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월요일]하느님의 일 (요한 6,22-29)

2018. 4. 16. 오전 6: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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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월요일]하느님의 일 (요한 6,22-29)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은 그를 대항할 수 없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가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고발한다. (사도 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신다. (요한 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6,8~15)


"그 무렵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8)


사도행전 6장 1~7절초대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생겨난 배급 (구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곱 부제를 선출한 내용과 더불어 그 이후 교회가 더욱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도행전 6장 8~15절은 이때 선출된 자 가운데 한 명인 스테파노 부제의 활동 및 체포 기사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던 핍박이 보다 본격화되고, 급기야 최초의 순교자를 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 가운데 본절에서는 스테파노 부제가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여 큰 '이적'으로 번역된 '테라타'(terata)와 '표징'으로 번역된 '세메이아'(semeia)들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나온다. 


본문의 '은총'에 해당하는 '카리토스'(charitos) '능력'에 해당하는 '뒤나메오스'(dynameos)는 사도행전 6장 5절의 '믿음과 성령 충만'대한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여기에서의 '은총'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스테파노 부제의 인자한 성품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사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당시까지 초대 교회에서는 큰 이적과 표징들을 열두 사도만이 행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는 열두 사도로부터 안수받은 스테파노와 필리포스 같은 부제들도 이러한 능력을 행하게 되었다(사도 8,13).  

하지만 스테파노와 필리포스 부제는 안수받기 전에도 이적과 표징들을 행했을 것이며, 이적과 표징들을 행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로부터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사도 6,3). 

그러나 본절의 기록이나 필리포스 부제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 8장의 기록으로  보아서 이들이 사도들로부터 안수받은 이후에 더욱 활발하고 능력있게 이적과 표징을 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 역시 초대 교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요한6,22~29)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7)


요한 복음 6장 27절은 오병이어 기적의 진정한 의미가 되는 영생의 양식을 주는 주제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는 중요한 구절이다.

'~말고 ~하라'로 번역된 '메~알라'(me ~alla; not~but)는 전자는 부정하고, 후자는 긍정함으로써 후자를 강조하는 구분이다.


여기서 먹어도 결국 죽게 될 '썩어 없어질 양식'과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증하시고 인정하신 예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대조하여 후자를 취할 것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종종 쓰신 용어인데, 메시야 동의어로 보는 것이 옳다(다니7,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 양식을 주시는 분으로 선언하신다. 여기서 '줄 것이다'에 해당하는 '도세이'(dosei; will give) '디도미'(didomi)미래 시제로서, 진행적인 의미와 더불어 받는 자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이 양식을 얻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양식은 인간이 자신의 방식대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썩어 없어질 양식' 구별된다.

'디도미'(didomi) 안에 들어 있는 '하사하다'(grant), '수여하다'(bestow)는 의미가 나타내듯이, 이 양식은 하느님에 의해 은총으로만 주어지는 선물인데(에페2,8.9), 인간의 대속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이 선물로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한편,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에스프라기센'(esphragisen; has ealed;

has placed his seal of approval)'봉인하다', '인을 치다'를 의미하는 '스프랑기조'(sphrangizo)의 부정(不定) 과거 시제이므로, '인을 치셨다'로  번역해야 한다.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하탐'(hatham)을 번역할 때 이 동사를 사용했는데, 구약 시대에 인장을 찍는 것, 곧 인을 치는 것왕의 교서(다니6,17.18), 토지 구매 문서(예레32,10),(이사29,11), 그밖의 문서들(느헤10,1)을 법적으로 유효하게 했다.

신약에서도 이 동사는 비준하거나 확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유대인들에게는 결코 낯선 말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근거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인간 예수님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곧 하느님의 자기 계시임을 염두에 두고,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요한 6,22-24).”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기적을 행하셔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셨을 때, 그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요한 6,15).


여기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간절함’이 보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인도해 줄 참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갈망하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가엾은 사람들입니다.

마르코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이(예수님과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 6,33-34).”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고,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은 로마제국의 하수인들로서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즉 사제들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들을 돌보는 목자가 되기는커녕 가난한 사람들의 가산을 등쳐먹는 도둑들이었고, 위선자들이었고(루카 20,47),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루카 19,46). 또 지키지도 못할 율법으로 백성들을 짓누르기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의지할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탐욕이나 이기심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이 갈망했던 해방은,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는 해방뿐만 아니라, 온갖 억압과 압박에서, 또 가난과 굶주림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방이었습니다. 기적의 빵을 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그런 지도자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25,29)”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라는 사람들의 말은, 자기들이 애타게 찾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기쁘고 반가워서 하는 말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왜 ‘빵의 기적’을 일으킨 나는 보지 않고 빵만 보느냐?”, 또는 “빵만 보지 말고 나를 보아라.”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도 ‘빵의 기적’이 기적이라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런 기적을 일으키셨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일으키든지 간에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기만 하면, 그 사람을 자기들의 지도자로 삼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복만 추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절박한 처지와 고통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빵의 기적’을 행하셨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들을 쫓아내셨고, 어떤 경우에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하느님 나라까지 잘 갈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한 일들이지 그 일들 자체가 종착점은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인 구원과 해방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기적의 빵’도 ‘썩어 없어질 양식’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 빵만 받아먹고, 몸의 배부름만 바란다면......미사 때에 받아먹는 성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의 뜻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분이기 때문이다.”입니다.

사람들의 몸을 배부르게 하는 일은 유능한 정치 지도자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사람들의 질문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나를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정치 개혁이나 혁명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현세적인 부귀영화를 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 표현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신앙인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들과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들을 잘 구분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영원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아름다움은 진리의 맛을 본 사람의 몫입니다. 성령의 은총과 능력으로 충만한 스테파노를 시기하고 핍박하던 이들조차도 그의 얼굴에서 천사의 얼굴을 봅니다.

세상의 폭력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진리 안에 머문 사람만이 누리는 자유와 행복입니다. 스테파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행복한 첫 순교자가 됩니다.
반면에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겪은 군중은, 그분께서 보여 주신 진리의 표징, 곧 나눔의 기적을 통해 탐욕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를 만나는 은총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고 나서 또 다시 자신을 배불릴 수 있는 빵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자아의 참된 모습을 찾지 못한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실상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고민들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다 겪는 실망과 분노에서 옵니다.

남들보다 좀 더 배부르려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때로는 중상과 모략으로 거짓된 자아에 숨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 보내신 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입술과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내 삶의 가치를 동물적 욕망이 아닌 영적인 아름다움에서 찾을 때 가능합니다.

사랑, 친절, 인내, 나눔, 희생, 겸손.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것들이 바로 예수님께 가는 길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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