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11일 수요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 선언 (루카6,20-26)
제1독서<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1코린7,25-31)
25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45,11-12.14-15.16-17(◎11ㄱ)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임금님이 너의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임금님은 너의 주인이시니, 그분 앞에 엎드려라. ◎
○ 화사하게 한껏 꾸민 임금님 딸이, 금실로 수놓은 옷에 싸여 안으로 드는구나. 오색 옷 단장하고 임금님께 나아가는구나. 처녀들이 뒤따르며, 동무들도 오는구나. ◎
○ 기쁨과 즐거움에 이끌려, 임금님 궁전으로 들어가는구나. 당신 아들들이 조상의 뒤를 이으리니, 당신이 그들을 온 땅의 제후로 삼으시리이다. ◎
복음<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루카6,20-26)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⓵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⓶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⓷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⓸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⓹쫓아내고 ⓺모욕하고 ⓻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⓼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독서 (1코린7,25-31)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9-31)
본문은 종말 의식이 팽배했던 코린토 교인들에게, 혼인 문제를 중심으로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한 내용이다. 여기서 '때'는 카이로스'(kairos)로서, 본래 '결정적 시간', '적절한 때', 더 이상 미룰 수도 바꿀 수도 없는,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계획하신 일이 정해진 장소,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충만한 시간, 신학적으로는 '종말론적 구원의 시간'을 말한다.
여기서는 '때'가 구체적으로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가?
첫째, 코린토 교인들이 처해있던 고난의 상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둘째, 성도의 개인적 종말을 뜻하는 죽음의 때로 보는 견해가 있다.
셋째, 예수님 재림 전, 즉 종말 이전의 때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셋째 견해가 문맥상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바오로는 여기서 왜 코린토 교인들을 대상으로 종말 의식을 염두에 두고 교훈하는 것일까?
테살로니카 2서 2장 2절에서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당시 팽배해 있던 종말 사상과 관련하여 오히려 불안한 종말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바로 가르치며, 지혜롭게 종말에 대처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지적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오로가 혼인한 남편에 대해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라고 말하는 진의는 무엇인가?
이것은 남편와 아내가 혼인이라는 제도 내에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사실은 바오로가 이미 7장 2-5절에서 혼인을 권장한 바 있고, 혼인 생활에 있어 부부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바오로의 7장 29절의 권면은 31절 후반절과 32절, 33절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참고로 판단할 때, 보다 분명한 의미가 드러난다.
첫째, 혼인한 남자는 그가 따라서 살기로 한 혼인 제도가 신성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곧 사라져 버릴 이 세상의 질서에 속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아내가 아닌 주님께 두어야 하고 혼인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은 종말론적인 삶이 지닌 역설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삶을 추구하고 하느님께 봉사하며, 세상으로부터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바오로는 예수님 강생부터 재림 사이의 단축된 시간 상황에서, '오고 있는 미래의 시간'을 삶의 기준으로 두고, 종말론적 긴장감을 가지고 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 묵시 문학이 표현하고 있는 세계관, 즉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반대하고 있으며, 종말의 시대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는 코린토 교인들의 교만한 생각에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 즉 종말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그로부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이다.
바오로는 29절의 아내 있는 자들에 대한 언급에 이어서, 계속하여 우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물건을 산 사람에 언급하면서, 혼인 문제를 중심으로 종말이 임박한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 교훈한다.
알다시피, 우는 사람은 자신의 슬픔에 도취되기 쉽고,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운을 신봉하여 과도하게 기뻐하기 쉽다. 그리고 물건을 산 사람(매매하는 자)은 자신들의 새로운 재산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런데 바오로는 이러한 삶의 태도에 대하여 종말론적 관점을 거론함으로써 심각한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바오로는 기혼자들에 대한 충고에서 금욕 생활을 옹호하지 않은 것 같이(29절), 여기서도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무관심과 냉담(apathy)은 옹호하지 않는다. 바오로는 초점은 종말을 기대하며 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있다.
바오로는 혼인, 슬픔, 기쁨, 재물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생사고락 및 사회 제도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세적인 세상사의 과도한 몰두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있다.
그는 종말이 임박할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현세적인 문제들에 얽매여서
곧 오실 신랑되신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거나 무관심한 삶을 살아서는 안됨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는 29절 이하에서 종말이 임박한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를 언급하던 중에 31절에서는 세상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여기서 '세상'이라 번역된 '코스몬'(kosmon)은 본래 '세상'을 뜻하는 '코스모스'(kosmos)의 목적격이므로, 굳이 '세상 물건' 이라고 번역할 필요가 없다.
바오로는 '코스몬' 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시간과 물질 때문에 강하게 밀착되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굳이 번역한다면,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 이다.
그런데 바오로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이 그 세상을 다 이용하지 못하는 자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용하지 않는' 으로 번역된 '카타크로메노이'(katachromenoi)는 '카타크라오마이'(katachromai)의 현재 분사형이며, 이 단어는 '~에 대하여' 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카타'(kata)와 '쓰다', '사용하다', '이용하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크라오마이'(chraomai)가 합성된 동사이다.
그러나 '카타'가 종종 단순히 동사의 의미를 강화시켜 주는 접두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본절에 언급된 '카타크로메노이'는 '완전히 사용하다' 라는 뜻이 된다.
바오로가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이용하는 삶은 세상에 완전히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 이라는 어구가 세상에 완전히 몰두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오로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의 몰두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형제'로 번역된 '스케마'(schema)는 '모양', '현상', '태도', '습관' 을 뜻하는 말로서, '본질' 또는 '실체'와는 대립되는 의미를 나타낸다.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스케마'는 변하게 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눈에 보이는 외적 형태의 총체를 뜻하는 것이다.
'혼인'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들을 위한 제도와 매매를 비롯한 경제적 활동등 세상의 온갖 제도들과 관계들은 '그때' 즉 종말이 되면 사라지고 말 것이다(29절).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마태오 복음의 참 행복 선언(마태 5,3-12 참조)은 ‘산상 설교’(5─7장)의 첫머리에 놓여,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구약 율법을 완성하는 ‘신약의 새 모세’로 예수님을 내세웁니다.
한편 오늘 루카 복음의 참 행복과 불행 선언은(루카 6,20-26 참조) ‘평지 설교’(6,17-49)에 속한 대목으로,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시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백성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각각 네 가지로 구성된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은 대칭을 이루며 서로 그 뜻을 밝혀 줍니다.
‘가난한 이들’이 ‘부유한 이들’과 달리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자신의 미소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그분의 현존과 은총 속에서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특히 저 먼 미래의 무엇이 아닌 “지금”(21.25절)의 삶을 잘 살피고, 하느님 없이 자만자족하는 부자가 되기보다는 그분께 희망을 두기에 당장의 불편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겨 낼 줄 아는 ‘스스로 가난하게 된 사람’, 곧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가 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부유하고 즐겁기만 한 삶에 익숙해진 이는 그것을 잃어버릴까 늘 두려워하고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데 필요하다면 스스로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는 ‘결핍’에 익숙해진 신앙인은(제1독서 참조),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평정심과 확신을 잃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주시는 그 온전한 ‘자유’를 현세에서부터 미리 누리며 살다가, 장차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우리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루카 6,20-26)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행복 아니다. 바라크(하늘의 생명력) 복이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하신 말씀 산상수훈이다. 마태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 했다.
앞17절 이하에서 큰무리, 군중이 자신의 뜻과 병(육)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을 찾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의 치유, 곧 사람의 영을 구원하려 오신 그리스도 이신 것, 사람의 눔으로 보고 말한 계명을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의 그 부자가 아닌~그 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권위가 없음을 깨닫고 그 자기 의로움을 부인하는, 버린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 마음의 가난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의지하게 되어 하늘의 생명을 얻는 그 복을 받는 것이다.
21 행복하여라,(복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 세상의 의로움을 否認하는 그 마음, 그 굶주린 마음. 그 우는 이는 하늘의 생명, 구원의 의로움으로 배불러 웃게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
세상 사람들보다 믿는 이들, 곧 자신의 뜻을 위해 사람의 말(계명)로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 군중 같은 신앙인들에게~~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복이다)
= 하느님의 뜻을 위한 신앙인은 사람의 뜻인 그들을 거슬러 말해야하니 미움과 모욕은 당연한 것이다.
(필리1,29)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 자기 의로움, 명예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그 큰 부자인 것이다. 그가 지금, 세상에서는 웃지만~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 하늘의 의로움, 곧 십자가의 복음으로 얻는 하늘의 의로움, 그 하늘의 예복을 입지않는 이는 하늘에서 하늘의 양식인 말씀(씨)이 없어 먹을 것, 씹을 것이 없는 굶주림으로 이만 갈게된다.
(마태22,12-14)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하늘의 혼인 잔치)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도덕과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 그 옷이 더 좋다고, 십자가의 의로움을 입지않는, 곧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신앙인, 그들은 지금 이세상에서는 첫째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꼴찌로 울게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어느분의 노파심,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맞다.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으로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 미워하는 그를 사랑할 수도 용서도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 그 하느님의 은총, 은혜로 얻는 자유 쉼 안식을 깨달아 감사하는 삶,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기도와 내 의지를 꺽으려는 눈물나는 그 노력 없이 어떻게 깨닫겠는가~~
(갈라5,13)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아멘.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6,20~26)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2~23)
루카 복음사가에 의하면 네번째로 소개되는 이 축복은 마태오 복음의 여덟번째 축복에 이어 나오는 보충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과 상응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주어질 박해에 대해 네 가지로 표현한다.
첫째는 미워하는 행동이 나타날 것으로 예고한다. '미워하면'에 해당하는 '미세소신'(misesosin; hate)는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풀기 어려운 적개심을 뜻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여기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적개심은 믿는 자들을 쫓아내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쫓아내고'로 번역된 '아포리소신'(aphorisosin; separate; exclude)는 '내쫓다', '배척하다'라는 뜻이며,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 자들을 소속된 공동체로부터 추방하거나 소외시켜 버렸다(요한9,22참조).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모욕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욕하고'에 해당하는 '오네이디소신'(oneidisosin; reproach; insult)은 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중상하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원문에는 '에크발로신 토 오노마 휘몬 호스 포네론'(ekbalosin to onoma hymon hos poneron; reject your name as evil)이다. 이것은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리면'(cast out)이라는 뜻인데, 믿는 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며 제자라는 그 이름 자체로 말미암아 적대자들에게 악하다고 단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열된 네 가지의 경우가 모두, '사람의 아들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게 되는 고난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난을 받는 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은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분명 박해와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박해받는 자마다 '생명의 화관', 즉 영광의 상급에 대한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축복이 되는 것이다(묵시2,10).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여기서 '그날'(in that day)는 바로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는 때, 즉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때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기뻐하고 뛰놀아라'를 단순 과거 명령법으로 쓰고 있다. 단순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어느 특정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취해져야 할 것을 표현하는데, '기뻐하고 뛰놀아라'는 명령은 '그날에'라는 시간에 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박해가 지나간 후에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핍박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기쁨의 행동을 취하라는 역설적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핍박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뛰놀다'라는 역설적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하늘에서 박해받는 자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에 해당하는 '미스토스'(misthos; reward)는 선한 행위와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 수여하실 보상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박해를 당하는 그들의 행위가 선한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당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심으로써, 신실한 종들에게 꼭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똑같이 그렇게 핍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루카복음 6장 26절과 관련지어 보면, 거짓 예언자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고 칭찬을 듣는 자는 거짓 예언자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이 곧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하나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기뻐 뛰놀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1베드4,14; 로마8,36).
2024년 09월 11일 수요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1).
지난해에 아버지의 임종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내세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그렇다고 현세에 집착하거나 죽음을 아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의사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가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앙이 없는 삶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앙이 있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에 대하여 아무 미련 없이 떠나가는데,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현세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 몸을 끔찍이 아끼며, 아주 사소한 예를 들면 선풍기는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려 하는 우리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지고 있음을 과연 믿는 것일까요?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현세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영원한 삶을 바라며 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불행 선언도 같은 맥락입니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그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삶 속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마치 현세가 전부인 양,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삶만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십자가(十字架)의 복음을 진리(眞理)로 믿어
복음(루카6,20-26)
20ㄱ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 오신 그리스도시다. 곧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하신 말씀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안됨을 뜻한다. 그래서 ‘눈을 들어’를 빼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말씀을 넣으신 것이다.
20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 행복, ‘바라크’- 복으로 창조 ‘바라’에서 나온 말로 하늘의 생명력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루가4,18)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배부르고 웃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미움을 받게 된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을 찾아봤다. ~
(루가18,13)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주님께 의탁하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받았다. 복을 받은 것이다.
(마태15,26-27)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말씀을 꼭 먹어야 할 ‘강아지(犬)’로 낮춘 사람이다. ‘큰 믿음’으로 인정 받았다. 복 받은 것이다.
(마태8,8)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인간의 것이 아닌 주님의 ‘한 말씀’이면 됨을 아는 사람이다. ‘가장 큰 믿음’으로 인정받았다. 복받은 것이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 복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이다.
(루가18,11-12)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인간의 계명, 교리)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마태7,22-23)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예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마르7,7-8)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인간의 도리)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 요점, 결론의 말씀~
(마태21,31-32)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지키며 착하게 살아, 의롭게 산 사람이 아닌,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흘리신 피로 씻어 ‘의롭다, 거룩하다’ 하신 그리스도, 그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믿어 그리스도와 하나.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모두 하느님의 지혜이신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깨달을 수도, 믿을 수 있는 말씀이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인간들의 생각, 관점인 세상의 선악, 곧 도덕과 윤리의 죄, 의(義), 심판을 부수심이다.
하느님의 뜻을 적대한 그 살인죄로 감옥(세상)에 갇힌 죄인을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시고, 꺼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이들은 ‘그럴 수 없다’며 ‘내 죄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도리지’ 하며 감옥(세상)에서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수고하며 애쓴다. 그러나 그 곳의 열심, 의(義)로는 절대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율법이 아닌, 하느님의 율법에 따르면 모든 것이 피(血)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피(血)’로다.(히브9,11-22)
*오늘날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아 세상(감옥)으 감투로 만족해 하며, 영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불행한 이들이 많다.
독서(1코린7,31)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자~
(에페2,1-5)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 청합니다. 의탁합니다. 저희들의 눈과 귀, 마음에 충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