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6,1-5)

2024. 9. 7. 오전 7: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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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일 토요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6,1-5)


   


1독서<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1코린4,6-15)

여러분은 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화답송>시편145,17-18.19-20.21(18)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의 소망을 채우시고, 그 애원을 들으시어 구해 주시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지키시고, 죄인들은 모두 없애 버리시네.

내 입은 주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리라. 모든 육신은 그 거룩하신 이름 찬미하리라. 영영 세세에.

 

복음<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코린4,6ㄴ-15)

 

"내가 생각하기에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9)

 

코린토 1서 4장 9절부터 13절 까지는 사도들의 끝없는 고난과 겸손을 열거하여 코린토 교인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내용이다.

 

먼저 사도 바오로는 당시 사도들의 상태를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로 번역된 '에스카투스'(eschatus; last; at the end of the procession)는 시간적으로 마지막인 것을 나타낼 때 혹은 서열상의 마지막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에스카토스'(eschatos)의 복수형으로서 사도들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준다.

 

이것은 결코 사도 바오로의 겸손을 나타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이것은 흔히 사도 바오로가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1코린15,9),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페3,8),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 (1티모1,15)이라고 말한 것과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사도 바오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고통과 모욕과 조롱을 당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실제로 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구경거리'로 번역된 '테아트론'(theatron; a spectacle)은 극장과 같이 구경거리가 있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서(사도19,29.31),'사형 선고를 받은 자'라는 표현에서도 암시되는 것처럼 그들이 당시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찢겨 죽어간 죄수들처럼 조롱을 받으며 극한 고통 가운데 있었음을 나타낸다.

 

즉 어떤 공휴일에 원형 극장으로 가는 장엄한 행렬 마지막 줄에 사형수들이 있고그 사형수들이 원형 극장에 들어서면 구경꾼들이 즐거워 소리치는 그런 장면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세우셨습니다'로 번역된 '아페데익센'(apedeiksen; has put; has set forth)은 '전시하셨다','쇼를 보여 주셨다','장면으로 두셨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데익뉘미'(apodeiknymi)의 부정 과거형인데이것 또한 원형 극장에서 맹수들과 싸우다가 죽기로 되어 있는 사형수(1코린15,32), 또는 어느 한 편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로마 시대의 '검투사'(gladiator)의 이미지와 결부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사도들을 원형 극장의 그 치욕스러운 피날레로 삼으신 것으로 인식했다고 본다.

이렇게 사도들은 마치 죽음에 그냥 방치된 것 같은 보잘 것 없음으로 온 세상의 구경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코린토 교인들은 부요함과 배부름교만함으로 가득 차 왕노릇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가난한 이가 남의 밭에서 아직 추수하지 않은 곡식을 얼마간 잘라 먹는 것은 율법상 허용된 일입니다(신명 23,26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리사이들은 그것이 ‘안식일에 행한 노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한 명백한 규정이 오경의 율법에는 없으며, 바리사이 자신들이 지키던 구전 율법을 근거로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구전(口傳) 율법을 집대성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서른아홉 가지 노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안식일에 꽃이나 열매를 잘라서는 안 된다거나 알곡 한 톨도 까부를 수 없다는 세부 규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확과 탈곡에 관한 이런 규정들은 본래 노동을 금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거룩한 빵을 합당한 절차를 통하여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에 이 거룩한 빵을 속인인 다윗과 그의 일행이 허기져 먹은 일이 있었는데(1사무 21,1-7 참조),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는 아무 비난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윗의 주님’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께 사람이 만든 안식일 규정들을 덧씌우고 속박하려 들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아집과 완고함을 짚어 깨우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경직된 사고와 잣대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옥죄고 단죄하는 마음으로는 주님의 길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길’(제1독서 참조)은, 비록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을지언정,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가까이에서 황금빛 밀밭을 자유로이 따라 걷는 그 삶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창조(創造)의 목적은 안식(安息)이다.

안식은 재창조새창조안식씨밧일곱 번 말하다.

 

복음(루카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 예수님과 안식일, 그리고 밀과 그 밀(빵)을 먹는 제자들, 그 관계와 의미, 정신을 말씀 하시려 하신다. 미리 먼저 알고 가자 - 뒤 5절에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셨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안식일의 주인 앞에서~ 안식일을 율법의 행위로, 교리로 지키는 그 헛된 자신들이 옳은 줄 알고 오히려 따진다. 주객이 전도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모습이다. 그 벗어난 자리에 내가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성전)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니, 율법의 제사 빵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니 영원한 사제요 성전, 그리스도이신 당신과 함께 먹고 하는 일은 다 옳다고 하시는 것이다. 제사빵(밀)은 모든 이에게 먹혀야 하는 것이 목적이다.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확인하자.

 

하느님의 안식(安息)부터 보자~

(창세1,31. 2,1-2)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 창조는 육(6)일에 다 이루셨다. 그런데 이레(7)날의 쉼까지가 창조라는 것이다.

 

(창세2,3)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안식때문이다.

= 이렛날(7)의 쉼이 완전한 복이며 거룩이다. 그래서 이렛(7)날의 쉼, 안식까지가 창조라는 것이다. 곧 육일간의 창조는 안식을 향한 것이고, 그 6일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쉼(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육(6)일간의 창조를 보자~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있는 상태가 어둠(흑암)이다. 곧 빛(말씀, 씨)이 없어 비어있는 그 어둠(죄)의 상태, 없음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 어둠들 위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라하프 - 덮으심) 계심으로 창조가 시작된다.

*첫날- 빛 *둘째날- 윗물 *사흗날- 땅을 위한 씨의 희생, 모두 하늘을 뜻하며 그렇게 하늘, 셋(3)을 세우시고 *넷째날- 해. 달, 별 *다섯째날- 아랫물에 온갖 종류대로 생물들을, *여섯째날- 짐승들과 사람으로 완성하신다.

첫날과 넷째날은 빛의 하나 됨이며, 둘째날과 다섯째날은 물의 하나 됨이며, 사흗날의 씨와 여섯째날의 사람(흙)을 짝하여 하나를 이루셨다.

그러니까 하늘의 생명의 빛, 물, 씨가 땅으로 내려와 땅의 어둠의 빛, 죽음의 물, 흙(없음)의 사람과 하나 되어, 그 죽음인 없음 들이 생명, 있음의 하늘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창조, 하느님의 뜻이다. 그 없음의 존재들은 자신들이 있음(하늘)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신 것이 하느님의 창조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필요한 빛, 물, 씨. 그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신 후,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바로 다음날 안식을 주신 것이다.(그것을 믿는 것이 창조, 창조론이다.) 하느님께서 다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를 통해~ 흙, 그 없음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로 완성하시겠다는, 그 사랑을 담은 것이 하느님의 창조다. 창조 6일 동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곧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 모든 것을 깨닫고 ‘아!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구나’를 깨닫고 하느님만을 바라고, 의지하여 한 몸이 될 때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어둠인 우리는 빛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 빛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인데, 그분 역시 빛이시기에 그냥 들어오실 수가 없으셔서 십자가라는 대속을 통해 들어오신 것이다. 곧 십자가에서 어둠, 그 죄의 대속으로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빛)을 우리에게 넣어 주셔서 어둠인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쉼,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분과 하나, 한 몸이 된다면, 곧 육(肉)을 부인(否認)하는 그 죽음으로 예수님의 지체로 붙어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이 안식을 사는 재창조인 것이다. 그러나 없음의 그 피조물들이 아담 처럼 자신의 힘, 지혜,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겠다고, 스스로 안식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망상, 어리석음, 교만이다. 그들이 율법주의, 인본주의인 바리사이와 세상이다.

 

(로마1,20) 12 다시 말하면내가 여러분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통하여 다 함께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골로1,15-16)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히브1,2-3)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요한12,23-24)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하느님의 뜻을 이루실 십자가의 대속, 그 때이다. 예수님께서 땅, 세상에서 밀, 씨앗으로 오시고 먹히셔서 세상 죄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하늘의 생명,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함께 모여 하느님께 찬미,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 정신이다.

그 안식의 의미, 정신을 모르고, 교리로, 의무로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면 하늘의 대속, 그 주님의 죽음, 그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다.

 

☨은총의 천주의 성령님! 안식(安息)은 나를 버렸을 때 이뤄짐을, 오늘 심어주신 말씀(씨앗)이 자라나 안식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복음(루카6,1~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5)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2장 27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략하고 있다.

또한 마태오 복음에서 장황하게 기록된 안식일에 대한 해설 부분인 마태오 복음 12장 1~8절도 생략했다.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에 있어서 안식일 규정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이방인 독자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깊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생략하고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만을 나타내어도 제자들의 행위가 충분히 변호되기 때문이다.

 

본절과 관련지어 연상되는 레위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 하느님께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의 소유권을 메시야인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권한을 월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즉 '인자'(人子)가 곧 안식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적 규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운 바리사이들에게 올바른 권위로 책망하실 수 있는 것이다.

 

원문을 보면, '인자'에 해당하는 '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ho hyos tu anthropu; the Son of Man) 앞에 '안식일'이란 뜻을 가진 '투 삽바투'(tu sabbatu; of the sabbath)를 먼저 기록하고 있다.

희랍어에서는 언제나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문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루카 복음사가도 본문에서 쟁점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자'보다 앞에 둔 것이다.




 

20240907일 토요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코린토 신자들은 바오로 편과 아폴로 편으로 갈라졌지만, 바오로와 아폴로는 편을 가르고 세력을 모으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로서 힘과 영예를 가진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을 교회의 기초라고 생각하지만, 바오로 자신은 하느님께서 사도들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1코린 4,9)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사도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오직 그가 멸시와 박해를 받았던 것, 중상을 받아도 그것을 반박하며 스스로 정당함을 밝혔던 것이 아니라 모욕을 견디었던 것,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무슨 자랑거리일까요?

사도는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이 약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음과 약함은, 코린토 11장에서 하느님의 속성으로 일컬어졌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키시거나 지혜로 사람들을 논박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인간은 자신의 힘과 하느님의 힘, 자신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를 겨루어 보고, 자신의 힘과 지혜를 다 써 보고 나서야 하느님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힘과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의 약함과 어리석음으로 인간에게 도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신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하느님을 선포하는 사도는 약하고 어리석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리석음과 약함으로 경쟁합니다.

누구보다 약하고 누구보다 어리석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도의 힘입니다.

그런 사도에게서,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9월 07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복음(루카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 인간의 눈, 생각으로 보면~ 그저 ‘밀밭사이를 가로질러 가며 심심풀이 삼아 고작 밀 이삭 몇 가닥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을 따름이다.’ 라고 볼 수 있지만, 성령의 이끄심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 길에서 제자들이 일을 했고, 예수님께서 가로질러 가셨다는 것은 대속(代贖)의 피로 생명, 안식을 주는, 곧 죽음을 없애신 ‘파스카 제사를 뜻한다.(탈출12,13.23. 27,19.33)

그래서 그 주님이 지나가신 곳을 따라가며 한 일, 곧 밀 빵으로 ‘생명의 양식인 말씀’으로 오신 분을 먹은 것이기에 제자들은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에제20,37) 37 너희를 목자의 지팡이 밑으로 지나가게 하면서계약의 의무를 지우겠다

= 말씀을 제사와 윤리, 그 법으로 고집하는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대사제로 오셨고, 그 대사제의 직분으로 우리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다.(히브9,11-12) 요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됨, 완성, 곧 안식을 깨닫고 있다.

 

기억하자~

(2코린1,19) 19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되시면서 “아니요!”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는  “!”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5,17.21)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3,14) 1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각이 완고해졌습니다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계약을 읽을 때에  너울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에페1,3-5.7.9-11.13) 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없는 사람이 되게  주셨습니다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에페2,21-22)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결합된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지 않는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일 뿐이다.

사랑? -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는 것이다. (2요한1,1 3요한1,1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영원한 쉼, 안식이다.

그래서 세상의 것으로 쉼, 안식을 누리려 종교 행위에 열심을 부렸던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심한 욕을 하셨던 것이다. (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은 당시에 가장 큰 목욕적인 큰 욕 이였다.) 아담을 유혹에 빠트렸던 ‘저주의 뱀’ 때문이다.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스스로 정한 선악의 지혜, 그 인간의 논리, 인간의 힘으로 안식에 이르려는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있는 것이 독사의 자식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크심(있음)과 인간의 작음(없음)을 인정하는 ‘헤아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흙의 먼지일 뿐인 없음의 인간이 어떻게 올바로 깨닫고 헤아리겠는가....

  

(지혜9,17-18) 17 당신께서 지혜(예수) 주지 않으시고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성령)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조~

(1코린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 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요한14,26) 26 보호자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깨닫게 주실 것이다

= 거룩하신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안식,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신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시는 거룩하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인지 그리스도를 통하여한가르침인지’ 분별하게 하소서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와 안식이 되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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