출과 성장의 궁극적인 제1원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을 특정 당파의 우두머리로 만들지 말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목적이시며 보존자이신 하느님께 오히려 관심을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린토 교회의 탄생과 성장의 배후에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던 것이다.
사목자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손이 아니라 손에 잡힌 도구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하느님께 돌아갈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서 하느님 대신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교만의 극치이며, 속화의 절정이고, 자신을 하느님으로 만드는 우상 숭배인 것이다.
무릇 사목자는 요한 복음 21장 15절에서 19절에 나오는대로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양떼가 아니라 예수님의 양떼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양떼들은 인간 사목자, 인간 은사자, 인간 설교자를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은 단지 주님의 것을 관리하는 도구요, 종일 뿐이며, 그들 뒤의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회안에 누구 누구와 친하고, 누구 누구파, 누구 누구의 사람, 누구 누구의 식구, 누구의 가족, 누구의 추종자들이란 말들이 없어진다.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은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 첫머리에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가십니다.
시몬의 집은 신자의 집, 곧 교회입니다. 그런데 신자의 집에도 때때로 분열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곳 또한 저마다의 욕망이 꿈틀대는 작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이 납니다.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듯이, 교회도 병마와 싸우는 이들이 사는 곳으로 열병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열병에 시달리는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신자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기도의 집, 다시 말해 기도로 악에 맞서 승리하는 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열병을 낫게 하십니다.
병이 낫자 시몬의 장모가 곧바로 일어납니다. 그러고는 바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봉사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봉사의 집이고 섬김의 집입니다. 우리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섬김)는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신약 성경은 “섬김”이라는 말로 구체적인 형제애를 지향합니다(1요한 3,16-18 참조).
예수님께서는 몸소 하느님과 형제들의 종으로 사셨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 때에,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7).
우리가 예수님께 얻은 구원과 자유는 마귀들이 하는 것처럼 입으로만 하는 단순한 믿음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가난하고 약한 형제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의 뜻, 생각을 넣으면 영(靈)이 병든다.
(자연이 내주는 순수한 곡물, 채소 등에 인공 조미료를 넣어 육의 입맛에 밎춘 인스턴트 은식이 육을 병들게 하듯이)
복음(루카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 *시몬-물이 없는 조약돌. 물이 나오는 반석(베드로)의 반대다. *열(熱)-물(진리)이 없어 열이 난다. 곧 율법적 삶(신앙)을 뜻한다. 시몬의 장모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진리(물- 말씀) 곧 십자가의 복음으로 얻는 구원과 상관없는, 율법(제사와 윤리) 신앙으로 매일 무거운 짐 같은 종교행위에 시달리는 열, 화병(火病)이 난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에페5,26)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십자가의 대속)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열, 그 율법의 신앙을 꾸짖으신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율법을 완성하신 진리의 말씀께서 가까이 가시니 물에 의해 심한 열(율법)이 즉시 가신 것이다.
앞21절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부인의 열이 가신 것은, 앞 35절에서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것이 아닌, 도덕과 윤리로 아는 것에 만족했던, 그래서 예수님을 선악의 주님으로 알게 해, 사람을 심한 병으로 힘들게 했던 그 더러운 영(靈)을 쫓아내셨던 모습과 같은 것이다.
다시~(34절)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성경(聖經)을 선과 악, 도덕과 윤리의 책으로 보고 열심히 묵상, 기도하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 신앙이다. 성경은, 예수님은 오늘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유, 안식을 주는 진리(나)로 돌아오라고...
(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진리로)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십자가)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은총(은혜)으로 주신 복음이 오늘 자라나고 있다고 전한다.
(골로1,6-7)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은혜)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구원)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은혜)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 해 질 무렵, 곧 저녁은 구약, 율법을 뜻하며, 그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질병과 고통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약속은 구약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신약의 시대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명제로 성경을 봐야한다. -(冊 ‘황금률’ 중에서)
(로마3,20-21)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저녁, 그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아침, 빛, 진리이신 하느님의 의로움이신 예수께서 그 진리의 손으로 새 창조, 새 사람으로 하나하나 고쳐주신 것이다. 곧 착한목자 예수님께서 죽음의 율법, 신앙(양 우리)에서 한 사람 한사람에게 진리를 먹이신 것이다. *양 우리(막펠라 동굴- 무덤)는 죽음인 율법과 율법주의의 교회, 세상을 뜻한다.
(요한10,3)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 문지기는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증언하시는 성령이시다.(요한15,26 로마8,10 참조)
(요한10,4.9)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 풀밭에서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육이 죽어 그리스도인(진리)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양 우리는 죽어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길,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자기 버림, 부인(否認, 죽음)으로 진리가 된 이들은 이제 율법주의 교회, 세상을 드나들며 살아도 그 율법과 세상이 주는 심판, 죄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쳐주신 것이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질병을 고치시니, 곧 진리를 먹이시니 마귀가 드러난 것이다. 저녁은 반드시 아침으로 건너와야 한다. 구약의 율법에서 신약의 진리로 파스카해야, 건너와야 하는데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자신들의 뜻과 구원, 그 양다리 신앙을 하도록 사람의 열심, 의로움을 독려했던, 그래서 하느님의 의로움이신 구원의 진리, 그 십자가(十字架)의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 뱀, 마귀였기에 그 마귀가 드러나 쫓겨나는 것이다.
그렇게 마귀는 땅을 위한 구원자로 사람의 뜻, 일을 위한 그리스도로 말하기에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42ㄱ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 아침(신약), 빛으로 나가셨다는 것이다.
42ㄴ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예수님이 아니다. 그분께서 전해주신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 곧 복음말씀이다.
그 말씀 안에 머물며 십자가의 대속(代贖), 그 진리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 머물며, 그 말씀 안의 진리, 믿음,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우리를 향한 그 하느님의 사랑을 키워야 한다. 진리로, 믿음으로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먼저 말씀을 갈망해야 한다.
(1베드2,2)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 뜻을 보태고 뺀, 인간의 계명이 아닌, 사실 그대로 순수한 젖(말씀)을 먹고 하느님의 뜻, 진리를 깨닫는 것이 영의 구원이다.
(2베드1,19) 19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을 믿으며 성령께 저희 모두를 의탁하나이다. 우리의 내적 힘이 순수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랑으로 굳세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4,38-44)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0)
루카 복음 4장 40절은 고통과 질병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셔서 그들 중 단 한사람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고, 개별적으로 치유해 주신 예수님의 자상함을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번역된 '헤니 헤카스토'(heni hekasto; each one; everyone)는 치유의 능력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따뜻한 손이 병자 중 어느 한 사람도 지나치지 않고, 그들 각각의 머리를 감쌌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특히 '손'에 해당하는 '타스 케이라스'(tas cheiras; his hands)는 복수형이며,이것은 예수님께서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병자들의 머리를 안수하셨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병자들은 두 손을 통해 전해오는 따뜻하고 자비가 많으신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했을 것이다.
안식일 하루 종일 복음 선포에 힘쓰신 예수님께서는(루카4,31~39) 해가 져 피곤하셨을텐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을 찾아 모여든 병자들의 무리 사이에 돌아다니면서 그들에게 일일이 안수하셨다.
구약 시대에는 통상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안수)가 자신의 죄악을 동물에게 전가시키거나(탈출29,15.19) 증인들이 죄인을 돌로 치기 전에 그 사람에게 죄를 확정하는 방법으로(레위24,14) 사용되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안수'를 하느님의 은총을 전가하는 방법, 치유의 역사(役事)를 일으키는 통로로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수'('타스 케이라스 에피티테이스'; tas cheiras epititheis; laying his hands on)를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강하게 심어 주고자 하셨으며, 그 안수 행위를 통해서 당신께서 병자들 개개인에게 자상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2024년 09월 04일 수요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여러 문제를 알고 있었고 또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에게 물은 내용들도 있기 때문에, 코린토 1서와 2서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먼저 나오는 문제가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서간 뒷부분에서 성령의 은사나 전례에 대하여 말할 때도 공동체의 일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이 어떤 문제로 갈라졌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이들은 바오로를 추종하거나 아폴로를 추종하고 있으니, 그들 나름대로는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저마다 분명한 소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오로와 아폴로는 하느님의 밭인 교회의 신자들을 돌보며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무리도 어쩌면 교회라는 밭을 열심히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일이 그들을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거나 쾌락에 몰두하여야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이 아닌 인간에게 눈길이 머물러 있을 때, 인간의 업적만 생각하고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1코린 3,6)이심을 알아보지 못할 때, 쉽게 육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 이름을 지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임을 알아볼 때, 다른 모든 사람 안에서도 이를 알아볼 수 있을 때, “시기와 싸움”(3,3)이 사라지고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시몬의 장모 열병(熱病)치유
복음(루카4,38-44)
38ㄱ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 시몬- ‘모래. 조약돌’로 물이 없음을 뜻한다. 물- 갈증을 나게 하는 물이 있고, 갈증을 해결해 살리는 생명수가 있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여자의 물, 곧 땅(세상)의 의(義), 재물, 영광을 위한 윤리의 말, 물은 늘 갈증을 느껴 무거운 짐이 되지만, 주님의 물, 말씀은 갈증을 해갈 하시고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 말씀이 없어 무거운 짐 같은 신앙으로, 힘들어 화(禍), 열(熱)이 나 있는 여자를 아시고 물, 생명의 말씀이 찾아가신 것이다.
38ㄴ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말씀이 들어가니 열이 가신 것이다. *즉시 일어나- 되살아났다는 의미다.
(마태20,19)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 ‘되살아 날 것이다’ - 같은 말이다. *시중-(디아노코스),- *말씀으로 섬기다. 전하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으로 즉시 일어나, 되살아나 말씀을 시중드는,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물이 없어 비어있는 여자를, 말씀이 다시 살리신 것이다. 다른 말로 물이 없어 비어있는 여자를 말씀이 다시 살리신 것이다. 하늘의 새 생명으로 낳으신 것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 창조주의 손(手)이시다. 주님의 물, 말씀이 없어 질병으로 누워있는 이들을 창조의 손이 다시 일으키심이다. 곧 하늘의 안식,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을 바라며, 세상의 힘의 원리로 살아 목이 말라 열병으로 죽음을 향해 살았던 이들이 창조의 말씀, 손으로 살아나 하늘의 안식,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희망하는 그 구원의 진리의 길을 살게 된 것이다.
(루가13,13)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제 확인했듯, 마귀의 믿음, 곧 세상의 의(義), 재물, 영광을 위한 그리스도로 믿도록, 열과 갈증을 주는 그 ‘거짓 그리스도’로 족음의 길로 이끌기에 용납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42ㄱ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 말씀이, 외딴 곳 (에레모스-광야), 곧 진리의 물이 없는 곳의 여자(교회)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어 다시 일으키시려 찾아가신 것이다.
42ㄴ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 보이는 주님을 붙들면 안 된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주님께서 주신 기쁜 소식, 복음을 붙들어야 한다. 곧 다른 사람을 이겨야, 위에 올라서야, 사는 이 세상 나라의 힘의 논리를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하느님 나라의 힘의 원리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진리의 물,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열이 가시고, 온갖 질병이 나아 하늘의 용서, 평화, 안식, 생명이 현실이 된다.
어제 공부했듯, 뱀의 지혜를 먹으면 뱀의 자식이 된다. 그렇듯 하느님의 지혜인 말씀을 먹으면, ‘디아노코스’ 하면 하느님의 아들,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요한1,1.4.14.) 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요한5,11-12)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 오늘 열로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우리를 아시고, 말씀이 창조의 손(手)을 얹으시려 찾아오심이다.
(시편139,2-5) 2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3 제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힘들어 열로 죽어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당신께는 저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 4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 5 뒤에서도 앞에서도 저를 에워싸시고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으십니다. (~~아멘!!!)
☨은총, 진리이시며 ‘깨어있음’이 되시는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지극히 높으신 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으로, 자기버림, 부인으로 하늘의안식, 생명이 현실이 되도록 주님의 손 얹어주심을 받아 주님의 말씀을 시중드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