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31일 토요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탈렌트 비유 (마태.25,14-30)
제1독서<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답송>시편33,12-13.18-19.20-21(◎12ㄴ) ◎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펴보신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그분 안에서 우리 마음 기뻐하고, 거룩하신 그 이름 우리가 신뢰하네. ◎
복음<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14-3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제1독서(1코린1,26~31)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 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8~29)
코린토1서 1장 27절과 28절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대조적 표현이 선명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다. 우선 27절에는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것', 그리고 '강한 것'과 '약한 것'이 각각 대조되고 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비천한 것'과'천대받는 것',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반복 대구법을 사용한 문장 기교는 코린토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사도 바오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앞의 27절의 내용을 이어받아 28절에서도, 코린토 교회가 세상에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라고 지적하면서,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하셔서 '있는 것들'('타 온타'; 'ta onta'; the things that are)을 무력하게 만드신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드시려고'로 번역된 '카타르게세'(katargese)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치게 하다', '끝내다'라는 뜻을 지닌 '카타르게오'(katargeo)의 가정법으로서 목적절을 이끄는 접속사 '히나'(hina)와 더불어 하느님께서 비천하고 천대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그것은 있는 자들, 유력한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신분 따위는 구원을 얻는 데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역사 가운데서도 실증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신명7,7) 그분이 보내신 독생성자 예수님께서도 당시 종교 율법적인 사회에서 소외되고 단죄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을 선택하셨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무시하는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무능력한 존재들, 곧 인간의 시각으로는 마치 없는 것 같이 무가치해 보이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스스로 능력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을 무력화 시켰던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과 유능한 자들과 가문 좋은 자들은 앞의 27절에서 '부끄럽게 하시려고'란 표현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미 하느님께서 사회적으로 그들보다 못한 자들을 부르신 사건들을 통하여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28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무력하게 만들다'는 말은 종국적인 멸망의 심판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는 말로서, 결국에는 그들이 영원히 멸망을 받아 구세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29)
'이것은 ~ 하게 하셨습니다' 로 번역된 '호포스'(hopos)는 '~하기 위하여', '~할 목적으로'(so that ~may)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로서, 29절이 앞의 26~28절에서 언급한 하느님의 선택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서 '자랑하지'로 번역된 '카우케세타이'(kauchesetai)는 '자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카우카오마이'(kauchaomai)의 부정 과거형으로서, 동사를 부정하는 부정어 '메'(me; no)와 더불어 사용되어 어떠한 자랑도 있을 수 없음을 명확히 밝혀준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인간도'에 해당하는 '파사 사륵스'(pasa sarx)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없이' 란 의미이다.
26절에서도 지적 되었듯이 코린토 교인들은 인간적으로 보잘것 없는 처지 가운데서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랑을 일삼으며,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1코린1,12; 3,21).
자신들이 받은 은사들을 잘못 평가하여 이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영적 교만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이 이런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그들 자신의 겉모습이나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주도적 부르심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 그리고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거리끼거나 미천하게 여기는 십자가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철저하게 사람들과 사람들의 세상적 지혜를 자랑했다 (1코린3,21; 4,7; 2코린10,17). 이러한 형태가 바로 '코린토 교회 내부에서' 횡행했던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동일하게 세상의 인본주의적 지혜를 자랑하고, 그런 지혜를 기준으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던 복음 증거자들을 평가함으로써 교회내의 분열과 분쟁을 유발시켰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당면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지혜와 질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탁월한 지혜를 제시하고, 그 지혜가 사실상 세상의 지혜를 무효화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코린토 교인들의 잘못된 사고 방식을 교정하고자 한 것이다.
코린토 교인들은 하느님 앞에서(before)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in) 자랑해야만 한다(1코린1,31).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은 유명한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과거에는 탈렌트의 의미를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축소하기도 하면서, 흔히 타고난 재능, 자연 본성으로 지닌 능력, 지성, 아름다움이나 건강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복음의 탈렌트가 말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좀 더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교회에 주신 것은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 영적인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받았고, 믿음을 받았고 은총을 받았으며 그분의 나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탈렌트는 그분께서 주신 유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을 통하여 남겨 주신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한 13,34 참조).
또한 당신의 영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에게 선물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배고픔이 없는 세상, 용서하는 세상, 형제애가 실현되는 세상, 다른 이를 구해 주려고 애쓰는 세상을 위하여 남겨 주신 유산입니다.
첫째 종과 둘째 종과 달리 셋째 종은 주인에 대하여, 곧 그의 하느님에 대하여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무섭고 모질다고 생각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주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모험도 위험도 희생도 감수하지 않은 채 자기 자리만 지키려고 한 사람입니다.
혼인하여 자식을 세상에 내놓고 자녀를 신앙으로 기르며 행복을 위하여 애쓰는 모든 일도 모험이고 위험한 일입니다.
믿고 기도하며 증언하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일들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탈렌트는 선물이고 유산이기도 하지만 책무(責務)이자 과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신자들에게 세례는 마치 땅에 묻은 탈렌트와 같을 수 있습니다.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을 뜯어보지 않고 방치하여 쓸모없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사는데 주님은 무엇을 더 내게 바라시는가?’ 하고 말하지 맙시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의 의무를 실행하며 아파하고 상처받더라도 끊임없이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열심히 활용하기를 애타게 바라십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대금업자(貸金業者)-성령(聖靈)
복음(마태25,13-30)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깨어있음이 기름을 간직함이며 그 기름은 말씀의 깨달음과 성령임을 어제 배웠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 하늘나라의 재산, 하느님의 힘, 능력인 당신 영(靈), 말씀을 맡기심이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 능력에 따라~ *다섯 탈란트 - 구약의 모세 오경(五經), 율법(律法)이다. *두 탈란트 - 신약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두 계명(誡命)이다. *한 탈란트 - 사랑, 그 하나의 계명으로 주심이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힘인 사랑을, 말씀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둘, 하나로 주신 것이다. 병행 루가복음은 열사람에게 똑같이 하나로 주신다.(루가19,13)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 더 벌었다, 다른 차원의 다섯으로 더 깨달았다는 것이다. 율법의 진의, 율법 속에 숨겨진 하느님 사랑, 그 하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의 능력이 있기에 다섯으로 주신 것이다.
(2티모2,7) 7 내가 하는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모든 것을 깨닫는 능력을 그대에게 주실 것입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 같다. 큰 계명인 사랑, 하나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랑- 사람은 율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외 아드님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어 주시어 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 더러운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 의롭게 하시어 구원하신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정신, 생명, 힘을 다하시어 우리 죄인들을 용서, 구원하신 그 사랑이다. 깨닫는 그 능력이 있기에 주신 것이다.
*능력- 예수님은 어떤 이에게는 청원, 기도를 요구하시고(마태8,2~) 어떤 이에게는 믿음의 고백을 요구하신다.(마태9,28~)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모욕적인 말씀을 하신 후 고쳐 주시기도 하시고(마태15,26~) 어떤 이들은 힘든 시련, 고난을 통해 용서, 치유, 구원을 위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도 하신다.(히브12,6-11) 각자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그분의 힘인 말씀, 성령을 믿는 능력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무조건적 은총(은혜)으로 치유와 용서, 구원을 주신다. 곧 벳자타 못가의 38년된 병자(요한5,1~), 태생소경(요한9,1~)등 그들에게는 능력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고쳐주신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인 사랑으로 하신다. 그 사랑이 한 탈렌트다.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 사랑, 말씀 안에 머물며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 사랑, 한 탈렌트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랑 안에 살게 되는 것이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 그 무조건적 사랑을 믿지 못한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저 의롭게 됨을,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짐을, 자신의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해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을 파는 수고로 고이 숨겨 놓은 것이다. 곧 귀한 말씀, 성경 책이니 집 한구석 좋은 자리에 고이 모셔둔 것이다.
한 탈렌트- 그 무조건적 사랑을 받은 벳자타의 병자와 태생소경이 말씀 안에 머물지 않으면 빠질 수 있는 유혹이다. 그러면 처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다.(루가11,24-26참조)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작은 일에 성실함? 깨닫기 전 다섯 탈렌트는 작은 것, 곧 율법의 활용(공부)한 그 작은 일에 성실함이다. 그 율법(작은)의 완성인 사랑을 깨달았으니 그 하느님의 큰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 그것이 종이 주인과 하나가 되는 기쁨이다. 죄인(罪人)이 의인(義人), 그리스도인이 되는 기쁨이다.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깨닫기 전(前) 두 탈렌트, 그 두 계명이 하나, 사랑임을 깨달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의 새 계명임을 깨달았으니(요한13,34) 그 새 계명으로 모든 종들이 주인과 하나 되는 기쁨을 함께 나누자 하시는 것이다. (이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과 병행 복음인 루가의 둘째의 종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는 분, 창조 사흗날, 씨의 희생, 그 사랑을 오해한 곧 말씀을 공부(활용)하지 않은 게으른 종(從)이다.
창조 사흗날~
(창세1,11)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땅에게 씨를 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대로 되었다. 무슨 수로 땅이 스스로 씨를 낼 수 있겠는가~ 씨가 스스로 땅에 들어가 썩어져 열매(씨)를 냈다는 숨은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곧 땅은 사람인 것이고, 씨(제라-* 후손)는 예수님으로 땅인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어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셔서 죄인(땅)들이 씨를 맺는 것으로 해주신, 곧 우리 죄인들의 구원, 기쁜 소식, 복음인데 공부하지 않은 게으른 종은 소문으로 들은, 도덕과 윤리, 상선벌악의 두려운 하느님으로 오해 하고 있는 것이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대금업자? 다른 차원으로 더 깨달을 수 있게 해줄, 곧 이자를 줄 수 있는 대금업자는 성령(聖靈)뿐이시다. 말씀과 함께 맡기신 하느님의 영, 성령이시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보호자 성령께 청(請)하지도, 의탁(依託)하지도 않은 것이 악(惡)하고 게으른 종(從)이다. 그러면 인간의 뜻으로 깨닫게 되니 헛 것이 된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한 탈렌트, 그 진짜를 가진 것인데, 그 가진 것을 모르면 갖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사랑, 생명, 자비, 용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성경 속 그 하느님의 약속, 말씀을 모르니 계속해서 ‘용서해 달라, 구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미사하고, 기도하며 헛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聖經)을 문자(文字) 그대로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규정(規定)과 교리(敎理)중심의 신앙을 살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게, 깨어있게 하는 기름, 곧 맡겨주신 말씀과 성령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쫓겨난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 부분도 루가복음과 다른 뜻이다)
= 본 25장 시작,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성령으로 배웠고, 마태복음은 기름을 혼인(婚姻)예복(禮服)으로 전했고, 그 예복을 입지 않은 이가 하늘잔치에서 쫓겨 났음과 같은 것이다.
기름- 성령, 예복을 입지 않은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로마8,9) *말씀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둘, 하나로 주셨지만 그들(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우리에게 성령이 안 계시면 똥자루에 불과하다“ -박홍사제-
☨보호자 성령님! 함께 하심으로 늘 깨어있게 하시니~ 모든 말씀, 계명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깨달아 생명의 존재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5,14-30)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5~29)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주인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주인을 두려워했다. 그는 받은 탈렌트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과 투자로 인한 실패의 두려움을 가진 채, 주인에게서 받은 자본금을 투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그에게 남은 것은 자본금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기라도 했더라면, 거기에서 이자라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이자 한 푼 얻을 수 없는 땅에 그 돈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원금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나중에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는 25절에서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로 받으십시오'로 번역된 '에케이스'(echeis; here you have)는 '가지다', '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2인칭 단수 동사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신의 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불평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는 뉘앙스를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인이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통해 자신의 무책임과 잘못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 내뱉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표현이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면책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로 번역된 '포네레'(ponere; wicked)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도덕적으로 사악한'이라는 의미외에도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는'이라는 의미(묵시16,2)를 지닌 형용사인데, 종이 나쁜 관리인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로 인해 주인에게 괴로움을 끼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더군다나 그는 '게으른' 종이었다.
여기서 '게으른'으로 번역된 '오크네레'(oknere; slothful; lazy)의 원형 '오크네로스'(okneros)는 진보가 늦고 지체되며 나태한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니까 이 게으른 종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주인이 기대한 진보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아르귀리아'(argyria; money)의 원형 '아르귀리온' (argyrion)은 '은'(silver)을 의미하는 명사 '아르귀로스'(argyro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은전', '은조각'을 의미한다(사도3,6; 루카19,23).
그 당시 화폐는 주로 은전이었는데, 주인은 그 은전으로 된 탈렌트를 '대금업자들에게' 맡겨두었다가 이자를 받게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트라페지타이스'(trapezitais)의 원형 '트라페지테스'(trapezites)는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거나 고객의 예탁금을 보관한 후 이자를 지불하는 사람, 즉 '환전상'이나 '은행가'를 뜻한다.
또한,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단어와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단어 둘 다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주인인 한 탈렌트나 되는 많은 돈을 여러 대금업자들에게 분산 투자했기를 내심 바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탈렌트'에 해당하는 '탈란타'(talanta; talents)의 원형 '탈란톤'(talanton)은 원래 중량을 다는 '천칭', '저울'이라는 뜻의 단어였지만, 중량의 측정 단위와 화폐 단위로 발전했다.
탈렌트는 무게로는 약 34kg에 해당하며(탈출38,25), 돈으로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에 해당된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탈렌트는 노동자가 약 2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거액이었다.
그리고 영어에서 '재능'을 의미하는 'talent'라는 단어가 희랍어 '탈란타'에서 유래한 것이며, 여기서의 '탈란타'는 '재능'보다는 '사명'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자'로 번역된 '토코'(toko; interest; usury)의 원형 '토코스'(tokos)는 '산출하다', '낳다'를 의미하는 동사 '티토'(tit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원래 '출산된 것'이라는 뜻이다.
돈의 이자를 '토코스'(tokos)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원금에서 증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자율은 연리 8%에서 48%의 고리(高利)까지 다양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못하게 규정했지만(신명23,19), 타국인과의 거래에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였다(신명23,20).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동족간의 거래에서도 이자를 받는 일이 거의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어 '이자' 이야기를 한 것이며, 동족간 돈 거래에 있어서 이자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돌려받았을 것이다'로 번역된 '에코미사멘 안'(ekomisamen an)은 현재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의미로 '받았어야 했다'(should have received)는 뜻이다. 그러니까 실제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서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겠다'
이 구절의 선언은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이 악하고 게을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데 대한 응당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종은 적극적으로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주인이 원래 의도했던 목적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어도, 그 목적을 다른 방법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사명을 성실하게 잘 완수한 자에게는 당연한 보상 외에 또 다른 기대치 않았던 보상을 더해 준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 가운데 하나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옹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28절의 징계적 선언이 주인의 자의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마르4,25).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각 종들에게 맡겨진 탈렌트는 그들에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양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알맞은 탈렌트를 맡기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사명과 재능과 은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적든 많든, 자기비하나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1코린15,41).
하지만,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어떤 열매를 원하신다고 잘못 판단해 버리고, 하느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사용한번 해보지 못하고 묵혀두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부여된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그의 은혜가 넘쳐나며 그의 심령도 성령충만으로 부요해질 것이지만, 반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를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며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은사를 상실해 가며, 더 이상 영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간다는 것이다.
2024년 08월 31일 토요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탈렌트의 비유는 저에게 매우 강력합니다. 저에게 늘 이 비유로 말씀하시던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하느님께서 누군가에게 탈렌트를 주실 때는 개인의 명의로 주시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그 탈렌트에 대해서 너에게 결산을 요구하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탈렌트의 비유를 보면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2009년 겨울에 받은 편지 한 통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봅니다.
“그것은 너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것을 감추는 것은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십오 년이 지난 편지를 왜 지금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분 말씀이 지금도 저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종들에게 맡긴 탈렌트가 그 종들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탈렌트는 묻어 두거나 활용을 하거나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탈렌트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한 탈렌트를 가진 종의 것을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종에게 주는 것은 무자비할 뿐만 아니라 불의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은총은 실제로, 가꿀 때에 자라납니다. 은총을 부어 주셔도 그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 버립니다.
은총을 잘 가꾼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시 같은 분의 말씀을 인용하면,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탈렌트를 내어놓을 때 은총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라고 하실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8월 31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탈렌트의 비유
어제의 ‘어리석은 처녀와 성령을 간직한 슬기로운 처녀의 다른 比喩다.
복음(마태25,14-30)
14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 현세의 삶 속에서 ‘주님이 안계신데, 계신 것처럼 살고 있니?’ 오늘 물으신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 시간을 들여 일을 했다는 것이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들은 주님 앞에서 셈을 하게 된다. 나를 포함하여 전부 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더 벌었습니다.’ 곧 다른 차원의 것으로 ‘더 깨달았다’는 것이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작은 일, 곧 땅(육)의 것을 활용(일)하여 큰 일, 하늘의 영(靈)의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은 실체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말씀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진리(眞理)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더 벌었다. 다른 차원의 것으로 깨달았다’의 의미다. 그것이 이미 ‘주인(주님)과 하나 된 기쁨의 상태’인 것이다.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모두 ‘슬기로운 종’들이다.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 대금업자? 주님의 재산을 불려줄 대금업자가 누굴까? 다른 차원으로 더 벌게, 더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聖靈)이시다.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깨닫게 해 줄, 말씀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진리)을 깨닫게 해 줄 성령 이시다.
그러니까 한 탈렌트를 땅 속에 숨겨 두었다는 것은 성령도 모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모르고, ‘성령께 의탁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聖經)은 책장(冊欌)속에 고이 모셔 놓고 자신의 소원(所願)을 위해 열심히 성당(聖堂)에만 다녔다는 것이다. 곧 시간을 내서 말씀 안에 머무르지도, 공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고 악하고 게으르다’ 하신 것이다. 땅(육신)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일과 공부를 하지 않는가.)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 숫자 하나(1)는 숫자 열(10)과 함께 “충만(充滿), 완성(完成)”을 뜻한다.
그러니까 한 탈렌트를 받은 것이 ‘충만, 완성’임을 깨달았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활용하는 일,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충만, 완성’의 한 탈렌트를 간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한 탈렌트의 능력, 힘’을 모르고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29ㄱ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 하느님의 뜻을 더 ‘넉넉히 깨달아 간다.’는 말씀이며~
29ㄴ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갖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갖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빼앗긴, 없는 것’임을 말씀하심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땅의 것으로 하늘의 재산, 곧 말씀(씨)을 깨달아 간직하지 못했으니 씹을 말씀이 없어 이(齒)를 갈 뿐이다. 성령(聖靈)의 일하심을 모르니 , 믿지 못하니, 하느님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엉뚱한 왜곡(歪曲)된 다른 하느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곧 심지 않은데서 거두시는 모진(耗盡) 분으로,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시는 분으로, 그래서 두려운 하느님으로, 창조(創造)의 말씀을 문자(文字)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창세1,11)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사람의 눈으로, 문자로만, 보면~ 땅, 능력, 힘없는 그 빈 땅에게 씨는 주지도 않으시고,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 나무를 제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하시니 ‘모진 하느님’으로 보인다. 그래서 ‘보호자 성령 ’께 의탁 해야 한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면 능력, 힘없는 땅 속으로 씨가 땅을 위해 스스로 들어가 썩어져서 푸른 싹을 돋게 하고 나무로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곧 씨(후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으로 땅의 죄인(罪人)들을 위해 그들의 죄로 십자 나무에서 죽으시고 하늘의 용서, 생명이라는 열매를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자비, 구원의 복음으로 깨닫게 된다.
(1요한3,9)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 하느님의 씨(그리스도)가 사람의 죄를 품어 삼켜 없애 버리셨기에 그 사람에게는 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 이래 모든 죄악보다 전능 하신 하느님의 사랑, 자비가 더 크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만 믿을 수 있는 하느님의 지혜, 구원의 진리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희 안에 용서, 생명의 씨가 계심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