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 (루카9,18-22)

2024. 9. 26. 오후 2: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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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7일 금요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 (루카9,18-22)


   


1독서<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3,1-11)

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화답송>시편144,1ㄱ과 2ㄱㄴㄷ.3-4(1)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이시네.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피시나이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헤아리시나이까? 사람이란 한낱 숨결 같은 것, 그 세월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사옵니다.

 

복음<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루카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또는,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독서(1코린 1,26-31)와 복음(마태 9,35-38)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코헬렛3,1-1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1-2)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태양 위의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허무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본서는 네 가지 설교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제1설교인 1장 12절-3장 22절은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를 제시하는 1장 12절-2장 23절과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2장 24절-3장 22절로 나누어진다.

 

3장 1절이하 15절까지는 허무의 극복 가능성을 제시하는 부분의 두번째 단락으로서 태양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의지함으로써,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가 극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3장 1절 이하 15절까지는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신본주의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2장 24절-26절 부분과 내용면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장 24절에서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은 없다. 이 또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나는 보았다" 라고 하면서 인간의 즐거움이 하느님의 손에서 나오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 단락에서는 모든 일에 때와 시기가 있고, 하느님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시고 인간에게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신,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인생의 절대 허무를 극복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 중에서 1절이하 8절에서 설교자는 먼저 반복과 열거를 통하여, 모든 것의 기한과 목적이 이루어지는 때를 정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예증한다. 그리고 서두에 나오는 1절은 2-8절에 전개된 인간의 만사가 정해진 때가 있음을 다루는 반어법의 대구 구문들의 서론적 성격을 갖는다.

 

원문은 '모든 것에는'(to everything)에 해당하는 '락콜'(lakkol)로 시작된다. 본서에 91회나 사용된 이 용어는 하느님의 창조 세계의 모든 일을 가리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이어지는 2-9절 내용과 관련지어 볼 때, 인간사에서 하느님의 뜻과 섭리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 총체적인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2-8절에 나오는 일곱 구절로 된 14쌍의 구체적인 진술 사람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을 묘사한 것으로 '락콜'(lakkol)이란 한 단어로 표현된다.

 

또한 설교가는 '모든 것에는' 라는 말을 앞세움으로써, 삶의 모든 영역을 하느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강조적으로 드러낸다. 즉 이것은 피조물로서의 겸손과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단어는 '시기가 있고 ~(이룰) 때가 있다' 에 해당하는 '제만 웨에트'(zeman weeth)이다. 이것은 삶의 모든 양상이 시간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시기'(기한)란 의미로 사용된 '제만'(zeman ; season)이나 '때'란 의미로 사용된 '에트'(eth ; time)는 모두 '시간', '기회'를 표현하는 동의적 표현이다.

여기서 전자는 '기한'의 의미가 강하고, 후자는 '시점'의 의미가 강한 단어로 볼 수 있으며, 성경에서 두 단어의 연결이 흔히 나타난다.(다니7,12 ; 사도1,7 ; 1테살5,1) 희랍어 구약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전자를 '크로노스'(chronos)로 번역하고, 후자를 '카이로스'(kairos)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전자를 일반적인 기한을 말하는 것으로, 후자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경험적인 어떤 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 때에는,그 섭리를 성취시키기 위한 시간의 질서가 있다..

 

한편 설교가는 어떤 특정한 시점으로서의 '때'를 모든 일(목적)을 이루시는 것과 관련시킨다. 여기서 '일에는' 에 해당하는 '헤페츠'(hephets ; purpose)는 '모든' 이란 의미의 '콜'(kol)과 함께 사용되어 '이루어지면 즐겁겠다고 여겨지는 모든 소원' 이란 의미를 전달한다.

 

특히 설교가는 하느님의 허락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정해진 때가 있음을 말하기 위하여 '헤페츠'(hephets)와 더불어 '콜'(kol)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일들과 모든 소원들이 하느님의 섭리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설교가는 2-8절에서 이 모든 것에 포함되는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각각 이루어지는 때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다만 사람은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그 정해 놓으신 사건을 경험하게 될 뿐이다. 이처럼 사람은 현재만을 보고 알게 되므로, 자기 운명을 미리 알고자 하거나 거기서 탈출하려는 노력 따위는 허무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2)

 

앞선 1절에서 설교가는 하느님 섭리의 엄정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본절이하 8절에서 설교가는 7의 배수인 14쌍의 각각 반대되는 일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하느님의 완전하신 섭리를 부각시킨다.

 

여기서 일곱의 배수가 사용된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기간과도 관련되는 일곱을 총체성이나 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레위16,15.19 ; 즈카4,10)

그리고 '둘'은 법정에서 증언을 확증하는 증인의 숫자이기도 하며, 사실이 확정적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수이기도 하다.(탈출31,18 ; 신명17,6)

여기서는 모든 일이 확정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러한 반복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설교가는 여기서 이 세상과 인간의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씩 짝을 지어 제시하면서,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전하고 있다.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어제 복음에서 헤로데의 의문으로 제기된 예수님의 신원 문제는 오늘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드린 답변은, 안타깝게도 헤로데가 전(傳)해들은 소문(루카 9,7-9 참조)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되살아난 옛 예언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 임금으로 삼으려고나 하였을 뿐(요한 6,15 참조), ‘수난을 겪는 메시아’ 곧 백성에게 배척을 받고 돌아가심으로써 그들 모두를 구원하실 구세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이러한 몰 이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살리는 그 길을 방해 없이 끝까지 가시고자 베드로에게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코헬렛의 저자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라고 고백합니다.

마치 오늘 복음의 군중처럼 가끔은 우리도 하느님의 계획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장의 변화만 바라다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도 군중의 몰이해와 외면을 이겨 내는 세월 끝에 성부께서 계획하신 구원을 이루셨고, 성 비오 사제도 오십년이 넘게 오상(五傷)의 고통을 참아 내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온 힘을 쏟았다면, 우리라고 어찌 그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건너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에서 우리를 위한 최선의 때와 방식을 마련해 두셨음을 확신하며 언제나 희망 안에서 이 구원의 길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하느님의 그리스도

(루카9,18-22)

18ㄱ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혼자기도 하셨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만이 기도다운 기도, 곧 하느님의 뜻을 위한 올바른 기도를 하셨다는 것이고~~

두 번째 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 그 아버지의 일만을 예수께서 하셨고, 그 아버지의 말씀만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 그것이 기도라는 것이다.

 

18ㄴ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마귀도 알고 믿는 사실이다.(루가8,28참조)

 

2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 ‘그리스도’의 정리~ 먼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요헌1,14)이시다.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로마10,17) 17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에페1,4.7)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죽음)로 우리가 하느님 앞에 흠없는 사람이 되는 것, (도덕과 윤리의 그 인간의 거룩은 흠도 티도 없는 완전한 구원의 힘, 권위가 없는 것)

 

(로마5,6)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로마10,4)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율법을 그리스도 당신의 죽음으로 완성하셔서 죄인들이 하늘의 의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12,5) 5 그래서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1코린1,24) 24 또한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콜로2,3)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콜로3,3)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세례 때,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히브10,9-12. 22) 그리고~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새 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율법)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2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위와 같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의 하느님의 약속, 그 말씀을 모르고 믿는다면 마귀의 믿음이 되는 것, 그래서 20절에서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것을(그렇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당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죗값, 그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반드시 죽으셔야 했다.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기에~~~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용서, 자유, 그 쉼의 신앙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에 묶이는 곧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십자가의 의로움, 곧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헛된 신앙을 살아가고 있다.

다시~ 구원은 우리의 행위, 그 의로움이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입어 얻는 것이다.(로마3,21-25참조)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아멘.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복음(루카9,18~22)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루카 복음 9장 18절부터 21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베드로의 최초의 신앙 고백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 16장 13~20절과 마르코 복음 8장 27~30절과 병행을 이루는 이 사건은 예수님의 제3차 갈릴래아 활동의 후반부를 새롭게 여는 역할을 한다.

제3차 갈릴래아 활동의 후반부의 특징은 앞에서의 활동의 주요 대상이 다수의 군중들이었다면, 이제 소수의 제자들에게로 옮겨간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을 약 1년 정도 남겨 놓은 시점에서 제자들의 훈련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혼자 기도하였고, 후에 제자들이 기도를 끝내신 예수님과 함께 합류하게 되었을 때에, 중요한 질문을 제자들에게 던지신다.

 

루카 복음 9장 18절에서 '군중'에 해당하는 '호이 오클로이'(hoi ochloi; the eople;

the crowds), 즉 '무리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이 질문의 의도는 그 답변의 형태로 보아 지금까지 당신의 능력을 지켜보아 온 사람들의 칭송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리들의 고백과 제자들의 고백을 확실히 구분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에 해당하는 '휘메이스 데 티나 메 레게테 에이나이'(hymeis de tina me legete einai; who do you say I am?')에서 '그러면'으로 번역된 '데'(de; but)라는 접속사와 '너희'를 의미하는 '휘메이스' (hymeis)를 문장의 맨 앞에 위치시킨 것에 주목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제 내가 중요한 것을 묻겠다. 그렇다면 바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지시는 질문이다.

 

루카 복음 9장 19절의 '어떤 이들'에 해당하는 '알로이'(alloi; some; others)의 수군거림과 구분되는 제자들 자신의 진실된 신앙 고백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한다.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16절이 가장 자세하게 원형에 가깝고,  마르코 복음 8장 29절은 주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특히 강조했다.

 

반면에 루카 복음 9장 20절의 '톤 크리스톤 투 테우'(Ton Christon tu theu; The Christ of God)에서 희랍어의 속격 형태인 '투 테우'(tu theu;'하느님의')는 다양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고, 한글의 문법 형태에는 없는 것으로, 라틴어 문법에서 독립적으로 취급하는 제5격에 해당하는 '탈격'(the Ablative)의 의미로서 '~로 부터' 또는 '~로 말미암은'이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하느님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크리스톤'(Christon)의 원형 '크리스토스'(Christos)는  '기름을 붓다'를 뜻하는 '크리오'(chrio)라는 동사에서 명사의 형태로 굳어진 단어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나타내므로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크리스토스'(christos),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명칭은 유대 전통에서는 임금, 예언자, 사제를 가리키지만, 이 문맥에서는 특히 위임받은 임금(왕)을 가리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사실은 이 단어가 70인역(LXX)에서 '톤 크리스톤 퀴리우'(ton christon Kyriu) 라는 표현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2사무1,14).

그리고 당시 메시야 사상에 있어서도 메시야는 예언자인 동시에 사제라는 사실을 거부하지 않지만, 특히 다윗 왕국의 영화를 재건하는 임금의 이미지로 부각되었다.

 

여기서는 예수님께 온 세상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왕적 권위에 대한 절대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베드로, 바오로, 마리아, 데레사 등등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

우리 믿는 자들도 루카 복음 9장 19절에 나오듯이 다른 사람들의 신앙 증거라는 간접적 지식만을 가졌지, 정작 자신 안에는 아무런 신앙 고백이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루카 복음 9장 19절의 군중들의 반응에서 대단한 인물들이 죽음을 물리치고 다시 살아났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이전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신앙 증거보다 더 크고 충격적인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9장 20절의 질문을 통해 제자들의 이러한 의존적 신앙을 올바르게 붙잡아 주시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의 입으로 신앙 고백을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신앙을 세울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를 원하신 것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은 '역사의 예수님을 믿음의 그리스도, 생명의 주님,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원과 정체 의식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20240927일 금요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독서에서는 코헬렛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그가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코헬 3,11) 만드셨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고에 대한 갚음도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고, 모든 일의 도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아니한지, 지금 일어난 이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인간은 다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좋은 일이라고 쉽게 판단을 하지만, 그 일이 장차 가져올 모든 결과를 다 알고서 하는 판단은 아닙니다.

시간이 더 지난 뒤에 보면 그 일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지금 행한 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가져올 모든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서는 행동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한계를 지닌 인간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만드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다 보고 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다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코헬렛의 신앙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코헬렛을 의심스럽게 볼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와 코헬렛의 차이는 우리가 큰 비극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코헬렛은 훨씬 작은 일에서도 그렇게 느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코헬렛은 자기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교만을 버립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어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시는 분이심을 믿을 따름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09월 27일 금요일

 

나는 피조물(), 하느님은 창조주()

 

독서(코헬3,1-1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시간이 흐른다는 것, 하늘 위에 시간, 영원은 흐름이 없다. 곧 자람도, 부족함도 없는 충만의 영원이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 하늘아래 모든 것은 없음, 무(無), 고난으로 돌고, 돌아갈 뿐이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인생)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창조만드셨다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영원의식도 심어 주셨다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 인간들의 고생을 위한 아름다운 창조? 어찌 깨닫겠는가. 어떠한 눈도 본적 없고, 어떠한 구도 들은적이 없으며 사람으 마음에도 떠오른적이 없는 것들을 어찌 깨닫겠는가? 다만 이세상의 시간(생명)이 아닌 것이 하느님의 시간(생명)이며, 세상 나라에 보이는 것이 아닌 것이 하느님나라며, 세상나라(시간)는 곡 사라질 것이지만 하느님나라(시간)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곧 사라질 세상을 목숨(재물, 명예, 영광)을 붙들기 위해 온갖 노력으로 서로 싸워가며 열성을 부린다.  왕으로 그 모든 것을 경험해본 솔로몬이다. 인간들의 모든 것이 허무요 ‘헛된 개 고생’이라는 것을 하느님께 받은 지혜로 깨달은 것이다.

 

(1코린2,9-10) 9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복음(루카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 예수님만 기도하셨다? 제자들이 함께 있었는데? - 하느님의 말씀을 주시고, 말씀으로 하신 모든 일이 기도라는 것이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 하늘의 용서, 평화, 생명을 주실 ‘하느님의 그리스도’를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을까?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힘과 기적과 능력의 그리스도로 잘못 알고 있는 그 ‘거짓 그리스도’를 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 그리스도는 힘없이 죽으러 오셨다.

어제 묵상글을 다시~ 자녀(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아버지의 진노의 마음을 풀어드려 자녀(죄인)들에게 마음을 돌리시도록, 그리고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죄됨을 깨닫게 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돌리게 하심으로 하느님께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게 하시기 위해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것이다.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이 아닌, 힘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진리로, 구원자로 믿었을 때 하느님 진노의 마음에서 풀려나게 된다. 솔로몬처럼, 하느님의 지혜로.........

하늘 아래 모든 인간들의 수고가 허무요 헛된 개 고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자기부인(否認)이 된 사람만이 힘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구원의 힘,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1코린1,23-24)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하느님의 은총은혜지혜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있음존재가 됨을 깨닫고믿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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