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수요일]깨어 있어라(루카 12,39-48)

2016. 10. 19. 오전 4: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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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수요일]깨어 있어라(루카 12,39-48)


바오로 사도는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하는 일꾼이 되었다고 한다. (에페 3,2-12)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3 앞에서 간단히 적은 바와 같이,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4 그래서 그 부분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하여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7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나는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8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1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시며,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고 하신다. (루카12,39-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에페소 유적지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에페3,2-12)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시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5~6)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사도 바오로 자신이 알게 된 비밀을 현재 신약의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는 성령으로 계시해 주셨지만, 과거 구약 시대에는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통해 그 비밀을 듣게 된 에페소 교인들은 구약 시대 사람들보다 더 복이 있다는 것이다. 

'계시되었습니다'에 해당하는 '아페칼맆테'(apekallyphthe)'계시하다', '나타내 보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포칼립토'(apokallypto)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 수동태는 '성령'이 의미상의 주어임을 나타내주고, 부정 과거형은 과거의 특별한 행동이나 사건들에 대한 언급을 한 경우에 사용되므로, 본문은 '이제 성령에 의해 나타내어질 것 같이'(as it has now been revealed by the Spirit to God's holy apostles and prophets)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의미상의 목적어 즉 계시된 대상은 무엇인가? 이것은 '그 신비가'로 번역된 관계 대명사 '호'(ho; which)로서 '그리스도의 비밀'(4절)을 가리킨다. 새 성경이 6절에서 '곧' 이라고 또 다시 애매하게 번역했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이 비밀' 말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은(4절) 성령에 의해서 계시되어졌는데(5절), 그 내용은  이전에 약속의 계약에 대하여 외인이었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계약의 백성이 되었다 것이다.(6절) 

한편 '사도들'과 병행하여 연급된 '예언자들'에 해당하는 '프로페타이스'(prophetais)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아닌, 신약 시대에 복음을 가지고 활동한 예언자들을 지칭한다. 

안티오키아 교회에 예언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사도13,1), 유다, 실라스등의 예언자(사도15,32)와 하가보스 예언자(사도21,10)등이 신약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예언자들 중 대표적 인물이다. 

'사람들에게'로 번역된 '토이스 휘오이스 톤 안트로폰'(tois hyois ton anthropon)의 표현은 사도 바오로 서간에서 한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으며, 복음에서 한 번, 그리고 구약에서도 단 한 번 사용되었다. 

새 성경은 마르코 복음 3장 28절에서 본문과 동일한 원어가 사용되었는데도, '사람'이라고만 번역했고, 70인역(LXX)의 창세기 11장 5절에서도 '삐넴 하아담'(haadam binem)에 대한 번역으로 '호이 휘오이 톤 안트로폰'(hoi hyoi ton anthropon)이 사용되었는데, '사람들' 이라고만 번역해서 원어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위의 두 경우도 모두 본래적 원어의 의미를 살려 '사람의 아들들에게'로 번역해야 한다. 

한편 본문을 포함한 이 세 경우가 모두 복음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사람들이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창세기 6장 2절에서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대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위의 용례들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하느님'에 대적하는 자로서의 조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 즉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비밀을 알리지 않으셨던 것이다. 

이제 6절을 보면, 6절은 지금까지 말해 온 그리스도의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다.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함께','동일한' 이란 의미를 갖는 전치사 '쉰'(sin)접두어로 사용된 명사 세 개를 연달아 사용하여 이방인들이(다른 민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머묾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통해 얻게 된 자격 세 가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공동 상속자와 한 몸의 지체와 약속의 공동 수혜자'이다. 

여기서 사용된 접두사 '쉰'(sin)구원받은 이방인들이 교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과거 유대인들 혹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보장되었던 축복에 조금도 차별없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고대 근동에서는 상속자만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상속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들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얻게 되었고(에페1,11; 로마1,7),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창세12,3; 사도3,25). 또한 이방인들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일부분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서로 원수되었던 관계가 허물어지고(에페2,16)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서로 한 몸을 이룬 것이다(에페4,4). 

다른 나라 사람들(다른 민족)이든,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든 모두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지체이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등급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1코린12,12.13).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며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비밀'이다.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12,39-48)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39~40) 

루카 복음 12장 39절과 40절은 도둑이 올 때를 대비하는 집 주인의 비유이다. 여기서 '도둑'을 가리키는 '클렙테스'(kleptes; thief)는 폭력을 동반하여 공개적으로 물건을 약탈하는 '레스테스'(lestes)와는 달리 '몰래 물건을 훔치는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도둑'아무도 그 시기를 모른 채 비밀리에 오시는 재림하시는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서 '몇 시에'에 해당하는 '포이아 호라'(poia hora; what hour) 역시 40절의 '생각하지 않은 때에'와 대비하여 사람의 아들(人子)의 오심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알면'에 해당하는 '에데이'(edei; had known)'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형으로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본문은 가정법 조건을 나타내는 '에이'(ei; if)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집주인이 그 시기를 미리 알아 도둑을 막는 일은 단순히 가정적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이 구절은 40절에서 제시되는 대로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는 역설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자기 집을 뚫고 들어 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에서 쓰인 동사 '디오뤽테나이'(diorychthenai; to be broken through)의 기본형 '디오륏소'(diorysso)'~을 통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디아'(dia)'파다'는 뜻의 동사 '오륏소'(orysso)가 합성된 것으로 '~을 통하여 뚫고 들어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시의 집들은 흙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도둑이 주인 몰래 담을 뚫고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은 불변사 '안'(an)은 본문 앞에서 사용된 가정법의 구절과 연관하여 그 결과로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동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원문은 불변사 '안'(an)을 사용해서 잡주인이 도둑이 언제 올지를 안다면, '항상 그리고 당연히' 그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 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욱 깨어서 준비해야 할 것임을 교훈한다.  

이제 40절의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를 살펴보면, 여기에 쓰인 동사 '기네스테'(gynesthe; be)'기노마이'(gynomai)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태에 계속적으로 있을 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리고 '헤토이모이'(hetoimoi; ready) '준비된'이라는 뜻의 형용사 '헤토이모스'(hetoimos)의 복수형으로서 '기네스테 헤토이모이'(gynesthe hetoimoi) '계속적으로 준비하고 있어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이 구절은 '계속적인 준비'에 그 강조점이 있다. 

이것은 39절의 도둑이 침입할 시기를 알고 있는 집주인과 대조하여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 이수철 신부님

<방심, 자만>송영진 모세 신부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루카 12,39).”
이 말씀을 뜻에 따라서 다시 정리하면,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는 몰라도 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종말과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3)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니까 잘 준비하여라.


그리스도교에서 생각하는 ‘시간’은 돌고 도는 원형의 시간이 아니라,
언젠가 ‘한 처음’에 시작되어서 ‘종말’을 향해서 가는 일직선의 시간입니다.
(종말 다음은 ‘영원’입니다.)
따라서 종말은 한 번뿐인 일이고, 반드시 이루어질 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은 종말 때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2-33).”
종말의 시간은 아버지 하느님만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하자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루카 17,21).
이 말씀은,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종말의 날과 시간을 모른다는 말은,
이미 ‘시작’된 종말이 언제 ‘완성’되는지를 모른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언제 시작되었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때가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 때,
즉 종말이 시작된 때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종말의 시기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1요한 2,18).”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라는 말씀은,
“미리 계산할 수도 없는 때에” 라는 뜻인데,
“방심하고 자만하고 있을 때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방심하고 자만하고 있을 때 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로 해석됩니다.


평소에, 즉 ‘지금’ 잘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종말, 재림, 심판이 언제 이루어지든지 간에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잘 준비되어 있다면, 종말의 날과 시간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걱정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말 같은 것은 없다.” 라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자만하면서,
회개하지도 않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종말은 ‘무서운 날’이 될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심, 자만’이라는 말에서 카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에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그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창세 4,9).
아마도 카인은 자기의 범죄를 아무도(하느님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자만’에 빠진 모습이고, ‘방심’하는 모습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의 다윗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사무엘기 하권을 보면,
그의 간통죄와 살인죄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방심하고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의 범죄를 모두 보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나탄 예언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비유를 통해서 그의 죄를 밝히셨을 때에도
다윗은 그 이야기가 자기의 범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2사무 12,5-6).
그래서 나탄 예언자는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게 됩니다(2사무 12,7).


배반자 유다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배반을 말씀하셨을 때,
사도들은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물었습니다(마태 26,22).
그때 배반자 유다도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물었습니다(마태 26,25).
아마도 유다는 자기가 배반한 것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또 시치미를 떼고 있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감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종말, 재림, 심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죄를 지은 뒤의 카인, 다윗, 유다의 모습과 같습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또 심판을 의식하지 않고 태연하게 사는 것은 방심이고, 자만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과 죄를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종말과 재림과 심판이 닥치기 전에,
바로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매일미사(다해) 16-10-19] -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깨어 있어라.”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비유 말씀처럼 잠든 사이에 도둑이 내 소중한 것을 앗아 가지 못하게 깨어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내 생각과 의식을 열어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내적인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영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영적인 ‘깨어 있음’을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영적 태만과 위선, 기회주의적 자기애는 영적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적당히 꾀를 내어 내 편안함과 욕심을 채우려는 종의 모습은, 남이 나의 잘못을 알지 못하는 한 적당히 타협하면서 게으르고 위선적인 내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내 육신의 안락함이나 욕심보다는 주인의 생각과 뜻을 기다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종의 모습이 칭찬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덜어 내고 비워 내는 비움의 영성, 곧 청정한 빈 마음의 ‘무아’(無我)와 ‘무욕’(無慾), 그리고 ‘무위’(無爲)의 삶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욕망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면 삶의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내 힘이나 노력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예수님의 복음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넘치도록 받은 우리가 십자가의 빈 마음을 익히고, 믿음 안에서 확신을 갖고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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