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 3,7ㄱ.8-15)

2018. 4. 10. 오전 5: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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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 3,7ㄱ.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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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여,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도   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며, 사람의 아들은 들어 올려져야 하는데,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4,32-37)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32)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33)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4~35)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2)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하판타 코이나'(hapanta koina)라는

진술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 등장한다.

 

한번은 사도 행전 2장 14~40절에 행해진 베드로의 일차 설교 후에 나왔고(사도2,44),

본문에서는 공동체가 함께 공동(합심)기도(사도4,24~30)후에 나왔다.

 

위의 두 사건은 설교(말씀선포)와 기도라는 차이점은 가지고 있지만,

말씀과 기도를 전후로 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사도2,4; 4,31).

 

자신의 물건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타락하여 이기적인 심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에게 있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한 윤리적인 양심이나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의 강요를 통해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을 볼 때에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배제한 무모한 제도였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므로 성령의 철저한 역사하심과 친교하심이 없이는

모든 물건을 서로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재물을 공유(共有)한다는 제도 하느님 나라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

교회에서조차 성령이 충만하여 모든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을 때만

한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경천애인'(애주애인)이라는 주님의 계명을 더욱 더 잘 실천하기 위해서

복음 3덕(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는 수도 공동체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교회가 그대로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는 없고,

실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 그 정신, 인간의

이기심이 극복된 아름다운 정신 만큼은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모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3)

 

'증언하였고'에 해당하는 '아페디둔 토 마르티리온'(apedidun to martirion)에서

'아페디둔'의 원형 '아포디도미'(apodidomi)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을

갚아버리다', '빚을 갚다'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다(마태18,25; 묵시22,12).

 

즉 사도행전의 저자에게 있어서 그들의 복음(예수의 부활)전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4~35)

 

여기서 '팔아서' 해당하는 '폴룬테스'(poluntes)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분사의 현재 능동형이고, '가져다가'에 해당하는 '에페론'(eperon)

아직 완결되지 않은 행위를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 능동형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초대 교회가 물질과 마음을 서로 나누는 행위가

수석 사제들의 핍박과 위기감 속에서 행해진 기도 뒤에 이루어진 일회적인 행위가

아니라, 초대 교회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친교하심을 통해 능동적이며 한시적이나마

상당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행해진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이었음을 강조한다.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뜻은 돈이 놓여진 위치가 아니라 돈을 관리하고

사용될 곳을 결정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었느냐 가르쳐 주고 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 당시 사도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을 인도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행정과 재정까지도 맡아 보았다.

 

그러다가 후일 신도들의 수가 늘고 업무가 늘어나자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고, 부제를 선출해서 행정과 재정 또는 자선등의 업무를 맡게하였다

(사도6,1~7).

 

'필요한 만큼'으로 번역된 '카도티 안 티스 크레이안 에이켄'(kathoti an tis

chreian eichen)'어떤 사람이 필요를 가지고 있는 것에 따라서' 뜻이다.

 

원문으로 볼때 본문은 초대 교회 당시 믿는 사람들 사이에 비록 명문적 규정은

없지만, 꼭 필요한 자에게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필요한 만큼 적절히 분배되었음

잘 드러나고 있다.

 

더 많이 가지려는 다툼이나 정분관계에 의한 분배의 정의가 흐트러짐 없이

모든 일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복음(요한3,7ㄱ 8~15)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8)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무지한 니코데모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자연 현상인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셨다.


여기서 '바람'으로 번역된 '프뉴마'(pneuma)는 성경에서 자주 성령이나

영을 지칭하여 나오지만, 여기서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役事)

설명하고자 비유로 사용된 자연 현상인 바람을 가리킨다.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 직접 확인도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바람이 불어 나무잎이 흔들리고 소리를 들으면서 바람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들을 모든 사람이 명백하게 보기는 하지만, 바람의 정체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불고싶은 데로 분다'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다.

 

장소에 관한 불변사 '호푸'(hopou; where)은 여기서처럼 직설법 동사와

함께 쓰이면, '~곳으로'(where)라는 뜻이 된다.


바람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데로 분다.

인간의 요청에 의해 세기를 조절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법이 없다.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다스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새로난 사람들은 성령을 다스리지 못하며,

다만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만을 깨닫게 된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는 말씀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도 다', '사람은 다'에 해당되는 '파스'(pas; everyone)가 여기서처럼

관사를 가진 분사와 함께 쓰이면, '~이다', '~은 누구나', '~은 모두'등의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들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포함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성령의 존재와 역사에 관한 지식은 다분히 체험적임을 보여 준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능력의 형태이거나 고상한 인격과 거룩한 생활의 형태이거나

거듭나고 새로난 사람만 볼 수 있고, 또 보여지는 것이 가능한 아주 특별한

지식인 것이다.



08.04.01 - 요한 3,7ㄱ.8-15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7ㄱ.8).”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에 의해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즉 하느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의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즉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즉 구원을 받으려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또 5절을 보면,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태어나는 일”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일”은

같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라는 말씀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라는 뜻인데,

이 말씀은,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믿으려고 노력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라.”)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라는 말씀은,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인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사람들이다.” 라는 뜻인데,

이 말은 다시, “위로부터 태어나기를 바란다면,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하고,

성령의 인도에 믿음으로 응답하여라.” 라는 뜻이 됩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 3,9-12)”

여기서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라는 니코데모의 말은,

“그런 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이루어집니까?” 라는 뜻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려면, 또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겉으로는 꾸짖으시는 말씀이지만,

뜻으로는 “나의 말은 확실한 증언이니 나의 말을 믿어라.”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어라.”)

앞의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11절의 말씀을, “표징만 찾지 말고,

표징이 없더라도 나의 말을 믿어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요한 12,50).” 라는 말씀이 있고, 6장에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들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신비’에 속한 일들을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헛심 쓰지 말고,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들과 말씀들을 먼저 믿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들을 모두 합해서 생각하면,

니코데모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믿음으로.”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이런 질문과 대답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이 말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나를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7).”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3-15).”

이 말씀은, 예수님을(예수님만) 믿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고,

예수님만이 사람들을 구원해서 하늘로 데려가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또 예수님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암시하신 말씀인데,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서 뱀을 들어 올려 사람들을 구하신 것처럼(민수 21장),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을 해야 한다.” 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다.”입니다.

지금 계속해서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들이 나오는데,

이런 말씀들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일부 종파의 모습이 연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구호를 외치는 종파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종파들인데,

사실상 사이비 종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7,21).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마태 7,26).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특히 사랑 실천을 안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다해] 부활 제2주간 화요일(2016-04-05)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은 니코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 묻습니다. 자신이 이제까지 믿어 왔던 율법 정신과 하느님의 뜻을 찾는 새로운 길을 예수님 안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이 아니라, 남들의 눈을 피해 영적으로 어두운 밤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여전히 자신의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채,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는 가능함을 믿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입은 사도 시대의 신자들은,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를 이룹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기에, 그들은 소유와 집착의 욕망에서 자유로웠고, 나누며 살았기에 궁핍하다고 좌절하지 않고, 타인을 내 만족의 도구로 이용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공산(共産)’의 삶은 본디 교회가 꿈꾼 이상이었고, 비록 역사 속에서 ‘공산주의’로 이념화되어 실패했지만, 여전히 교회 안팎에서 수행의 삶이나 수도원 공동체를 통하여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상적인 삶은, 어둠과 탐욕에 덮인 인간의 영이 성령으로 정화되어 하느님의 진리를 향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느님께 돌아갈 것임을 알기에, 세상에서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비록 세상의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심어 주신 양심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돌아갈 하느님을 매순간 기억한다면, 어둠이 아닌 빛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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