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4주간 목요일] 말씀 (요한 13,16-20)

2018. 4. 26. 오전 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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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 4주간 목요일] 말씀 (요한 13,16-20)


바오로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다고 한다 (사도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당신과 당신을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13,13-25)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3)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 또는 '야훼는 구원',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의

히브리어 '여호수아', '죠수아'를 희랍식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20~21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계시되어 있다.

 

루카 복음 1장 31~33절에도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라고 계시되어 있다.

 

일찌기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내 집안과 내 나라 안에서

그를 영원히 세우리니, 그의 왕좌는 영원히 튼튼하게 하겠다.'(1역대17,14)고

말씀하셨는데, 사도 바오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구원자를 세우고

그 구원자를 보내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이끄신 역사와 구원자(구세주)의 약속을 상기시키고

그 약속에 따라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 역사를 끌어내서 그 역사안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 지키셨고,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밝힌다.


겉으로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볼 때, 다윗의 왕조는 무너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신 그 왕좌가 영원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공허한 메아리 처럼 들리는 상황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위해서 다윗과 약속하신 그 왕좌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는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요한13,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6~17)


예수님께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어떤 중요한 내용을 선포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가

바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아멘 아멘 레고 휘민'

(amen amen lego hymin; I tell you the truth; verily verily I say

to you)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당신 자신'주인'과 '파견한 이'로 지칭하고,

제자들'종'과 '파견된 이'로 지칭하여, 당신께서 행동으로 보여 주고

말씀으로 명령하신 내용을 반드시 지킬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신다.


특히 '~는 ~보다 높지 않다'는 첫 구절의 내용을 이어지는 구절에서 반복하는

'동의적 대구법'이라는 문학적 기교를 사용해서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주인, 파견한 이; 종, 파견된 이)를 강조함으로써, 완전한 순종을 촉구하신다.


여기서 '주인'으로 번역된 '퀴리우'(kyriou; lord; master)의 원형 '퀴리오스'

(kyrios)요한 복음 13장 13,14절에서 '주'(Lord)로 번역된 단어이며,

'않고'로 번역된 '우크 에스틴'(ouk estin; is not)현재 시제의 부정

(否定)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그렇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승보다 훌륭한 학자, 스승보다 훌륭한 의사, 스승보다 훌륭한 화가,

스승보다 훌륭한 음악가, 스승보다 훌륭한 조각가 등은 얼만든지 나올 수 있지만,

예수님보다 더 높은 자가 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관계를 바로 아는 이들은 결코 마음을 높이거나

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된다.

 

섬김과 봉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종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종이 되었던 우리를 당신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시고

다시 사셔서, 당신 소유로 삼으셨다(로마6,6~18).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견주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을 지존하신 분과

같이 높이려 했던 사탄, 루치펠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이사14,12~17; 루카10,18).


하느님의 뜻은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의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는 것모든 존재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필리2,9~11).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우리는 이 평범한 이치를 잊지 않고, 자신의 도리에 충실하도록 힘써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며, 그분의 보내심을

받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음을 유념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또한 모든 판단과 결정의 근거를 주인이신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

 

진리되신 그분이 옳다고 하시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옳지 않다고

반대할지라도 옳은 것이며, 만물의 주권을 가지신 그분이 명령하시는

일체의 일들은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포기하거나

지체하지 말고 힘써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파견된 이'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 the one who is sent)

필리피서 2장 25절코린토 2서 8장 23절에서 '협력자'로 번역되고, 여기서는

'파견된 이'로 번역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사도'로 번역되었다.


공관 복음서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는 문맥에서 쓰였다.


반면에 여기서는 단순히 섬김과 봉사의 의무를 교훈하기 위한 문맥에서, 그리고

파견한 이와의 관계의 문맥에서 나오므로, 그들을 파견한 이가 겸손히 섬기는데,

그로부터 파견된 이가 자신의 위엄을 내세우며 섬김의 도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랑의 섬김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  


수난을 앞에 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유언처럼 당부하십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13,16) 이 말씀은 그분의 제자들은 한 분이신 주님의 동등한 형제들임을 명심하고, 이런 동료의식 속에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누군가의 ‘위에서’가 아니라 ‘곁에서’ 그 사람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바칠 때에야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소중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13,20) 

이는 예수님께서 보낸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결국 하느님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을 알게 하고 발견하게 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그분께서 보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뤄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회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거느리는 사랑이 아니라 섬기는 사랑이었습니다. 동료 형제 자매들을 통하여 보잘것없고 죄 중에 살아가는 우리를 섬기고 사랑해주시는 주인의 큰 사랑을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종인 우리도 서로를 섬기며 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는 바로 그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사랑의 정신으로 자진해서 서로 봉사하고 순종할 것입니다.”(1221년 수도규칙 5,14)라고 권고합니다. 나아가 그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구세주에 관한 말씀을 떠올리며 큰 사랑에 불타올랐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배임을 늘 생각하셨습니다. 자신을 ‘가장 보잘것없는 종’으로 인식하였던 그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았기에 만사만물이 그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뜻을 따라 스스로 낮추시고 비우시며 사랑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것 안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는 파견된 자로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이웃과 그들의 희로애락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세상의 문제들을 통하여, 그리고 피조물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손길과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있는지 성찰해보아야겠지요. 

오늘도 나 자신이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파견된 도구임을 기억하면서, 다른 이들의 위가 아닌 곁에서 그들을 섬기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하는 천상 기쁨을 지금 여기서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웃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피조물을 형제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거룩한 포옹’의 날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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