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19장> 송영진 모세 신부
묵시록 저자는 폐허가 된 바빌론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서는 승리의 노래가 울리고 있습니다. 1절-10절은 18장 20절의 초대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환호소리이고, 11절-21절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악의 세력의 소멸을 묘사하는 내용입니다.
1절-2절..(1)<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2)<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이미 구원을 받아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과 천사들이 섞여 있는 무리로 생각됩니다.
<큰 목소리>--'대 합창'을 뜻합니다.<할렐루야>--'야훼를 찬양하라.' 라는 뜻의 환호성인데 신약성경에서는 요한 묵시록19장에만 나옵니다.<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영광에 가득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찬양하는 말입니다.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하느님의 심판은 진실하고, 정의롭고, 공정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없고, 모자라거나 넘치는 일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하느님의 심판이 참되고 정의롭다는 것은 '대탕녀'에 대한 심판에서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이라는 말은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으로 온 세상을 망쳤다는 뜻입니다. '대탕녀'는 17장-18장의 바빌론(로마제국)을 가리킵니다.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대탕녀가 심판을 받게 된 또 하나의 죄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신자들을 죽인 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희생과 죽음을 잊지 않으시고 박해자들에게 인과응보의 벌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3절..<그들이 또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라는 말은 18장 8절의 '마침내 그 여자는 불에 타버릴 것이다.' 라는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이 불은 하느님의 심판의 불입니다.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판은 돌이킬 수 없고 그 벌은 영원한 것임을 뜻합니다.
4절..<그러자 스물네 원로와 네 생물이 어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아멘. 할렐루야!" 하고 말하였습니다.>--1절-3절의 찬미가에 대해 4장에 나왔던 24원로와 4생물이 세 번째 할렐루야를 부르면서 화답하고, 하느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의 '할렐루야 합창' 대목의 가사는 바로 이 부분, 즉 19장 1절-6절과 11장 15절을 발췌한 것입니다.)
<5절-10절 : 어린양의 혼인 잔치>
5절..<그때에 어좌에서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느님의 모든 종들아 낮은 사람이든 높은 사람이든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어좌에서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아마도 4생물 중 하나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종들'은 이미 하늘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땅 위에 있는 충실한 신자들까지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낮은 사람이든 높은 사람이든>--이 말은 하느님 앞에서 높고 낮은 차이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모든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높고 낮은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다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경외' 라는 말은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기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을 뜻합니다. 5절은 모든 충실한 신자들에게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권고하는 구절인데 찬미가의 선창에 해당되는 구절입니다.
6절..<나는 또 많은 무리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큰 물 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6절-8절은 5절의 선창에 대한 화답송입니다. '많은 무리의 목소리'는 5절에서 언급한 '하느님의 모든 종들'의 찬미 노래 소리입니다.
'큰 물소리, 요란한 천둥소리'는 원래 하느님의 음성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소리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군중의 대 합창의 웅장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하느님의 종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 동안 통치의 장애물이었던 바빌론을 제거하고 세상을 완전히 다스리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7절-8절..(7)<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하느님의 종들이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로 비유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로 비유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2코린 11,2)." 여기서 '어린양의 혼인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구원사업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신부는 몸단장을 끝내고, 즉 결혼식 예복을 입고 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부의 옷은 탕녀가 입고 있던 옷과 대조적입니다. 교회가 이 옷을 입은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특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권'이란 '은총의 선물'입니다. 즉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의 신부가 되었고, 어린양의 혼인날에 신부의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은 거룩함을 상징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변모된 모습을 뜻합니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신부가 입고 있는 결혼식 예복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그 옷은 하느님의 은총(특권)이면서 동시에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선행(사랑의 실천, 올바른 신앙생활, 덕행 등)으로 협력(또는 응답)해야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하느님의 은총만 바란다면 그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9절..<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천사가 또 이어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말씀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그 천사'는 1장 1절에서 언급했던 천사입니다. 즉 묵시록을 기록하게 한 천사입니다. 그 천사는 요한 묵시록 저자에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 라고 기록하라고 합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것, 또는 참석한다는 것은 구원받았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신앙생활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 희망과 목적이 달성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말씀이다.>--이 말은, 바로 앞에서 말한 행복에 대한 말씀은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말씀으로서, 하느님께서 친히 그 말씀이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보증하신다는 뜻입니다.
10절..<나는 그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라. 나도 너와 같은 종이다.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너의 형제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 하느님께 경배하여라. 예수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요한 묵시록 저자는 미래에 대한 묵시와 천사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고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천사는 완강하게 제지합니다. 경배는 '하느님께만'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천사나 예언자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동등한 입장의 '같은 종(동료 종)'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너의 형제들'은 '예언자들'을 뜻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원문 그대로 '예수님의 증언'으로 번역했는데, 공동번역 성서는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 라고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신자들, 특히 예언자들은 '예수님의 증언, 즉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 증언(계시 진리)에 따라서 살아야 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이 말은 '예수님을 위한 증언'은 '예언의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의 신자들 가운데 천사 숭배의 오류에 빠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 그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즐기는 자는 아무도 여러분을 실격시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시에 빠진 나머지 현세적 생각으로 까닭 없이 우쭐거립니다(콜로 2,18)." 경배는 오직 하느님과 예수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천사도, 성인, 성녀도, 성모 마리아도 경배 대상이 아닙니다.
<11절-21절 : 흰말을 타신 분>
이 대목은 테살로니카 1서 4장 16절-18절과 함께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장 생생하게 묘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분은 흰말을 타고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 오시며 사탄의 추종자인 짐승과 거짓 예언자들을 멸망시킵니다.
11절..<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흰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타신 분은 '성실하시고 참되신 분'이라고 불리십니다. 그분은 정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이십니다.>--<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4장 1절, 11장 19절에 이어서 세 번째로 하늘이 열립니다. 그 하늘은 이후로는 더 이상 닫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림하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흰말이 있었는데>--'흰말'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14장 14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흰 구름'을 타고 있었는데 그것은 심판관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흰 구름' 대신에 '흰말'을 타고 있고, 이것은 원수를 쳐부수는 군사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그 말을 타신 분은 '성실하시고 참되신 분'이라고 불리십니다. 그분은 정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이십니다.>--(공동번역 성서는 '신의'와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라고 번역했고, 200주년 성서는 '믿음직하고 참된 분'이라고 번역했는데, '믿음직하고 참된 분'이 가장 좋은 번역인 것 같습니다.) 이 이름은 3장 14절에서도 나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고, 정의를 위해 싸우시며, 하느님의 적에 대해 바른 심판을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싸우시는 분'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심판이 싸워서 승리하는 모습으로 될 것임을 뜻합니다. 여기서 '싸운다.' 라는 말은 정의를 행사하는 하느님의 행위를 뜻합니다.
12절..<그분의 눈은 불꽃 같았고 머리에는 작은 왕관을 많이 쓰고 계셨는데, 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분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그분의 눈은 불꽃 같았고>--이 말은 1장 14절에 나왔던 표현입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통찰력, 즉 전지하심을 뜻합니다.
<머리에는 작은 왕관을 많이 쓰고 계셨는데>--12장 3절에서 '용'은 일곱 개의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왕관을 쓰고 계십니다. 이것은 '완전한' 통치권을 뜻하고, 왕중왕이시며,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분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은 하느님 외에는 그분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마태 11,27)." 또 이것은 그분의 초월성과 신성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리스도와 교회가 완전히 결합하고 일치하게 되는 그날에는 모두가 그 이름을(그분의 본질을) 알게 될 것입니다.
13절..<그분께서는 또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그분께서는 또 피에 젖은 옷을 입고 계셨고>--이사야서 63장 1절-6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면서 반역자들의 피로 물든 옷을 입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기서도 그리스도 자신의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의 피로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승리자로 묘사하는 것이 됩니다. (일부 학자는 아직 심판을 내리기 전이라는 이유로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을 당하신 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요한복음 1장 1절-18절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진리의 특별한 계시자이며, 동시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계시의 말씀'이십니다.
14절..<그리고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서 흰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고 있었습니다.>--<하늘의 군대>--코린토 1서 6장 2절을 보면 성도들도 이 세상 심판에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또 앞의 17장 14절에서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충실한 이들'도 그분과 함께 승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하늘의 군대'는 천사들과 성도들의 연합군대로 해석됩니다.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서>--하늘의 군대도 어린양의 신부와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군대의 주축을 이루는 군인들이 17장 14절에서 언급한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충실한 이들'임을 나타냅니다.<흰말을 타고>--이 말은 11절처럼 승리를 뜻합니다.<그분을 따르고 있었습니다.>--군대의 선두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군인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15절..<그분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쇠 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리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격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짜는 확을 친히 밟으실 것입니다.>--<그분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이 구절은 이사야서 49장 2절에서 온 표현인데,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칼'은 심판과 판결을 내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형선고를 내리면 즉시 사형집행의 효과가 나타나는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적군을 전멸시키는 데에는 다른 무기가 필요 없고, 바로 그런 '말씀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지혜서 18장 15절-16절에도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쇠 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리시고>--이 말은 12장 5절에 나왔던 말입니다. '쇠 지팡이'는 왕중왕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적들을 전멸시키는 힘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다스리다.' 라는 말은 내용상 '전멸시키다.'로 해석됩니다.<전능하신 하느님의 격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짜는 확을 친히 밟으실 것입니다.>--이 구절은 14장 10절의 '하느님의 분노의 술'과 14장 19절의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의 상징을 하나로 합한 것인데, 하느님의 분노의 심판으로 적들이 전멸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16절..<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는>--이 말은 '옷'과 '넓적다리'를 합해서 '넓적다리 근처의 옷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은 17장 14절에서 나왔던 말인데, '전능하신 하느님, 전 우주의 지배자' 라는 뜻입니다.
17절-18절..(17)<나는 또 한 천사가 해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모든 새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자, 하느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와라.>(18)<임금들의 살과 장수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 모든 자유인들과 종들, 낮은 사람들과 높은 사람들의 살을 먹어라.">--(여기서 해 '위에' 서 있다고 번역한 것은 공동번역 성서나 200주년 성서처럼 해 '안에' 서 있는 것으로 번역을 바꿔야 합니다.) 천사가 '해 안에 서 있다.' 라는 말은 태양 빛에 싸여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승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천사가 새들을 불러 모아 시체를 먹게 하는 장면은 에제키엘서 39장 17절-20절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은 19절의 전쟁에서 적들의 군대가 전멸 당하게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새들이 시체를 뜯어먹는 것을 '하느님의 큰 잔치' 라고 표현한 것은 9절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짝을 이루는 표현입니다. 승리자는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패배자는 새들의 먹이가 됩니다. '임금들, 장수들, 용사들, 기마병들, 자유인들, 종들, 낮은 사람들, 높은 사람들'은 19절의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을 총망라한 것인데, 이들이 예외 없이 전부 다 죽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19절..<나는 또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말을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에 맞서 전투를 벌이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이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전투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 전투는 16장 14절-16절에서 언급했던 '하르마게돈 전쟁'입니다. 13장에서 나왔던 그 짐승이 온 세상의 왕들을 총동원해서 그리스도께 싸움을 걸었고, 그래서 하늘의 군대와 짐승의 군대가 대 격전을 벌입니다.
20절..<그러다가 그 짐승이 붙잡혔습니다. 그 짐승 앞에서 표징들을 일으키던 거짓 예언자도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 거짓 예언자는 그 표징들을 가지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짐승의 상에 경배하는 자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그 둘은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졌습니다.>--요한 묵시록 저자는 전투 과정의 묘사는 생략하고 결과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 순간에 전투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을 것입니다. 우선 먼저 13장의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이 붙잡힙니다. 둘째 짐승은 거짓 예언자로서 기적을(표징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사람들에게 666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우상숭배를 하게 했던 자입니다.
<그 둘은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졌습니다.>--'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은 '영원히 벌 받는 곳'입니다. 여기서 '불'은 실제 불이 아니라 하느님의 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산 채로'라는 말은 그 형벌이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21절..<남은 자들은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붙잡힌 후에 '남은 자들', 즉 추종자들, 왕들과 군인들은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 즉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모두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부활해서 마지막 심판을 받을 때까지 저승에 있게 됩니다. 그들의 살은(시체는) 모든 새들이 몰려 와서 배불리 먹게 됩니다. 전투가 이렇게 쉽게, 빨리 끝나기 때문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천사가 새들을 부른 것입니다(17절). 21절에 묘사된 상황은 영적인 차원이 아닌, 실제 인간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승리가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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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할렐루야"
하느님의 승리는 예정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과 성도들은 할렐루야를 미리 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합니다.
잔치에 참석하는 일은 미래의 일이지만 그 행복은 지금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를 지금 부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믿고, 오늘 그것을 미리 감사드리고 찬양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입니다.
살면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탄원의 기도를 바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먼저 바쳐야 합니다.
하느님 찬양이 우리 삶에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불행을 다 겪은 뒤에 '욥'이 입을 열어 바친 기도는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욥 1,21)."입니다.
일곱 번이나 결혼하고
결혼할 때마다 첫날밤에 신랑이 모두 죽는 불행을 겪은 사라도
"자비하신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토빗 3,11)." 라고 기도합니다.
불행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할렐루야'의 정신입니다.
지금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내 소망이 모두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불행 중에 있지만,
그래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고, 희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할렐루야를 노래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감사와 찬양기도를 바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더 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사랑을 베풀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