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루카10,17-24)

2024. 10. 3. 오후 7: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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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일 토요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루카10,17-24)


   


1독서<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기42,1-3.5-6.12-17)

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3 당신께서는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5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12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시어, 그는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소유하게 되었다.

13 또한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14 그는 첫째 딸을 여미마, 둘째 딸을 크치아, 셋째 딸을 케렌 하푹이라 불렀다.

15 세상 어디에서도 욥의 딸들만큼 아리따운 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에게도 남자 형제들과 같이 유산을 물려주었다.

16 그 뒤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사 대에 걸쳐 자식과 손자들을 보았다.

17 이렇게 욥은 늘그막까지 수를 다하고 죽었다.

 

<화답송>시편119,66.71.75.91.125.130(135)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소서.

당신의 계명을 제가 믿사오니, 올바른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소서.

고통을 겪은 것, 제게는 좋은 일, 당신 법령을 배웠나이다.

주님, 당신 법규가 의로움을 저는 아나이다. 고통을 겪어도 저는 마땅하옵니다.

당신 법규대로 오늘까지 서 있나이다. 만물이 당신을 섬기나이다.

이 몸 당신의 종,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법을 깨달으리이다.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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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10,17-24)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욥기42,1-3.5-6.12-17)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5)

 

욥기42장 5절은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직접 들은 욥의 진한 감동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욥은 과거에 가졌던 불완전하고 관념적인 하느님께 대한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훨씬 정확한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가진 데 대해 감사의 심정을 말하고 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에 해당하는 '레셰마으 오젠 셰마으티카'(leshemah ozen shemahthika)는 직역하면 '내가 귀의 들음으로 당신을 들었습니다' (By the hearing of the ear I heard Thee)이다.

 

여기서 '귀로만'에 해당하는 '오젠'(ozen)이 사용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하느님을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만 들어왔음을 강조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욥이 지금까지 조상들의 전통과 종교적 교훈, 그리고 친구들의 말, 신학적 이론을 통해서만, 하느님께 대하여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지금까지 욥이 알고 있었던 하느님은 어떤 '매개체'를 통하여 아는 하느님이었고, 어떤 매개체를 통해 인식된 욥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불완전하고 관념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욥은 이제는 그 어떤 매개체없이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대면하고 있다.

여기서 시간적 의미를 나타내 주는 '이제는' 에 해당하는 '웨앗타'(weatha)는 문자적으로 '그러나, 지금은' 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욥이 과거 하느님을 알고 경험했던 방법과 현재 하느님을 알고 체험하는 방법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라는 표현이다. 이에 해당하는 '에니 라아테카'(eni taatheka)는 '주시하다', '생각하다', '분별하다' , '경험하다' 라는 뜻의 동사 '라아'(raah)와 '눈'을 뜻하는 명사 '아인'(ain)이 결합된 표현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제 눈으로 당신을 분별하다. 제 눈으로 당신을 경험하다' 가 된다.

 

그러므로 본절의 '귀' '눈'이 각각 의미하는 것은 욥에게 있어서 하느님께 대한 '간접적인 체험'과 '직접적인 체험'이다.

사실 욥이 어떤 매개체없이 직접 하느님을 보고 대면한 것은  그가 엄청난 고난과 시련 속에서 간절하게 열망했던 원의 (욥기 19,27)가 실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기꺼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 내리는구나.'(욥기19,27)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직접적 체험은 그동안 욥에게 있었던 하느님께 대한 여러가지 부정적 의식들과 의구심들을 깨끗하게 털어버리고새롭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욥이 이렇듯 하느님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창조물을 소재로 하여 끊임없이 욥에게 말씀하셨던 질문 공세와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욥기 38장~41장에서 전개된 욥을 향한 하느님의 그 많은 물음과 권면의 말씀들은 마침내 욥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게 했을 뿐 아니라, 그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주권과 그 섭리에 절대 순명하는 일만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하였다.

즉 하느님의 이러한 선언적 말씀은 욥에게 정확한 신(神)지식과 함께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6)

 

욥기 42장 2절은 욥이 하느님의 섭리와 절대 주권에 대한 새로워진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욥기 42장 3절은 욥이 무지한 말로 하느님의 뜻을 가리우고, 교만하게도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하느님의 행하심에 대해 함부로 말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욥기 42장 4~5절은 하느님의 계시를 직접들은 감동에 대한 고백과 하느님의 계속적인 교훈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에 이어지는 욥기 42장 6절은 욥의 진심어린 회개를 다루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욥의 직접적인 체험은 그로 하여금 온전히 자신을 부정하는 '회개'의 자리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여기서 '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라는 의미로 번역된 '에므아쓰'(emas)의 원형 '마아쓰'(maas)는 '멸시하다', '가볍게 여기다', '거절하다'(이사7,15; 잠언15,22) 라는 뜻이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를 멸시하고 거절한다는 욥의 말은 그가 지난 날 하느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근거를 두고 행동한 모든 일을 혐오하듯이 깊이 반성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굳은 의지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느님을 만난 사람이 경험하는 자아 부정(자기 부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 부정'은 곧바로 철저하게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먼지와 재' '비탄과 신음', '회개'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리고 직설적 어법이 사용된 '참회합니다'에 해당하는 '웨니하므티'(wenihamthi)의 원형 '나함'(naham)은 문자적으로 '슬퍼하다', '애통하다' 라는 뜻이며, '마음을 바꾸다','의견을 뒤집다' 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탈출32,12; 예레18,8; 아모7,3.6).

원문으로 볼 때, 이 단어에는 과거에 대하여 크게 슬퍼하고 애통해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철저한 각성과 변화에 대한 결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욥이 회개한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욥의 친구들이 도식적 인과응보의 틀 가지고 지적하는, 특정한 행위와 관련된 구체적 범죄가 아니다. 

욥기 31장 전반에 걸쳐 욥 스스로 단호하게 부정했던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우선, 고난에 처한 욥이 지금까지 하느님 대전에 취한 태도를 들 수 있다.

과거에 욥은 의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잘 되는 현실적 모순 상황과 관련해서 하느님의 정의(공의)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고난에 대해 해명해 달라고 하느님께 항변하기도 했다.

 

인간적 입장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지만, 욥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욥이 하느님께 그 자신의 고난과 이유를 물으며 항변하기 이전에, 피조물로서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하느님 대전에 절대 순명하는 자세를 가져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욥은 절대자이신 하느님대전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이에 대해 항변하고 원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죄의 유무를 가리시거나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으시고, 다만 당신의 절대 주권과 위대하고 섬세한 섭리에 대해 선언하시고 열거하시며, 욥으로 하여금 사람이란 초월자요 창조주이신 하느님 대전에서 자신의 유한한 사고로 그분의 무한한 섭리를 판단하기 전에 그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저 거기에 순명해야 함을 교훈하신 것이다.

 

다음으로 욥이 참회했던 것은 욥 자신이 행해 온 의로운 행위에 대해 그 스스로 집착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욥은 하느님을 대면하기 전 자신의 도덕성과 의로운 삶을 상당히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과의 변론에서 자신이 심지어 하느님 대전에서도 지금까지의 행실에 대해 당당히 변론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변론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의 변론 말미의 윤리적 삶에 대한 회상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욥기 31장 한 장 전체에 걸쳐 계속되는 욥의 회상은 과거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부분이며 고백이지만, 지나치게 자기식의 의(義)(Self-righteousness; Self-justification)를 강조한 것으로 들려질 소지가 충분히 있다.

 욥의 윤리적 삶에 대한 회상 그가 극심한 고난을 당할만큼 자신이 직접적으로 특정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것에 근거해서 하느님 대전에 자신의 의로움을 증거하겠다고까지 한 것은 교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욥기9,34.35; 13,3 ; 31,35).

결국 욥은 하느님과 대면한 후, 하느님의 무한한 섭리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지식으로 함부로 판단한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그릇된 것이며자신이 내세웠던 도덕적, 윤리적 삶이 하느님 대전에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확고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파견되었던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고, 예수님께서도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거나 즐거워하셨다는 표현은 복음서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됩니다.

평소 복음서가 표현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환히 미소 지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기쁨에 찬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라시던 대로 일이 잘 진행되었기 때문에 기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오히려 그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신 데에서 비롯합니다.

아드님께서는 당신의 권한과 능력으로 이루신 놀라운 업적과 영광을 모두 아버지께 돌리십니다.

그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받으신 임무를 완수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을 당신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기뻐합니까? 아마도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일이 하느님의 바람과 일치합니까?

만일 두 뜻이 서로 충돌한다면, 내 바람이 잘못된 것일 수 있고 어쩌면 우리가 더 이상 바라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우리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더없이 바라고 기뻐해야 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루카10,17-24)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 주님(선)의 죄(악)의 대속 그 생명의 계명,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속였던 그 사탄의 거짓이 드러나 그 거짓의 힘, 곧 죄의 심판 그 힘이 주님의 진실, 진리 앞에 힘을 잃었기에 제자들에게 까지 사탄이 복종한 것이다.

그 죄값, 죽음을 십자나무의 희생, 죽음으로 다 갚으셨기에(탈출15,25 요한19,30참조)~

 

(마르1,27)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 그들의 알고 있던 율법과 다른 새롭고 권위 있는 진리의 말씀 때문에~ 그 권위, 권한의 말씀을 제자들이 받은 것이다.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 어린양의 피, 곧 예수님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 그 말씀의 권위로 우리는 늘 죄(심판)를 이긴다. 말씀이 이기신 것이다,

 

(1요한2,14. 3,20) 14ㄷ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하느님으로)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3,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땅의 존재로서의 승리보다 하늘의 존재로 하느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된 그것이 기쁜 것이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 말씀의 힘, 그 권한으로 사탄을 이기고 땅(죄)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가 되는 그 기쁜 소식은 사람의 지혜에는 감추어져 있다.

 

(1코린1,21-23)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하느님나라의 완성을 위한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그 아들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한6,37 10,27-29)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10,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 아는 (야다-눕다, 하나되다, 동침하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 구원의 진리(예수)를 본 것이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은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성경의 율법을 사탄의 속임으로, 사람의 규정, 계명으로 보았기에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말씀을 도덕과 윤리 그 사람의 지혜로 보게 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사람의 규정, 계명이 진리를 덮는 너울이 되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2코린3,14) 1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각이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옛 계약을 읽을 때에 그 너울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 구약의 율법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봐야 하는 것이다.

 

(루가24,27)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그러나 옛적이나 현세나 하늘의 생명, 구원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듯을 얻어내려 그분을 섬기는 종교 행위에 열심을 부린다.

 

(요한5,38-40)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천주의 성령님 간절한 마음으로 저희 죄인들을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10,17-24)

 

그때에 일흔 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17~20)

 

루카 복음 10장 1~16절은 일흔두 제자가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파견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이어지는 10장 17~20절은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의 보고와 이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교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기뻐하며'에 해당하는 '메타 카라스'(meta charas; with joy)는 '기쁨과 함께'라는 말인데, '메타'(meta)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이 기쁨에 넘쳐 있었던 구체적 이유가 다음에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신 것(루카9,1)과 마찬가지로, 일흔두 제자에게도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다. 이것은 이들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를 쫓아냈다고 보고한 사실로 보아서도 분명하다.

 

루카 복음 사가 제자들을 파견한 당사자를 '주님께서는'(루카10,1)이라고 기록하여 제자들이 행하는 모든 권세와 권한이 예수님께로부터 기인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루카 복음 10장 17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여기서도 제자들은 예수님 '주님'('퀴리에'; kyrie)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이 마귀들의 복종을 받아낸 것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을 '주님의 이름 때문에'로 번역된 '엔 토 오노마티 수'(en to onomati su; in your name)가 잘 말해준다.

'엔 토 오노마티 수'(en to onomati su)는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 안에서'이다.

 

유대인들의 세계관에서 이름, 즉 '오노마'(onoma)는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본질적 속성이나 실체 및 그 실체의 권위를 의미한다(요한5,43; 10,25; 사도10,48).

 따라서 루카 복음 10장 17절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 것, 즉 구마의 이적이 예수님의 권세에 의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모든 권세의 원천은 예수님이시며, 제자들은 단시 그 권세를 받아 행하는 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복종합니다'에 해당하는 '휘포탓세타이'(hypotassetai; are subject; submit)는 '굴복시키다', '복종시키다'는 뜻을 지닌 '휘포탓소'(hypotasso)의 현재 직설법 수동태로서 '복종하고 있습니다', '굴복하고 있습니다'는 뜻이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과거인데, 제자들이 현재 시제 동사로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구마 행위를 한 것이 너무나 놀랍고 뜻밖이어서, 예수님 앞에 보고하고 있을 때에도 그 일이 눈앞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0장 18절에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보았다'라고 번역된 '에테오룬'(etheorun; I saw; I behold)의 원형 '테오레오'(theoreo)는 깊은 흥미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사물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사령관으로서 뚜렷한 목적을 가지시고 아주 세밀하게 영계의 모습을 지켜보신 것이다.  이 동사가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일흔두 제자들이 마귀들을 쫓아낼 때,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묵시록 12장 7절~10절, 13절 요한 복음 12장 31절에도 나오지만, 여기서 일흔두 제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구마 이적은 종말론적으로 사탄이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보여 주는 명백한 표적임과 동시에,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능력과 효과를 나타낸다(루카11,18~22; 마르3,27). 

그리고 루카 복음 10장 19절에 나오는 '뱀과 전갈'은 둘 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짐승들인데, 이것들은 사탄의 세력들을 상징할 때 주로 사용된다(창세3,1~15; 시편91,13; 2코린11,3; 묵시9,3.5.10). 

따라서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것은 루카 복음 10장 18절과 같은 맥락에서 일흔두 제자에게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끝으로, 루카 복음 10장 20절 '~이 아니고 ~으로'에 해당하는 '메~데'(me~ de; not ~but)라는 문장 구조인 전형적인 히브리어 격언구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본문을 살펴본다.

루카 복음 10장 20절의 말씀은 마귀들이 복종하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제자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묵시20, 12.15)에 기록되어 구원받게 된 것에 비하면 구마 이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마귀를 쫓아낸다고해서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보증 수표가 되는 것도 아니다(루카7,22.23).

 

구마 이적의 능력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부가적 특권인 것이다. 그리고 '기록된'으로 번역된 '엥게그랍타이'(enggegraptai; are written)는 '등록하다', '기록하다'라는 뜻을 지닌 '엥그라포'(enggrapho)의 완료 수동태이다.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쓰인 것은 제자들의 이름이 '이미' 하늘 나라의 생명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이 동사가 수동태로 사용된 점을 통해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가 바로 선택과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늘 나라의 봉사자로 불리운 자들은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되고, 겸손되이 모든 권세와 능력과 은사의 원천이신 주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

 

 2012년 10월 5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20241005일 토요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 10,17)하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마귀들이 복종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교만해지기 매우 쉽습니다. 이 기쁨 때문에 자꾸 마귀를 쫓아내고 싶어집니다. 물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마귀 들린 사람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에게 그 일이 꼭 좋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능력 때문에 그가 철부지가 아닌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10,21)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은 철부지인 그들이 아버지의 선하신 뜻”(10,21)에 따라 아들이 누구인지”(10,22) 알게 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지혜와 능력에서 나온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였던 그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복종한다며 으쓱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여기게 될 때, 그들은 이미 어린이와 같은 이들이 아닙니다. 은총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이들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의 선물을 주실 때는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철부지들에게 베푸시는 선물에 감사하면서, 이 선물 때문에 내가 어린이와 같은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깨어 경계하여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그 아드님을 알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들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며 감사드립시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10월 05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被造物이 創造主를 알고認定하는 삶이 自己否認이며 復活로 들어가는 완성의 죽음(무트,다나투스).

 

복음(루카10,17-24)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이름, 곧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마귀(뱀)의 선악의 말, 가르침을 먹고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인본주의는 절대 복종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그 교만 때문이다.

 

(로마11,18) 18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 ‘아멘’으로 받아 간직하자. 그런데 뱀, 전갈, 그 적대자의 힘은 무엇일까? 선악의 가르침으로 영이 병들어 멸망하게 하는 힘이다.

곧 선악의 심판이 주는 죄와 죽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오셔서(요한1,14) 사람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먹은 뱀의 유혹을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물리쳐 이겨내신 권한이다. (창세3,1-6 루가4,1-13)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아멘. 땅의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존재가 되는 기쁨이다.

 

(마태28,17-18) 17 그들(제자)은 (부활하신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 우리 모두의 죄를 품으시고 저주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흘리신 피(血), 그 피의 새 계약을 ‘다 이루시고’ 받으신 권한이다. 그 엄청난 권한을 받으셨기에 뱀, 마귀, 사탄의 영이 복종할 수밖에 없다. 곧 율법주의, 인본주의가 심판을 할 수 없는, 건드리지 못하는 권한의 말씀이신 것이다.

땅의 존재인 피조물들의 법(말)이 하늘의 존재를 어찌 판단, 심판으로 건드리겠는가...... 창조주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지키시며, 그분의 말씀이, 보호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방종을 조장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법은 구원의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2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 우리 또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한다. 곧 우리의 뜻, 감정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니라는 것이다.

 

21ㄴ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그렇습니다아버지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 선(토브)- 참 ‘좋았다’의 창조 언어다. 곧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로 새 창조되는 하느님의 선(토브)한 뜻이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또 아들 외에는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그래서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며(요한14,18) 하느님의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알려주신다.(요한14,26)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 예수님께서 당신이, ‘예언자들이 보고, 듣고 싶었던 영원한 생명, 진리’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이 지금 보고, 듣고 있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영이 오셨고, 받았음이, 우리의 기쁨이며 복이다.

 

☨ 하느님의 지혜진리의 영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늘의 기쁨복 안에서 하늘의 자유생명을 살 수 있도록 하느님처럼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자기 부인(否認)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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