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5장>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

2015. 2. 13. 오후 2: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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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묵시록 5장>    송영진 모세 신부

4장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을 강조했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예배와 찬미의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5장에서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강조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한 두루마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14절 :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

1절..<그리고 나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하느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다는 것은 두루마리 책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속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두루마리 '안팎으로', 즉 두루마리 양면에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은 그 내용의 충만함과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완전히 실현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종이가 없던 고대에는 파피루스나 양피지 같은 것에 글을 써서 낱장으로 보관하거나 둘둘 말아두거나 했습니다. 두루마리 경우에는 대개 한쪽 면에만 글씨를 쓰고 말아두는데, 안팎으로 글을 쓰는 것은 예외적인 일입니다. 에제키엘서 2장에도 앞뒤로(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가 나옵니다(에제 2,10).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일곱 번의 봉인'은 아무도 그 내용에 접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내용이 세상의 운명에 대한 하느님의 결정사항이고 어린양을 통해서만 알려질 중요한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중요한 문서를 작성하면 두루마리를 만들고 진흙을 붙이고 그 진흙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면 진흙이 굳어지면서 밀봉이 되고, 그 진흙을 깨뜨리지 않는 한 아무도 읽을 수 없는 문서가 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것보다는 봉인을 뜯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즉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여기서도 7은 완전함, 충만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2절..<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큰 능력을 지닌 천사'는 천사 중에서 가장 강력한 천사, 가장 지위가 높은 천사입니다. 그 천사가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어린양 외에는 봉인을 뗄 수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3절..<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라는 말은 '전 우주'를 뜻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우주를 하늘과 땅과 땅 아래로 구분했습니다. 전 우주에서 두루마리를 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말은 천사도 인간도 악마도 모두 하느님의 비밀 계획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4절..<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두루마리를 이미 보았는데도 그 내용을 볼 수가 없습니다.인간의 능력이나 지식이나 학문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인간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슬프게 울고, 지금 박해의 고통 속에 있는 교회를 위로할 방법을 알지 못해서 슬프게 웁니다.

5절..<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4장에서 언급한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이 요한 묵시록 저자를 위로합니다. 원로들은 이미 하느님 곁에 있는 이들이고, 신앙을 통한 직관력으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봉인을뜯을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울지 마라.>--루카복음 7장 13절, 8장 52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똑같은 위로의 말입니다. '보라' 라는 말은 엄숙하게 선언할 때의 관용어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이 말은 창세기 49장 9절에서 온 표현으로 메시아를뜻합니다.

<다윗의 뿌리>--이사야서 11장 1절,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에서 온 표현인데, 역시 메시아를 뜻합니다. (이사이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그리스도는 죽고 부활함으로써 승리하신 분, 즉 죽음을 이기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분이 되셨기 때문에(마태 28,18)'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6절..<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 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부활의 영광을 차지한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인데 아마도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과 죽음을 당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어린양>--이 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칭호 중 하나입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희생양, 또는 속죄양을 예수님에게 적용해서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양이 되어서 희생 제물로 바쳐진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뿔이 일곱이고>--'뿔'은 '힘'을 상징하고, 7은 완전함, 충만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곱 뿔'은 '메시아의 무한한 힘'을 상징합니다.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일곱 눈' 자체는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상징하는데, 여기서 '하느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고 하느님의 예지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7절..<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하느님께서 어린양에게 두루마리를 넘겨주시는 것은 당신의 권한을, 즉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이의 운명에 대한 권한을 예수님에게 넘겨주신다는 뜻입니다.

8절..<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어린양이 하느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하느님의 권한을) 넘겨받자 천사들과 원로들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듯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서 경배를 드립니다. 수금과 향은 어린양에 대한 찬양 예배를(전례적인 상황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라고 번역한 말의 원문은 '그것은 성도들의 기도이다.'인데, '그것'은 '금 대접'이 아니라 '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의 번역은 잘못된 것입니다. '향은 성도들의 기도' 라는 말은 시편 141편 2절에서 온 표현입니다. 원로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모은 금 대접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들이 하느님 백성의 대표들로서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서 바친다는 뜻입니다.

9절..<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새 노래'는 '아직까지 없었던 노래' 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새로운 통치자이신 어린양의 새로운 창조를 찬양하는 노래를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이것은 앞의 2절에서 천사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주님만이 유일하게 두루마리를 펴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이라는 말인데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뜻합니다.(지금 9절과 10절에서 '주님'으로 번역되어 있는 말들은 모두 원문에는 '그'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피로 모든 사람들을 속량'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악의 세력의 노예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켰다는 뜻입니다.'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이라는 말은 그냥 '모든 사람들'이라는 뜻이고, 전 인류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구원의 보편성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의 구원사업은 전 인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가운데에서' 라는 말은  '...의' 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사람들을 하느님께 바치셨다는 말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모아서 하느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고,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되게 하고, 하느님의 생명과 왕정에 참여시켰다는 뜻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분이기 때문에 두루마리의 봉인을 뜯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어린양에게만 인류의 운명에 관한 당신의 계획이 적힌 두루마리의 봉인을 뜯을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10절..<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이 구절은 1장 6절에서 나왔던 말인데,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제직과 통치권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11절..<나는 또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많은 천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요한 묵시록 저자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수많은 천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다는 말은 그들의 찬양 노래를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수가 '수백만 수억만'이었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수백만 수억만보다는 '수천수만'이라고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12절..<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그들이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것은 큰 소리로 찬양 노래를 불렀다는 뜻입니다. 천사들은 앞의 4장 11절에서 하느님을 찬미할 때 불렀던 노래와 똑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드린 경배를 그리스도께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권능, 부, 지혜, 힘, 영예, 영광, 찬미'는 어린양의 영광과 능력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합당하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동등한 찬양과 경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13절..<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여기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은 우주 전체의 모든 피조물을 뜻합니다. 천사들과 인간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 자연까지, 다시 말해서 우주 삼라만상 전체가 어린양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4장 11절에서는 하느님을 찬양했고, 5장 12절에서는 같은 말로 그리스도를 찬양했고, 이제 13절에서는 다시 같은 말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동시에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동등한 위치에 계신 분으로 표현되고,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과 경배가 최상의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14절..<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우주 전체의 찬양에 대해 천상의 존재들이 화답하는데, 네 생물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절을 하면서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지상에서는 종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네 생물과 24원로가(8절-10절), 그 다음에는 수많은 천사들이(11절-12절), 마지막에는 온 우주 만물이(13절) 하느님과 어린양을 찬양하고 있는데 점점 그 수가 증가되고 고조되다가 온 우주가 찬양으로 가득 차는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우주의 대합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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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슬피 울었다."

 

우리는 기쁠 때나, 감동을 받았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지만

대개는 슬퍼서 울고, 사랑 때문에 울고, 괴로워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 화가 나서 울고, 좌절했을 때 울고,

아파서 울고, 무서워서 울고, 외로워서 웁니다.

그런데 요한 묵시록 저자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병석에 누워서 죽어가고 있을 때,

그러다 그냥 떠나버렸을 때,

정말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 무기력함...

그저 눈물을 흘리며 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전쟁으로, 지진으로, 전염병으로, 굶주림으로

수십만, 수백만의 인간들이 죽어갈 때,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울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도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운명과 한계가 딱하고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셨던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한계, 죽음, 운명...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길이고,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방법인 예수님을 찾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우리에게는 죽어서 하느님께 가는 것보다

지금 덜 울고 덜 슬프고 덜 괴로운 것이 더 급하고 절실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이 하느님에게 있고,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님에게 있다고 하니 예수님을 찾습니다.

학력을 위조하고, 얼굴을 뜯어고친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가장 먼저 내 마음을 바꾸어야 하고,

올바른 마음 하나로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올바른 마음 하나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

올바르게 살면서 길을 찾고 진리를 찾고 생명을 찾다보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남을 위해서 슬프게 우는 것은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서 슬프게 우는 것은 회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셨던 예수님,

우리에게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시는 예수님...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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