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루카11,27-28)
제1독서<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3,22-29)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화답송>시편105,2-3.4-5.6-7(◎8ㄴ)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복음<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제1독서 (갈라3,22-29)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27.29)
'하나되는'에 해당하는 '에이스'(eis)는 기본적으로 '~안으로'(into)란 뜻을 지닌 전치사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속하여'(1코린10,2), '~와 연결하여'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례'는 단순한 외적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유'로 말미암아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서 '자기 육을 그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갈라5,24.25).
이처럼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인격적 관계에 들어간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한 새로운 관계를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13,14)
또한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 인간을 입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페4,23.24)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29)
'그리스도께 속한다면'(그리스도께 속한 자)에 해당하는 '크리스투'(christu)는 '크리스토스'(christos)의 소유격으로서 문자적으로는 '그리스도의'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것'이란 뜻이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이며, 인종이나 신분이나 지위나 성별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 곧 그의 진정한 영적 후손이 된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된다.
본문에서 '상속자입니다'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모이'(kleronomoi)는 '상속자'를 뜻하는 '클레로노모스'(kleronomos)의 복수형으로 갈라티아서 3장 18절의 '상속 재산'(유업)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미아'(kleronomia)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따라서 '상속자'(유업을 이을 자)란 말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에 참여할 자'란 의미를 갖는다.
갈라티아서 3장 12절부터 계속 되어온 모든 진술들을 통하여 사도 바오로는 율법과 믿음의 차이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모세 율법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진정한 영적 후손으로 만들지 못한다. 또한 우리를 그 상속자로 만들지도 못한다.
이것을 이루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약속뿐이다. 그것은 믿음이요,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세례이며, 결코 율법이 아니다.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예수님의 가르침에 탄복한 어떤 여인이 이렇게 외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어떤 대상의 일부분으로 그 전체를 지칭하는 수사적 표현을 제유법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배었던 ‘모태’(부분)와 젖을 먹인 ‘가슴’(부분)은 바로 그분의 ‘어머니’(전체)이신 성모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처럼 훌륭한 분을 낳아 기르신 성모님이야말로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군중 속 여인의 찬사는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루카1,48).
엘리사벳도 성모님을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1,42) 분으로 칭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사벳이 성모님을 행복한 분으로 여긴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5)
성모님께서 행복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1,38 참조).
오늘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성모님뿐만 아니라 성모님처럼 하느님 말씀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행동으로 옮기는 모든 이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라고 단언하신 바 있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8,21).
따라서 날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깨달은 바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이 우리 신앙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성모님 처럼 행복한 이로 칭찬을 받고, 또 예수님께 가장 가까운 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
(루카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젖과 말씀이 대조를 이룬다. 젖을 낸 가슴보다 말씀을 가슴(마음)안에 지킨, 간직한 그가 복이라는 것이다.
(1코린3,1-2)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을 영적인 말씀으로, 곧 하느님의 뜻으로 받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인간의 뜻으로 받는 그 肉적인 사람, 그는 진리와 비 진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어제 묵상 했듯 육적, 그 인간의 뜻을 위한 가르침이 더 멋져 보이고 진짜 같아 보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말씀을 공부하는 신자(마리아)보다 바쁘게 활동하여 예수님을 시중드는 그(마르타)가 사람의 눈에는 더 진짜 같아 보인다.
(히브5,12-13) 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 그래서 어미(육)의 젖을 떼야 하는, 곧 그 젖을 떼는 것이 잔치를 할 만큼 기쁜 일 인 것이다.
(창세21,8)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시편131,1-2) 1 <다윗의 노래>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저는 거창한 것을 따라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 2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 육의 그 욕망의 자리를 버리고(떼고), 오롯이 하느님 아버지만을 의지하게 되어 아버지로 얻는 마음의 평온, 쉼, 안식을 고백하는 것이다. 제사, 기도, 활동 등 나에게서 나가는 나의 종교 행위를 의지한다면 육의 젖을 먹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구원의 진리, 그 약속의 말씀으로 내 안에 있다면~하늘의 용서로 하늘의 자유, 평화, 그 복을 누리는 영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젖은 기름을 뜻하기도 하고, 그 기름은 성령을 뜻한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젖의 단어가 가나안이다.
(레위20,24) 24 너희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할 것이다. 내가 그 땅을,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겠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려낸 주 너희 하느님이다.
=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말씀)을 젖과 꿀로 주신다. 곧 하느님의 약속(뜻)을 믿고 따르는 삶은, 젖의 축복의 삶이 되는 것이고, 꿀 같이 내 입맛에 맞는 곧 내 열심, 내 의로움이 진짜 같고, 맞는 것 같아 그 자기의 뜻(말)을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렇듯 말씀을 축복과 저주로 주셨다.(신명11,26~참조) 그러니까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축복(젖)과 저주(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뜻(지혜)으로 읽으면 제사와 윤리, 그 법이 되어 죄(저주)의 심판을 줄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읽으면 죄의 덮으심, 대속,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 용서와 구원(축복)의 판결을 받는 것이다.
(야고2,12) 12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 제사와 윤리, 그 육의 젖을 먹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십자가)의 법을 말하고, 그 자유의 법을 의지하고 누리는 삶을 사는 그 실천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실행인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약속), 그분의 마음, 그 사랑이 흘러나와 이웃에게 전해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아멘!!!
~♡ ♡~
원죄없이 잉태된, 그 神의 자리, 그리고 천주의 모친이신 그 神의 자리에 성모님이 아닌, 쓴물(마리아)이 십자나무의 대속을 진리로 받아 마음에 지킨, 그래서 단물(은총)이 되신 성모님!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천주의 성령님 그 마리아처럼 되게 하소서~~아멘!!!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사제 정진만 안젤로)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는 신적 행위를 보여 주셨고, 이에 군중은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힘의 원천을 비판하고 부정하였습니다(어제 복음 참조).
위태로운 예수님의 위치를 바라본 한 여인이 군중 속에서 나와 예수님의 신적 지위와 역할을 알리려고 합니다.
군중 속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칭송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이 여인의 선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두 개의 행복 선언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찬미를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첫 번째 행복 선언을 교정하시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포하십니다.
마리아께서 ‘행복하다’고 칭송을 받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낳아 키우셨다는 사실에서 생각하여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1,45 참조), 실행하는 이들(8,21; 사도 1,14 참조) 가운데 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향한 모성애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실천하셨다는 점에서 마리아께서는 ‘복된 여인’이라고 칭송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참 제자 또는 참 신앙인이 되려면 먼저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들은 바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참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진짜를 가짜로 살게하는~
복음(루카11,27-28)
27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 곧 밀씀(로고스) 안에 속(레마)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여자가 한 소리다. 인간의 의로움이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의 의로움을 치워 버렸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기적과 능력의 주님으로 보고 한 소리다. 곧 진리(眞理)를 말할 줄 모르는 자기 열심, 의(義)를 위해 신앙하는 여자의 말이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많은 이들이 세례받기 전 세상의 가치관, 그 세계관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성경을 온전히 배우지 못하고 교리와 사람의 규정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니 진리가 뭔지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전례 행위에 열심을 부리며 미사를 제사로 드릴 줄 밖에 모른다.
전례, 미사의 의미와 상관없는 때우는, 해치우는 젖먹이 신앙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말씀을 다시 듣고, 그 말씀 안에 진리를 깨달아 올바른 신앙을, 곧 ‘진리를 살아라, 지켜라’ 하신 오늘 말씀이다.
‘말씀을 듣고 지킨다(킵)’는 것은 깨달은 진리를 밖으로 흘리지 않고, 잃지 않고, 마음 안에 간직하는 지킴을 말한다. 그 마음에 간직한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1코린3,1-2)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히브5,12-13) 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1코린2,4-7)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 세상 창조 이전, 미리 마련하신 지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시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진리)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1코린2,8)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 우리는 세례 받기 전 힘의 원리인 세상의 지혜 그 세계관이, 또 세상의 복이, 영원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임을 배우고, 버리고, 부인(否認)하는, 그 방법을 배웠어야 했다. 그러면 누가 세례를 받겠는가? 아니다 선택 받은 진짜는 남는다.
세상 창조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세례를 올바로 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그 진짜들이 가짜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로고스)을 다시 배워 그 말씀 속(레마)에 진리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말씀을 지킬 수도, 살 수도 있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세상, 그 힘의 원리로 살아온 나 자신을 버리고, 내 죄를 대속하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리로 지고, 그분의 이타의 삶을 진리로 말하고, 그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마르10,42-45)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그러나 그 진리의 삶은 세상의 원리와 차원이 다르기에 우리의 힘으로는 어렵다. 협조자, 보호자이신 성령(聖靈)의 도우심, 이끄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두드리며 찾고 청하면 반드시 성령을 주신다’ 약속하신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사도의 고백~
(2코린6,6-10)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진리의 말슴)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세상 사람들 눈에 우리는 ‘속이는 자, 인정받지 못하는 자, 죽어가는 자, 발 받은 자, 슬퍼하는 자, 가난한 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사라질 것이 아닌 영원한 있음, 그 진리에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1,27~28)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27.28)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의 베엘제불 논쟁을 마치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축복하였다.
그녀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축복한 이유는 그 어머니를 축복함으로써 그 자식을 축복하고 찬양하는 유대 관습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예는 예수님을 수태한 마리아를 축복한 엘리사벳의 찬양에도 나타난다(루카1,42.43).
또한 이 여자의 외침은 당시 예수님을 적대하던 일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능력의 말씀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그때 모인 군중들 대부분의 감정을 대표해서 나타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배었던'으로 번역된 '바스타사사'(bastasasa; bare)는 '옮기다'를 의미하는 '바스타조'(bastazo)의 부정 과거 분사이다.
여기서는 '태어나게 했던'(that bare; gave you birth)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등장하고 있는 한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을 낳은 어머니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으며, 이것은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라고 노래한 마리아의 찬양(루카1,48)이 직접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11장 27절의 한 여자의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11장 28절에서 참된 행복의 조건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음을 밝혀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는 '듣다'를 뜻하는 원형 '아쿠오'(akuo)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단순하게 듣는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몰두하여 듣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지키는'에 해당하는 '퓔랏손테스'(phylassontes; keep it; obey it)는 '지키다', '보호하다'를 뜻하는 '퓔랏소'(phylasso)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참된 행복이라는 것은 육적 혈통이나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루카 복음 11장 28절에 나오는 '오히려'에 해당하는 '메눈'(menun; rather)이라는 단어는 그 여자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의 이야기 즉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참된 행복의 조건이 오히려 영적인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 자신이 결국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예수님을 낳고 양육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켰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타당한 진실인 것이다.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이 “감시자” 노릇을 하였다고 말합니다(갈라 3,24 참조).
『200주년 신약 성서』에서는 같은 단어를 “후견인”으로 옮깁니다.
‘파이다고고스’라는 이 그리스 말 낱말은 어원적으로는 ‘파이스’ 곧 아이에게, ‘아고고스’ 곧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믿을 만한 종에게 아이의 생활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맡겼고, 그 일을 하던 사람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들은 교사 또는 스승과는 달랐으며,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바른 생활을 가르치며 훈육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은 종보다 신분이 높지만 감시자인 종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자유인으로서 올바로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종인 감시자에게 매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 율법이 절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3,24) 준비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온 낱말들로 표현하여 본다면, 율법은 한편으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약속도 주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참으로 성숙해졌다면 우리에게는 감시자가 필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감시자가 없어도 자유를 사용하여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5,13 참조).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아직도 감시가 필요한 미성년자라는 뜻일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10월 12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의 행복
복음(루카11,27-28)
27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킵)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 말씀 안에 숨겨지고 감추어진 내용, 진리를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는 그 지킴이다. 그랬을 때 온갖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된다.(마태10,26)
(필리2.16)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티토1,9) 9 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진실)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대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 행복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여자의 목소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선생님(예수)을 배었던 모태(母胎)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내 안에 간직한 것이 복이다.
(로마8,9-10)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아멘
=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젖을 얻어먹고 간직한 이가 복이다. *젖, 히브리어 ‘헤레브’(최상의 기름)에서 나온 단어다. 기름☞ 진리☞ 말씀, 성령.
(요한12,7)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예수님의 죽음을 위한 기름이다. 곧 십자가(十字架)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실 진리의 성령(聖靈)이다.(요한15,26)
(이사55,1-2) 1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2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 ‘사 먹는데, 돈 없이’다. 인간의 돈, 수고로 살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제사와 윤리, 그 인간의 수고다.
말씀을 좋은 것, 진리로 들어 간직하면 ‘마음이 기름이 된다’는 것이다. 곧 성령의 성전, ‘하늘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름으로서의 젖’이 아닌 ‘아기가 먹는 젖’에 머무는 신앙이면 안 된다.
(히브5,12-14. 6,1-3) 5,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14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훈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6,1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다시 기초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2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3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보내신 지혜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음이다. 곧 하느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초보적인 것, 죽음(肉)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세례(육의 죽음), 안수, 그리고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이 다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회개, 믿음, 세례, 안수, 부활, 심판이 필요 없듯 하느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있음을 믿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가 젖을 떼면 아버지가 큰 잔치(축제)를 벌인다.
(창세21,8)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 잔치, 축제(카니발)는 ‘고기가 없어 기쁘다’는 뜻이다. 곧 모든 것이 이루어졌기에 어린 희생 양(羊 예수)의 고기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잔치다. 젖(헤레브)인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내 안에서 생명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마음에 간직(킵)했을 때 말이다. 세상의 영(말, 지혜)을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1코린2,12)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 인간의 의로움을 위한 가르침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이지 신앙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에페2,8-9) 신앙의 목적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義)를 진리로 믿기 위한 가르침 만을 받아야 한다.(마태6.33)
(1요한2,26-27)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간직)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매일 미사(제사) 드린다고 받는 성령이 아니다. 독서, 복음말씀 안에 머물 때, 내 안에 계신 진리의 성령께서 함께 하심(살으심)을 깨닫게 된다.(요한8,31-32)
☨ 하느님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봉헌,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