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15장> 송영진 모세 신부
15장은 16장의 서론, 또는 도입부분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1절-8절 : 마지막 일곱 재앙의 예고>
1절..<나는 또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1절은 15장-16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인데, 16장의 일곱 대접의 재난들이 마지막 재앙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라는 말은, '자연의 법칙들이나 상식들을 초월한 새로운 표징'이라는 뜻입니다. 어떻든 요한 묵시록 저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본 놀라운 표징은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입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오는 것은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재앙이 '마지막'이고,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이라는 말은 그 재앙을 통해서 하느님의 진노가 최고조에 달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2절..<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불이 섞인 유리 바다>--4장 6절에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불이 섞인'이라는 말은 유리 바다(또는 수정) 자체에서 발산하는 광채를 표현한 것이거나, 또는 하느님의 심판을 뜻하는 번갯불이 반사되어 있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이 구절은 전체적으로 '박해자'를 뜻하는데,'짐승'은 로마제국을 가리키고, '그 상'은 로마 황제의 상을 가리킵니다.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는 직접적으로는 '666'을 가리키지만 넓게 생각하면 황제 숭배의 모든 상징들, 또는 예배 행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공동번역 성서는 '숫자를 가지고 이름을 나타냈던 그 자를'로 번역했는데 새번역 성경의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 ...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들이 박해자를 무찌르고 승리했다는 말은 '순교'란 패배가 아니라 승리라는 뜻입니다. 순교자들이 박해를 받고 죽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들이 승리자이고, 박해자들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패배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패배는 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순교자들이 유리 바다 위에 서 있었다는 말은 승리자의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었다
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순교자들이 악기를 들고 반주를 하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데, '수금'은 14장 2절에 나왔던, 거문고 비슷한 악기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노래를 할 때 사용하는 악기입니다.
3절-4절..(3)<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4)<주님, 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라는 말은 원문에는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로 되어 있는데,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 곧 어린양의 노래'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3절-4절의 노래를 가리킵니다. 원래 '모세의 노래'는 탈출기 15장에 나오는 노래인데, 바다를 건넌 직후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린양의 승리를 새로운 출애굽으로 표현하면서 옛날 이집트 탈출 때의 하느님의 구원업적과 요한 묵시록의 그리스도(어린양)의 승리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노래는 곧 어린양의 노래라는 것입니다.
또 모세가 승리의 노래를 바닷가에서 부른 것처럼, 여기서도 순교자들이 새로운 승리의 노래를 하늘의 바닷가(유리 바다)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인데, 하느님의 크고도 놀라운 업적과 하느님의 의롭고 참된 길, 즉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지혜와 섭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분이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 존경과 영광을 바치기를 거부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 '모든 민족들', 즉 이방인들도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느님께 복종할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5절..<그 뒤에 내가 또 보니 하늘에 있는 증언의 천막 성전이 열리고,>--11장 19절에서처럼 여기서 다시 요한 묵시록 저자의 눈앞에서 하늘의 성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원래 '증언의 천막'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다음 '계약 궤'를 모셔두기 위해서 하느님 친히 분부하신 규격, 설계, 재료대로 세운 천막으로서 훗날 건립된 성전의 효시입니다.
이 '증언의 천막'도 '계약 궤'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데, 그 원형이 하늘에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따라서 지상에 있는 '증언의 천막'의 원형인 하늘의 '증언의 천막 성전'이 열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이 가까워졌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6절..<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천사들이 재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들이 받은 직무는 세상에 재앙을 내리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성전에서 나왔습니다.>--그 직무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음을 뜻합니다.<그들은 깨끗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이 말은 그들이 사제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깨끗하고 빛나는 옷'과 '가슴의 금 띠'는 사제의 복장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는 천사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제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사들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라 하느님의 재앙을 내리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7절..<그때에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여기서 '네 생물'은 4장 7절처럼 피조물들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하느님의 금 대접을 천사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이 재앙이 전 우주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이 구절은 천사들이 직무 수행의 도구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이라는 말은, 하느님은 유한한 피조물을 심판하시는 영원하신 분이라는 뜻의 존칭입니다.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금 대접'은 16장의 재앙들이 하느님의 진노로 인한 재앙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제 천사들이 대접에 담긴 내용물을(하느님의 분노를) 쏟을 때마다 인류에 대한 심판과 처벌이 시작될 것입니다.
8절..<그러자 성전이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성전에 가득 찬 연기는 하느님의 영광과 힘의 상징입니다(탈출 40,35 ; 이사 6,4). 그런데 여기서는 그 연기가 향을 피우는 연기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이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사람들은 일곱 대접의 재앙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이 구절은 재앙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하느님께 접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노여움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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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승리자, 패배자"
300년간의 로마제국의 박해가 끝나고 나서 마침내 종교의 자유를 얻고,
나아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에는
천주교가 박해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이 황제를 임명할 정도로 세속의 권력을 갖게 되고
교회가 자신의 영토와 재산을 갖게 되면서
외부의 박해 대신에 세속화라는 보이지 않는 박해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외부로부터의 박해에 대해서는 승리했지만,
내부로부터의 박해에 대해서는 패배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중세기의 타락과 교회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천주교로 개종한다면,
다른 종교는 모두 없어지고 오로지 성당만 남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겠습니까?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습니다.
세속의 집단과 성당의 공동체가 다르다면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나 타종교 신자들과
천주교 신자들이 다르다면 어떤 점이, 얼마나 다른가?
심각하게 반성해 볼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속도보다
천주교 신자들이 세속주의에 물들어 가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신앙인들은 멀리했기 때문에
박해는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를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돈에 집착하고, 명예를 욕심내고,
향락을 즐기고, 부귀영화를 꿈꾸고, 부자 되기를 소망한다면,
외부의 박해는 없어도,
그것은 신앙인들 자신이 스스로를 박해하는 것이고,
패배를 향해서 가는 길입니다.
남들이 즐기고 놀 때 하느님을 더 찾는다는 것,
남들이 즐겁다고 하는 것을 멀리 하고 재미없는 것을 더 찾는 것,
그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한 승리의 길은 멀고도 멉니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패배처럼 보이고,
어리석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비웃음을 사게 되더라도
하느님으로부터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승리입니다.