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8일 토요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나는 넘겨질 것이다. (루카9,43ㄴ-45)
제1독서<<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코헬11,9-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화답송>시편90,3-4.5-6.12-13.14와 17(◎1)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복음<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루카9,43ㄴ-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코헬렛11,9-12,8)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9)
코헬렛서 11장 9절부터 12장 7절까지 이어지는 말씀은 태양 아래 세상의 절대 허무와 태양 위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한 허무 극복의 가능성을 깨달은 자가 취할 최선의 인생의 자세를 지적하는 제4가르침 중 마지막 단락이다.
여기서는 유한한 인생의 근본 생활 자세로 하느님의 심판을 전제로 하여 희락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특히 이 부분은 인생의 황금기요 꽃과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젊은이(청년)들을 교훈의 일차 대상으로 하고 있다.
먼저 솔로몬은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현실, 곧 젊음의 날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을 권한다.
여기서 '즐기고'에 해당하는 '세마흐'(semah)는 '사마흐'(samah)의 명령형이다. 즉 강조적 의미를 지닌 직접 명령형을 이용해서 젊은 시절을 즐길 것을 권하는 것이다.
아울러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에 해당하는 '위티베카'(witibeka)는 접속사 '와우'(wau)와 '좋다','기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야타브'(yatab)의 사역 미완료형이 결합된 형태로서 간접 명령의 의미를 나타내는 동사로 사용되었다.
코헬렛 11장 9절 전반절이 젊은이로 하여금 주어진 젊음의 시절을 즐기라는 피상적인 명령이었다면, 중반절은 보다 구체적인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네 눈이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것이다.
여기서 '걷고'와 '가거라'에 해당하는 '웨할레크'(wehallek; and walk)의 동사 '할라크'(hallak)가 '마음'에 해당하는 '레브'(leb)와 '눈'에 해당하는 '아인'(ain)에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부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코헬렛서 저자가 반복적인 쾌락 추구, 즉 심판을 자초하는 쾌락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는 단호한 풍자법을 사용하여 이것을 역설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구약 성경 희랍어 역본(LXX)은 이러한 의미를 감안하여 본문을 '네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는 길로 행하고,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마침내 후반절은 전반절과 중반절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규명해 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코헬렛 저자가 젊은이들을 향해 인생의 황금기인 자신들의 때를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마음에 원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즐거움, 원하는 길과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지식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에 해당하는 '빰미쉬파트'(bamishiphat)는 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 그리고'정의' 내지는 '심판'을 의미하는 명사 '미쉬파트'(mishiphat)가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미쉬파트'(mishiphat)를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의미로만 보면 안된다.
죄악에 대한 형벌의 측면에서 '심판'이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하느님의 공의(公義) 구현의 측면과 선(善)한 삶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도리어 상급을 주는 적극적인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제1독서 코헬렛의 저자는 인생의 젊음과 아름다운 시절을 기쁘게 즐기되, 하느님의 심판과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만족과 기쁨에 빠져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노년과 죽음 그리고 심판의 때가 올 것을 알고 늘 하느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기쁘고 모든 일이 잘될 때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찾는 이라야 시련과 불행이 닥칠 때도 그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과 구원 의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첫 번째 수난 예고(루카 9,22)에 이어,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당신 수난을 예고하신 일을 전합니다.
사실 이때는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9,28-36)과 더러운 영을 권능으로 쫓아내신 일(9,37-43) 바로 다음으로, 모든 이가 예수님을 매우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라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루카 18,32; 24,7.20 참조).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으로 어깨가 으쓱하며 한껏 우쭐해졌던 탓인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선뜻 알아듣지 못하였고, 그에 대하여 묻는 것조차 두려워하였습니다.
아직은 불길하고 굴욕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는 제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한결같이 그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작은 시련과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곤혹스럽고 피하고 싶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을 더 열심히 찾게 되고, 그분의 도움과 은총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니 그 또한 감사드릴 일입니다.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일상일수록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분과 함께 살아, 시련과 단련의 시기를 만날 때도 한결같은 믿음과 평화 속에 굳건히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복음(루카9,43ㄴ-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 곧 더러운 영이 들린 아리를 고쳐주신 그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하는데, 사람들의 배반으로 당신이 죽게 될 것을 예고하신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감추어져 있는 뜻, 먼저 본 9장 시작으로 가보자.
(루가9,1.6)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 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 제자들은 신이 나고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루가9,16-17) 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따르며 그 예수님의 힘이 자신의 것인 양, 자부심(自負心)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까지 한다.
(루가9,20)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으실 것을 예고하신다. 베드로가 생각지도 못한 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자신이 생각했던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의 목숨 곧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던 제자들에게 그 자신들의 목숨을 위한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우리의 구원을 이루러 오신 그 그리스도의 죽음, 대속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 ‘따르라’ 하신 것이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는 그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모, 영광의 모습을 보게 된다.
(루가9,33) 33 그 두 사람(모세, 엘리야)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베드로이다. 지금까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받았음에도 자신들의 사심, 욕심이 들어가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다.
아이 아버지가~ (루가9,39-41) 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41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 믿음이 삐뚤어진 세대, 곧 아이가 더러운 영이 들리도록 키운 아버지나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내지 못하는 제자들, 그리고 놀라워하는 사람들, 그 모든 이들이 다 자신의 욕망을 위한 그 삐뚤어진 그 헛된 믿음을 갖게 하는 더러운 영의 유혹에 넘어가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9,42-43)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ㄱ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그리고 오늘 복음이다~)43ㄴ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지 못하고 놀라워하는 것, 삐뚤어진 믿음이다. 그러니 보이는 놀라운 일은 믿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인식이지 믿음이 아니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깨닫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오늘 보이는 것으로 놀라워하는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죽게 한다’는 예고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기적 등 놀라운 일이 계속 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완악해진다.(요한11,47-50 루가16,31 참조)
성경 또한 보이는 문자(文字) 그대로 보고 하는, 행위 신앙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로마8,24)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코린4,18)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 그래서 문자 그대로 도덕과 윤리로 착하게, 의롭게 살았던 사제(司祭)와 율법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현세는 어떤가?~
(1코린2,4-8)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창조이전 계획된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다(에페1,4)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지혜에 의한 제자들 이었기에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 두려움을 갖고, 각오하고 말씀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지혜,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 사랑을 찾아 진리로 깨닫고 믿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1코린1,24) 24 그러면~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오늘도 내 안에 머무르시며 ‘기뻐하라, 안심하라’ 해 주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9,43ㄴ-45)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4)
루카 복음 9장 44절의 '이 말'에 해당하는 '투스 로구스 투투스'(tus logus tutus; these sayings)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은 복수형이고, 희랍어 지시 대명사는 바로 앞의 내용을 받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루카 복음 9장 43절에서 찾아야 한다.
한글 새 성경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라고 전한다. 말하자면,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사람들의 놀란 말들'을 뜻한다.
풀이하면, 예수님께서 '나의 가르침과 기적으로 인해 놀라서 떠들어대는 이 사람들의 소리를 잘 기억해라. 왜냐하면(gar; '가르') 내가 바로 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넘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한탄하고 계심이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단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게 될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당신의 말씀과 영적을 보고 '하느님의 위엄'이라고 할 정도로 따랐던 그들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들을 위해 당신 자신의 몸을 내놓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더 예수님을 상심케 했을 것이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9장 43절과 44절을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2024년 09월 28일 토요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던 코헬렛이 그다음에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고 하더니, 이제는 젊음을 즐기고 근심을 떨쳐 버리라고 권고합니다.
코헬렛은 오늘 독서에 해당하는 부분 외에도 그의 책 여러 곳에서 인생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던 그의 태도와 모순되게 보여서 어떤 이들은 이 책이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코헬렛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음을 절감하였고,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께서는 모든 일을 “제때에 아름답도록”(코헬 3,11) 만드신다고 믿을 때, 더 이상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삶을 어둡게 만들지 않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 즐기라는 것은 영원한 기쁨이 아닙니다.
코헬렛은 아직 영원한 생명이나 천국의 기쁨 같은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이라고 믿으며 맡깁니다.
젊은 시절에는 젊은 시절에 누릴 수 있는 것을 즐기고, 꽃이 피면 그 꽃이 시들기 전에 꽃을 즐깁니다.
젊거나 꽃이 핀 그 순간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심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순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의탁으로 채웠기에, 코헬렛은 허무한 삶 속에서도 오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죽어서 사는 그리스도인
독서(코헬11,9)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복음(루카9,42-45)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놀라워하는- ‘엑스타시스’(자기만족을 위한 희열 같은 것) 신기한- ‘파라독스’(속 내용은 모르고 겉만 보는 것)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엑스타시스’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음에 손에 넘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곧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 안에 구원의 뜻, 진리는 깨닫지 못하고 감탄하며 놀라워 하게만 되면, 그 놀라우신 예수님으로 내 소원, 뜻을 채우려 그분을 섬기는 헛된 신앙을 살게 되고, 그러다 자신들의 뜻, 소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율법의 손에 넘겨 심판하여 죽인다는 말씀이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예수님으로 판단, 원망하게 된다.)
(루가22,22) 22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예수님은 뱀의 유혹을 먹고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뜻, 욕망을 위해 사는 우리를 부수신다. 우리의 재물, 명예, 영광을 부수시고, 또 뱀의 유혹을 사는 그 죄에서 구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로 죽으러 오셨다.
곧 여전히 뱀의 유혹인 선악의 법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정해진 대로 팔아 넘겨져 죽으러 오셨지 육신의 뜻,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해 오신 구원자가 아니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다 이루어졌다”- ‘테텔레스타일’ (팔고 살 때 쓰는 영수증을 뜻한다) 곧 우리의 죄 값을 당신의 죽음으로 다 치루신, 계약의 완성인 “테텔레스타일”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말씀을 들으면 먼저 두렵다. 육신의 욕망을 들어주는 말씀이 아닌, 부수시는(죽이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된다. 말씀은 우리를 부수심으로 다시 세우신다. 부수심은 하늘로 살리시기 위한 자비다. (루가1,50-55참조)
내 열심, 지혜를 섞어서 지은 공든 바벨(탑), 카파르나움(성전)을 부수셔서 세상과 율법,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핫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 자유 -‘엘리데레오’ (모든 법의 심판에서 풀려나는 것)
(야고2,12) 12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 세상의 재물, 명예, 영광을 위한 제사와 윤리의 그 옛 계약의 신앙은 사람을 세상의 종살이, 노예로 만들뿐이다.
(갈라5,17-18)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하느님의 영원한 보호자,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 안식, 자유가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