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증인(루카 24,35-48)

2018. 4. 5. 오전 5: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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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증인(루카 24,35-48)



베드로는 온 백성에게, 불구자가 낫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며,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그들의 죄가 지워지게 하라고 한다. (사도 3,11-26)
그 무렵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부속가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하신다. (루카 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베드로의 설교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제1독서(사도3,11-26)



사도행전 3장 11절부터 26절까지는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치유 사건으로 인하여 놀라서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한 베드로 사도의 솔로몬 행각에서의 설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 행한 첫번째 설교(사도2,14~36)에 이어 베드로 사도의 두번째 행하여진 설교이며, 첫번째 설교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예수의 구세주 되심을 선포하고, 모여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영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4-16)


베드로는 생명을 기준으로 즉 바라빠는 생명을 죽이는 자로,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으로 대조한다.  

베드로가 두 인물을 대조하여 강조하는 것은 유다인들이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생명을 죽이는 바라빠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영원한 죽음을 취한 어리석은 민족이요 미련한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거룩하다' 표현은 죄와는 전혀 상관없이 존재하시는 하느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거룩한 표현이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거룩하다'(하기온; hagion)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신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의롭다'(디카이온; dikaion)는 단어는 하느님의 공의(公義) 대변한다. '거룩하다' 와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거룩함 하느님과의 관계 대변한다면 의로움인간과의 관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분의 성격을 규명하고(사도4,27.30), 의롭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로운 성품과 삶을 대변한다(사도7,52; 22,14).

결론적으로, 베드로가 유다인들이 생명의 주이신 메시아를 거부하고 살인자를 선택한 사실을 상기, 부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살인자라는 것이다.


'생명의 영도자' 번역된 희랍어는 '퀴리오스'(kyrios)가 아니고 '아르케고스'(archegos)이다. 

'아르케고스''어떤 분야의 길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인도자나 선구자' 라는 의미이다(히브2,10). 또한 어떤 일의 기원자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생명의 영도자''생명의 근원자' 혹은 '생명의 부여자' 라는 뜻이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시고 풍성하게 얻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자란 이름이 적합하며(요한10,10),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한계를 갖는 육체적 생명이 아니고  영원토록 죽지 않는 영적 생명이다(요한17,1.2).


그리고 '여러분은 ~죽였습니다' 에 해당하는 '아펙테이나테'(apekteinate)에서 '여러분'은 사도행전 3장 14절의 주어 '휘메이스'(hymeis)와 같다. 

실제로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린 법정은 로마의 법정이요,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직접 시행한 자들은 로마의 군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강조형 주어(인칭대명사)까지 사용하여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을 유다인으로 지목하여 단죄하는 이유이 죄가 법률적인 죄가 아니고, 신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번역된 '마르튀레스'(martyres)는 피고의 죄를 변호하거나 고발하기 위해 세워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이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실제로 본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다른 이들 앞에서 알리기까지 하는 증인이었다. 

증인들이 증거하는 것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죽였고, 하느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이다.한편, 역설적인 의미에서 베드로는 바른 증인으로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살인자를 놓아 주게 하고 무죄한 자를 죽이라는 불의한 증언을 한, 잘못된 증인이었던 유다인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고대 세계에서 이름은 단순히 명칭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앉은뱅이였던 사람의 다리를 낫게 한 주체가 그 사람이 믿은 이름이라는 베드로의 주장은 그 이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아직 살아 계시며 병조차 복종시키는 능력과 권세를 지녔음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표현이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란 표현에서도 나오지만, 믿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대상이다. 믿음의 대상은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앉은뱅이를 낫게 한 믿음의 주체 베드로로 보는 경우와 앉은뱅이였던 사람으로 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낫게 하셨다고 병자들을 칭찬하셨던 것에 근거해서(마태9,22; 마르10,52),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믿은 앉은뱅이였던 사람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19~20) 

베드로의 설교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청중들의 회개에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회개하고'에 해당하는 '메타노에사테'의 원형 '메타노에오'(metanoeo)'생각을 바꾸다'(change thought)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자기가 옳다고 여겨왔던 모든 가치관과 생활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리고 19절과 20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세 가지이다. 

첫째, 죄가 지워진다는 것이다.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해당하는 '엑살레입테나이'(eksaleipthenai)'지우다'(묵시3,5), '씻어 내리다'(묵시7,17)는 뜻을 지닌 '엑살레이포'(eksaleipho)수동태 부정사로서 전치사 '에이스'(eis)와 함께 '죄가 지워짐을 받으려면'(씻기움을 받으려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죄가 지워짐을 받는 것'회개하고 돌이키는 결과로 오는 보상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글을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썼다. 그런데 당시의 잉크는 오늘날처럼 산이 섞이지 않은 잉크였기 때문에 한번 쓰여진 글이라도 고치고 싶으면 물묻은 스펀지로 한 번 닦으면 말끔히 지워졌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간에 심지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죽인 죄를 지었을지라도, 일단 회개하면 그 모든 죄는 기억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게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다(이사43,25). 

둘째,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온다.

'생기를 찾을' 해당하는 '아납쉭세오스'(anapsikseos) '원기 회복','유쾌하게 되는'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refreshment). 

'때'로 번역된 '카이로이'(kairoi)의 원형 '카이로스'(kairos)여기서는 종말론적 날에 국한되지 않는, 하느님이 정하신 시간 가리킨다.  

'죄사함'회개의 소극적 결과라면, '원기회복'회개가 갖는 적극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자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자신의 원기(생기)를 그에게 더하여 주심으로써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시고(2코린5,17),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선물로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로마6,23). 

세째, 정하신 메시아를 보내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회개한 자들이 받게 되는 세번째 보상이다. 

처음 두가지, 즉 죄사함과 원기 회복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됨이 예수님의 강생과 재림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얻는 보상이라면, 세번째 보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때 만유가 회복된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미래의 혜택이다(사도3,21절).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복음(루카24,35~48)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39)


루카 복음 24장 36~49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지(認知) 발현사화와(24,36~43)  제자들을 교육하여 당신 고난과 부활의 증인들로 삼으시는 사명 발현사화(24,44~49)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고, 죽기 전 역사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동일 인물이심을 보이신다.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으셔서, 몸이 빛나고, 손상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으시는 신속함과 투철함을 가지고 계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자연적으로는 영혼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영적인 몸'('영광스러운 몸'; 필리3,21)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곡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인지(認知) 발현사화에서 육체성을 강조하고 있고, 요한 복음사가도 인지 발현사화에서 육체성을 강조하고 있다(요한20,20.25.27).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는 이승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장차 부활할 성도들의 육체도 '영적인 몸'으로서 이 모습을 닮을 것이다(1코린15,44).


루카 복음 24장 42~43절에서 예수님께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잡수셨다는 것도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이며, 그 육체성을 또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사도10,41; 요한21,1~14참조).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루카 24,36-43).”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면서

놀라고 두려워한 것은, 예수님께서 갑자기 유령처럼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평화의 인사를 하셨는데,

제자들은 평화를 얻기는커녕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혹시 제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실 수는 없었나?

어떤 식으로 나타나시든지 간에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은, “나는 유령이 아니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만져 보라고 하신 것과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신 것은 모두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유령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닌가? 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령 같은 것은 없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반대로, 그런 것이 있다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실체가 분명히 있는, 즉 살아 계시는 분에 대한 신앙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한 것은 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5-27)”

(‘헛것’을 보고 무서워하는 것이나, ‘헛것’이 아닌데도 ‘헛것’이라고 착각하고

무서워하는 것이나 모두 믿음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4-48)”


여기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은,

뜻으로는 “인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는 말은,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라는 말씀은,

“나의 고난과 부활은 모두 ‘하느님의 뜻’에 의한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어쩌다가 당한 일도 아니고,

무엇인가가 잘못되어서 생긴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7-40).”


이제 제자들은(신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이어받아서 계속해야 합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의 뜻은, “죄를 용서받으려면(구원받으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여라.”입니다.

또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구원받는다고)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여라.”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을 증인으로 임명하신다는 말씀이기도 하고,

증인이 되라고(증언하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 일’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가리키는데,

넓은 뜻으로는 예수님의 말씀들과 가르침들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전부 다 가리킵니다.

마티아를 사도로 뽑을 때, 베드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사도들뿐만 아니라 신앙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증인이고,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이 증언은 말로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신앙인답게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곧 ‘삶’으로 하는 증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

이 말씀은 성령 강림을 예고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성령을 통해서 제자들을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라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명령만 하시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신앙인들이 그 명령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은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한결같은 태도는, 놀람과 두려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제자들은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란 제자들을 안심시키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였습니다. 예수님의 추종자라는 오명으로 자신들마저 붙잡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을 따른 결과에 대한 자책,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그들의 의심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기에, 먼저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도록 당신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심지어 먹을 것을 직접 잡수시기까지 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믿도록 설득하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섬세한 배려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 제자들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증인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목격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의 말씀이 성취되는 하느님 계시의 완성이며,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복음의 선포였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교회인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제자로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우리가 하는 증언은, 역경을 이기고 기쁘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삶의 표양으로 더 확실해질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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