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루카5,33-39)

2024. 9. 5. 오후 5: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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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06일 금요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루카5,33-39)

   

 

제1독서<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1코린4,1-5)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37(36),3-4.5-6.27-28ㄱㄴ.39-40(◎ 39ㄱ)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주님은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 버리지 않으신다.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루카5,33-39)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제1독서(1코린4,1~5)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2)

 

코린토 1서 1장 10절 ~ 6장 20절에는 사도 바오로가 클로에 집안 사람들을 통하여 파악한 코린토 교회의 현안 문제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책망과 권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서 전반부 코린토1서 1장 10절~4장 21절은 코린토 교회 내에 있었던 고질적인 분열 문제를 다룬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 중에 코린토 1서 4장 1~5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 내에 분열이 야기된 원인 중 하나가 복음 전파자들에 대한 인간적 판단에 있음을 직시하고, 복음 전파자에 대한 판단을 금지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 서두인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선 복음 전파자가 그리스도의 시종이요,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이므로 인간적 판단의 대상이 아님을 밝힌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3장 23절의 내용, 즉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라는 말씀의 맥락에서 복음 전파자들 또한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느님의 것이라는 보다 진전된 내용을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코린토1서 4장 1~5절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복음 전파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교훈하는 것이다.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명시적으로 밝히는 바와 같이 교회의 봉사자들, 특히 복음 전파자들 그리스도의 시종이요,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이다.

여기서 '시종'(일꾼)으로 번역된 '휘페레타스'(hyperetas)의 원형 '휘페레테스'(hyperetes)는 '~아래에'란 뜻을 가진 전치사 '휘포'(hypo)와 '노를 젓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렛소'(eresso)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배의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의미한다.

 

당시 로마 시대에는 이 일은 중죄인이나 가장 비천한 노예가 감당했던 일이며, 한번 노젓는 노예로 전락하면 일반적으로 죽기 이전까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점차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관리들과 행정 장관들의 수행원들과 같은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마태5,25). 

이런 점에서 여기 언급된 '휘페레타스'(hyperetas)는 코린토 1서 3장 5절에 이미 언급된 바 있는 '디아코노이'(diakonoi)와 그 표현은 다를지라도 의미상 차이는 없다.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오로는 마치 종이 하는 일이 종 자신의 일이 아니라 주인의 일이듯이 복음 전파자들의 활동 또한,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결코 복음 전파자들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사도 바오로가 복음 전파자들을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신비'로 번역된 '미스테리온'(mysterion)은 원래 '입문자'를 뜻하는 '뮈스테스'(myst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희랍의 비밀스런 의식을 하는 종교에서 종교의 입문자에게만 공개하는 신성시되는 의식 혹은 비밀스런 교리를 의미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 단어를 차용하여 그리스도의 '성찬례'를 가리키는데 사용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은 '성찬례의 집전자'를 뜻한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이는 문맥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문맥을 통해 볼 때 본문에 언급된 '신비'는 '복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목적에 관한 은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비는 전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신약 시대에 드러난 공개된 비밀이다(1코린13,2; 14,2; 15,51).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신비는 그리스의 신비 종교 집단에서처럼 종교 입문자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아니라 관심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공개된 비밀, 즉 계시된 비밀이다.

 

한편, 여기서 '맡은 관리인'으로 번역된 '오이코노무스'(oikonomus)는 '집'을 뜻하는 명사 '오이코스'(oikos)와 '관리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네모'(nemo)의 합성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집안이나 어떤 공동체의 행정관리 재정 담당하고 관리하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종'(일꾼)이라는 표현이 일차적으로 노예 신분을 연상시킨다면, '맡은 관리인'이라는 표현은 위엄과 권위의 신분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단순히 교회의 일꾼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권위를 가진 관리인(청지기, 집사)으로서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코리토 교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전파자들에 대하여 그 직분에 합당하게 올바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복음 전파자'들은 '시종'인 동시에 '맡은 관리인'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자들의 이러한 양면적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경우에, 한편으로는 그들을 업신여겨 무시할 우려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자체를 과도하게 떠받들어 추앙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둘 다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2)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맡은 관리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충성)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본절에서 '요구되는'으로 번역된 '제테이타이'(zeteitai)는 '찾다', '구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테오'(zeteo) 현재 수동태이다.

 

여기서 수동태가 사용된 것은 자신의 판단과 상관없이 성실(충성)이 요구되는 것이 사명을 맡은 관리인에게는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희랍어에서 현재형은 불변의 사실을 보여주므로, 맡은 관리인에게 하느님께 대한 성실(충성)이 요구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이것은 곧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직 성실(충성)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을 맡은 관리인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함을 따라야 하며 맡은 바 자기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여기서 '성실'(충성)이라 번역된 '피스토스'(pistos)는 '믿을만한', '신실한'이라는 뜻을 지닌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관리인은 오직 주인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편,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의 지혜나, 언변이나 학식, 그리고 가문과 같이 인간적 판단에 있어서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맡겨진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인 복음에 대한 신실함, 즉 성실(충성)이다.

코린토 교회에 전반적으로 풍성했던 영적 은사를 감안할 때, 코린토 교인들 중 일부는 아마 코린토에서 봉사하는 자들의 은사가 부족함을 꼬투리잡아 그들을 비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리인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풍성한 은사를 포함한 그 어떤 가시적 능력이 아니라, 사도 바오로를 판단하며 사도로서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코린토 교인들에게 사도 바오로 자신은 충성을 다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자신의 사도성의 정당함을 변호하고 있다.

동시에 코린토1서 4장 3~5절에 나오는대로, 관리인의 충성의 대상이며 절대 무류이신 절대자 하느님만이 최종 심판관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 시대에 율법과 전통에 따라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금식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회개와 속죄의 의미로 단식하는 ‘속죄일’이나, 예루살렘과 성전이 바빌론에 파괴된 일을 애도하는 ‘성전 파괴 애도일’ 같은 몇몇 기념일 정도였습니다.

다만 바리사이들은 이 밖에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희생과 극기의 의미로 더 단식하였습니다(루카 18,12; 디다케 8,1 참조).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는 모습이 영 불편하였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루카 5,27-32 참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하며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언젠가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이 그분마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7,34)라 조롱하였듯 말이지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는 그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혼인에 비유하였듯(이사 62,4-5; 예레 2,2; 호세 2,18.21-22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자주 비유하셨습니다.

누군가와 음식을 함께 나눌 때 생명을 공유한다고 여겼던 그 시대에, 단죄 받고 소외된 세리들과 죄인들이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가진 그 가슴 벅찬 구원의 확신을 바리사이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이대는 완고한 잣대와 사랑이 메마른 일상이라는 ‘헌 가죽 부대’에는, 주님과 이루는 친교와 구원이라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단식은, 결핍 가운데 있는 형제를 향한 선행과 자선임을 기억합시다(이사 58,5-7 참조).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낳았다.

 

복음 (루카5,30-39)

30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 그러기 위해오신 예수님이시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사람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이는 예수님과 인연이 끊긴 사람이다.(갈라5,4참조) 그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이 회개하여 가는 하느님 나라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이가 죄인이라 하신다.(로마3,10-12)

그러니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자가 있을 뿐이다. 자신도 알고 다른 이들도 다 아는 그런 죄인들이 세리, 창녀, 죄인들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회개시키려 하시는데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가져 갈 것이니, 곧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없애실 것이니 더 이상 죄에 시달리지 말고 자유를 누리라고, 그렇게 사람의 생각과 다른 관점으로 죄를 보는 그 회개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로마3,20-21)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율법의 의로움, 그 옛 계약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죄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에서 하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진리로 보는 것, 그래서 그 진리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이다. 그 회개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 이가 많다.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 율법의 단식과 기도는 옛 계약을 지킨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심은 그분의 말씀(살과 피)을 생명의 양식으로, 곧 십자가의 새 계약을 먹고 마심이다.

 

3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신랑이신 주님을 빼앗길 날, 곧 십자가에서 죽게 되시는 날,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날이 곧 율법, 옛 계약이 폐지되고 하늘의 대속, 그 구원의 새 계약이 이루어지는 날이니, 율법의 행위 그 모든 것을 끊는 그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 새 옷-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 헌 옷- 율법의 의로움, 그 옛 계약이다. 두 계약이 섞일 수 없다는 말씀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새 포도주, 곧 새 계약을 담는 새 부대(사람)가 되려면 옛 계약을 열심히 지킨 그 헌 부대(사람)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 부인, 그 회개가 새 부대인 것이고, 그랬을 때 새 포도주를 담게 되는데 그 때, 새 계약을 깨닫고, 믿고, 의탁할 수 있는 건강한, 곧 터지지 않는 실력자,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씀이다.

(회개- ‘메타노이아’는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돌아오다’는 뜻인데 그러기 위해서 자기 부인, 곧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 묵은 포도주는 사람의 입(뜻)에 맞고 새 포도주는 하느님의 입(뜻)에 맞는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한 행복, 평화, 안식의 삶을 살려면 그분의 입(뜻)에 맞는 새 포도주에 맛들여야 한다. 곧 사람의 뜻을 위한,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그 옛계약을 부인하고, 하느님의 뜻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연습과 훈련으로 믿음을 키워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경을 문자 대로 도덕과 윤리로 보고, 듣는 것을 멈추고, 끊고, 단식하고, 우리의 보호자로 오신 성령께 의탁하여 하느님의 뜻을 사실대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당신 외아들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새 계약으로 내 주신, 그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고, 그랬을 때 하느님의 사랑을 담을 수 있고, 담은 그 사랑이 나의 밖으로 흘러니와 이웃에게 흘려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큰 계명이다. 그것이 참 신앙,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래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묵상과 기도다. 곧 성모님처럼 말씀을 곰곰이 돼 새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 천주교(가톨릭)신자들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리로, 새 계약으로 믿고 죄사(赦, 용서)함 받았다는 확신을 갖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 확신이 없기에 제사와 윤리,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을 열심히 지키는 그 유대주의적 신앙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폐지하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리스도교에 율법이 다시 부활하고 그리스도는 죽었다” 고 한다.

 

(히브10,6-10)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하느님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두 번째 것(새 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옛 계약)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십자가에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천주의 성령님! 오늘 말씀을 저희 마음에 심으시어 은총의 그 말씀이 생생한 믿음으로 자라나 의식의 변화로 하느님의 길로 돌아오는 살믕 살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루카5,33~39)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36~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새 시대에는 옛 전통을 따라 단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두 개의 비유를 통해 더욱 명확히 하신다.

두 비유에서 새 옷에서 찢은 조각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오신 새 시대, 즉 복음의 시대를 상징하며, 헌 옷 헌 가죽 부대는 일주일에 두번(월요일과 목요일) 정기적으로 단식하는 것과 같은 유대인들의 고루한 전통 및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여기서 '어울리지도'로 번역된 '쉼포네세이'(symphonesei; agree; match)의 원형 '쉼포네오'(symphoneo)는 '함께'(with)라는 뜻의 접두어 '쉰'(syn)과 '소리를 내다'는 뜻의 동사 '포네오'(phoneo)의 합성어로서 '함께 소리를 내다', '화음을 이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교향곡'을 의미하는 영어 'symphony'의 어원이다. 여기 본문에서는 '일치하다', '조화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을 헌 옷을 기우는데 사용하면, 세탁시 물을 흡수한 조각이 급격히 수축되어 기운 부분이 뜯어져 그 헌 옷이 망가지게 된다.즉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과 헌 옷은 서로 불협화음만 이룰 뿐,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새 시대 새 복음과 유대인의 고루한 전통은 서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고, 오히려 서로 피해를 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 당시 유대인의 생활상 가운데 친숙한 포도주와 가죽 부대를 예로 들어 가르침을 전개하신다. 포도주를 새로 만들면, 그때부터 며칠 혹은 수 개월 동안 숙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효된다. 헌 가죽 부대는 새 부대와 달리 신축성이 없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새 포도주를 만들어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계속 발효되는 포도주에서 가스가 생겨나 신축성이 없는 헌 가죽 부대가 터져 버려, 결국 포도주와 헌 가죽 부대 둘 다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신축성이 뛰어난 새 가죽 부대에 담았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루카 복음 5장 36절에서 설명한데로, 예수님의 복음은 유대인의 율법주의적 전통과 조화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율법을 왜곡해서 만든 과거의 고루한 전통과 규칙으로, 하느님의 율법의 정신을 참되게 제시하는 복음과 예수님의 행위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8)

 

'새 부대에'로 번역된 '에이스 아스쿠스 카이누스'(eis askus kainus; into new wineskins; into new bottles)에서 '새'로 번역된 단어 '카이누스'(kainus)는 '써 보지 않은', '처음 부르는' 노래로서 '새'노래(묵시14,3), '낯설고 놀라운',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마르1,27; 요한13,34; 사도17,19), 혹은 '낡지 않은', '새로운' 피조물, '새' 것(2코린5,17; 2베드3,13)이라는 등의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율법, 규칙, 전통이라는 것에 얽매여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가르침이나 행위는 전에는 본 적이 없어서 낯설기도 하고, 목격자들을 놀라게도 만드는 차원의 것이다.

따라서 헌 종교 형식을 보존하려는 어리석음과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묵은 것이 좋다' (39)

 

이 구절은 공관복음서의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9장 17절과 마르코 복음 2장 22절에는 없는 루카 복음서의 고유한 내용이다. 여기서 '좋다'로 번역된 '크레스토스'(chrestos; better)는 사용하기에 적합하여 유용하다는(useful)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항상 묵은 포도주만을 마시던 사람은 그것이 자기 입맛에 익숙하고 몸에 좋다면서, 그것만을 선호하고 고집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종교적 전통과 규칙과 가치관만을 귀하게 여기며 지켜오던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빗대어 지적한 말이다.

그들이 만약 계속해서 묵은 포도주만을 권하는 사람들처럼 옛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제시한 복음의 진수를 결코 깨달을 수 없으니, 그들의 아집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것을 경고하며 촉구하는 것이다.

 





2024년 09월 06일 금요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단식을 하여야 할까요하지 말아야 할까요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루카 5,34)

문제는 지금 우리가 신랑과 함께 있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자주 단식을 하였던 것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은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이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메시아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내일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도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고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6,5)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이미 구원의 때가 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도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장 참조).

사도행전에서도 사람들은 단식합니다(13장 참조).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라는 종말론적 긴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다르다고단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고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우리는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지금도 신랑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요한만큼이나 열심히 그날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9월 06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지금 시간은 하느님 영원속에 한 이다

 

(루카5,31-39)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율법의 의인은 하늘의 존재가 될 수 없기에, 곧 제사와 윤리의 인간의 열심, 의로움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그 낮아진 이들을 회개 시키셔서 당신 안에서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구원의 힘이며 지혜이다.(1코린1,24)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 율법의 자기 의로움이 구원의 힘, 지혜가 아닌, 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否認)으로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신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회개로, 그리스도와 하나, 한 몸이 되었을 때 하늘의 영원하신 분 안에서 영원이, 지금의 현실이 되는 것이며 현실에서 부터 영원한 생명을 산다고 하는 하늘나라으 완성이다.(루가17,21)

그것을 모형한 것이 혼인잔치다.

 

33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기도와 단식이다.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빼앗길 날곧 손님들과 한 몸이 되기 위한 십자가의 대속그 죽음을 말씀하심이다곧 혼인잔치에 신랑의 신부가 아닌손님으로 있다면 신랑 예수님을 빼앗겨야 한다.

예수님께서 손님(제자)들의 몸 값곧 율법으로 드러난 그들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치루시고 그들을 살리셔서 신부로 맞아 한 몸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그때 옛 계약의 옛 생활 방식인 제사와 윤리그 율법을 단식하게(끊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하신 십자가의 대속그 피의 새 계약말씀을 영원의 양식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살게 된다는 말씀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 새 옷과 헌 옷, 새 계악과 옛 계약은 섞일 수 없다는 말씀이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예수)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번째 (새 계약)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번째 (옛 계약) 치우신 것입니다. 10  “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바쳐(대속)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만 모든 죄가 씻겨 하늘(거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열심, 이 땅의 의와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가 섞일 수 없음이다. 그래서 세상의 것에 의한 옛 사람(방식)을, “끊어 버립니다.”하고 세례 때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제대로 모르고 “끊어버립니다.” 했다면~~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 것,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반드시 율법, 그 옛 계약을 끊고, 단식하고 새 계약을 담은, 새 마음으로 하늘의 자유를 살아야함을 말씀하심이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사람의 입에는 묵은 포도주가 더 맛있다다른 말로 새 계약의 맛을 모르는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은 그 교만의 사람은하늘의 대속으로 거저 얻은 의자유그 피의 새 계약을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그래서 제사와 윤리그 옛 계약의 인간 스스로의 의거룩이 더 좋다고 고집한다.

그것이 우리 안에 영원을 깨닫지 못하고 현세의 시간에 묶이게갇히게 하는 불법불의.

 

(이사58,6)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으로 풀어주고, 끌러 주고, 부수어, 자유(自由)하게 하는 것이 단식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지혜, 힘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 창조를 위한 생명의 양식으로 먹이는 것이 올바른 단식이다.

그렇게 이 땅에서 부터 하늘의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 그 옛 계약을 끊기가, 곧 중독이 돈 제사와 윤리의 신앙을 끊기가 너무 힘들다. 그 행위의 열심을 부리지 않을 때, 금단 현상도 일어난다. (그거 하지 말라고 하니까 제사와 윤리로 의롭게 살았던 이들이 주님을 죽였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끊고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러나 하느님의 힘, 지혜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오셔서 늘 함께 하시며 기도와 가르침으로 이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로마8,29 1코린2,9-10)

 

탄식의 기도로 깨어있음이 되어 주시는 천주의 성령님!

하늘의 영원이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자기 부인의 단식으로 하늘의 영원이 현실이 되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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