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7,36-50)

2024. 9. 18. 오후 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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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일 목요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7,36-50)


   


1독서<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1코린15,1-11)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4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화답송>시편118,1-2.16-17.28(1)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복음<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루카7,36-50)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제1독서(1코린15,1~11)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2)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 나시어(3~4)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8)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2)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15장 1~11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역사적 확실성을 다룬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며 신도들의 부활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코린토 1서 15장 1절에서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이 코린토 전서 15장 3~4절에서 '돌아가심(죽으심), 묻히심(장사지낸 바 되심), 부활하심(되살아나심)'으로 요약되어 나타나고, 이어지는 코린토 1서 15장 5~8절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부활에 대한 무수한 증인이 있음을 말함으로써 본 단락에서 다룰 복음의 핵심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글 성경에는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2) 라는 어구가 문장의 말미에 나타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에 해당하는 '디 후 카이 소제스테'(di hu kai sozeste)가 문장의 서두에 등장한다. 이것은 본절이 '내가 전한 이 복음 말씀'(2)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절에서 '디 후'(di hu; by this gospel)는 같은 절의 '티니 로고 유엥켈리사멘 휘민'(tini logo euenggelisamen hymin; the word I preched to you;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 말씀)과 관련된 것으로서 바로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 전한 복음이며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특히 여기서 '여러분은 구원을 받습니다'로 번역된 '소제스테'(sozeste)는 '구원하다' 라는 뜻을 지닌 '소조'(sozo)의 현재형으로서 구원이 지금 현재적으로 구현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코린토 신도들이 지금 구원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1코린1,18; 로마1,16). 

구원의 완성은 비록 미래에 온전히 이루어질지라도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으며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 나시어'(3~4) 

여기서 '먼저'라고 번역된 '엔 프로토이스'(en protois)는 시간적인 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의 우선성을 뜻하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여정에서 시간적인 순서로 코린토 교회가 사도 바오로의 복음을 제일 먼저 접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 복음을 전할 때 내용적으로 가장 우선하는 것이란 의미이다.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 전한 복음의 내용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코린토 전서 15장 3~4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경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되살아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오로는 대속적 죽음과 부활의 주체를 '예수'로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을까?  그것은 역사적인 예수와 구원자 그리스도가 동일한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초대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다. 예수는 나자렛 출신의 일개 목수의 아들로서 역사적으로 실재한 한 개인의 이름이다. 그러나 복음서와 사도 바오로는 초지일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이란점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역사상 예수라는 이름으로 실재하였던 바로 그분이 다름아닌 메시아 그리스도 곧 인류의 구원자라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 사도들의 선포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사도2,36)는 선포가 아닌가! 복음 선포의 핵심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데 있는 것이다.  

역사의 예수가 믿음의 그리스도요, 생명의 주님이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이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때문에 돌아가시고'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때문에' 죽으신 대속적 죽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죽음이 예수님 자신의 결정이나 돌발적 사고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님을 '성경 말씀대로' 표현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성경'에 해당하는 '그라파스'(graphas)는 복수형으로 '성경들'로 번역될 수 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예언된 사건이었다. 실제로 구원사의 핵심인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은 구약 성경에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세22장; 탈출12장; 시편22장; 이사야53장; 다니엘9,26 등등).

 

또한 여기서 '죽으시고'로 번역된 '아페타넨'(apethanen; died) 역시 '죽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트네스코'(apothnesko)의 부정(不定; indefinite)과거형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일회적인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가리킨다.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4)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15장 3절과 4절에서 자신이 전한 복음의 핵심을 밝히고 있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다시 살아나신 일, 곧 그리스도의 부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본절의 핵심 단어인 '묻히셨으며'와 '되살아나시어'란 두동사는모두 3인칭 단수 수동태로 쓰였으나 그 시제가 다르다.

 

먼저 '묻히셨으며'에 해당하는 '에타페'(etaphe; he was buried)는 부정(不定; indefinite)과거형이다. 여기서 이 시제는 육화(肉化; Incarnation; 강생)하심으로 시작된 자기 비하(卑下)의 단계가 드디어 묻히심의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최고조의 부정 과거(Culminative Indefinite Past)이다. 반면에 '되살아나시어'에 해당하는 '에게게르타이'(egegertai)는 완료형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과거 사실(he rose again; he was raised)임에도 불구하고 전자와 다르게 완료형을 사용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지나간 역사적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효력이 계속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살아계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이 두 단어는 모두 수동태 쓰였다. 우선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후자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친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전자는 예수님께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등에 의해 장사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마태27,57~61).

그러나 이것 역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구속 사업 계획을 세우신 성부 하느님께 순종하며 장사지내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수동태를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 단락에서 사도 바오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지 죽으시고 묻히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크리스챤(성도)간의 일치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한 성도 역시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흗날에'(te hemera te trite; 테 헤메라 테 트리테; on the third day)라고 사도 바오로가 굳이 표현한 이유가 뭘까? 사도 바오로가 죽음에서 부활까지 걸린 기간을 명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 가운데 실재로 일어난 틀림없는 사실이란 점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안식일 전날 금요일에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사흘이 지난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즉 주일(主日; The Lord Day)에 부활하심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초대 교회 당시 주일에 드리는 공식 예배와 성찬의 정당성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부활 사건은 그의 죽음심과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대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시편 16장 10절이나 이사야 54장 7절의 말씀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서, 그의 죽으심의 사건과 동일하게 코린토 교인들로 하여금 성도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영원하신 계획이란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다음 코린토 1서 15장 5절부터 8절까지 사도 바오로는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역사적 확실성을 논증하는 가운데,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수많은 증인이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케파 베드로와 열 두 사도, 그 다음에는 오백명이 넘는 형제들, 그 다음에는 야고보,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났다고 전한다.

 

여기서 코린토 1서 15장 7절 '모든 사도' 표현은 '열두 사도'를 말하는 게 아니고, 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현현(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을 목격하고 복음 선포자가 된 사람들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사도 바오로를 돕던 협력자들까지도 때로는 사도들로 언급되어 초대 교회 당시 '사도'라는 용어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8)

 

'맨 마지막으로'(last of all)라는 표현은 '가장 하찮은 존재'라는 겸손의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서  다른 사도들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 없다는 의미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칠삭둥이 같은 나'(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로 번역된 '엑트로마티'(ektromati)는 '~로부터 밖으로' 란 뜻이 있는 전치사 '에크'(ek)와 '상하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는 동사 '티트로스코'(titrosk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유산되어 태어난 '사산아'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조산아'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의 외모가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거나 만삭되지 못하여 갑자기 태어난 아이와 같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사도 바오로의 회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이것이 갑작스런 회심을 가리킨다면, 이것은 그가 사도가 되기 전에 조직적으로 교회를 핍박했던 죄인이었음을 상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칠삭둥이 같은 나'라는 뜻의 '엑트로마티' 앞에 정관사 '토'(to)가 붙은 것에 대하여 여러 설이 있다. 

구약 성경 70인역(LXX)에서 '엑트로마티'는 주로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민수12,12; 욥기3,16).

 

따라서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본문은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지상 선교의 시기인 공생활 동안 줄곧 함께 한 열두 사도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다가 후에 사도가 된 사실을 피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열 두 사도가 만삭이 되어서 난 아이와 같다 한다면, 자신은 달 수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와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정관사 '토'를 붙여서 자신을 '그 칠삭둥이 같은 나'라고 한 말 뒤에는, 그가 사도들 가운데 제일 뒤에 처져서 출발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사도들 중에 유독 그만의 특별히 구별되는 방법으로 부름받음 것을 드러낸다.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7,36-50)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 식탁은 제단을 의미한다. 바리사이의 식탁, 곧 옛 계약의 율법의 제단(제사)에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앉으신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가 말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되살아나신 그 기쁜 소식, 복음, 용서 의 새 계약이 앉으신 것, 율법과 상관없는 하늘의 의로움이신 분(로마3,21)

 

(로마3,24-25)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그 기쁜 소식, 복음을 들은 죄의 여자가 예수님을 찾는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 자신의 입(말)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시는 대속의 죽음, 곧 구원의 십자가의 길을 가실 그 진리의 발에 자신의 모든 것(향유)을 던진 것이다. 자신의 죄를 버리고 목숨을 의탁하는 것이다.

그 같은 진실, 죄의 덮으심,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사랑)을 모르고~ 자신의 열성, 자기 의로움의 제사를 드린다면, 그 제단, 식탁을 고집 한다면 , 하느님의 용서를 몰라 다른이의 죄를 볼 뿐이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앞에서 묵상 했듯이 죄는 그리스도의 죽음, 그 피로 얻는 것, 그 대속의 고해 성사가 아닌 죄를 몇가지 골라 드린 고해성사라면 용서 받았음의 기쁨이 나올까?

오늘 복음 환호송처럼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곧 하늘의 안식, 자유는 모른다는 것이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제사를 완성하신, 그래서 더 이상 예물이 필요 없고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하신 그분의 피의 새 계약, 십자가로 받는 용서, 그 복음은 모르면서 매일 제사를 드리는 신앙은 헛된 것이다.

 

오늘독서 (1코린15,2)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 구원, 곧 용서와 하늘의 생명은 기쁜 소식, 그 복음(말씀)을 믿어 받는 것이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우리의 식탁을~ 매일, 매식마다 감사의 식탁(제단)으로 그 제단의 양식으로 먹으면 어떨까? 식탁 위에 오르는 모든 양식(피조물)이 말씀으로 창조 되어 자라나고 지어진 것, 곧 생명의 양식, 말씀 양식인 것이다. 그 말씀으로 먹는다면~ 그 피조물 안에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이 들어 있으니까~~

감사의 잔치(에우까리스띠아-미사)가 아닌가~~그리고 그 식탁에 앉는 ‘나와 너’가 그 용서의 양식(말씀)을 먹는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매일, 매 시간, 감사(미사)의 삶을 사는 것이다.

 

(지혜16,24-26) 24 피조물은 자기를 만드신 당신을 시중들며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는 데에는 그 힘이 팽팽해지고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에게는 득이 되도록 그 힘이 느슨해집니다. 25 그래서 피조물은 그때에도 온갖 형태로 바뀌면서 궁핍한 이들의 바람에 따라 모든 이를 먹여 살리는 당신의 선물로 쓰였습니다. 26 그리하여 주님,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러 가지 곡식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돌보는 당신의 말씀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아멘.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복음(루카7,36~50)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6)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7)

 

루카 복음 7장 46절에는 이중 대구 구조가 나타난다. 즉 '기름'에 해당하는 '엘라이오'(elaio; oil)와 '향유'에 해당하는 '뮈로'(myro; ointment; perfume)'머리'에 해당하는 '텐 카팔렌"(ten kephalen; head)과 '발'에 해당하는 '투스포다스'(tus podas; feet)가 대칭되는 개념이다.

 

'기름'과 '향유'는 모두 기름의 일종이지만, '향유'('뮈로')는 그 앞에 종종 '값비싼'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처럼 매우 값진 기름이다. 반면에 '기름'은 때로는 램프의 기름이나 병자를 치료하는 약, 때로는 머리와 몸에 붓거나 바르는 등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기름이다.

이것은 당시 올리브 나무로 뒤덮였기 때문에 붙여졌던 '올리브산'이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값싼 물건이었다.

 

당시 '향유'를 부을 때에는 일반적으로 머리에 부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값싼 '기름'조차도 붓지 않은 바리사이 시몬과 값비싼 향유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머리에 붓지 못하고 예수님의 발에 부은 여인을 비교하심으로써 그녀의 겸손과 헌신을 칭찬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원문은 '호티 에가페센 폴뤼'(hoti egapesen poly; for she loved much)이다. 여인의 사랑과 헌신적 행위가 죄를 용서받게 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죄의 용서는 순전히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하느님께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이것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있어 논란이 되는 구절이다.

그래서 여기의 '호티'(hoti)를 '내가 너에게 말한다'로 번역된 '레고 소이'(lego soi; I tell you)에 걸리는 종속절로 보아서 '내가 그녀의 많은 사랑함에 대해 말하는데'로 번역하여 '호티'(hoti)이하의 절을 그녀의 많은 죄의 용서의 근거가 아니라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근거로 보기도 한다.

 

루카 복음 7장 47절과 48절에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용서받았다'에 해당하는 '아페온타이'(apheontai; are forgiven)라는 새로운 단어이다. 

이 단어의 원형은 '아피에미(aphiemi)인데, 이것은 '보내다'라는 뜻의 '히에미'(hiemi)에 '~로 부터'를 의미하는 전치사 '아포'(apo)가 합쳐진 형태로서, '~로부터 떼어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여인이 자신을 억누르던 죄('하마르티아이'; hamartiai; sins)와 이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주위의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을 표현한다.

과거의 허물과 실수, 죄악이 현재나 미래에 미치는 결과까지 완전히 백지화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아피에미'(aphiemi)를 통해서 여인은 죄인의 신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고, 이러한 공적인 선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죄의 용서의 권한과 권세를 갖고 있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20240919일 목요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어제 독서에서 보았던 것을 오늘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소란한 꽹과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도 실천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무엇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 자신의 공로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거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실천한 율법과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면 그의 집으로 예수님을 찾아와 발을 닦아 드린 여자는 선행도 공로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많이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천국에서까지 남아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죄가 사라지고 나면, 예수님께 보여 드린 그 사랑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루카 7,47)라는 말씀이 눈에 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가 큰 사랑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지 않고,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에 큰 사랑을 드러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순전히 인간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면 그 사랑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출발점은 하느님이십니다.

먼저 사랑하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으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고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신자들이 자신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았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9월 19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위선(僞善)의 포장(包裝)을 풀자.

복음(루카7,36-50)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 소문으로 들은 크신 분을 대접할 수 있는 힘, 자신감이 있는 바리사이다.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래서 사람들의 높은 평가로 자기 의로움의 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와 반대인 여자가 있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죄인임을 아는 사람의 자세다. 마음 뿐만 아니라 전 재산(향유)을 다 부었다. 자신의 머리(카락)로 발을 닦아드릴 수 있음에 눈물로 감사를 드린다. 곧 예수님의 발이 자신의 죄를 위한 길(道)임을 깨달아 알고 입을 맞춘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바리사이는? 나는?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 자신의 잘못(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이를 쉽게 판단한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 머리에 기름을 부음은 메시아임을 인정,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죄인)는 기름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 곧 그분의 발길이 메시아의 길임을 고백한 것이다.

 

(마르14,8)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 깨달음과 진실된 회개로 사랑했기에 할 수 있는, 드러난 태도이다. ~척하는 위선이 없다. 깨달음에 의한 온전한 자기부인(自己否認), 버림의 모습이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 적게 사랑함~ 제사와 윤리지킴의 그 종교행위로, 곧 ‘예수님을 초청한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 만족하고 있는, 그래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평안히 가거라.”

=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믿음이다.

 

*사도 바오로의 고백을 보자~

(갈라2,19-20)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율법의 의로움이 헛된 것임을 , 그래서 죽을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필리3,3-12)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좋은 세상적 스팩이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보호자 성령님! 여자보다, 바오로의 삶보다, 바리사이로 살고 싶은 마음을 보게 하소서. 괴로워할 줄 알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그래서 나를 당신의 것으로 차지하신 분의 발에 입맞추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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