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20장> 송영진 모세 신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게 되면 천 년 동안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고, 순교자들이 부활 해서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입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해서 최후의 심판(공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후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1절-6절 : 천 년 통치>
1절..<나는 또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9장 1절에서 '땅으로 떨어진 별 하나'가 다섯째 나팔의재난을 준비하기 위해 열쇠로 '지하로 내려가는 구렁'을 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 천사가 정반대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내려옵니다.
여기서 '지하'는 일시적인 처벌 장소입니다. 영원한 벌을 받는 곳은 뒤의 10절에
나오는'불과 유황 못'으로 표현됩니다. '열쇠'는 9장에서는 문을 열기 위한 것이었지만, 여기서는 잠그기 위한
것입니다. '큰 사슬'은 사탄을 붙잡아 묶어두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쇠와 큰 사슬'은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문을 열 수 없고,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2절..<그 천사가 용을,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붙잡아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였습니다.>--'사탄, 용, 악마, 뱀'이라는 사탄의 네 가지
이름은 12장 9절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그 이름들을 언급하는 것은 사탄의 성격과 능력,
위험성 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이 몹시 위험한 존재이지만 천사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사탄을 붙잡아 결박합니다. 그것은 이미 12장의 싸움에서 사탄이 패함으로써
그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요한 묵시록을 읽는 신자들에게 사탄은 하느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박해와 싸우고 있는 신자들의 두려움을 없애고 그들에게 안정감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을 천 년 동안 묶어 놓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 기간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기간이 될 것입니다.
3절..<그리고 그를 지하로 던지고서는 그곳을 잠그고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사탄의 부하였던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이미 19장 20절에서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탄은 일시적인(천 년 동안) 처벌만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확정 판결이 내릴 때까지 피의자를 구치소에 임시로 가두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지하의 문을 잠그고 '봉인'을 한 것은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절대로 그 문을 열 수 없고, 아무도 그곳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사탄의 임시 감금 기간은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 기간 동안입니다. 그 기간 동안 사탄은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세상의 일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했다.' 라는 말은 그동안 사탄이 해온 일이 사람들을 속이는(현혹시키는) 일이었음을 뜻합니다.
그 뒤에 사탄을 잠시 풀어주는 것은 마지막 심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확정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잠시 구치소에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잠시 풀려난 틈을 이용해서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탄이
풀려나게 '되어 있다.' 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서 풀려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4절..<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라는 말은 요한 묵시록 저자가 하늘의 재판관들(심판할 권한을 받은 이들)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재판장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옆에 앉아 있는 그 재판관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복음 19장 28절과 루카복음 22장 30절에서 사도들에게 "너희도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재판관들이 사도들일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 6장 2절에서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느님 옆에 있는 재판관들을 '성도들'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순교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에 여기서는 하느님 옆의 재판관들이 사도들인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라는 말은 한마디로 '순교자들의 영혼'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라는 말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라는 뜻입니다.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은 참수형으로 순교한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교자들의 영혼을 뜻합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라는 말은 그들이 사탄이나 우상을 숭배하지도 않았고, 이마와 손에 666이라는 낙인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살아나서' 라는 말에 대해서 순교자들이 살아난 것은 영적인 부활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고, 육체적인 부활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영적인 부활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은 뒤의 12절에서 말하는 '죽은 이들'을 '모든 사람'으로 생각하고, 육체적인 부활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은 뒤의 12절의 '죽은 이들'을 5절에 나오는 '나머지 죽은 이들'로 생각합니다.
(어떤 해석이 옳은지는 '그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미 하늘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또다시 최후의 심판을 거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심판결과가 달라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이 살아난 것은 육체적인 부활일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라는 말은,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의 통치권 행사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천 년>--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기간 7일과 시편 90편 4절에서 하느님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다는 말을 합해서 세상의 역사를 7천 년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까지는 6천 년이 걸리고, 그리고 그리스도 재림 후 최후의 심판까지 나머지 천 년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기간입니다.
<천년왕국>--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실제로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생각하는 종파도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상징, 또는 비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 옛날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뚜렷한 결론은 없습니다. 또 최후의 심판 전에 '왜' 천년왕국이 필요한가? 에 대해서도 확실한 해답은 없습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이 기다려 오던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생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 이전에 하나의 중간 단계, 또는 과도기로서 메시아가 통치하는 나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순교자들>--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에 참여하게 될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순교자들 외에도, 순교는 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채
죽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충실한 신자들도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5절..<나머지 죽은 이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나머지 죽은 이들'은 4절에서 언급한 '순교자들'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즉 우상숭배에 빠졌고, 666 낙인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라는 말은, 그들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저승에서 대기 상태로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머물고 있는 '저승'과 우리가 교리에서 배운 연옥과 지옥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심판에는 사심판과 공심판이 있는데, 사심판은 개인이 죽은 뒤에 받는 심판이고
판결에 따라 천당과 연옥과 지옥으로 갈라져 가게 됩니다. 공심판은 최후의 심판으로서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이들이 머무는 장소로 '저승'을 이야기할 뿐이고 사심판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4절에서 순교자들이 살아난 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 두 번째 부활은 12절에 있습니다.
6절..<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고 또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이들에 대해서는 두 번째 죽음이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제가 되어, 그분과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고 또 거룩한 사람입니다.>--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들이 행복하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이유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에 나옵니다. 그들은 '영원한 처벌'을 받지 않게 되고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이고, 거룩하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제직에도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이들에 대해서는 두 번째 죽음이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두 번째 죽음'은 14절에 나오는데 영원한 처벌을 받고 멸망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두 번째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그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제가 되어>--여기서 말하는 '사제'는 지상에서의 사제와는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늘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바로 곁에서 모시면서 섬기는, 지극히 복된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그분과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에 참여한다는 말은 이미 4절에서 했던 말입니다.
<7절-10절 : 사탄의 패망>
7절..<천 년이 끝나면 사탄이 감옥에서 풀려날 것입니다.>--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가 끝나면 사탄이 풀려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 중 하나인데 이것은 '석방'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하기 위한 임시 '가석방', 또는 집행유예
상태입니다.
8절..<그는 감옥에서 나와 땅의 네 모퉁이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고서는 그들을 전투에 끌어들일 터인데, 그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사탄은 풀려나자마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느님께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19장에서 전멸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온 세상에 널려 있는 민족들을 선동해서 전투에 끌어들이는 일에 성공합니다.
'땅의 네 모퉁이'는 온 세상을 뜻합니다. '곡과 마곡'이라는 이름은 에제키엘서 38장-39장에서 온 것입니다. 곡과 마곡이라는 이름 자체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하느님께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 기간 중에도 이 세상에는 믿음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의 추종자들은 19장에서 전멸 당했고, 사탄은 20장 3절에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악'이 인류로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사탄에게서도 오지만 사람의 마음에서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 기간 동안 사탄의 방해가 없는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는 하지만, 인간들의 죄와 악, 불행과 죽음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라는 말은, 사탄의 선동에 호응해서
하느님께 대항하는 반란군에 가담한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요한 묵시록 1장에서 20장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반복된 재앙과 경고, 그리고
회개하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온갖
재앙들과 바빌론의 멸망과 하르마게돈 전쟁을 겪으면서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9절..<그들은 드넓은 땅을 건너 올라와서는 성도들의 진영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성을 에워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그들은 드넓은 땅을 건너 올라와서는>--이 말은 사탄의 반란군대가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으로 진군해 왔다는 뜻입니다.<성도들의 진영과>--'성도들의 진영'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사막을 행군하던 시절의 이스라엘의 진영을 연상시키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성을 에워쌌습니다.>--원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년왕국을 뜻합니다. 반란군이 천년왕국을 포위하자 그리스도의 왕국은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성도들의 진영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성'을 우리 기준으로 해석하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가톨릭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그러나
반란군이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한 순간에 전쟁이 끝나버립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직접 불의 기적을 행하셨다는 뜻입니다. 불이 그들을
삼켜 버렸다는 말은 하느님의 불로 반란군이 전멸 당했다는
뜻입니다.
10절..<그들을 속이던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그들을 속이던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하느님께서는 사탄을 사로잡아서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던지십니다. '불과 유황 못'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지옥과는 다른 곳인데, 어떻든 사탄이 영원히 벌을 받는 곳입니다.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19장 20절에서 사탄의 부하들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졌었습니다.<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사탄과 사탄의 세력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고,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멸망입니다.
<11절-15절 : 마지막 심판>
11절..<나는 또 크고 흰 어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달아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크고 흰 어좌'는 하느님의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크다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을, 희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은 성부 하느님을 뜻합니다. 마태오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 대목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심판관이었는데, 여기서는 성부 하느님이 심판관이십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달아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첫 창조물이었던 땅과 하늘은 그동안 오염되었기 때문에(죄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또 이것은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12절..<그리고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하느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 사람이 높은 사람이냐, 낮은 사람이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심판을 받기 위해 하느님 앞에 설 때는 모두 혼자서 하느님과 일대일로 대면하게 됩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인간의 모든 행적이 기록된 책입니다. 각 사람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책이 있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생명의 책'은 한 권뿐입니다. 그 책은 구원받을 사람들 이름이 적힌 책입니다. 그 책에 대해서는 3장 5절에서 언급했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심판에는 두 권의 책의 기록이 모두 적용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 또는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선행이 합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인간 편에서도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인간이 자신만의 힘으로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결국 인간들은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생명의 책에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지우는
사람입니다.따라서 최후의 심판이란 인간 스스로 내린 결정을 온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13절..<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바다와 죽음과 저승이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다.' 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다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즉 죽은 자들이 묻힌 곳이 어디이든, 죽은
자들의 영혼이 지금 어디에 있든지 간에 빠짐없이, 아무도 제외되지 않고 '자기 행실에
따라'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4절..<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죽음과 저승'을 의인화한 표현은 6장 8절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의'지옥'보다는 새번역 성경의 '저승'이 적절한 번역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 온 '죽음'은(로마 5,12) 하느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죽은 자들의 임시 거주지였던 '저승'도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따라서
죽음과 저승은 영원히 소멸됩니다.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다는 말은 죽음과 저승 자체가
영원히 소멸되는 것을 뜻합니다. 영원한 형벌인 '불 못'은 '두 번째 죽음', 즉 영원한 죽음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죽음으로부터는 부활이 없습니다.
15절..<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최후의 심판의 판결은 두 종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거나, 아니면 불 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거나, 그 두 가지뿐입니다. 19장에서 처음으로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불 못에 던져졌고, 그 다음에는 사탄이, 그 다음에는 죽음과 저승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인간들이 던져집니다. 이렇게 하여 최후의 심판이 모두 끝나게 됩니다. (생명의 책에 적힌 이름들이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있었는데 나중에 죄를 짓고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고, 이름이 지워졌다가도 회개하여 다시 이름이 기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각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생명의 책의 기록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시고 판결을 내리시기 전에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 또는 자신이 판결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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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천년왕국"
하느님께서는 대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기 전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시간을 충분히 주셨습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노아의 말을 믿었더라면 죽지 않고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하느님께서는 조금씩, 조금씩 파괴하면서
인간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셨고,
마지막에는 천년왕국이라는 과도기까지 주십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여유라도 허락받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유언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성경 말씀을 볼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정말 최소한의 힘, 최소한의 시간 여유를 허락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죽음보다도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 더 두렵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날아들기 시작한 동창생들의 갑작스러운 부고들은
그것이 남의 일도 아니고, 결코 먼 훗날의 일도 아님을 깨우쳐줍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신 그 최소한의 시간은
죽음의 천사가 찾아온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일 것입니다.
내일이, 아니 오늘 밤이 그 날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이라는 과도기는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