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17장> 송영진 모세 신부
12장에 나왔던 '여인'은 하느님의 백성이었습니다. 17장에 나오는 '탕녀'는 하느님을 외면하는 무리, 또는 우상숭배를 하는 무리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과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탕녀(창녀)라고 표현한 것은 하느님과 백성을 결혼관계로 보고 우상숭배를 매춘이나 간통으로 표현하는 성경의 표현 방식에서 온 것입니다.
<1절-18절 : 대탕녀 바빌론에게 내릴 심판>
1절..<저마다 대접을 가진 그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이리오너라. 큰 물 곁에 앉아 있는 대탕녀에게 내릴 심판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저마다 대접을 가진 그 일곱 천사'는 16장에서 재앙의 대접을 땅에 쏟았던 천사들입니다. 그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요한 묵시록 저자에게 로마제국의 멸망을 미리 보여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리 오너라.' 라는 말은 자기를 따라오라는 뜻입니다.
<큰 물 곁에 앉아 있는>--이 표현은 예레미야서 51장 13절에서 온 것인데, 예레미야서에서는 실제 바빌론을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바빌론에는 유프라테스 강의 많은 지류들과 운하들이 있었고, 이를 통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15절에 '물은 백성들과 군중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큰 물 곁에' 앉아 있다는 말은 온 세상에 두루 미치는 정치적인 영향력, 또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대탕녀>--14장과 16장에서 언급했던 '대바빌론'을 '대탕녀'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도시가 우상숭배의 본거지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바빌론'은 우상숭배와 악의 도시를 상징하기 위해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여기서는 '로마제국'을 뜻합니다.
2절..<땅의 임금들이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땅의 주민들이 그 여자의 불륜의 술에 취하였다.">--'땅의 임금들이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라는 말은 세상 모든 나라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거나 동맹관계에 있음을 뜻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를 세계의 정치적 중심지로 여겼습니다. '땅의 주민들이 그 여자의 불륜의 술에 취하였다.' 라는 말은 온 세상 사람들이 로마의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3절..<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광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진홍색 짐승을 탄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짐승의 몸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한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습니다.>--그 천사가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광야로 데리고' 갔다는 말은, 그 천사가 성령으로 인해 탈혼 상태가 된 요한 묵시록 저자를 광야로 데리고 갔다는 뜻입니다. 또 성령으로 인해 탈혼 상태가 되었다는 말은, 성령의 도움으로 환시를 보는 능력을 얻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광야'는 악령의 거주지이며 환시를 보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진홍색 짐승을 탄 여자>--'진홍색'은 '사치와 죄'를 상징합니다. 또 로마 황제의 의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짐승'은 13장에 나왔던 첫째 짐승입니다.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다는 것은 로마제국이 사탄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 짐승의 몸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한데>--13장 1절에서는 일곱 머리에만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여기서는 온 몸에 가득히 적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13장 1절에서 묘사한 것은 로마황제들이 자기 자신들을 신격화시킨 것을 뜻하고, 여기서 짐승의 몸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당시 로마제국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에 대한 숭배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습니다.>--일곱 머리와 열 뿔에 대해서는 뒤의 9절-14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4절..<그 여자는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하였습니다. 손에는 자기가 저지른 불륜의 그 역겹고 더러운 것이 가득 담긴 금잔을 들고 있었습니다.>--'자주색과 진홍색 옷, 금, 보석, 진주'로 치장하는 것은 당시 창녀들의 특징이었는데 여기서는 로마제국의 사치와 우상숭배와 타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불륜'은 로마제국의 우상숭배를 뜻합니다. '그 역겹고 더러운 것'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물건들, 즉 우상숭배 예식에 사용하는 물건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가득 담긴 금잔을 손에 들고 있다는 말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우상숭배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금잔'은 예레미야서 51장 7절에서 온 표현으로 보입니다. "바빌론은 주님의 손에 들린 금잔, 온 세상을 취하게 하였다." (여기서는 그 여자가 금잔을 들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고, 예레미야서에는 바빌론이 주님이 들고 있는 금잔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금잔'이라는 말 자체가 하느님의 심판을 뜻하기 때문에, 주님이 들고 있다면 '주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 되고, 그 여자가 들고 있다면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5절..<그리고 이마에는 '땅의 탕녀들과 역겨운 것들의 어미, 대바빌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의 신비였습니다.>--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창녀들은 자기 이름을 적은 머리띠를 이마에 묶고 다녀야 했습니다. 지금 5절은 그 규정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 여자의 이마에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여자가 창녀라는 것을 뜻합니다.
'땅의 탕녀들과 역겨운 것들의 어미, 대바빌론'이라는 말은 로마가 온 세상의 우상숭배와 하느님에 대한 적대감과 온갖 악행의 근원이자 중심지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의 신비였습니다.>--이 구절은 그 여자의 이름 바빌론은 실제 바빌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징이라는 뜻입니다. '바빌론'은 우상숭배와 악행의 중심지를 상징하며, 여기서는 '로마'입니다. (여기서 '신비'로 번역되어 있는 말의 원문 단어는 '뮈스테리온'입니다. 이 단어는 '신비, 비밀, 숨은 뜻, 수수께끼' 등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여기서는 '신비'보다는 공동번역 성서처럼 '상징'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6절..<내가 보니 그 여자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다는 말은, 그 여자가 그리스도교의 성도들과 순교자들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로마 시대의 대박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는 우상숭배와 향락에 빠져 있었고,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보고 크게 놀랐다는 말은 그 여자의 모습이 깜짝 놀랄 만큼 혐오스럽고, 끔찍했다는 뜻입니다.
7절..<그때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놀라느냐? 내가 저 여자의 신비와 저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짐승 곧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짐승의 신비를 너에게 말해 주마.>--'왜 놀라느냐?' 라는 말은 '왜 새삼스럽게 놀라느냐?' 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 여자가 상징하는 로마제국의 모습과 박해는 요한 묵시록 저자도 이미 잘 알고 있고,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놀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요한 묵시록 저자에게 상징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비' 라는 말은 '상징'이나 '비밀', 또는 '수수께끼'로 바꿔야 합니다. 천사는 뒤의 8절에서부터 여자와 짐승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 설명의 내용 자체가 또 하나의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천사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3장 18절에서 말한 것처럼 '지혜'가 필요합니다.
8절..<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그것이 또 지하에서 올라오겠지만 멸망을 향하여 나아갈 따름이다. 땅의 주민들 가운데 세상 창조 때부터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이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앞으로 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이 말은 그 짐승이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존재였지만, 즉 한 번 세상에 나타났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하느님에 대해 표현했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1,8)'이라는 표현을 모방한 것으로서 그 짐승이 하느님을 모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없습니다. 즉 하느님의 영원성은 모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그 짐승의 일곱 머리 중 하나는 지금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짐승이 지금은 없다는 말과 맞지 않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일곱 머리 중 하나가 지금 살아 있지만 완전한 형태의 짐승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것이 또 지하에서 올라오겠지만>--이 말은 앞의 13장 3절에서 언급했던 '네로 재생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멸망을 향하여 나아갈 따름이다.>--이 말은 그 짐승이 다시 나타나서 일정 기간 동안 활동하겠지만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19장 20절을 보면 그 짐승이 붙잡혀서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졌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땅의 주민들 가운데 세상 창조 때부터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들, 즉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 다시 나타나자 놀라서 경배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13장 3절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입니다.(8절의 끝부분 구절,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이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앞으로 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앞으로 또 나타날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고, '그 짐승이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앞으로 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짐승을 보고' 놀라는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고, '짐승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뜻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큰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9절..<여기에 지혜로운 마음이 필요한 까닭이 있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며 또 일곱 임금이다.>--(여기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번역되어 있는 말은 공동번역 성서처럼 '지혜로운 이해력'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천사는 또 다시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 묵시록이라는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은총으로 주어지는 지혜, 즉 통찰력과 이해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며>--로마시는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로마를 직접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일곱 임금이다.>--이 말은 로마 황제 일곱 명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일곱 머리'는 로마를 뜻하면서 동시에 로마 황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10절..<다섯은 이미 쓰러졌고 하나는 지금 살아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오더라도 잠깐밖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다섯은 이미 쓰러졌고' 라는 말은 다섯 명은 이미 죽어서 지금은 없는, 과거의 로마 황제라는 뜻입니다. '하나는 지금 살아 있으며' 라는 말은 요한 묵시록을 기록하던 당시의 로마 황제를 가리킵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오더라도 잠깐 밖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은 다음 차례로 황제가 될 일곱 번째 사람은 재위 기간이 짧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의 재위 순서>
1. BC 27 - AD 14, 아우구스투스
2. AD 14 - 37, 티베리우스
3. 37 - 41, 칼리굴라
4. 41 - 54, 클라우디우스
5. 54 - 68, 네로 (68-69 갈바, 69 오토, 69 비텔리우스)
6. 69 - 79, 베스파시아누스
7. 79 - 81, 티투스
8. 81 - 96, 도미티아누스
9. 96 - 98, 네르바
--성경에 '카이사르'라고 나오는 이름은 우리가 보통 '씨저'라고 부르는 독재자의 이름인데, 그는 황제가 되지 못하고 암살당했지만, 나중에 '카이사르' 라는 이름은 황제를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었던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정권을 잡고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당시의 황제입니다.
--티베리우스는 유대인들을 보호한 황제이고, 그리스도교와도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칼리굴라는 황제숭배를 시작한 사람이고 근친상간 등으로 유명한 폭군입니다. 그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했고, 유대인들을 이탈리아 반도에서 추방했습니다.
--네로는 유명한 폭군이고,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박해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이때 순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쿼바디스'입니다. --네로 다음으로 황제가 된 세 명은 재위 기간이 너무 짧고, 그들의 세력이 제국 전역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황제 반열에서 제외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0절에서 이미 쓰러졌다고 한 다섯을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로 생각하고, 지금 살아 있다고 한 여섯 번째는 '도미티아누스'로 생각합니다.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때가 도미티아누스가 황제로 있던 때입니다. --잠깐 밖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라고 한 일곱 번째는 '네르바'입니다. 그는 묵시록의 예언대로 황제를 일 년 밖에 못하고 죽었습니다.
(일부 학자는 '다섯'을 아우구스투스부터 네로까지로 보고 여섯 번째를 베스파시아누스로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묵시록 기록 연대와 맞지 않게 되는데, 이 해석대로라면 묵시록 저자가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 예언 형태로 로마제국의 과거와 현재를 묘사한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일부 학자는 '7'이라는 숫자가 전체성, 완전성을 나타내는 상징수이기 때문에 '일곱 왕'은 하느님에게 적대적인 세상 모든 나라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11절..<또 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이 여덟 번째 임금이다. 그러나 그는 일곱 가운데 하나였던 자로서, 멸망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 즉 앞의 8절에서 언급했던 그 짐승이 여덟 번째 임금이라는 말은 네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네로 재생설'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신자들 사이에 네로가 다시 살아나서 또다시 교회를 박해할 것이라는 네로 재생설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어떻든 이 구절은 네로처럼 지독한 폭군, 또는 박해자가 또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일곱 가운데 하나였던 자로서>--일곱 황제 중의 하나이지만 '전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죽은 다섯 가운데 하나입니다. <멸망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이 말은 8절에서 했던 말을 반복한 것인데,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신자들을 격려하는 말입니다.
12절-13절..(12)<네가 본 열 뿔은 열 임금이다. 그들은 아직 왕권을 차지하지 못하였지만, 잠시 그 짐승과 함께 임금으로서 권한을 차지할 것이다.> (13)<그들은 한뜻이 되어 자기들의 권능과 권한을 짐승에게 넘겨주고>--천사가 '열 뿔'은 '열 임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열 임금'은 로마의 속국의 왕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0'이 전체를 뜻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의 부하들이고, 추종자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왕권을 차지하지 못하였지만>--이 말은 그들에게는 독자적인 통치권이 없다는 뜻입니다. <잠시 그 짐승과 함께 임금으로서 권한을 차지할 것이다.>--이 말은 그들이 그 짐승에게 복종하면서, 그 밑에서 잠깐 동안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한 뜻이 되어>--이 말은 그들이 그 짐승에게 복종하면서 어린양에게 싸움을 거는 일에 마음을 합했다는 뜻입니다. <자기들의 권능과 권한을 짐승에게 넘겨주고>--이 말은 그들이 하는 일 모두, 즉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권력 행사는 짐승의 뜻에 따른 일이라는 뜻입니다.
14절..<어린양과 전투를 벌이지만, 어린양이 그들을 무찌르고 승리하실 것이다. 그분은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임금들의 임금이시다.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충실한 이들도 그분과 함께 승리할 것이다.">--14절의 내용은 뒤의 19장 19절-21절의 전쟁(하르마게돈의 전쟁)을 예고하면서 그 전쟁의 승리를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싸움의 결과를 미리 알려 주어서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짐승과 짐승의 부하들인 왕들이 어린양에게 싸움을 걸지만 어린양이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양은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임금들의 임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권력이나 세력도 하느님(또는 어린양)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들의 주님'이라는 말과 '임금들의 임금'이라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즉 어린양은 '왕들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주님들'이라는 말은 당시에 백성들이 '주님'이라고 불렀던 로마 황제나 왕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들의 주님'이라는 말은 '황제(왕)들의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충실한 이들'은 충실한 신자들과 순교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어린양의 군대입니다. 신자들과 순교자들은 지금은 박해를 받고 있는 처지이지만 어린양의 마지막 승리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즉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15절..<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본 물, 곧 탕녀가 그 곁에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군중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다.>--15절은 1절에서 언급했던 '큰 물'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천사의 설명에 의하면, '물'은 탕녀와 함께 불륜을 저지르는 온 세상 사람들입니다. 즉 로마제국을 추종하면서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온 세상 사람들을 표현할 때는 항상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민족'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종족'이 빠지고 '군중'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군중'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지 못하고, 양심도 마비되어서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함께 휩쓸려 가는 집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종족' 대신에 '군중'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우상숭배나 황제숭배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군중심리에 의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6절..<그리고 네가 본 열 뿔과 그 짐승은 탕녀를 미워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알몸이 되게 하고 나서, 그 여자의 살을 먹고 나머지는 불에 태워 버릴 것이다.>--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제까지 같은 편이었던 '짐승과 열 뿔'과 '탕녀'가 서로 적이 되어서 싸우는데, '짐승과 열 뿔'은 갑자기 탕녀를 미워하게 되고, 무자비한 학살을 합니다. (16절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17절에 나옵니다.)
'그 여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알몸이 되게 하고 나서, 그 여자의 살을 먹고 나머지는 불에 태워 버릴 것이다.' 라는 말은 로마가 처참하게 파괴되고, 사람들은 학살되고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로마 대화재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에제키엘서 23장 29절에 이것과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17절..<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당신 뜻을 실행하도록 의지를 불어넣으시어, 하느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이 뜻을 같이하여 자기들의 왕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주게 하셨기 때문이다.>--17절은 16절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짐승과 열 뿔이 이제까지 자기들과 같은 편이었던 탕녀를 죽인 것은 바로 하느님 뜻에 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악행의 도시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범죄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처형하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으며 사탄도, 짐승도, 세상의 왕들도 하느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는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박해도, 시련도, 고난도 하느님의 섭리의 일부일 뿐이며 마지막 승리는 항상 하느님 쪽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이 뜻을 같이하여 자기들의 왕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세상의 왕들이 하느님의 도구가 된 것은 이미 12절부터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뜻을 모아서 자기들의 왕권을 짐승에게 넘겨 준 것은, 즉 짐승의 부하가 된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섭리의 도구로 삼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는 짐승의 부하가 되어 하느님을 적대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탕녀와 짐승 사이에 분열이 생길 때 탕녀를 죽이는, 즉 하느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도구가 되도록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실행하는 일에 '하느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당신 뜻'은 사탄과 추종자들을 처벌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질 때'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 의지를 불어넣으시어' 라는 말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대로 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들이 회개하고 하느님 편에 선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이 스스로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싶어 하는 의지나 욕망을 갖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결과가 된 것뿐입니다.
18절..<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가진 큰 도성이다.">--이 구절은 '바빌론'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구절입니다.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가진 큰 도성'이라는 말은 당시 사람들이 온 세상을 식민지로 삼아서 다스린다고 생각했던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당시 로마의 실제 역사가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 묵시록은 과거의 일을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미래의 일을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즉 요한 묵시록은 당시의 역사를 통해서 마지막 날의 일들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도 해당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상황과 역사의 흐름을 신앙인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여,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 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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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지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지식이라면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번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지식이라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당선된다면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는 없는 자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새해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 '부자 되세요!'
지혜보다는 지식을 추구하는 말입니다.
출세와 부귀영화는 지혜가 아니라 지식을 통해 얻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면
괜히 쓸데없이 시간낭비 한다고 항의하는 학부형들이 있습니다.
지혜보다는 지식을 더 원하는 부모들이 자녀를 망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고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은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혜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특히 묵시록은 지혜를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책입니다.
묵시록의 모든 상징들을 다 알아낸다고 하여도
그것이 자기 삶에 무슨 교훈을 주는지,
이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일 뿐입니다.
지혜는 잔머리 굴리기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올바른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입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집회 1,14)"
"지혜의 충만은 주님을 경외함이며(집회 1,16)"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집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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