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7,1-10)

2024. 9. 15. 오후 4: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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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일 월요일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7,1-10)


   


1독서<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면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1코린11,17-26.33)

형제 여러분, 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18 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20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21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3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화답송>시편407-8ㄱㄴ.8-9.10.17(1코린11,26)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여라.

주님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당신을 찾는 이는 모두, 당신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리이다. 당신 구원을 열망하는 이는 언제나 외치게 하소서. “주님은 위대하시다.”

 

복음<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7,1-10)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또는,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독서(2코린 4,7-15)와 복음(요한 17,11-19)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독서(1코린11,17-26,33)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26)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원문에는 '그러므로' 로 번역될 수 있는 접속사 '가르'(gar)가 포함되어 있어서, 본절이 24절, 25절에 대한 결론적 내용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직역하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몇 번이라도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여야 합니다." 가 된다.

 

'~적마다' 로 번역된 '호사키스'(hosakis ; as often as ; whenever)는 '언제든지 ~할 때마다' 라는 반복의 뜻을 나타내는 관계 부사로서, 주님의 만찬을 계속해서 반복하라는 명령과 같은 말이다.

 

또한 여기서 '전하는 것입니다' 로 번역된 '카탕겔레테'(katanggellete)는 본래 '선포하다', '전하다' 라는 뜻을 지닌 '케탕겔로'(ketanggello)의 현재형으로, 일차적으로는 '말로서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 을 의미한다. 

그러나 '카탕겔레테'를 말로 전하는 선포(proclaim)라는 자구적 의미에 국한해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오히려 본절은 이런 의미뿐 아니라 '빵을 먹고 잔을 마시는 행위 그 자체로 주님의 죽으심을 전한다'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성찬 예식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가 바로 성도의 구원을 위한 주님의 대속적 죽으심을 선포하는 행위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오로는 이러한 성찬례를 언제까지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바오로에 따르면, 성찬례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akris hu elthe ; 아크리스 후 엘테 ; until he comes)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주님의 재림의 날을 고대하는 바오로의 간절한 희망을 피력한 것이다.

 

여기서 바오로는 지상의 모든 하느님의 교회가 그 종말론적 완성의 날을 고대하고 있음을 확연하게 드러낸다.(1코린15,25 ; 로마11,25 이하) 말하자면, 모든 교회는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을 간절한 희망으로 고대하며 기다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찬례는 필연적으로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잔치와 관련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성찬례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의 과거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를 통해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찬례는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식사(1코린11,34)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과거를 현재화시키는 것은 물론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라는 역사적 미래와도 연결되는 일종의 연결 고리이다.

이것은 코린토 전서 11장 23절과 25절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에서 '기억' 이라는 '아남네시스'(anamnesis)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잘 증명해 준다.

 

'아남네시스'란 단어는 히브리어의 '찌카론'(zikkaron)이라는 단어와 같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단순히 상기하거나 추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의 그 사건이 그대로 구체화(현실화, 재현)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린토 교인들은 이러한 성찬례의 심오한 의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파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의 육신의 배를 채우는데 급급함으로써, 성찬례의 본래적 의도를 상실했던 것이다.(1코린11,17-22)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제1독서에서 코린토 교회 신자들은 주님의 만찬 전례를 거행하기 전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이들만 배불리 먹고 술에 취하였으며, 늦게까지 일하다 온 가난한 이들은 배를 곯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바오로 사도가 형제들을 기다려 주고 배려해야 한다고 훈계합니다.

한편 이방인들의 보편적 구원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 루카 복음사가는 한 이방인 백인대장의 일화를 통하여, 약자를 위한 형제적 배려와 참신앙의 예표를 신자들에게 제시합니다.

로마군 백 명을 거느리는 고급 장교가 병들어 죽게 된 노예를 살리고자, 위신을 내려놓고 식민지의 유다인 라삐에게 간청한다는 사실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당시 그저 재산으로만 여겨지던 노예를 매우 소중히 여기던 백인대장과, 그가 베푼 은혜에 보답하고자 예수님께 대신 간청한 유다인 원로들, 이들이 서로에게 품은 진심 어린 배려와 사랑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가운데 백인대장의 믿음이 단연코 탁월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유다인 원로들도 하지 못한 신앙 고백입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께서 이방인인 자신의 집에 드셨다가 율법상 부정하게 되실까 염려하여, 그분을 모실 자격이 없다며 자신을 한껏 낮춥니다.

그리고 지휘 체계에 익숙한 군인답게 그저 예수님의 명령, 곧 한 말씀만을 청하며, 그분께서 생명과 죽음의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고백합니다.

미사성제에 받아들여진 이방인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진실한 기도를 함께 드리며, 오늘도 주님께 치유와 현존을 간절히 청합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말씀 안에 진리를 모르고 열심히 성체를 모셔서 될 신앙이 아니다.

 

복음(루카7,1-10)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 앞 6장의 말씀으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신 것이다. *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집, 고을, 성전)은 앞 절에서 말씀하신 반석(성전- 말씀)이신 예수님 위에 집(성전, 나)을 지은 것이 아니라, 맨 땅, 곧 자신의 수고와 열심 위에 지은, 그래서 시련이 오자 흔들리는 자기를 위한 집(신앙)을 뜻한다. 그곳 사람들을 고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 로마의 백인대장이다. 자신의 나라의 속국인 이스라엘, 그 우대인 예수님을 알아보고 청한 것이다.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수고하실 것 없습니다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 맨땅인 흙(없음), 그 사람의 열심, 의로움의 집(카파르나움)의 그 자신은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음, 자격이 없음을 아는 백인대장이다.  예수님이 주인 이시며 그분 말씀만이 사람(흙-없음)의 생명, 빛임을 아는 이방인이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 예수님께서 ‘죽을 병을 일으키는 병마는 나가라’ ‘병이 나아라’ 등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죽을 병이 없어진 것이다. 쫓겨난 것이다. 곧 생명, 빛이신 분(말씀) 앞에서 말씀이면 된다는 그 믿음이 죽을 병에서 종을 살리신 것이다.

*믿음은 그분에 대해 잘 알아야, 곧 성경을 통해 알았을 때 생긴다. 말씀은 깨닫지 못하고 매일 성체를 모신다고 생기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갈증만 날 뿐이다.

말씀 안에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갈증이 해소되고(의식의 변화로) 믿음이 자란다. 말씀을 받아 들여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 깨닫는 진리, 믿음이다. <나의 체험이다>

 

(요한1,9-13)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말씀-*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 카파르나움, 그 육(肉)의 욕망, 그 자기버림, 부인(否認)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 곧 아버지 하느님의 권한을 받는 것이다. 

오늘 그 말씀을 원하고, 받아들인 백인대장이다. 하느님의 자녀의 권한, 그 백인대장의 믿음으로 종이 살아난 것이다.

 

병행복음~

(마태8,13)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 성체를 매일 모신다고 생기는 믿음이 아니다. 왜 ? - 매일 미사책, 묵상글에서 ‘말씀을 깨달음 보다 성체를 중요시하여’ 쓰셨기 때문이다.

 

성찬례~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예전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용서하신다는,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그 새 계약임을 모르고(히브10,6~), 매일 성체를 예수님의 몸(육)으로 모셨다. 그러나 믿음은 자라지 않아 늘 힘들고, 목마름, 무거운 짐 같은 신앙(信仰)을 살았기에~ 성체만을 중시하는 글, 가르침을 들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이다.

구원의 진리새 계약의 말씀으로 먹게 해모든 죄에서 자유하는 신앙을 살도록왜 이끌어 주지 않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성경에 있지도 않는 성사라는 교리에 매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요한6,55.63)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진리의 성령님! 주님의 살과 피를 육(育)이 아닌 영(靈)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고, 자유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7,1-10)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2-3)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마태8,7)

 

 

'저는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에 해당하는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ouk eimi hikanos; 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 to)에서 '히카노스'(hikanos)는 '가치 있는', '적합한', '알맞은'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7절에서 '유다인인 내가'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거나 합석하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유다인임을 밝히셨는데, 이것은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시험하신 거라고 볼 수 있다.

 

'유다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그를 고쳐야 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등의 교제를 금지하는 유다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 백인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하며, 또한 마태오 복음 15장 25절과 27절에서 가나안 여자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 달라는 겸손과 믿음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렇게 이방인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믿음있는 모습을 강조하여 마태오 복음의 독자인 유다계 크리스챤들에게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저'로 번역된 '모논'(monon; only)는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부사로서 '단순히', '오직'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the word)는 '말씀'이라는 뜻의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하옵소서'이다.

 

백인대장은 구약의 나아만 장군과 같은 이방인이면서도 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병을 고쳐 주기를 바라는(2열왕5,11) 주술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방인 백인대장이 바라는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처럼 주문을 외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었고, 스스로의 이름과 신적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치유; 나음)을 입으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이방인 백인대장은 주님의 한 '말씀'(logos)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은 참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루카4,26; 히브1,3).

 




 

 

  

20240916일 월요일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의 성찬과 관련하여,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1코린 11,20)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들의 성찬이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부의 차이를 드러내고 다른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신 사람들이라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찬은 교회의 신자들이 하나임을 드러내야 하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 사람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내줄 수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공동체가 성찬을 거행하기에,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에 합당할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백인대장이,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영성체를 앞두고 하는 말입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개인들만이 아니라 성찬을 거행하는 공동체들도 주님 앞에서 바쳐야 하는 고백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상처는 있고, 우리가 그 일치를 거슬러 저지르는 잘못들도 있습니다.

영성체를 앞두고 공동체의 양심을 성찰한다면, 혼자서 양심을 성찰할 때 못지않은 부당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인대장과 같이 치유를 청하며,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간청하여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우리 교회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부당함에도 주님께서 당신의 한 말씀으로 우리를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쓰는 두 단어는 로고스와 레마

 

‘로고스를 그릇으로’ 보면 ‘레마는 내용’이다. ~

(요한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여기에서 ‘말씀’이 ‘로고스’다. 그러니까 보이는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은총, 은혜, 진리, 영광, 사랑이 ‘레마’인 것이다. 이 선(先)지식을 가지고 오늘 복음으로~

 

복음(루카7,1-10)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수고하실 것 없습니다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병행복음 (마태8,8)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예수님(로고스)께서 친히 오시지 않아도 말씀(레마)이면 된다는 믿음이다.

치유 피정 같은 곳에 갔을 때,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보다 사제나 치유 은사자의 안수를 받는데, 곧 그분들의 손이 직접 닿는 것에 더 열을 올렸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주님의 한 말씀이면 됩니다.”한 백인대정의 모습이 정말 놀랍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아멘)

 

*지난 서울주보(22.09.11)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무엇일까?’를 보면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이분의 현존은 성경과 성전(성스러운 전통전승)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셨는데,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이다. 아니다. 맞다.’ 굳이 분리할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요한21,25)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 그래서 요약하여 주신 것이 성경이다. 성경 한 권, 한 말씀이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인대장의 믿음이다.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기록한 ‘말씀’ 책이다.(루가24,27) 예수님(로고스) 안에 하느님의 뜻(레마)이 담긴 것이 성경이다. 곧 성경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신앙이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그 많은 성전(전통, 전승)들이 다 진리(레마)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오히려 말씀을 폐기시킬 위험이 있을 뿐이다.(마르7,13) 그러니 성경만으로 안 되고 성전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다? 언어도단이다.

 

또 <경은 계시를 충실히 전달되고 있지만 글자로 된 성경은 해석이 필요합니다하느님의 말씀은 아무나 해석하고뜻풀이를 해서는 안됩니다교회를 통해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되었기에 그 후계자들즉 교회의 교도권이 성령의 빛을 받아 그 말씀을 충실하게 보존하고올바르게 해설하며 온 세상에 전파할 수 있습니다.> 하셨는데~

그러면 성경은 일반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사제들만이 성령의 빛을 받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사제께서는 ‘자신은 성경이 전공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놀라 자빠질 뻔 했는데 이 말은 더욱 놀라 자빠질 일이다.

곧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사제단이다.’ 성령을 받은 모든 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1베드2,5참조) 그리고 해석, 해설? 혹 ‘어리석다’하신 ‘사람의 지혜로?(1코린3,19) 해석, 해설이 아니라 ’깨달음‘이어야 한다.

곧 글자, 문자(로고스) 안에 하느님의 뜻(레마)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 ‘레마’는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기에(1코린1,21)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신다.

 

(1요한2,27) 27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성령)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요한14,26) 26 보호자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깨닫)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찾고, 구하고, 두드려라”하신 것이다.(루가11,9-13)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나를 붙들자 마라”하신 것인데(요한20,17) 더군다나 사람들의 구전으로 내려온 성전(聖傳)을?

초대교회 때에는 가르침을 받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성경을 연구 했다는데(사도17,11),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성전을 받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옳은 진리(레마)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2티모3,14-15) 14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하셨는데 어찌 이런 일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일’만 하셨고. 그 ‘한 가지’를 깨달아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성경으로 충분하며 성전(聖傳)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깨닫고 믿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은 성전까지? 성경을 보고, 깨닫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그러니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 땅(세상)의 것이 허무요 헛된 것임을 깨닫고, 세상적인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는, 그 죽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로 그분과 한 몸(하나)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 곧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성경(聖經), 성전(聖傳), 모두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성경(聖經)의 마지막, 묵시록에~

(묵시3,5.15-16. 20,15) 3,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20,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하느님의 지혜은총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성령의 가르침이끄심보호하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무요 헛된 무용지물이기에 예수님이 아닌 성령님을 청하고 구하고 두드려 붙들라’ 하셨습니다올바른 신앙을 살 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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