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30일 월요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가장 큰 사람 (루카9,46-50)
제1독서<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기1,6-22)
6 하루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모여 와 주님 앞에 섰다.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다.
7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8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9 이에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11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12 그러자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
13 하루는 욥의 아들딸들이 맏형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14 그런데 심부름꾼 하나가 욥에게 와서 아뢰었다. “소들은 밭을 갈고 암나귀들은 그 부근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15 그런데 스바인들이 들이닥쳐 그것들을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6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하느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 떼와 머슴들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7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칼데아인들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들을 덮쳐 약탈하고
머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18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이가 와서 아뢰었다. “나리의 아드님들과 따님들이 큰아드님 댁에서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19 그런데 사막 건너편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 그 집 네 모서리를 치자, 자제분들 위로 집이 무너져 내려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20 그러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21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22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화답송>시편17,1.2-3.6-7(◎6ㄷ) ◎ 주님,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
○ 당신 앞에서 저에게 승소 판결 내리소서. 당신 눈으로 올바름을 보아 주소서. 제 마음 떠보시고 밤중에도 캐 보시며, 저를 달구셔도 부정을 찾지 못하시리이다. ◎
○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놀라우신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소서. ◎
복음<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9,46-50)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48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또는,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독서(2티모 3,14-17)와 복음(마태 13,47-52)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욥기1,6-22)
마귀를 상징하는 짐승이 뱀입니다. 그 뱀이라는 단어가 원래 ‘나하쉬’인데, 이게 ‘말이 없음’이에요. ‘말이 없다.’ 그런데 정말 뱀이 말이 없어요? 뱀은 말 못하죠. 진짜로!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뱀은 말을 해요.
(창세기 3:4) 4 그러자 뱀이 여자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말하죠? 그런데 말이 없다? 그런데 이 뱀이라는 단어를 왜 마귀의 대표로 썼을까요? 진짜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을 왜곡하여, 인간들을 위하여, 그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말이, 뱀의 말, 마귀의 말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뱀, 마귀, 나하쉬!’ 그래서 묵시록으로 가면, 뱀! 용이, 마귀가 입에서 물을 막 쏟아내는 거예요. 가짜 홍수! 가짜 해갈!
(요한묵시록 12:14-17) 14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를 낳은교회)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가지고 있어서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 가 거기에서 삼년반 동안 그 뱀의 공격을 받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15 그 뱀은 그 여자의 뒤에서 입으로부터 강물처럼 물을 토해 내어 그 물로 여자를 휩쓸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16 그러나 땅이 입을 벌려 용이 토해 낸 강물을 마시어 그 여자를 구해 냈습니다. 17 그러자 용은 그 여자에 대하여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를 위해서 증언하는 일에 충성스러운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우려고 떠나 가 바닷가에 섰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곧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예수의 증거, 믿음의 증거를 가진 자! 히브리서 11장에서 그들을 다 어떻게 되었다? 죽었단 말예요. 어디서? 광야에서. 3년 반 동안. 고 이야기를 하는 거요. 그래서 마귀가 여러분을 계속 시험하게 놔두세요. 하느님이! 그리고 거기에 지게, 당하게 놔둔다니까요. 그리고는 예수께로 가게 해요. 성도만! 역사 전체가 그리로 가요. 그런데 성도만 예수를 붙들어요.
마귀는, 하느님께서 한시적(限時的)으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에요. 마귀는 하느님의 전쟁 대상(對象)이 아닙니다. 그래서 즈가리아서나 욥기에 보면, 하느님의 어전회의에 항상 마귀가 요렇게 손을 조아리고, 하느님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전쟁하는 놈이 거기서 그러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한시적으로 쓰는 자예요. 하느님나라에는 없어요. 그래서 마귀가 나중에 멸망(滅亡), ‘불못으로 들어간다’는 거란 말입니다.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거요.
그런데 그 마귀가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 안에 일차적으로 있어요. 고걸 멸해가는 게 역사란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느님의 백성 앞에 있으면, 항상 그들의 실체가 낱낱이 폭로되죠.
욥에게 마귀가 내려가니까, 처음에는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1,21) 그랬던 욥이 금방 악악거리죠. ‘내가 뭘 잘못했다 그래요?’ 이렇게. 마귀가 내려가면, 고렇게 그의 실체를 폭로해내는 거예요. 즈가랴서에 보면, 여호수아 앞에 마귀가 딱 서자마자, 그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게 폭로가 돼요. 그런데 그 마귀 앞에서, 원수의 목전에서, 하느님이 잔치 상을 베풀어 버려요. ‘옷 벗겨! 새 옷 입혀라!’(3,4)는 거예요. 고걸 구원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역사 속에서 마귀시험을 받으면서, ‘내가 더러운 옷 입고 있는 똥 걸레 입고 있는 죄인 맞습니다.’ 이거 폭로(暴露)당하고 가는 거예요. 거기에 열심이 나올 수도 있고, 성숙(成熟)이 나올 수도 있고, 변화(變化)가 나올 수도 있는 거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목적이 아니란 말예요.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시자(루카 9,44-45 참조), 제자들은 그분의 최측근으로 얻어 누릴 영광을 기대한 듯 자기들끼리 서열을 매기려 합니다.
이토록 완고한 모습에 진노하실 만도 한데, 예수님의 교수법은 달랐습니다.
아직 어리석기만 한 제자들의 수준에 맞추어, 가장 작은이들을 섬기는 겸손으로 얻게 될 영광을 다시한번 가르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신 말씀은, 어린아이처럼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마치 당신인 듯 받아들여 달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선을 넘고 내 감정과 삶을 마구 헤집으며 나를 이기려고만 하는 이를 미워하고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사람, 못난 나보다 더 못나 보이는 그 사람 안에도 주님이 계시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참아 내고 용서하는 사람.
그가 당신 눈에는 진정으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 속하지 않는 이에게도 이런 겸손과 포용의 마음으로 대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제1독서의 주인공 욥은 흠 없는 의인 이었지만, 하느님과 사탄의 내기로(의인의 수난을 ‘하느님께서 다 아셨고 허락하신 일’로 표현하기 위한 소재) 자연 재해와 약탈자들의 손에 모든 재산과 자식들마저 잃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하고 드렸던
욥의 기도가 바로 우리의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욥의 삶이 그분께 영광과 승리가 되었듯이, 일상 속 고난과 시련을 주님의 이름으로, 오직 주님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삶도 하느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기를 소망 합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루카9,46-50)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가장 작은 사람이 하늘을 받아 들여 가장 큰 사람이 되는 것, 어린이는 자신 밖에 모른다. 자신의 오관이 만족하지 못하면 울로 불고 난리가 난다.
그 어린이를~ 자신을 비워내는 그 작은 사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받아 들이면 큰 사람이다. 이 세상 부모들이 그렇게 큰 사랑으로 자녀를 키운다.
예전, 본당 원로하신 수녀님께서 “여러분은 좋겠어요, 자녀를 목숨 걸고 사 랑하쟌아요?. 그 큰 사랑을 알고 체험하고 있쟌아요?” 하셨듯이 부모만큼 큰 사랑을 하는, 큰 사랑을 아는, 큰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땅의 큰 사람이다.
예수님은 그 큰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47절에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리고 48절에 *이 어린이를~로 말씀하신다.
어린이 하나란~ 가장 낮은, 작은 사람으로 짐승들의 먹이(구유)로 오신 아기 하나,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루가2,11-12)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지금까지 먹었던 육의 양식(율법, 윤리), 그 나의 모든 것을 비워내고, 버리고~ 구유의 그 어린이 하나를 구원(생명)으로 받아들이면 하늘의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독서의 욥은 당대에 가장 큰 사람 이였다. 땅의 가장 큰 의인이라는 말이다. 자식들이 잔치(행사)를 치루고 나면 혹시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는 잘못을 저지를까봐 그때마다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치루곤 했다.
그렇게 온갖 정성으로 키운 자식들이 죽고, 모든 재산까지 빼앗기는 시련을 당해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왜? 자신은 큰 사람이니까~
(욥기1,20-21 2,10) 20 그러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21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2,10 그러자 욥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미련한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 오늘 독서의 이 한 부분만 읽고 그를 닮으려 한다면 하늘의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왜~ 당대의 가장 큰 의인에게 그 큰 시련을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법(율법, 윤리)을 잘 지킨 그 큰 사람, 그 의인은 구원의 권위가 없는 헛되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다.
참조~(코헬렛3,18-19)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19 사실 인간의 아들들의 운명이나 짐승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다. 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으며 모두 같은 목숨을 지녔다. 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허무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같은 하느님의 뜻을 모르니 시련이 *계속되자 욥은 자신의 무고함을 들어 하느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욥기3,2-4 11) 2 욥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3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 하고 말하던 밤! 4 그날은 차라리 암흑이 되어 버려 위에서 하느님께서 찾지 않으시고 빛이 밝혀 주지도 말았으면.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 피조물인 자신을 창조하신 그 창조 주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욥기19,23-27) 23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25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6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27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 내리는구나.
= 하느님을 꼭 만나서 자신의 정당함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욥은 37장까지 자신의 큰 사람 됨, 그 정당함을 위해 몸부림친다.
(욥기38,1-4. 8.19.31 40,1-4)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2 지각없는 말로 내 뜻을 어둡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3 사내답게 네 허리를 동여매어라.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하느님의 지혜로 답하라는 것) 4 내가 땅을 세울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8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19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느냐? 또 어둠의 자리는 어디 있느냐? 31 너는 묘성을 끈으로 묶을 수 있느냐? 또 오리온자리를 매단 밧줄을 풀 수 있느냐?
40,1 주님께서 욥에게 계속 말씀하셨다. 2 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 3 *그러자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4 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입니다.
=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자신의 자기 의로움은 헛된 것일 뿐임을 깨닫는다.
욥기의 결론이다. (욥기42,2-6) 2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3 당신께서는 “지각없이(깨달음 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이제 들어라.(하느님의 지혜를) 내가 말하겠다.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5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소문으로만 들었던 사람의 귀) 6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 하느님은 땅의 의인, 그 큰 사람이 아닌, 자신의 헛됨을 깨닫는 그 작은 사람이 하늘을 받아들여 하늘의 큰 사람으로 만들어 내신다.
욥의 고백처럼~그 큰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느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그 일에 동원되는 도구가 사탄을 통한 시련이라는 것이다. 피조물, 그 그릇이 땅(세상)의 것을 담으면 땅에 것이 되고, 하늘의 것을 담으면 하늘의 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의인, 큰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를 담아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복음으로~
9,48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아멘.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9,46-50)
오늘 복음 해설이 없어서 병행구절인 수호천사 기념일 복음(마태복음18,1-5.10) 해설을 올립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0)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의 원형 '호라오'(horao)는 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다'(요한8,57)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알다', '조심하다', '유의하다'라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두어 유의해서 반드시 지켜야 함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실천적 명령이며, 또한 현재 명령형이기에 희랍어에서 현재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항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kataphromesete; look down; despise)의 원형 '카타프로네오'(kataphroneo)는 '업신여기게 되다','가볍게 여기다'(마태6,24), '업신여기다', '멸시하다'(로마2,4)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에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강력한 금지를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5~9절에 뒤따라 나오지만, 내용상 14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10절에서 14절까지의 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14절)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천사들이'에 해당하는 '앙겔로이 아우톤'(anggeloi auton; their angels)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은 앞서 나온 '작은 이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를 임명해 두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2,15).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라고 계시되어 있다.
이 천사들의 기능과 역할 및 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을 지키는 천사가 항상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이 하느님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은 '작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이들' 즉 예수님께 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잃어버리는'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ould be lost; should perish)의 원형 '아폴뤼미'(apollymi)는 돌보는 사물, 혹은 짐승 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잃다'(마태15,24)라는 뜻만이 아니라, 일이 어그러지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망하다'(마태26,52)는 뜻과 그리고 영원한 생명(구원)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멸망하다' (요한3,16)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잃어버리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 품을 떠나 죄의 길에 머물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나타낸다.
2024년 09월 30일 월요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욥기에는 몇 가지 주제가 들어 있습니다. 무죄한 사람의 고통은 큰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욥은 하느님께서도 인정하시는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는]”(욥 1,1)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고통을 겪게 된 것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죄 탓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욥기가 던지는 큰 질문입니다. 이 문제는 욥기 마지막 부분에 가서 답을 만날 것입니다.
다른 질문들 가운데 오늘 사탄이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1,9)
“까닭 없이”라는 표현은 히브리 말에서는 ‘거저, 공짜로’를 뜻하기도 하는 낱말입니다.
욥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탄은 하느님께, 먼저 하느님께서 욥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부유하게 하셨기 때문에 욥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확인하고자 욥이 모든 재산과 자녀, 그리고 건강을 잃게 만듭니다.
그럴 때도 인간이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욥기의 사탄이 오늘 나를 이렇게 시험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좋은 것을 거두어 가신다 하여도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까?
욥은 아들들과 딸들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가 순수한지를 시험하는 순간들은 계속 주어집니다.
그 시험들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돌아보면서, 하느님에 대한 나의 경외심의 깊이를 헤아려 봅시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9월 30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이들을 박해하며 봉사라 착각한다
복음(루카9,45-50)
45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46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 감추어진 말씀의 뜻을 깨닫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누가 가장 큰 사람 이냐'로 논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시어 대신 죽으시고 주시는 용서, 구원,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누가 세상 복을 더 많아 받을까? 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47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48ㄱ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오직 아버지만을 찾고 의지하여 안심하는 어린이, 벌거숭이(죄성)의 몸으로도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린이, 그 같은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말씀,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말씀 속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이라 하심이다.
48ㄴ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하느님의 뜻이다. 문제는 자신이 주님 만을 의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작은 사람으로, 곧 자기 부인(否認)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뜻, 말씀)을 몰라 자신들의 뜻, 이름을 위한 신앙을 고집한다.
(요한16,24)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사도13,39) 39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가장 큰 사람) 됩니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말씀, 뜻)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뜻, 말씀)으로 사는, 말씀에 의탁하는 삶이 중요하다. 하심이다. 말씀을 모르면, 진리로 깨닫지 못하면, 내뜻(소원)을 위해 예수님을 열심히 섬기는 헛된 자신의 행위를 가치로 여기며 오히려 예수님의 뜻을 전하는 이들을, 예수님께 오는 이들을, 꾸짖으며 막게 된다.(마르10,13참조)
그리고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이들을 박해하며 봉사라 착각한다.(요한16,2)
(요한6,28-29) 28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우리의 믿음이 헛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명18,13)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 흠이 없어야 한다.
(야고2,10) 10 누구든지 율법(옛계약)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 나는 자신(自信)이 없어서, 대속으로 나를 섬겨주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자신이 나약한 어린이 같은 사람으로 주님 만을 의지해야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자기 부인(否認)이며 그가 하늘의 생명, 보물을 얻는다.
(마태13,46) 46 그는 값진 진주(보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자기 부인)하여 그것을 샀다.”
(2코린4,7-10)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대속)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골로2,3)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히브11,26) 26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세상)의 보물보다 더 큰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앞으로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하늘의 영원한 빛, 곧 영원한 용서, 자유, 기쁨, 안식, 평화, 생명이다. 보호자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깨달을 수 있고, 믿음으로 간직할 수, 지킬 수 있는 하늘의 상(보물)이다.
☨ 영원한 보호자,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물(하늘의 용서, 자유(自由), 기쁨, 안식(安息), 평화(平和), 생명(生命)을, 현세에서부터 살 수 있도록 어린이 같은 마음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